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걸음걸이 보니…범인은 너야! ‘법보행 분석’ 아시나요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8/03/08 10:46
  • 수정일
    2018/03/08 10:4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입력 : 2018.03.08 06:00:02 수정 : 2018.03.08 06:01:01

 

카메라에 찍힌 보행자의 관절 각도 및 길이를 계산해 분석하는 프로그램 예시 화면. 경찰청 제공

카메라에 찍힌 보행자의 관절 각도 및 길이를 계산해 분석하는 프로그램 예시 화면. 경찰청 제공

 

지난해 11월8일 오전 3시쯤 광주 동구의 한 애견용품 가게에 도둑이 들었다. 도둑은 경찰 추적을 피하기 위해 가게 내 폐쇄회로(CC)TV 녹화장치를 떼어버리고 계산대에 있던 현금 30만원과 금팔찌 등을 훔친 뒤 사라졌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이 가게 인근의 CCTV를 모조리 분석했지만 한밤중인 데다 범인이 모자를 쓰고 있어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그저 용의자가 인근 모텔 쪽으로 향하는 장면만 확인했는데, 신원을 확인하는 단서로는 부족했다. 

그런데 의외의 증거가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됐다. 바로 범인의 ‘걸음걸이’다. 경찰은 범행 시간 전후 모텔에 드나든 이들의 영상을 살폈고, 그중 한 명이 CCTV에 잡힌 용의자의 걸음걸이와 비슷하다고 판단해 경찰청에 분석을 의뢰했다. 분석 결과 해당 인물과 용의자는 ‘동일인’일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이 나왔다. 경찰은 추적에 나서 얼마 뒤 도주 중이던 전과 16범의 모텔 종업원 조모씨(35)를 검거했다. 수사를 맡은 박광용 광주동부서 강력4팀장은 “용의자가 나온 CCTV와 모텔 근처 CCTV를 비교한 결과 팔짱을 끼는 방식과 걸음걸이가 유사해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갈수록 치밀해지는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걸음걸이로 용의자를 특정하는 ‘법보행(法步行) 분석’ 수사 기법이 진화하고 있다. 법보행 분석은 사람마다 다른 걸음걸이의 특성을 분석해 동일인 여부를 가려내는 과학수사다. CCTV에 용의자의 모습이 찍혀도 얼굴이 보이지 않거나 영상 화질이 좋지 않은 경우, 용의자를 특정해 검거하더라도 ‘CCTV 속 인물은 내가 아니다’라며 잡아떼는 경우에도 법보행 분석은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경찰청은 수사 시 걸음걸이 분석이 필요할 경우 일선 경찰의 의뢰를 받아 의학·공학 전문가들로 구성된 ‘법보행 분석 전문가 협의체’에 검증을 맡기고 있다. 법보행 분석은 유전자(DNA) 정보나 지문처럼 그 자체로 개인을 식별하는 증거는 아니지만, 400만대에 이르는 촘촘한 CCTV망이 있는 한국에서 다른 증거가 부족할 경우 활용 가능성이 크다. 

국내 과학수사에 법보행 분석이 접목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2013년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자택 화염병 투척 사건에서 처음으로 도입됐고, 2015년 경찰청이 중앙대와 서울대병원 등을 연구기관으로 선정해 관련 기술 개발에 협업하면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됐다.

 

최근 들어서는 법보행 분석이 법정에서도 증거로 채택되고 있다. 2016년 대구고법은 2015년 발생한 ‘대구 금호강 살인사건’ 항소심 재판에서 법보행 분석 등을 근거로 기소된 박모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걸음걸이 분석이 법정에서 유죄 증거로 인정된 첫 사례로, 검찰은 사건 현장 인근 CCTV에 포착된 박씨의 특이한 걸음걸이에 대한 분석 자료를 증거로 제출했고 재판부는 이를 인정했다. 

올해로 3년차를 맞은 경찰의 걸음걸이 분석 연구개발도 계속되고 있다. 7일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은 CCTV 등에 찍힌 영상에서 카메라 왜곡을 보정해 보행자의 관절 각도나 길이를 계산하는 프로그램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모든 카메라는 촬영 각도 등에 따라 실제 사물과 다르게 굴곡이나 찌그러짐이 나타나는 왜곡 현상이 있는데, 이를 보정해 정확한 신체 관절 사이의 길이나 보행 각도, 보폭 등을 계산하는 것이다. 장성윤 경찰청 과학수사기법 계장은 “보행 시 사용되는 발목, 무릎, 고관절 등 주요 관절점의 특성을 추출해 서로 다른 영상에 찍힌 인물의 동일인 여부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며 “옷을 갈아입거나 얼굴을 가려도 보행 특성에 따라 유사성이 높은 동일 인물을 추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인의 걸음걸이 특성을 분석하기 위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경찰은 분당서울대병원에 의뢰해 무작위로 추출된 일반시민 300명의 보행 특성을 추출하는 데이터베이스 작업을 진행 중이다. 장 계장은 “연령별, 성별로 팔자걸음, 안짱걸음 등 특정 보행형태의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빈도값을 계산해 보행 패턴을 측정하는 것”이라며 “데이터베이스가 쌓일수록 용의자를 식별하는 기술도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