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런 윤 대통령 쪽의 기획은 민주당에 두 번이나 되치기당하면서 실패로 끝났습니다. 오히려 불통 인상만 커졌습니다. 우선, 이 대표가 지지부진한 준비 회담의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만남을 앞세우는 태도로 나오면서 책임 떠넘기기가 더 이상 어려워졌습니다. 총선 패배 뒤 이 대표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하면서 주도권을 잡았던 윤 대통령이 주도권을 내주는 계기가 된 것이죠.
또 한 번은 이 대표의 모두발언입니다. 이 대표는 회담 전의 의례적인 덕담이 끝나고 대통령실이 카메라 기자를 내보내려고 하는 순간, 주머니에 준비해 온 서류를 꺼내 15분간 읽어 내려갔습니다. 총선에서 나온 민심을 요약한 요구 사항들이었습니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이런 움직임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듯, 웃음기 띠었던 얼굴이 갑자기 잿빛으로 바뀌었습니다.
어쩌면 윤 대통령이 기획한 '소통 쇼의 파탄'은 정진석 비서실장 임명에서 예고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 실장은 비대위원장 시절인 2023년 1월, 이 대표가 신년 기자회견에서 여야 수뇌 회담을 제의하자 "대통령이 범죄 피의자와 면담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반대한 적이 있습니다. 여야 수뇌 회담을 목전에 두고 이런 전력이 있는 사람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기용한 건 제사(회담 결과)보다는 잿밥(소통 쇼)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는 걸 미리 암시한 것이 아닐까요.
영수회담, 이어질 수 있을까
셋째, 대통령실은 두 수뇌의 회담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허심탄회하게 소통을 이어가기로 사실상 합의를 봤다"라고 말했고, 정진석 비서실장도 "다음엔 두 분만 만나라고 했더니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라고 거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만남은 앞으로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단적인 예가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입니다. 이때도 윤-이 회담처럼 두 정상은 의제 조율도 없이 회담했고 서로 엇갈린 얘기만 했습니다. 둘은 함께 식사도 하지 않았고 합의도 끌어내지 못했습니다. 4개월 뒤 판문점에서 번개 모임 하듯 잠시 얼굴을 맞댔지만, 의미 있는 추가 회담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윤-이 회담의 운명도 형식과 내용을 크게 수정하지 않는 한, 트럼프-김정은 회담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상호 신뢰와 양보가 없는 사진 찍기나 보여주기 회담은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열쇠는 윤 대통령이 쥐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바뀌어야 합니다. 소통하는 척하는 데서 벗어나 진심으로 총선 민심을 받드는 태도로 돌아서지 않는 한 이재명 대표도 민심을 거스르며 회담에 응하기 어려울 겁니다. 윤 정권이 2년 동안 해온 정책의 대전환을 바라는 민심이 그런 회담을 용인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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