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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이 ‘인권과 민주주의’를 말해도 그대로 보도할 건가

[기자수첩] ‘무가치·무논평·기계적 중립’ 고수하는 방송뉴스, 언제까지 봐야 하나

 

 
민동기 기자 mediagom@mediatoday.co.kr  2018년 02월 24일 토요일

“자유한국당은 서울 청계광장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김영철의 방문을 저지하겠다고 강조했고, 북측 대표단이 통과할 통일대교 앞에서 밤샘 농성에 돌입했습니다.” (KBS ‘뉴스9’ 2월24일)

“민주당은 박근혜 정부 시절 군사회담에 참여했던 김영철과 지금 김영철이 무슨 차이가 있냐며 자유한국당도 겨냥했습니다. 한국당은 청와대를 항의 방문해 천안함 폭침 주범의 방문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습니다.” (KBS ‘뉴스9’ 2월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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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4일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야당은 장외투쟁에 나섰습니다 …자유한국당은 광화문 광장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대여 투쟁 강도를 높여가기로 했습니다. 논란이 가라앉지 않는 가운데 북측 고위급대표단은 내일 오전 경의선 육로를 통해 방남합니다” (SBS ‘8뉴스’ 2월24일)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의 방남과 관련해 '김영철 방한 저지 투쟁위원회'를 출범시킨 자유한국당 의원 60여 명은 오늘(24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 천막을 치고 비상 의원 총회를 열었습니다. 이들 의원들은 '천안함 폭침 주범 김영철을 처단하라'는 구호를 외친 뒤, 문재인 정권을 규탄하고 김영철 방한을 용납한 통일부 장관의 사퇴를 요구했습니다.” (MBC ‘뉴스데스크’ 2월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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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3일 SBS ‘8뉴스’ 화면 갈무리 
 
무가치·무논평·기계적 전달 위주로 리포트 하는 지상파 방송사들

 

이른바 ‘김영철 방남’ 논란을 다룬 지상파 방송3사 리포트 가운데 일부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이들 리포트에는 공통점이 있다. 무가치·무논평·기계적 전달이다. 사안에 대한 가치판단을 배제하고, 주장과 행태에 대한 팩트체크를 하지 않는다. 논평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사건기사처럼 단순전달만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드라이하게’ 사안을 전달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김영철 방남’ 논란에서 천안함 유가족들 입장을 전할 때다. 그런 경우는 언론의 가치판단보다 유가족들 주장과 요구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우선이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다르다. 과거 행태와 현재 주장 사이에 모순은 없는지 ‘팩트체크’ 해야 하고, 주장 이면에 정치적 복선은 없는 지도 따져야 한다. “김영철이 내려올 경우 모든 국회 일정을 거부하겠다”며 통일대교 앞에서 밤샘 농성에 돌입한 것을 그대로 전하는 것은 아무 의미 없다는 얘기다.

 

자유한국당 김성태(왼쪽 두번째부터), 김무성 의원 등이 24일 오후 '파주시 임진각 통일대교 앞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방한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김성태(왼쪽 두번째부터), 김무성 의원 등이 24일 오후 '파주시 임진각 통일대교 앞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방한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이런 의미 없는 짓’을 지상파 방송사들이 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의원이 주장하는 것을 ‘리바이벌’ 하는 수준에서 그대로 전달만 한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유행처럼 번졌던 팩트체크가 작동할 법도 한데 이상하리만치 작동을 멈춘다. 자유한국당이 이랬고, 더불어민주당이 반박했다는 식의 보도가 많다. 이런 구조를 바탕으로 천안함 유가족들 주장을 ‘슬쩍’ 포함시킨다. 무가치·무논평·기계적 전달을 넘어 불성실한 리포트 구성이다.

