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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만나는 박근혜, 평화협정 들고 가라

"5년 뒤 '박근혜 핵폭탄' 누명 쓰기 싫다면…"

[정세현의 정세토크] 오바마 만나는 박근혜, 평화협정 들고 가라

이재호 기자(정리)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5-05 오후 1:55:33

 

박근혜 대통령이 5일 대통령 취임 후 첫 순방지로 미국을 방문한다. 취임 전에는 핵실험, 취임 이후에는 한반도에 조성된 긴장 국면이 지속되면서 박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어느새 북핵 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개선이 됐다.

정세현 원광대 총장(전 통일부 장관)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유의미한 메시지가 도출되지않으면 향후 5년 동안 남북관계는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화협정이라는 입구로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총장은 이미 미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할 뜻을 부시 정부 때도, 오바마 정부 1기 때도 내비쳤다면서, 한국이 주도권을 쥐고 미국을 이끌고 나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잠정 폐쇄 상태에 빠진 개성공단 역시 북핵 문제가 풀리는 실마리 내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 총장은 "북핵문제 해결 수순이 시작되어야 그 틀 속에서 남북대화의 분위기가 살아날 수 있고 협상의 모멘텀이 생겨날 수"있다며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낼 수 있는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2015년으로 예정돼있는 전작권 환수 문제에 대해 정 총장은 전작권 환수를 미루면 북한에 계속 도발과 위협의 빌미를 주게 되는 것이라며 우리가 북한의 위협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예정된 전작권 환수를 또 다시 연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북한의 공격 원점을 타격하겠다는 것도 "전작권이 없으면 사실 불가능한 일"이라며 공격 원점 타격은 지지하면서 정작 그러한 타격을 자유자재로 가할 수 있는 조건인 전작권 환수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보수진영의 이율배반적인 입장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편집자>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해 오는 7일 오바마 대통령과 한미정상회담을 합니다. 아무래도 관심은 북핵 문제일 텐데 이번 정상회담에서 어떤 해법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정세현 : 무엇보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의미 있는 메시지가 나와야 한다고 봅니다. 북한이 보기에 '이 정도면 협상 테이블에 나가도 되겠는데'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향적인 메시지가 나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북핵 문제 해결은 물론이고 개성공단 문제도 장기화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북핵문제 해결 수순이 시작되어야 그 틀 속에서 남북대화의 분위기가 살아날 수 있고 협상의 모멘텀이 생겨날 수 있는 겁니다.
 

▲ 정세현 원광대 총장(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여기서 북핵문제 해결의 핵심은 바로 평화협정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평화협정 논의의 가능성을 북한에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그동안 미국이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북핵 문제를 풀 용의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 왔다는 점입니다. 오바마 1기 행정부 때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이 평화협정 문제를 3차례나 거론했지만 이명박 정부의 반대로 무산됐다는 사실은 지난번에 얘기했지요. 그런데 심지어 부시 행정부도 2006년 10월 북한의 핵실험 이후에는 평화협정 문제를 적극 제기했습니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우리 쪽에서 먼저 이 문제를 적극 제기해서 평화협정 문제를 북핵 문제 해결의 중심으로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그동안 북핵 협상의 과정을 통해 이 문제를 짚어보도록 하지요.

1993년 3월 북한의 NPT 탈퇴로 시작된 1차 북핵 위기를 마무리한 제네바 기본합의(1994년 10월 20일)와 2002년 10월 켈리 차관보의 방북으로 비롯된 2차 핵위기를 수습한 2005년 9.19 공동성명은 구조가 거의 같습니다. 북한이 핵활동을 중단하고 궁극적으로 포기한다면, 미국은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하지 않고, 경제지원을 하며, 최종적으로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를 하겠다는 겁니다. 다만 제네바합의는 북미간 양자회담의 산물이니까 북미 관계 정상화만 나왔고 6자회담에 의해 탄생한 9.19 공동성명에는 북미는 물론 북일 관계 정상화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사실 북한의 최대 과제는 미국과의 관계정상화입니다. 세계 최대 강국인 미국과 60년 이상 적대 관계에 있는 나라는 북한이 유일하니까요.

