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5/11/30 19:47
Filed Under 이미지적 인간

<존 말코비치 되기>, <컨페션>, <휴먼네이쳐>, <어댑테이션>... 이는 이터널 선샤인의 각본가인 찰리 카우프만의 작품이자 내가 카우프만을 좋아하고 그의 영화를 안 빼놓고 보게된 역사이다.

 

톡톡 튀는 상상력과 독특한 구성 속에서 인간의 본성을 그려내는 그의 각본에 흠뻑 빠져 이번에도 각본이 찰리 카우프만이라는 소문에 배우가 누군지도 잘 모르면서 그냥 보기로 결심을 했었다.

 

 

근데 알고 봤더니 캐스팅 역시 화려하다. 짐캐리의 대변신이 가장 충격적이기는 했지만 케이트 윈슬렛이나 커스틴던스트, 엘리야 우드에 이르기까지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을 하는 것이다.

 

거기다가 커스틴 던스트 같은 스타급 배우(난 그렇게 인정하진 않지만 최근에 할리우드와 관련된 가쉽란을 채우는 많은 인물증에 하나이다. 유명세를 치르고 있음에는 틀림없는것 같다.)가 그저 '조연'정도로 출연을 하다니... 카우프만과 호흠이 잘 맞기로 유명한 감독의 탓도 크겠지만 배우들이 이 영화를 선택하게된 가장큰 이유는 카우프만 때문일 것이다.

 

일단은... 짐캐리의 연기변신이 놀랍다. 알고보니... 그는 진짜 '배우'였던 것이다. 초록색 마스크를 뒤집어 쓰거나 온갖 이상한 변장을 하고 사람의 얼굴을 가지고는 도저히 표현하지 못할것 같은 표정으로 사람들을 웃기던 그가, 그저 큰 입을 쫙 벌리며 스크림에 나오는 유령 가면 흉내내기의 달인의 경지를 보여주던 그가 사랑의 기억속에서 헤매는 조엘의 섬세한 감정을 정말로 훌륭하게 연기했다. 그의 유연한 피부가죽과 얼굴 근육들이 그런 미세한 떨림과 감정에 따라 참으로 신기하게도 스~을쩍 움직이며 표정과 정서를 담아내더란 말이다.

 

암튼, 새로운 만남에서 시작한 영화는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시작으로 돌아온다.

 

누구나 한번쯤은 해 봤음직한 상상... 실연을 당하고 나서 그 기억을 잊어버리고 싶은 마음에서 영화는 출발한다. 오랜시간의 사랑이 있다. TV에서 나오는 것처럼 생물학적 호르몬의 폭풍기인 3달여를 지나 생물학적 사랑의 유효기간이라는 3년의 시간에 이른 사랑이 있다.

 

너무나도 소심하고 조용한 그리고 자기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줄 모르는 그저 '착한' 남자 조엘과 순간 순간에 솔직하고 충실한 클레멘타인은 소위 갈때까지 간 커플이다. 그저 심드렁히 대화도 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밥이나 먹고 상처가 될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그 기억을 잊고 싶었던 클레멘타인이 먼저 기억을 지우고 그 사실을 알게된 조엘도 기억을 지우기로 한다. 뇌의 구석구석 새겨져 있는 기억을 역순으로 지어가는 과정에서 조엘은 깨닫는다. '아픈' 기억이 그리고 '잊고 싶은' 기억이 있지만 행복했던 그리고 사랑스러웠던 기억이 훨씬 많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우지 않기 위해 저항한다. 그러나 기억은 깔끔히 지워진다. 그러나 평소와 다른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행동을 통해 다시 클레멘타인을 몇년전 처음 만났던 바로 그 장소에서 다시 만나고, 각자 자신이 얘기한 테잎을 듣고 파일을 보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말을 했는지 그리고 그 기억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를 들으면서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

 

그렇게 서로에게 질리고 싫증이 나도 상관없다면서 말이다.

 

사랑의 기억을 역순으로 쫓아가는 영화의 구성은 인간의 감정이란 것이 그런 기억과 습관속에 각인되는 것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결국 좋은 기억과 행복했던 기억이든 나쁜 기억과 가슴 아픈 기억이든 그 모든 기억과 추억, 느낌의 덩어리가 '사랑'임을 이야기한다.

 

 

커스틴 던스트가 연기했던 매리는 유부남과의 사랑으로 너무 힘들었고 그래서 기억을 지우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기억이 지워졌음을 깨닫는 순간 매리는 떠나고 만다.

 

글쎄... 비단 사랑의 문제만은 아닌것 같다. 인간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많은 경험과 기억이다.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또는 여러가지 사건들과의 경험 속에서 자신을 중심으로 가공되고 정리된 기억은 한 사람의 '인생'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그런 기억들과 추억들 속에서 사람은 앞으로를 예상하고 지금의 자신을 평가하는 것 아닐까?

 

더군다나 그것이 사랑에 대한 것이라면 더욱 그럴거 같다. 정말 뜨겁고 절절하게 사랑했던 기억, 초반의 설레임, 오랜 만남의 지루함, 막연한 기대와 실망, 그리고 서로에 대한 폭력과 상처까지... 매 경우의 수마다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는 사랑이라는 녀석에 대한 기억이 사라진다면 아마도 인생의 많은 부분이 없어지는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의 내가 있어온 또는 만들어져 온 과정의 상당부분이 없어지는것 같은 경험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사랑이란 것이 그런 경험들을 통해 뻔한줄 알지만 어쩔수 없이 하게 되는 것임에도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상적 분위기와 교차편집 속에서 카우프만의 잘 짜여진 각본은 그렇게 기억으로 만들어진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어짜피 내가 살아낸 인생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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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19:47 2005/11/30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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