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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미국, ‘사상 최대의 대북 제재’?... 트럼프 대통령이 ‘톤다운’한 이유는

트럼프, “북한과 협상할 수 있다면 대단한 일”... 외교부 관계자, “미국 추가 제재는 북한 대화에 나오라는 압박용”

김원식 전문기자
발행 2018-02-24 10:49:43
수정 2018-02-24 12: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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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 시간) ‘보수주의정치행동회의(CPAC)’ 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 시간) ‘보수주의정치행동회의(CPAC)’ 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백악관 공개 동영상 캡처
 
 

로이터통신, CNN 방송 등 주요 외신들은 23일(이하 현지시간) 익명을 요구한 미국 정부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예정된 ‘보수주의정치행동회의(CPAC)’ 연설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대북 제재를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부 한국 언론들은 이러한 외신을 인용하며, 미국이 포괄적인 ‘해상 차단(maritime interdiction)’을 포함한 강력한 대북 제재를 단행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런데, 이날 오전 약 80분에 가까운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이 진행되는 동안, 북한에 대한 언급은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이윽고 연설이 끝날 무렵 관계자 누군가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무언가가 빠졌다는 듯이 언질을 줬고, 그제야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면서 연설을 마쳤다.

“사람들의 요청이 있어, 북한에 관해 말하고자 한다. 우리는 오늘 북한에 관해 이전보다 무거운(heaviest) 제재를 가했다. 그리고 솔직히, 무언가 긍정적인 일이 일어나기를 희망한다.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무언가 긍정적인 일이 일어나기 바란다, 그래서 우리가 가장 무거운 제재를 가했다는 것을 여러분께 알려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가장 무거운 제재’를 가했다면서도, 무언가 긍정적인 일이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두 번이나 강조했다. 원래 백악관이 사전에 언론에 배포한 연설 발췌문(excerpts)에는 “‘가장 최대 규모의(the largest-ever) 새로운 제재를 가한다”고 돼 있었다.

또 “미 재무부가 곧 북한이 핵 프로그램에 자금을 지원하고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입과 연료원을 더는 사용할 수 없도록 차단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56개의 제재 대상을 발표할 것이라는 내용도 생략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사전 연설 원고에도 없던 “무언가 긍정적인 일이 일어나기를 희망한다”고 두 번이나 반복한 것이다.

물론 미국 재무부는 이날 북한과 관련된 무역회사 27곳, 선박 28척, 개인 1명 등 총 56곳에 대한 추가 대북 제재를 발표했다.

일부 언론들은 “군사행동을 빼고는 가장 강력한 압박조치로 여겨지는 사실상의 대북 포괄적 해상차단이 이뤄졌다”라고도 평가했다. 하지만 지난달 24일, 북한의 기관 9곳, 개인 16명, 선박 6척을 제재한 것에서 제재 대상만 더욱 확대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에 관해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추가 제재가 이미 증가하는 경제적인 고통에 반항하고 있는(defiant) 북한 김정은 정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지는 불분명하다”고 분석했다.

이 매체는 그러면서 “이것은 (기존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 압력을 추가한 것이고 갑작스러운 타격(blow)이 아니라 천천히 압박을 증가하는 전략으로 본다”고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 점을 인지한 듯, 이후 백악관에서 맬컴 턴불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그 제재가 효과가 없으면 우리는 제2단계(Phase Two)로 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그 카드를 꼭 쓰게 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두고 봐야 할 것”이라면서 “제2단계는 매우 거친(tough) 것이 될 수도 있고, 전 세계에 매우, 매우 불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바라건대 그(오늘) 제재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북한을 ‘불량(rogue) 국가’라 칭하면서도, “우리가 협상할 수 있다면 대단한 일일 것이고, 우리가 (협상)할 수 없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그러니 두고 보아야 한다”면서 대북 협상의 의지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신년사 발표하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신년사 발표하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조선중앙통신

트럼프, 보수 지지자 연설에서 이례적으로 북한 비난 안 해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CPAC 연설에서 북한에 대한 비난을 거의 하지 않고, 또 사전 연설문에 포함된 내용도 생략하고 단지 대북 추가 제재만 알리고 끝낸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앞서, 전날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같은 연설에서 북한 김여정 제1부부장을 ‘악의 가족 패거리’, ‘독재자의 여동생’ 등으로 칭하며 북한을 맹비난했다. 이에 반해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자들로 가득한 행사에서 단골 메뉴인 북한을 비난하지 않은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는 평가다.

미 CNN 방송도 이날 “대북 제재 발표는 트럼프 대통령이 거의 80분 연설 마지막에 단지 간단하게만(briefly) 언급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매체도 “트럼프 대통령은 거의 그의 연설 마지막에 생각(afterthought)이 떠오른 것처럼, 특히 (북한 문제는) 열정적이지(effusive)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관해 워싱턴의 한 외교전문가는 23일, “한국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관여(engagement)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는 “자신의 딸인 이방카마저 올림픽을 축하하기 위해 한국에 가 있는 마당에, 무작정 북한을 비난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23일,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전에 기자와의 통화에서 “미국 측이 발표하지 않은 상황에서, 말해줄 수는 없다”고 ‘엠바고(embargo)’를 전제하면서 “이번 미국의 추가 대북 제재는 언론의 예상처럼 엄청난 것이 포함되지는 않는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이 다시 대북 제재를 추가로 발표하는 것은 대화의 장으로 나오라는 압박 차원으로 봐야 한다”면서 “한미 간에도 이에 관해 긴밀한 조율이 이뤄지고 있고, 현재 미국은 우리 정부의 대북 관여와 대화 추진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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