그런데 수교를 하려면 1953년 7월 27일에 체결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합니다. 법리상 이를 바꾸지 않으면 수교로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수교는 외교행위이고 그것을 하려면 법적으로 전쟁상태에 있던 미북관계를 평화상태로 바꿔놓아야 합니다. 즉 관계정상화를 해주겠다는 것은 곧 수교와 평화협정 문제를 논의해주겠다는 것입니다.

2005년 9.19 공동성명 제4항은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라고 돼있습니다. 평화협정이라는 표현을 직접 쓰지는 않았지만, 북한이 강력하게 요청해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라는 말이 들어갔고 또 '6자는 동북아시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위해 공동 노력할 것을 공약하였다'라고 명시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평화협정 문제를 너무 앞으로 끌어올리면 조금 위험하지 않나, 미군이 철수해야 상황이 오지 않나 하는 계산 때문에 우선순위를 낮춰서 뒤로 넣어 놓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북한은 평화체제 문제가 4항으로 우선순위에서는 밀려있을망정 일단 올려놓았다는 점에 만족했기 때문에 9.19 공동성명에 서명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9.19 성명 바로 다음 날인 9월 20일부터 미국 재무부가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에 대한 제재에 들어가 북한 자금을 동결하면서 이것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BDA문제가 불거지면서 9.19 공동성명이 약속대로 이행되지 않으니까 북한은 이듬해인 2006년 10월에 첫 번째 핵실험을 단행합니다.

그러다 보니 부시 정부가 '아차, 대충 약속해서는 안 되는구나'하고 깨달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평화협정 문제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2006년 11월 하노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당시 부시 미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한반도의 전쟁 상태를 종식시키는 문제를 협의하자고 제안을 합니다. 미국과 한국이 북한과 만나 이 문제를 논의하자는 것이었죠. 곧 북한과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는 얘기죠. 그리고 2007년 9월 시드니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가 그 이야기를 또 꺼냅니다. 당시는 10월 노무현-김정일의 남북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던 때라 그 이야기를 듣고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에 가서 10.4남북공동선언 만들 때 4항에 평화체제를 논의한다고 명시를 했습니다.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라고 밝힌 것이죠. 10.4선언 발표 하루 전날 베이징에서 6자회담 합의문이 나왔는데 거기에도 이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표현은 좀 다르지만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북핵 문제를 풀겠다는 합의가 6자 회담 참가국 간에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죠.
 

ⓒ프레시안(최형락)

노무현 정부 말기에 이런 합의를 했지만 여러 가지 기술적인 문제로 2007년 2.13 합의, 그리고 11월 합의 등등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합니다. 그동안 사례를 보면 미국의 정권교체기가 되면 합의들이 잘 이행되지 않던데 아마도 예산 집행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지난번에도 얘기했던 것처럼 2009년 오바마 정부가 들어선 직후에 힐러리 국무장관이 평화협정 문제를 우선순위로 당기자는 말을 세 차례나 했다는 겁니다. 힐러리는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 미북 수교하겠다, 평화협정 체결해주겠다, 경제지원 하겠다고 말했지만 결국 이명박 정부의 반대로 이 문제가 진척되지는 못했죠.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부시 정부 말기부터 1기 오바마 정부까지 미국은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에 의지를 갖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프레시안 : 결국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서 평화협정 논의의 가능성을 분명히 보여주어야 하고, 미국은 이미 부시 행정부 말기인 2006년 11월부터 오바마 행정부 1기에도 그럴 용의를 보여주었으므로, 이번에는 우리가 나서서 이 문제를 적극 제기해야 한다는 말씀이네요.

정세현 : 그렇습니다. 평화협정 문제에 대해 부시 정부나 오바마 1기 정부 때 미국의 입장이 전향적으로 나갔기 때문에, 지금 오바마 정부 2기가 평화협정 문제를 전향적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한미 정상회담에서 물꼬를 텄으면 합니다. 북핵문제는 현 단계에서 보면 '평화협정'이라는 말이 들어가느냐의 여부에 따라 6자회담이 시작되느냐 안 되느냐로 결론이 날 겁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존 케리 국무장관이 4월 13일 말했던 2자, 4자회담 방식으로 해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수순을 밟는 것이 좋을 것으로 봅니다. 우리 정부는 필요하다면 4자회담으로 가기 전에 북미 양자회담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신호를 줘야 합니다. 평화협정 문제를 어떻게 진행시킬 것이냐는 점이 주요 이슈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만 되면 북한이 오바마 정부 2기 임기 중에 핵문제 해결에 협조적으로 나오리라고 봅니다.

