Posted on 2005/11/22 10:27
Filed Under 내 멋대로 살기

#1.

 

스스로를 무너뜨릴 수 있는, 그래서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수다떨기를 하자고 한다.

 

나를 찾을 수 있는, '나'를 '나'로 세울 수 있는 수다는 도대체 어떤건지 막연하다.

 

이런 수다떨기가 우리 운동과 활동에 반드시 필요한 부분임은 이미 머리속에서는 인지되었던거 같다. 그러나 그러기에 우리의 '수다'는 그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에 대한 피함과 도망으로 일년여를 겉돌았다. 아니... 난 그러고 싶었다.

 

지금의 무거움과 막연함, 그리고 운동의 모호함이란 것을 '정면'으로 바라보는게 정말 무서웠던 것 같다. 자기만족적인 운동이라는, 개인적 활동이라는, 그리고 개인기로 하는 활동이라는 비판을 들어도 가벼운 한숨으로 흘렸다. 그런 이야기에 '정면'으로 충돌할 수 없었다. '정면'으로 충돌하면 '내'가 부서지고 말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활동이 뭔지도 모르겠었다. 술먹으며 토론하고 그렇게 토론하다 우는 일들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난 별로 고민을 깊게 오래 못하는 성격이라서..'라고 하며 뒤로 숨었다.

 

진지하게 뭔가를 쓰다가도 'ㅋㅋ'나 이모티콘을 이용해 가벼움을 남겼다. '가벼움'에 그리고 '유쾌함'에 강박되어 있었다. 이런 시기, 이런 상황, 그리고 이런 운동이 너무 무거워서... '나'라도 가볍고 낙천적이자 생각했던 것 같다. 아니다 어쩌면 인식하지 못하고 내 머리 속에서 마음대로 진행되어 버린 방어기제일지도 모른다.

 

미리 머리속에서 정리하거나 앞뒤의 논리를 맞추거나 하지 못하더라도 그렇게 단편 단편 내 머릿속과 가슴속에 흩어져 있는 조각그림들을 맞춰봐야 할거 같다. 그 과정이 내 몸 이곳 저곳에 다시 상처를 내고 결국 과다 출혈을 일으킬지도 모르지만, 그 그림속에 뭐가 있을지 모르지만... 어떤 그림을 남기고 싶은지는 구도가 잡힌거 같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와 고민들을 하면서도 우울하거나 심하게 무겁지는 않다. 이제는 조금씩 꿈틀거려 볼 수 있을 거 같다.

 

얼마가 걸릴지 모르지만... 그리고 그 과정에 충실히 임할 조건도 안 되지만... 아파하지말고, 도망가지 말아야겠다.

 

#2.

 

어제...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12월부터 전문의 시험을 위한 입시휴가에 들어갈 예정이다. 왜 따야 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일한 4년이 아까워서, 없는거 보다는 있는게 여러모로 도움이 될거 같아서, 그리고 앞으로의 활동에 밑천으로 써 먹어야 할 또는 활동에서 요구되는 일부의 지식이 '없는' 상태라는 생각이 들어서 공부를 하기로 했다.

 

하도 오랫동안 놀아서 잘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살짝 살짝 들여다본 책이, 맛만 본 공부가 퍽 재미있다. 오래간만에 하는 일이라서 그런가보다 했다.

 

암튼, 그리하여 다음주에는 또 우리 동기들의 합숙이 예정되어 있는지라 어제의 하이텍 농성과 집행위가 올해의 (아마도) '마지막' 집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시작'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수습의 기간을 거쳐 이제야 '시작'하는게 '나'라는 사람의 '운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공의라는 든든한 방패가 있는 기간동안 이런 저런 모색들과 만남들과 부침과 시간속에서 나를 세우기도 하고 깍아내리기도 했다. 그리고 활동을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보고, 구석에 처 박아 놓아 보기도 했다. 그리고 내 감정을 하늘로 붕 띄웠다가 머리 한 구석에 쑤셔 박아 놓았다가, 산에다 슬쩍 두고 오기도 했다.

 

앞으로도 무지하게 많은 갈등과 부침과 질곡이 있겠지만 이제는 그만 헤매고 '시작'하고 싶다.

 

전기도 안 들어온 폐허스러운 하이텍 농성장에서 촛불켜놓고 회의하고 술을 마시면서 4년을 함께 해온 동지들과 모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시작'의 가능성과 '희망'을 확인했다.

 

휴가기간... 공부도 공부지만 '시작'을 할 수 있는 방법과 방향을 찾아야겠다.

 



#3.

 

4년을 같이 해 온 얽히고 섥힌 인연이 드디어 정리되는 거 같다. 아이구는 '증오'가 그렇게 표현되는 거라고 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섭섭한거 보다 시원한게 더 크니까... 

 

인연이라는 것이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질지 모르겠지만... 이젠 그런 증오나 회피가 아니라 '관계'라는 실물로 고민할 수 있을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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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22 10:27 2005/11/22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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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류 2005/11/22 1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쏟아지는 수다에 맞아 쓰러질 준비를 하고 있으면 되나? ^^;
    연구소 동지들과 이야기나눴나보네. 힘내~ ^^)//

  2. 이재유 2005/11/22 15: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힘내시고 열심히 해서 전공의 꼬옥 합격하시길 바랍니다.^^ 당분간 해미님 글 읽지 못할 거 같아서 서운하지만(^^) 또 다르게 변한 해미님의 모습 기대해 보겠습니다.*^^*...

  3. ptemail 2005/11/23 1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시험이 언제요? 찹쌀떡 사주리다...! 맘 푹 놓고 공부 열심히 하세요. 공부가 즐겁다면(운동만 하겠습니까만) 그걸로 된거 아닙니까! 홨팅!

  4. 해미 2005/11/24 09: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류/ 쓰러짐 안 되는디... 근디 너나 나나 만나면 그리 수다스러워지는 관계가 아니지 않남? 문득 눈빛으로 통하는 사이인가? 하는 의문이 모락모락... 조만간 만나 함 얘기해보자구. 너 편할때 연락함 될 것임.
    이재유/ 당분간 못 읽으시다니요. 정말로 개인적인 블로그가 되겠지요.
    ptemail/ 1차 시험은 1월 12일이구여. 2차 시험도 있는데... 이게 언제 끝날지 아직 모른답니다. 절대 운동만큼 재미있는거 같진 않지만... 그럭저럭 할 만해요. *^^*근데 찹쌀떡은 사주는 거에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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