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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리프레시 데이' 첫 행사, 야반도주팀과 함께 한 시간
문득 여행을 떠나야 한다고 느낄 때가 있다. 절경을 보겠다는 목적도, 아는 이 없는 곳에서 그저 푹 쉬고 싶다는 생각도 없이 오직 여행만이 목적으로 떠오를 때가 있다.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현실과 불화할 때, 순간 삶의 어제와 오늘, 내일의 경로가 확연히 그려져 그 획일성에 질려버릴 때 그렇다.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한 번쯤 해볼 법하지만, 도저한 삶의 무게에 보통은 경로를 이탈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 모두가 여행하는 이에게 찬사를 보내는 까닭이다.
10년 지기 김멋지, 위선임은 불현 듯 떠오른 이 생각을 실천에 옮긴 이들이다. 2014년 10월 6일부터 2016년 9월 22일까지 718일간 세계 24개국 97개 도시를 여행했다. 사회생활 5년차, 나이 서른, 여행을 위해 다니던 직장도 관뒀다. 결혼도 버렸다. 삶의 궤도를 완전히 비틀었다. 대책 없이, 계획 없이 오직 여행만을 위해 여태 걸어온 길을 벗어났다.
우아한 여행만을 이어가지도 않았다. 지갑은 떠나자마자 잃어버렸고, 여권까지 분실했다. 여행 경비를 벌기 위해 딸기 농장에서 9개월 간 일했다. 외국에서 갑작스레 맹장 수술을 받기도 했다. 이들을 피해 간 여행 에피소드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지난 22일 열린 '리프레시 데이' 첫 번째 행사에서 야반도주팀(김멋지, 위선임)이 북콘서트를 열었다. ⓒ프레시안(최형락)
꿈과 같은 여행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들은 블로그에, 브런치에 그 특별한 경험을 기록했다. 사람들이 열광했다. 대신 꿈을 현실로 이뤄준 이들에게 찬사를 쏟아냈다. 즐거운 순간을 담은 이들의 여행 동영상은 250만 회 이상 조회수를 기록했다. 페이스북 페이지 '여행에 미치다'는 이들의 동영상을 '2017년 여행 동영상' 1위로 선정했다. 출판사도 이 특별한 이야기에 관심을 보였다. 이들의 놀라운 일탈은 <서른, 결혼 대신 야반도주>(위즈덤하우스 펴냄, 이하 야반도주)라는 책으로 나왔다.
부쩍 다가온 겨울이 반갑지 만은 않았던 지난 22일, 서울 마포구 프리미엄라운지에서 야반도주의 두 저자 김멋지, 위선임이 프레시안 독자들과 만났다. 이들은 책에 못다 한 여행 이야기, 책을 내기까지의 과정을 유쾌하게 이야기하고, 참가자들의 질문에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직장 대신 야반도주
2년의 여행 계획은 위선임 씨가 떠올렸다. 회사 일로 스트레스가 많았다. 연말 정산일, 지난 한 해 쓴 의료비가 700만 원을 넘었음을 깨달았다. 이대로 일을 이어갈 수는 없었다. 더 좋은 퇴사 명분을 찾고자 했다. 처음 떠오른 건 결혼이었다.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가 결혼을 원했다. 세상이 원하는 '모범 답안'이었다. 하지만 웨딩드레스보다 배낭에 눈길이 갔다. 결혼 상대자의 말 대신 10년 지기 친구와의 오랜 약속인 '서른 전 세계여행'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고민 끝에 '지금이 아니면 결코 안 될' 세계 여행을 결정했다.
▲ 야반도주팀의 위선임 씨. 718일의 세계여행을 처음 기획했다. ⓒ프레시안(최형락)
바로 10년 지기 김멋지 씨를 호출했다. 두 말 않고 응낙했다. 이렇게 둘의 여행이 시작됐다. 서울을 떠나 유럽으로, 유럽에서 중남미 대륙으로, 그 후 호주에서 동남아시아로, 동남아시아에서 남아프리카로, 둘은 특별한 계획 없이 2년에 걸쳐 세계 곳곳을 쏘다녔다. 그럴 듯한 여행 계획이라곤 호주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발급받는 것뿐이었다. 여행경비가 떨어지면 호주에서 돈을 모아 충당한다는 게 유일한 계획이었다.