걱정되는 것은 케리 장관이 자꾸 중국 역할론을 제기하는 겁니다. 중국 역할론을 이야기하는 의도나 배경을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두 가지 정도로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미국에는 북핵문제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있습니다. 중동문제입니다. 미국 정책이나 외교에서 중동문제가 최우선순위이기 때문에 미국이 북핵 문제에 큰 힘을 쏟을 여유는 없습니다. 그래서 중국이 대략적으로라도 상황 관리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정도의 정책 판단에서 중국 역할론을 제기할 수 있다고 봅니다. 즉 미국이 '중국이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바란다, 우리가 바쁘다'라는 의도라면 이것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중국과 손을 잡고 한-중-북 3자 간 셔틀외교를 하든지 어떤 형식으로든 평화협정을 논의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서 미국에 협의를 시작하자고 말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또 하나는 미국이 갖고 있는 중대한 착각 중 하나가 강대국이 찍어 누르면 약한 나라가 말을 듣게 되어 있다는 논리인데, 즉 평화협정은 도외시한 채 중국이 북한을 압박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이게 말이 안 되는 것이 한미 동맹보다 북중 동맹이 더 강합니다. 중국이 북한을 찍어 누르는 식으로는 북핵 문제가 결코 해결될 수가 없다는 것이죠. 이러면 사실 우리가 괴로워집니다. 우리로서는 빨리 북핵문제 해결 수순을 밟아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의 해법으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북핵 문제 해결 간의 상관관계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정세현 :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대북정책으로 내놓고 표를 얻어서 당선된 박근혜정부로서는 임기 내에 남북관계의 상당한 진전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하는데, 그러려면 먼저 북핵 문제 해결 수순을 밟기 시작해야 합니다. 북핵 문제 해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평화협정 문제 쉽게 안 끝납니다. 평화협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중·미간 여러 이해관계가 충돌할 것이고, 한미 간에도 상호 방위협정 어떻게 할 것이냐는 등의 문제도 대두될 것입니다. 또 전작권 문제도 있죠. 관련 당사국들 간, 심지어 양자 간 조율하는 것도 쉽게 끝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북핵 문제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안에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상당 부분 진전시켜야 합니다. 사실 북핵 문제가 당장 해결 수순을 밟는다고 해도 5년 안에 못 끝낼 수 있습니다.

북핵문제가 해결 수순을 밟기 시작하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이름의 남북관계 개선이 북핵문제 해결의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과거의 경험을 보면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서로 신뢰가 생기니까 핵문제와 관련된 북한의 입장을 변화시키는 데 상당한 효과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예를 들면 6.15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가 발전되어 나가고 대북 지원이 활성화되는 과정에서 부시 정부마저도 현실적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에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해서 매번 남북장관급회담 또는 차관급회담 등을 앞두고는 한국정부에 사전 조율을 해달라는 등등의 요청을 해오기도 했습니다. 즉 남북관계가 좋아진 상황이 북핵문제 해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미국도 그런 주문을 우리한테 했던 겁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진전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라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6자회담으로 나올 수 있도록 물꼬를 터줘야 합니다. 그 물꼬는 평화협정입니다. 평화협정 문제를 우선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먼저 확실하게 입장을 정해 미국에'이렇게 풉시다라고 제안해야 합니다. 올해가 한미 동맹 60주년인데 60년 동안 동맹국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인 북핵 문제에 대해 성의를 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미국은 현재 소강상태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가 없는 처지입니다. 한국 정부가 그런 방향으로 끌고 나간다면 앞으로 남북관계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도 북한이 남한을 괄목상대할 겁니다. 왜냐하면 북한이'남한은 미국에 제대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나라구나, 저기(남한)에 이야기해야 수교문제도 풀리고, 경제문제도 풀리겠구나'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프레시안 : 박근혜정부는 서울 프로세스를 북핵문제를 푸는 해결 방안으로 내놓은 것 같은데요?