 

묻고 싶다. 광주시민들을 학살하고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이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역설해도 그대로 전할 텐가. ‘전두환이 이런 발언을 했다’고 하면서. 일본 극우파들이 망언을 쏟아낼 때도 그냥 무가치적으로 보도할 건가. 많은 사람들을 성추행했던 인사가 ‘남녀평등과 젠더의식의 중요성’을 역설할 때도 그냥 그대로 전달만 할 것인가.  

 

20180224_경향신문_'내로남불' 한국당, 박근혜 정부 땐 _대화 바람직_… 이제 와선 _이적행위__국방_외교 02면.jpg
경향신문 2018년 2월24일자 2면. 
 
공적인 자리에 있는 사람의 발언과 주장에는 합리성과 설득력 그리고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합리성과 설득력이 없을 때는 비판을 해야 한다. 그리고 기존 입장이 바뀔 때 국민들에게 그 이유를 밝히는 것 역시 중요한 덕목이다. 일관성이 있는지, 입장이 바뀐 이유의 근거 등이 온당한지를 따지는 것도 언론의 역할이다. 그런데 여전히 방송뉴스는 ‘A는 이랬고, B는 저랬다’는 리포트 방식을 고집한다. 비판도 없고 맥락을 설명해주지도 않는다. 정권이 교체되고 방송사 경영진이 바뀌었어도 ‘개혁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얘기다.

 

물론 모든 방송뉴스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MBC는 지난 23일 ‘뉴스데스크’에서 북한의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남한 방문을 놓고 엇갈린 두 관점을 소개하며 자유한국당의 이중잣대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JTBC도 같은 날 ‘뉴스룸’에서 “김영철은 이미 박근혜 정부 당시 남북 군사회담을 위해 판문점 우리측 지역을 찾은 바 있고, 당시 새누리당은 회담에 대한 환영 논평을 내기도 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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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3일 JTBC 뉴스룸 화면 갈무리 
 
하지만 자유한국당 주장이 얼마나 모순되고 이중적인지를 지적하는 리포트는 여전히 소수다. 경향신문이 24일자 사설에서 지적한 것처럼 “보수 야당의 논리라면 남북 간에 대화는 금물이고 오직 전쟁밖에 할 게” 없다. “북한의 역대 지도자는 대한항공기 폭파범이거나 목함지뢰 도발범 뿐”이니까.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 논리는 이중잣대 논란을 넘어서는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억지에 가깝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이 억지를 비판하는 언론보도를 찾기가 어렵다. 특히 방송뉴스가 심하다.

 

[관련기사] 김영철에 대한 자유한국당의 이중성·조선일보의 ‘궤변’

‘무가치·무논평·기계적 중립’ 고수하는 방송뉴스를 대체 언제까지 계속 봐야 하나. 자유한국당의 이중성과 정치적 의도를 ‘모른 척’하니 이명박 전 대통령도 김영철 부위원장 방남 비판 대열에 동참했다. 올림픽 폐막 이후 검찰 소환을 의식한 행보라는 게 너무나도 분명히 보이지만 방송뉴스에서 ‘이런 맥락’을 제대로 설명해 줄지 의문이다.

적어도 2월24일 경향신문 사설 정도의 맥락은 짚어주는 게 시청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아닐까.  

“그렇다면 과거 2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은 물론 박정희 정부의 7·4공동성명, 노태우 정부의 ‘남북기본합의서’도 이적행위로 문제 삼는 게 맞다. 그럼에도 보수 진영이 진보 정권의 대북 정책만 콕 집어 비난하는 것은 나라의 운명이야 어찌 되든 당파적 이득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위험한 이기주의일 뿐이다. 

지금 한반도 정세는 언제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를 만큼 엄중하다. 전쟁을 막고 평화를 찾기 위해서라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고, 쓸 수 있는 수단을 다 동원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문제를 협상할 수 있는 김 부위원장이 온다. 이런 기회를 차버릴 수는 없다. 정쟁에 눈이 멀어 평화를 내팽개치지 않기 바란다.”

20180224_경향신문_[사설] 새누리당은 2014년에 왜 김영철을 환영했나_오피니언 27면.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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