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06/01

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1/27
    지리산 유람기1(6)
    하이하바
  2. 2006/01/11
    고요한 새벽
    하이하바
  3. 2006/01/02
    상징에 길들여진 사람들(1)
    하이하바

지리산 유람기1

지리산 유람기 1.

 

생애 두 번째로 지리산을 다녀왔다. 소위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 지리산을 품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없겠는가! 좀 더 정확하게는 지리산이 품어준다고 해야 맞을 지도 모르겠다. 젊은 시절 이러 저러한 이유로 2-3번씩 갖다 오는 지리산을 30대가 되어서야 두 번 갔다왔다.

 

첫 번째는 몸이 아프고 나서 시골 은둔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은 2002년 늦여름이었고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 첫날은 지독하게 고생을 했던 기억이 있어 이번엔 맘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더군다나 겨울 지리산을 가볍게 볼 수 없기에 파산에 가깝게 무리를 하면서 준비를 단단히 했다.

나 자신을 위해 돈을 써 볼일이 그렇게 많지 않았기에 여전히 사적인 욕망을 위해 한 번에 목돈을 쓴다는 사실이 익숙하지는 않다. 돈을 더 벌면 좀 나아지려나? 그렇지만 재정 준비보다도 시간을 내는 것이 더 힘들고 맘이 편하지 않았다.

현재 2-3 곳에 직 간접적인 활동을 하면서 특별히 휴가를 가거나 시간을 장기간 내서 여행을 다녀온 적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이번 여행을 더 특별히 가고자 했던 것 같다.




 원래 12시 경까지 있던 이 기차는 여수, 순천, 광양을 거쳐서 진주까지 가는 기차였는데 KTX가 나온 이후로 9시45분차가 막차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새벽6시 경에 도착하던 기차가 4시경으로 당겨지는 바람에 시간이 상당히 애매해졌다.

기차에 오르자마자 배낭의 술을 꺼내 먹는 추태(?)를 보인 끝에 진주에 도착 곧장 목욕탕으로 향해서 잠시 쉬고 7시에 도착하기로 한 경상지역 동지를 기다렸다. 그렇게 지리산 등반을 하는 16일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경상지역 동지들을 만나 짐을 분배하고 간단히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중산리 행 버스를 타고 중산리에 도착하니 9시가 조금 넘었다. 도착하자마자 한 동지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 재차 짐정리를 하고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고나서야 산에 오를 수 있었다.

 

첫 등반 코스는 눈이나 얼음도 없는 무난한 코스였건만 역시 얼마 오르지 않아서 지치기 시작하는 사람이 늘어 갔다. 총 7명의 등반대원 가운데 후미에 3-4명이 처지면서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리 문제될 만하지는 않고 전체적인 속도도 문제가 없어서 쉬면서 점점 절경을 자랑하는 지리산 풍경도 보면서 등반을 계속했다. 오를수록 산 자락에 쌓인 눈이 더 선명해 지면서 겨울 지라산을 실감하게 했다.

 

점점 멀어지는 동료들을 뒤로하고 점심을 하기 위해 먼저 서둘러 산장으로 행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같이 산행에 참여한 일명 '해고자'는 자기 부인과 또 한 동지를 데리고 오느라 애 썼다고 한다.

 

로타리 산장에 12시가 못되어 도착한 우리는 물을 길어서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개인 식수를 먼저 물을 끓이고 모자라는 물을 길으러 내가 나섰다. 산장 바로 위 암자에서 물을 길어와야 하는데 산장에는 “식수 20M" 이렇게 되어 있었다. 20M 올라 간 암자에는 이런 표지가 있었다. 식수 50M 이런 젠장! 그나저나 이곳부터는 이제 얼음이 얼어 길이 빙판이 었다.

하여튼 물을 길어 내려오니 이미 라면이 끓고 후발대도 도착해서 라면을 먹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다 몇몇이 제기하는 의문, 라면에서 소주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몇몇은 너무 힘들어서 입에서 단내가 나는 줄 알았다나! 라면에 소주를 부었는지 소주병을 잘 닦지 않고 물을 부어서 그랬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제부터 점점 더 어려운 길이다. 빙판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출발하기 전, 한 동지 “아이젠 빨리 해보고 싶어!”라고 외쳤다. 그리고 화장실 가면서 아이젠을 하고 내려가기 시작하더니 웬걸. 아이젠을 신고도 얼음이 무서워 한 걸음도 제대로 못 떼는 것이었다. 산장 근처 평지에서도 이러니 이거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아무튼 갈 길은 가야했기에 길을 나섰지만 이것이 다가올 고난을 짐작케 했다.

 

이제 슬슬 눈과 얼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점점 더 가파라지는 바위 언덕을 딛고 한 걸음 한 걸음 정상을 향해 나아갔다. 물론 뒤에서는 못 간다는 한 동지의 외침이 들려왔다. 무서워서 못 간다고, 힘들어서 못 간다고 외치는 소리에는 처절했지만 지친 기운이 역역했다.

