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5/11/27 19:08
Filed Under 이미지적 인간

이윤기 감독의 '여자, 정혜'를 참 좋아했었다. 정치적 '처단'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그리고 정혜가 그냥 '살아낸다'는 사실에 조금 짜증이 나기는 했지만 그런 '살아냄'과 '견딤'을 표현하는 감독의 섬세한 필치를 좋아했었다.

 

러브토크는 이윤기 감독이 '섬세함'과 '냉정함'이라는 자신의 장기를 훨씬 더 많이 발휘하는 작품이었다.

 

 

LA이라는 낯선곳에 각자 다른 이유로 그러나 목적은 같은 '자유'를 찾아 떠나온 여자인 써니와 헬렌은 결국 기름처럼 그 사회에서 부유하면 살아간다. 감독은 그들의 이런 저런 사정을 들추지도 않고 극의 긴장을 억지로 고취시키지도 않는다.

 

그저 일을 하고 섹스를 하고 먹고... 일상의 긴장과 목표 없이 그저... 그렇게 살아간다. 한국 드라마만을 보며 우울증 약을 삼키는 헬렌의 엄마도 마찬가지이다.

 

그/녀들은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지도 알지도 못한다. 그저 미적미적 어찌보면 우유부단해보이는 행동과 파르르르 떨릴듯한 아슬아슬한 감정선이 있을 뿐이다.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고, 자기의 욕망에 충실하지도 않고.. 사랑의 느낌을 삼킬 뿐이다.

 

라디오의 DJ에게 한 밤중 뜻 모를 이야기를 던지고 대화를 하는 것이 고작 그들이 할 수 있는 소통의 방식이다.


 

어찌보면 '쿨'함을 숭배하는 또는 내가 정말 좋아했던 '네 멋대로의 해라'의 팬들이 바라는 또는 좋아하는 삶과는 다른, 절대로 자기 멋대로 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한다는게 어렵기만한 사람들의 답답한 이야기다.

 

그런 답답함을 받아 안아 고스란히 살려내는 배종옥의 연기가 정말 좋았다. 무덤덤히 요즈음의 신세대와는 조금 다르게 상처를 폭발시키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벽하게 끌어안지도 못하는 헬렌을 연기한 박진희도 정말 섬세하게 연기를 해 내었다.

 

그리고 너무 많은 것들을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모호함과 설명되지 않음으로 가득한 우리네  삶을 그리고 그런 답답함을 냉랭할 정도로 섬세하게 그려낸 감독이 있었다.

 

굳이 LA가 아니어도 충분히 수긍할 수 있을 거 같은 그런 삶들이 박혀있다.

 

자기를 사랑하면서 살아가기로 결심한 써니는 한국의 익숙한 골목길에서 으스스한 가을에 맞는 보라빛 트렌치코트를 꺼내 입는다. 그리고 써니가 사라진 그 골목의 끝에서 '정혜'가 걸어온다. 그렇게 겹치고 얽히고, 어찌보면 답답한 듯 살아가는 것... 본인이 욕망하는 것을 정확히 인지하지도 못하고 또 표현하지도 못하는 그런 애매함 속에서 살아가는 것... 그러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왠지  패배감이 묻어 나오는 것 같아 이윤기 감독의 영화가 올바르지 않다고 느낀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그렇게 모호하게 그리고 또 답답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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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27 19:08 2005/11/27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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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또 나중에 트랙백.

    Tracked from / 2005/11/29 02:39  삭제

    해미님의 [[러브토크] 그래, 그렇게 살아가는 거야] 에 관련된 글. 얼마 전에 보고선 글 하나 못 쓰고 있었네. 시간 나면..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달군 2005/11/27 2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옷 종옥이언니~~~!!

  2. 이재유 2005/11/28 15: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배종옥 씨 연기 참 잘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 아이들에게도 추천하고 저도 함 보러 가야겠네요^^. 근데 시험 공부는 잘 돼 가나요? 아차 괜히 물어봤다는 생각이^^...

  3. 하이하바 2005/11/30 16: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맨날 영화보고 공부는 언제하려나? ^^;
    열씨미 공부하고 머리 식힌거죠 :p

  4. 해미 2005/11/30 19: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달군, 이재유/ 종옥언니 진짜 연기 잘 하죠. 그 아우라 자체가 멋진 배우인거 같아요.
    하이하바/ 누구대신 뭐 발표하려 갔다가 시간이 붕 뜨는 바람에 우연찮게 이 영화랑 이터널 선샤인을 봤답니다. 공부는 뭐... 이럭저럭 하고 있기는 한데.. 이런 시기에 앉아서 공부하는거 자체가 참... 난감하고 힘드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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