정세현 : 박근혜정부는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신뢰를 구축하고 그것을 통해 북핵문제도 해결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말하자면 남북대화를 입구로 삼아서 북핵 문제 해결이라는 출구로 나간다는 것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논리 구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옳은 구상입니다. 그러나 동북아평화협력 구상, 즉 서울 프로세스를 핵문제 해결 방안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그건 좀 순서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레시안(최형락)


그리고 서울 프로세스를 워싱턴에 가서 이야기한다? 그러면 그것은 워싱턴 프로세스가 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동북아평화협력 구상을 어떻게 한미 정상 간에만 논의를 해서 발표한단 말입니까? 동북아 평화협력과 관련된 당사국들의 정상이든지 외무장관들이 서울에서 모여서 합의한 합의서를 토대로 동북아평화협력 구조를 만들어 나갈 때 그걸 서울 프로세스라고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헬싱키 프로세스도 헬싱키에 관련 당사국들이 모여서 합의한 헬싱키 협정을 이행해 나가는 과정을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을 말하면서 북한, 중국, 일본, 러시아가 빠진 조건에서 박근혜-오바마 양자 간 합의를 서울 프로세스라고 하면 조금은 내용에 비해 이름이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현실적으로 그런 프로세스, 동북아평화협력 프로세스는 북핵문제가 해결된 연후에 추진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북핵문제가 해결되어 나가면서 6자회담 참가 국가들이 지속적으로 핵문제 이외의 안보 문제를 논의하다 보면 결국에는 군축 문제도 논의할 수 있게 되겠죠. 헬싱키 프로세스가 나중에는 미·소 간 핵무기 감축으로까지 연결되지만 초기에는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이 대(對)동유럽 및 소련에 대한 경제 지원으로 시작된 겁니다. 경제지원이 기본인데 모양새를 만들기 위해 경제, 과학, 기술, 환경 분야 등에서 긴밀하게 협력하자면서 동유럽과 소련이 서유럽과 미국의 경제 지원이라는 틀 속에 들어오도록 만들어서 거기서 상호의존성이 생기게 만든 연후에 군사문제나 인권문제도 논의를 시작한 겁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동북아평화협력 구상, 서울 프로세스는 핵 문제 해결 이후 비로소 추진할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러니까 이번에 큰 욕심 부리지 말고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만 오바마 대통령에게 확실하게 인식시키고 협조를 약속 받아오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입구는 남북대화이지만, 북핵 문제 해결의 입구인 평화협정 이야기가 나와야 남북대화라는 대문도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만큼 평화협정 문제에 대한 한미 합의에 주력해주기 바랍니다.

프레시안 : 만약 이번 정상회담에서 평화협정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이 나오지 않는다면 현재 한반도의 위기 상황은 계속된다고 봐야 합니까?

정세현 : 그렇죠. 우선 북한의 핵능력이 계속 커질 겁니다. 북한이 핵무장을 중지할 수 있는 명분을 주지 않으면 북한 입장에서는 그 노선을 그대로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가면 결국 북한은 핵보유국이 되는 겁니다. 2006년 1차 핵실험을 사실상 실패라고 본다고 해도 2009년 2차 핵실험과 올해 3차 핵실험은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앞으로 2~3번 더하면 경량화 및 소형화가 가능해집니다. 그러면 미국에서 아무리 인정하기 싫어도 제3국에서 북한은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게 될 겁니다. 파키스탄, 인도가 그렇게 된 것 아닌가요?

지난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미국 언론들은 북한의 핵폭탄을 '부시의 핵폭탄'이라고 불렀습니다. 2002년 10월 북한의 우라늄 농축 문제를 빌미로 부시 정부가 제네바 합의를 파기한 이후 북한이 핵개발을 재개하면서 핵실험까지 이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었죠.

박근혜정부가 이 시기를 놓치면 북한이 핵 능력을 강화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결과가 됩니다. 그러면 두고두고 박근혜정부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만들어줬다는 누명을 써도 벗어날 길이 없게 됩니다.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지 못하면 앞으로 5년 동안 남북관계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북핵 해결의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북한의 핵개발을 방치한다면 5년 후에 '박근혜의 핵폭탄'이란 말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사실 북한의 핵능력을 키운 것은 이명박 정부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모든 협상의 가능성을 봉쇄한 지난 5년 동안 북한은 열심히 핵능력을 키워 핵실험을 두 번이나 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 모두 성공했죠. 만약 앞으로 5년 동안에도 이명박정부와 마찬가지로 북핵문제를 방치한다면 북한은 정말로 온전한 핵 능력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땐 누구의 책임이 더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박근혜 정부에게 화살을 돌릴지도 모르지요. 잘 생각해야 할 겁니다.

