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8/09/23 11:00
Filed Under 손가락 수다방

오늘 아침에 전화를 받고서야 지난주 확인전화를 받았던게 기억이 났다. 이쯤 되면 진짜 심각한 것이다.

 

정말 최종 마감이라 하여 시간내에 쓴 만큼 보내주었다. 정말 이러면 안된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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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세상에서 벌어진 진귀하고 신기한 일들을 소개한다는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재미있는 광경을 봤다. 항공 정비사를 오래 하시다가 정년퇴직 하신 아저씨였는데 이 아저씨가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기구들 - 예를 들면 무채 써는 기계, 걸레 빠는 기계 같은 - 을 만드는 발명왕이라는 이야기였다.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 사이좋게 동네 뒷산에 오르는 부부의 모습도 보기 좋았고, 그렇게 자신의 재능을 가지고 부인을 살피는 아저씨의 모습도 좋았지만 그냥 지나칠 수 있는 TV 프로였는데 나의 눈을 확 잡아끄는 것이 있었다. 이 아저씨가 무채를 써는 기계, 가래떡을 써는 기계, 걸레를 빠는 기계를 만들게 된 동기는 바로 부인이 손목이 아파서 이런 일들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것이 바로 숨겨져 있는 여성들의 근골격계 문제가 아니냔 말이다.

 

가벼운 두부 때문에 어깨 근육이 끊어진다고요?

 

몇 년 전 환경 친화적인 이미지로 유명한 모 회사의 공장을 방문했다. 그 공장에서는 각종 생면과 두부를 만들고 있었다. 이 공장의 노동자들을 면담을 해보니 근골격계 통증이 심하다고 하였다. 전체 규모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서 일단,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100여명 남짓한 조합원 중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여성 조합원의 100%가 근골격계 증상을 호소하고 있었다. 정말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무겁지도 않은 두부와 면을 만드는 공정에서 그것도 여성 노동자들은 포장이나 검사등을 담당하고 있는 공장에서 100%라니... 믿기지가 않아서 통계분석을 잘못한 것은 아닌지 몇 번씩 다시 확인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중 절반 정도의 노동자들에 대한 간략한 검진을 실시했다. 검진 결과는 더 충격적이었는데 자동차 공장이나 조선소에서도 보기 힘든 심한 수준의 근골격계 직업병 때문에 여성노동자들이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다. 어떤 노동자는 손목이 아픈데 좋다는 금침을 맞으러 다녔는데 그 가격이 한달 월급보다도 많아서 요즘은 못 다니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치료 효과가 좋다는 병원에 단체로 몰려다니기도 했다. 가장 심각했던 분은 조합에서 여성부장을 맡고 계신 분이었다.

 

그 분은 손끝이 파랬다. 손가락이 많이 저리고 아프다고 하셨다. 몇 가지 간략한 검진을 해보니 신경이나 혈관이 다 망가져서 혈액순환도 잘 안 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깨도 많이 아프다고 하셨다. 어깨는 근육이나 인대가 손상된 것 같았다. 일을 하고 나면 너무너무 아파서 숟가락을 들기도 힘들다고 하셨지만 어떻게 근근이 일은 계속 해 오신 것 같았다. 대학병원에서의 정밀 진단 결과 어깨의 근육이 파열되고 수근관 증후군이라 병이 손목에 생겨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여성부장님이 하시는 일은 두부를 검사하는 일이었다. 플라스틱 용기에 포장이 되어서 나오는 두부를 한 손에 한 모씩 잡아서 손목을 안쪽으로 한 바퀴 돌리면서 살펴보고 포장이 잘 되었는지 검사하는 과정이었다. 하나에 200-300g 밖에 안 되는 두부였지만 이걸 하루에도 천여 개씩 뒤집다 보니까 손이나 어깨가 다 망가진 것이었다. 같은 작업장에서 남성들은 20kg이 넘는 박스를 나르지만 여성들은 그렇게 무거운 중량물을 다루지는 않으니까 괜찮을 거라고 누구나 쉽게 생각을 했던 거다. 남성들이 나르는 박스에 들어있는 모든 제품이 결국 여성 노동자들의 손을 거쳐서 나간다는 생각을 못한 것이다.

 

사실 이런 생각은 대단히 일반적인 것이다. 이런 증상과 질환에 대해 여성 노동자가 근골격계 직업병으로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신청을 한다면 자세한 근무 조건과 상황에 대한 구체적 자료가 없을 경우 불승인이 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부분의 의사들과 전문가들은 여성이 중량물 작업을 하지 않는다고 판단할 것이고, 여성이기 때문에 가사 노동도 할 터이니 질병이 작업 때문에 생겼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결론을 내릴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는 것일까?