김멋지 씨는 "우리 여행의 주제는 ‘주제 없음’이었다. 요즘이야 다양한 주제로 여행을 떠나는 분이 많은데, 저희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며 "그저 책 타이틀 대로 '서른 살에 결혼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여행을 선택해서 훌쩍 떠났을 뿐"이라고 언급했다. "무언가를 이루려고 여행한 게 아니"고 "그저 떠나고 싶어서 떠났다."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긁어모아 여행 경비를 마련했지만, 역시 예상대로 돈이 동났다. 그들은 유일한 계획에 따라 호주로 들어갔다.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호주 퀸즐랜드의 딸기 농장에 취직했다. 딸기를 등급별로 나눈 후, 판매 용기에 담는 일이다. 이들은 이름 대신 컬러 코드로 불리었다. 위선임 씨는 핑크색이 한 줄 있는 '원 핑크'로, 김멋지 씨는 '핑크 브라운'이었다. 딸기가 잘못된 용기에 포장됐다면, 용기를 확인하는 체커가 이름 대신 이들을 색깔 코드로 호출했다. 이름은 사라지고, 단순 반복 작업대의 노동자 중 하나가 되었다. 둘은 9개월 간의 호주 농장 생활에서 자신의 새로운 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멋지 씨는 반복 작업을 너무 힘들어 했다. 손가락 끝은 갈라지고, 붉은 딸기 색소가 갈라진 피부 사이로 배어들었다. 일하다 힘들어 할 때 딸기밭으로 나가 울고는 다시 돌아오곤 했다. 위선임 시는 전원생활에 자신이 맞지 않음을 깨달았다. 틈만 나면 ‘노래방에 가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이 같은 경험을 해보지 않았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자신의 모습을 둘은 대면했다.
정해진 길 이탈해도 큰 일 없다
둘은 고된 노동으로 벌어둔 돈을 갖고 다시 여행을 시작했다. 동남아시아를 종횡하고, 아프리카 남단에서부터 중앙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다시 경비가 바닥났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때였다. 둘은 멋진 여행을 중단하고 싶지 않았다. 기어이 한국에 있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여행을 이어갔다. 인도를 돌아다니고 나서야 한국으로 돌아왔다. 결코 꿈만 같지는 않았던,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세계일주가 끝났다.
둘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긴 여행은 둘 삶의 궤도를 틀어놓았다. 이제, 일상 자체가 달라졌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둘의 여행 이야기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다. 누구나 인생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로 꼽기 마련인 출판까지 해냈다. 이제 둘에게 일상이 곧 여행인 시대가 열렸다.
저자들은 책에서 '반듯하게 정해진 길을 걷지 않아도 큰일 나지 않는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둘의 여행에 그토록 많은 독자가 열광한 까닭은 여기 있으리라. 말하자면, 여행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정해진 궤도를 벗어날 용기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언어 문제는 부차적
▲ 야반도주팀의 김멋지 씨. 책에 들어간 삽화를 직접 그렸다. ⓒ프레시안(최형락)
두 '여행 작가'의 이야기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두 사람은 재치 있으면서도 진지한 태도로 참가자들의 질문 하나하나에 성심껏 대답했다. 참가자들 역시 두 '여행 선배'의 이야기를 진지한 태도로 경청하고, 울고 웃으며 둘의 이야기에 적극 반응했다.
'언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느냐'는 예상 질문에 둘은 재치 있게 손가락 하나로 음식을 주문하는 둘의 현지 모습을 담은 영상을 틀었다. "'화장실 어디 있느냐'는 스페인어를 외워뒀는데, 그 말을 기억하기보다 배를 잡고 발을 구르기만 하면 세계 어디서나 통한다. 언어가 부족해도 풍부한 표정과 정확한 제스처만 취할 수 있으면 문제 없다." (위선임)
"다시 여행을 떠난다면 언어를 준비하고 싶다. 현지인과 교류하는 더 풍부한 여행을 즐기려면 언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멋지)
둘은 '또 가보고 싶은 여행지'로 각각 쿠바와 멕시코를 꼽았다.
"돌아와 보니 가장 생각나는 곳은 좋은 사람이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저는 쿠바다." (김멋지)
"멕시코가 좋았고, 쿠바 역시 좋았다. 중남미 대륙 대부분이 좋았다." (위선임)
기회만 된다면 둘은 다시금 장기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 여행을 통해 일상이 달라졌다. 한국에서의 일상이 여행처럼 변화하는 경험을 둘은 즐기고 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저희 삶이 스펙터클하게 변화했다. 지금은 크게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다시 기회가 온다면 한두 달가량 여행을 떠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멋지)
이번 행사는 프레시안이 독자와 새로운 만남을 위해 기획한 '프레시안 리프레시 데이'의 첫 번째 순서다. 리프레시 데이는 '평일 저녁 가벼운 마음을 들을 수 있는 강연 행사'를 취지로 기획됐다. 그간 프레시안이 기획한 다소 무거웠던 강연 주제와 궤를 달리 해, 더 젊은 뉴스 독자와 소통하자는 의도로 꾸려졌다.
강연을 기획한 정경아 프레시안 협동조합팀장은 "앞으로도 육아, 페미니즘, 대안적 삶 등 젊은 독자들이 관심 있는 주제로 리프레시 데이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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