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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제3 개성공단 모델 꽃피워, 사통팔달 남북 분업체계로”

등록 :2018-05-03 04:59수정 :2018-05-03 07:05

 

 남북경협 생태계 새 틀 짜자

개성공단 성공 모델이나 정세 취약
“돌이킬 수 없게 외풍 먼저 차단을”

’남 자본+북 노동’ 단순 결합 넘어
제조업 진출 지역·방식 다양화 필요
혜산·흥남 등 북 경제개발구 떠올라

“생산기지 아닌 ’시장’으로 접근해야”
북한 노동자들이 2007년 5월31일 개성공단 안 한 의류업체 공장에서 작업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북한 노동자들이 2007년 5월31일 개성공단 안 한 의류업체 공장에서 작업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 있는 개성공단기업협회 사무실은 요즘 봄바람이 한창이다. 4·27 남북 정상회담이 몰고 온 훈풍이다. 남북 정상은 판문점 선언에서 개성공단의 재개 여부를 단정적으로 거론하지 않았지만, 입주기업들은 곧 개성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개성공단기업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가 공동으로 지난 3~4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개성공단에 입주했다가 철수당한 기업의 96%가 재입주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개성공단기업협회는 정상회담 직후 입주기업 대표 17명이 참여하는 재가동 준비를 위한 태스크포스(TF)까지 구성한 상태이다. 김서진 협회 상무는 “기존 입주기업뿐만 아니라 개성공단의 이점이나 입주 절차 등을 묻는 기업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6·15 선언의 성과인 개성공단은 남의 ‘자본과 기술’, 북의 ‘값싼 토지와 노동’이 결합한 남북 경제협력의 성공 모델이면서도 굴곡진 한반도 정세의 그늘이기도 하다. 경제협력에 방점이 찍힌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에 따라 개성공단은 크게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부침을 거듭하다 2015년 2월 가동 중지 이후 장기 폐쇄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입주기업들은 앞으로 후속 회담과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돼 개성공단을 재가동한다면 이번에는 뭔가 달라져야 한다고 주문한다. 군사·안보적 변수나 정권의 성향에 따른 외풍이 사전에 차단돼야 한다는 것이다. 신한용 개성공단입주기업 비상대책위원장(신한물산 대표)은 “개성공단 같은 경협이 아래로부터 활발해지면 자연스럽게 평화체제가 구축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지난 10여년 동안 남북관계의 특수성은 그렇게 되기 힘들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했다”며 “앞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평화체제를 먼저 확실하게 다진 다음에 민간 차원의 다양한 남북 경협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 경협사업의 새로운 생태계 구축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상관없이 남북 당국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4·27 판문점 선언에 ‘남과 북은 민간교류와 협력을 원만히 보장하기 위하여 쌍방 당국자가 상주하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성지역에 설치한다’는 합의도 있는 만큼 당장에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 김상훈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남북 경협과 관련한 법제는 남북 당국간 합의서, 남과 북 각각의 법령 등으로 중첩되어 있어 상호 법적 효력의 인정 여부가 불투명하고 불이행에 따른 제재나 문제 해결 방식도 애매한 게 적지 않다”며 “이번에 새로운 차원의 남북 경협을 추진하려면 남쪽만이라도 현행법과 제도를 전반적으로 정비하고 내부 공감대도 쌓아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개성공단에 진출한 기업들은 남쪽에서 대부분 원부자재를 조달하고 북쪽에는 임금과 임대료, 세금 등 최소 생산요소 비용을 제공하는 형태로 사업을 한다. 하지만 이런 국지적이고 단선적인 사업 방식으로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정희 중앙대 교수(경제학·중소기업학회장)는 “개성공단처럼 비용이 적게 드는 북의 생산기지는 남쪽의 영세 제조업체에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주고 국내 산업기반과 일자리의 국외 유출을 막게 해주는 효과가 크다”면서도 “그러나 개성공단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며, 임금이나 토지 사용 비용이 적게 든다는 매력도 북한의 경제발전에 따라 점차 쇠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남북합자 공업단지 모델’은 남북 간 긴장완화 측면에서도 의미가 적지 않다. 2007년 2차 남북 정상회담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개성공단을 넘어 해주공단 이야기를 꺼냈고, 당시 김정일 위원장은 애초 ‘해주에는 군대가 주둔해 있어 안 된다’고 했다가 오후 회담에서 해주공단 제안을 승낙한 바 있다. 북한의 장사정포가 집중 배치된 해주에 공단이 들어서면 북한 군사력은 한참 더 북쪽으로 물러나야 한다.

 

따라서 새로운 남북 경협 시대에는 국내 제조업의 진출 지역을 좀더 넓히고, 방식과 형태도 다양화해야 한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다양한 형태의 제2, 제3의 개성공단 모델들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대 한반도미래연구원 홍순직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 시대의 북한 경제개발 전략은 지역별 특색에 맞는 산업을 여러 곳에 조성하면서 인민 경제의 생필품 소비 수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시장화의 촉진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런 변화에 맞춰 북한을 단지 생산기지가 아니라 잠재력이 큰 시장으로 보고 우리 기업들이 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성, 신의주, 나진·선봉 등 규모 경제특구 지역에 수출 임가공 중심으로 진출해온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북한의 각 지역별 생활밀착형 수요도 살펴보자는 얘기다.

 

특히 2013년에 북한이 발표한 21개 경제개발구 가운데 북-중 접경권의 위원공업개발구와 혜산경제개발구, 서해권의 송림수출가공구, 와우도수출가공구, 동해권의 현동과 흥남 공업개발구, 청진경제개발구 등은 원부자재 조달 여건과 판로가 비교적 안정적인 제조업단지로 꼽힌다. 북의 여러 지역에서 제조하는 상품은 남북 간 생산연계와 분업을 강화하면서도 북한의 기업과 소비자들에게 대외교역과 시장경제의 경험을 쌓게 하는 학습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사통팔달한 하나의 생산분업체계와 인구 8천만의 소비시장을 상상하게 한다. 박순빈 선임기자 sbpark@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43071.html?_fr=mt1#csidxdaf1834e9ecb11b8f7589e472b160b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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