 

여성의 건강문제가 드러나지 않는 산재 통계

 

우리나라에서 노동자들의 건강문제를 가장 공식적으로 드러내는 자료는 바로 노동부에서 발표하는 산업재해 통계이다. 이 자료를 근거로 하여 정부의 안전보건정책의 방향과 목표가 수립되게 마련인 것이다. 그런데 여성노동자의 건강문제는 이 통계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일차적인 문제이다. 2006년 산재통계를 보더라도 전체 재해자 중에 83.17%인 74,780명이 남성이었고 여성은 15,130명으로 16.83%에 불과했다. 이 통계를 그대로 믿는다면 여성은 남성에 비해서 안전한 일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여성들의 일이 남성들 보다 안전한 것일까?

 

필자가 만난 여성 노동자들은 근골격계나 성희롱, 폭언 등에 시달리고 있으며 남성에 비해 직무스트레스도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인 통계에서 여성의 일이 더 안전하게 보이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첫째, 공식적인 통계가 여성이 많은 직종을 포괄하지 못하고, 둘째, 비정규직이 포함되기 어려운 구조이고, 셋째 사고를 기반으로 한 체계여서 근골격계나 정신 질환과 같은 직업성 질환으로 승인받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공식적으로 산업재해 보상은 상시 고용 1인 이상인 모든 사업장의 사업주와 노동자들 대상으로 적용이 된다. 그러나 여기서 ‘노동자’라고 하는 것이 한정된 의미라는 것에 문제가 있다. 여성이 많은 직종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것이 여기에서 드러난다. 예를 들어 여성 노동자가 많이 분포하는 음식점이나 청소, 학습지 교사 등의 교육서비스업을 하는 사업장들은 대부분 영세하거나 특수고용직인 경우가 많다. 영세한 사업장은 산업재해에 가입을 안 하고, 실제로 노동자들의 안전보건을 위한 다양한 사업주의 의무에서도 자유로운 편이다. 이러다 보니 이러한 업종의 여성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일하면서 얻은 질병이나 손상에 대해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 방법도 없고, 특수고용직이거나 재택근무를 하는 경우에는 적용 대상 자체가 안 된다.

 

한편 비정규직일 경우에는 산재 보험을 적용 받는 것조차 힘들다. 비정규직들이 산업재해를 신청하는 일은 바로 고용에 대한 위협이 되는 경우가 많다. 아파서 일을 못할 정도면 그만 두고 나가라고 이야기를 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70%이상이 비정규직인 여성노동자들은 산재보험의 대상이 된다고 해도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신청을 하기 어렵다. 죽지 않았다면 웬만큼 다친 것은 회사가 치료비를 대주는 선에서 합의를 하는 것이 보통이고 사업장이 영세하다면 이조차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공식적인 통계에서 누락되는 건수가 많은 것이다.

 

최근 노동부에서도 노동재해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에 견줘 2배에 이른다는 결과를 공개됐다. 노동부 산재통계개선위원회가 2007년 2~5월 대규모 사업장 2040곳을 대상으로 시행한 시험표본조사를 발표하였는데, 산재 사망자 총 34명 가운데 고용 형태가 확인되지 않은 2명을 빼면 비정규직이 21명, 정규직 11명이었다. 비정규직의 중대 재해 위험도가 정규직의 2배에 이르는 셈이다. 그나마 이 통계는 사망을 했기 때문에 드러난 것이다. 사망이 아닌 재해는 얼마나 감춰지고 있는지 통계조차 없다. 그나마 노동조합이라도 있는 한국타이어에서 노동부 특별근로감독 결과 183건의 산재를 은폐한 사실이 밝혀졌다는 사실만을 살펴보더라도 비정규직의 경우 그 상황이 더욱 열악할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데 여성들의 대부분은 이렇게 은폐되는 비정규직인 것이다.