 

오르면 오를 수록 굽이굽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 지리산 골짜기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또 눈꽃이 하나 둘 날리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나무나 바위 위에서 날리는 줄 알았던 눈이 정상을 향해 다가갈 수록 점점 더 많아졌다.

지리산 정상에 거의 다다른 가파른 마지막 능선을 앞두고 고드름을 발견했다. 같이 오르던 동지들과 함께 고드름을 뚝, 뚝 끊어서 한 입에 넣고 우드둑, 우드둑 씹었다. 먹고 나니 어떤 얼음보다도 시원하고 담백했고 간식으로 충분할 만큼 기운이 넘쳤다.

 

소소하게 날리던 눈발이 이제 점점 더 세차지고 많아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천왕봉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가 천왕봉에 오르는 것을 반기는 것인지 거부하는 것인지 천왕봉 위에는 세찬 눈보라가 몰아쳤다. 이 때가 약 3시경 대략 6시간 정도에 정상에 오른 셈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고요한 새벽

평소에 일을 차근차근 해야 하는데 여기 저기 머리를 굴리다 보니 그것이 쉽지 않다. 걸쳐 있는 곳이 많아서 인지 능력이 부족해서 인지 모르겠다. 능력은 언제나 부족했으니 특별한 것은 아닐 터이다. 그래서 항상 똑똑했던 자들이 운동을 그만둘 때 그리도 화가나고 배가 아팠나?

 

암튼 비정규직 철폐 현장투쟁단 토론회를 다녀와서 못 다한 일을 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이번에도 느낀 점이지만 항상 토론회는 시간에 쫒긴다. 충분히 토론하지도 못하고 다양하게 이야기 하지도 못한다. 그 누구에게 하소연하더라도 특별한 답은 없어 보인다. 그래도 이번 토론회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토론회라는 형식이 남의 말을 듣기 위해서 진행되기 보다는 남의 말을 공격하기 위해서 진행하는 경우가 참 많다. 전혀 쟁점이 형성되지 않는 토론회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지만 앞의 경우만 하겠는가?

 

이번 토론회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의 운동 상호 간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토론회 아니 운동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설득하고 인정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더 높아지길 바란다.

 

여전히 남산타워는 깜빡거리고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상징에 길들여진 사람들

지난해 맘 먹고 아침운동을 했다. 검도를 했는데, 초심 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하고 있다. 뭐 운동신경이 워낙 없어서 진도도 안나가고 이런 저런 일정 때문에 못나가고 해서 별 발전이 없긴 하다.

그거야 그렇다 치고 처음 검도를 배우면서 가장 맘에 안들었던 게 하나 있는데 바로 국기에대한 경례다. 검도의 5가지 예절 중에 하나라나 뭐라나!

 

그 사람들하고 국가주의나 전체주의에 관한 논쟁을 할 수도 없고, 그래서 5초도 안되는 아주 잠깐 동안 찾아 그 시간이면 항상 국기에 대한 예의(경례)가 아니라 국기에 대한 푸념과 욕을 하곤 했다. 물론 속으로!

 

그런데 지난 늦 가을에 한가지 변화가 생겼다. 무슨 이유인지 어떤 사정인지 모르겠지만 체육관 정면에 붙어 있던 액자형 태극기가 사라졌다.

 

 

 



국기에 대한 경례->사범님께 대한 경례 이 순서가 이어져야 하는데 구령을 붙이는 사람이 멈칫 멈칫, 국기가 없으니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과 함께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 이후로 국기에 대한 경례는 하지 않고 사범님에 대한 경례만 하는 것으로 마무리 하고 있다.

 

나로서야 이보다 좋을 수 없지만 생각하면 할 수록 희한한 일이다.

 

아주 일반적인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어떤 '상징'에 과도하게 경도되어 있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사례일 것이다. 언제나 일상처럼 진행하던 의식이 국기라는 사물 하나가 사라지는 순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혼란 스러워 하는 점이나 그 상징이 없으니 의식을 거치지 않는 모습이나 상징에 집착하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다.

 

그래서 국가라는 상징도 무너트리고자 한다면 혼란기를 거치는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충분히 무너트릴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과도한 연결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하나의 상징이 없는 혼란에서 새로운 상징, 즉 국가를 무너트리고 대안사회를 제시해야 하는데 대중들이 상징화된 대상으로 인식하는 수준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이다. 즉 국가를 넘어서는 대안세계로서의 '그 무엇'을 건설한다고 해도 받아들이는 대중, 주체들이 상징화된 표상으로만 인식한다면 언제든 새로운 상징(후퇴하는 체제)에 의해서 교체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징에 포섭되는 사회주체가 아니라 새로운 사회 구성 그 자체가 되어야 하는데 거기까지 가기 위한 방법이나 길이 있는지 알기 어렵다.

언제쯤 이 답을 찾을 수 있을 지 아니면 확신을 얻을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