 

다음으로는 여성들에게 많은 근골격계 질환이나 정신질환 등 작업관련성 질환에 대한 보상범위가 낮다는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작업관련성 질환에 대한 승인이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증가하고 보상범위가 넓어지기는 했지만 그만큼 보상의 범위를 한정짓고자 하는 근로복지공단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퇴행성 질환이라고 불승인을 내린다거나 중량물 작업이 아니라고 불승인을 내리는 최근의 흐름을 살펴볼 때 여성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직업병을 인정을 받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또한 정신 질환과 관련해서도 충격적인 사고를 경험한 후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같은 것은 비교적 인정이 쉽지만 사업장내에 발생한 만성적 스트레스로 인한 적응장애나 우울증, 성희롱이나 폭언의 문제들은 보상을 받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조사하기도 힘든 여성노동자의 건강의 문제

 

한편, 여성 노동자의 건강에 대한 기본 자료라고 할 수 있는 연구 결과도 찾기 힘들다. 올해 초 여성노동자의 건강에 관심이 있는 연구자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그때 1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해외에서 활동중인 사람들을 다 합해도 20명이 안 될 것 같았다. 이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한 이야기가 있는데 여성 노동자들의 건강문제를 연구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주제로 연구비를 주는 기관도 별로 없고, 같이 연구를 하고 싶어도 같이 할 사람도 없고, 여성노동자들은 만나기조차 힘들다는 것이다. 여성부를 없애겠다는 현 MB 정권하에서는 더욱더 정부에서 여성을 문제를 주제로 한 연구에 돈을 대줄 리가 없을 거라고 우리끼리 이야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더 어려운 점은 접근조차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고 성인지적 관점을 가진 연구자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여성노동자들은 특수고용직이나 재택근무, 호출근로 등의 다양한 고용형태 속에서 개별화된 노동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안정된 노동시장으로의 진입이 어렵기 때문에 일시적이고 단기적인 노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다 보니 이들을 만나는 것이 어렵고 이러다 보니 연구하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 되는 것이다.

 

또한 여성을 고려하는 연구자들을 만나기도 어렵다. 모든 연구에서의 표현은 남성이 먼저고 여성이 다음에 나오면 남성과 여성을 분리해서 하는 연구도 찾기 어렵다. 심지어는 남성만을 대상으로 연구를 해놓고 전체 인구에 적용이 가능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여성노동자의 건강에 대한 소위 ‘과학적’ 증거를 만드는 것이 어렵고 이런 증거가 없다 보니 여성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를 인정받는 것조차 어려워지고, 인정을 못 받다 보니 그 중요성이 드러나지 않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얼마전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해 인권상황실태조사 연구용역으로 수행한 '유통업 여성비정규직 차별 및 노동권 실태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여성노동자 113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74%의 여성노동자가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육체적 질병을 가지고 있다는 남성노동자가 16%인 반면 여성노동자는 34%에 달하고, 정신적 질병의 경우 남성의 경우 10%에 불과하지만 여성노동자가 21%에 달해 질병의 유병률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결과에 따르면 여성은 거의 모든 질병을 더 많이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부인과 질환, 위장질환, 요통 및 디스크질환, 근육질환, 비뇨기질환, 호흡기계통질환, 무릎 및 관절질환, 정신 스트레스질환의 여성 발병률은 50%를 넘은 것이다. 특히 근육통 등의 근육질환은 74%에 육박하고, 무릎 및 관절질환은 65.9%, 우울증 등 정신스트레스는 6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러한 질병에 시달리는 데도 산재보험으로 처리하는 비율을 16%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나 근무환경 등에 의한 후속조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질병상태를 악화시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현실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산재통계에도 나타나지 않고 연구 결과도 많지 않은 것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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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3 11:00 2008/09/2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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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보다 심한 여성 노동자 근골격계 질환에 관하여

    Tracked from / 2008/09/24 13:30  삭제

    해미님의 [] 에 관련된 글. 1 . 해미님의 글 잘 보았읍니다 . 저는 이소가이 건강법의 김창현입니다 . 여러 사람을 바로잡기 하면서 , 여성이 남성보다 많이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됐읍니다만 , 해미님의 글을 보고 , 좀 더 자세히 알게 됐네요 . 제가 바로잡아 본 , 어떤 여성 노동자는 전화로 보일러 판매일을 하는데 , 감정 상할 때가 많고 몸이 여러군데 아프다고 했읍니다 . 또 백화점 여성 노동자가 오래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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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essee 2008/12/17 08: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잔매에 골병든다"는 속담이 떠오르게 하는 포스팅이군요...
    노동강도를 낮추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당장 당장 직면한 산업재해(를 비롯한 온갖 왕짜증나게 하는 문제들)를 구제하는 것도 중요한디...
    성매매 여성(남성)도 그렇고용...
    현실로 존재하는 문제들을 조금씩 "훈늉한" 방향으로 전환시켜 나가는 것이 타협이라 비판 받을 수도 있겠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절실하고 절박한 문제이니까용.. 냠냠

  2. 해미 2008/12/17 09: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fessee/ 동의합니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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