프레시안 : 2015년으로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연기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습니다만...

정세현 : 전작권 반환 시기를 연기하는 문제는 북핵문제와 연계되어 있다고 봅니다.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전작권을 찾아오는 것이 위험하지 않느냐는 생각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일종의 빅게임이라고 할까? 이게 핵문제입니다.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경우에 가장 큰 피해자는 한국인데, 어떻게 보면 핵문제를 놓고 미국과 북한이 게임을 벌이고 있는데 한국은 인질처럼 잡혀있습니다. 우리를 인질로 삼는 핵심 고리가 전작권입니다. 이번 개성공단 사건의 전개 과정을 보면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위협적인 언사를 내놓았지만 사실 남한을 대해서도 위협적 언사를 내뱉었습니다. 북한이 이런 발언을 쏟아낸 이유가 있습니다. 남한을 상대로 연평도 사건과 같은 공격 행위를 하더라도 남한은 한 대 맞고 끝날 수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왜냐하면 남한에는 전작권이 없기 때문에 꼼짝 못한다는 논리입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개성공단에서 북한이 우리 근로자들을 인질로 삼는다면 인질 구출작전을 펴겠다는 이야기를 했고, 북한이 여기에 극렬하게 반발하면서 사죄하라고 했지만, 사실 그건 외부에 대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북한의 속마음은 아마 '구출작전? 해봐' 이랬을 겁니다. 구출작전 벌이면 북한이 반격하게 되어 있고 그러면 최소한 개성공단에서 소규모의 국지전이 발생할 수 있는데 그러면 반드시 미국이 남한을 잡아당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만하라고. 이것을 북한이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따라서 전작권이 우리에게 없는 한, 북한은 한국을 군사적으로 우습게 볼 수밖에 없습니다.

전작권이 없는 남한의 군사책임자가 북한에 위협적인 언사를 한다? 그래 봤자 이것은 북한에 먹혀들어가지 않습니다. 핵문제든 개성공단 문제든 남한에서 북쪽에 대고 강력한 응징을 하겠다는 그런 입장을 발표해도 전작권이 미국에 있는 한 북한은 속으로 콧방귀 낄 겁니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북한이 남한을 상대로 군사적 위협을 가하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빠른 길은 전작권을 찾아오는 겁니다. 또한 군사문제 등에 대해 북한과 대등한 협상을 하려면 전작권을 우리가 가져야 합니다.

전작권은 당초에 2012년 4월 17일부로 우리 군이 환수하기로 했으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2010년 6월 26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전작권 환수 시점을 2015년 12월 1일로 조정했습니다. 이걸 또 미루겠다는 얘긴데, 별로 바람직스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프레시안 : 전작권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 내 보수진영의 입장이 이율배반적인 것 같습니다. 우리 군 당국자가 북한의 도발에 대해 대남공격 원점을 타격하겠다고 하면 환호하고 지지하면서도 정작 그러한 타격을 자유자재로 가할 수 있는 조건인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대해서는 반대를 하거든요.

정세현 : 대단히 중요한 지적입니다. 북한의 공격 원점을 타격하겠다고 하는데 그건 전작권이 없으면 사실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려면 전작권을 가능한 한 빨리 환수해야 합니다. 그래야 북한이 우리를 함부로 넘보지 못합니다.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자주국방을 국정의 주요 목표로 삼고 투자도 많이 해왔는데 아직도 군사력 면에서 북한에 뒤진단 말인가요?

프레시안 : 하지만 2월 12일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우리 쪽에서 핵무장 등 강력한 반응이 나오니까 미국도 전작권을 한국에 돌려주는 문제를 재고하고 있다는 보도들이 나옵니다. 지난 2월에 성 킴 대사가 그랬고 최근에는 바월 벨 전 주한미군 사령관이 이런 취지의 발언을 했는데, 이런 식이면 전작권 회수가 또 연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정세현 : 주한 미국대사가 그렇게 이야기했다는 언론보도를 본 적이 있습니다. 미국의 군부 입장에서는 전작권을 한국에 반환하고 나면 연합사를 둔다고 해도 한국군에 대한 미군의 장악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면 미제무기 시장으로서의 한국의 비중이 떨어진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 것 때문에 미국의 군부 쪽에서는 한국 내에서 전작권 환수 연기론이 나오는 것이 '불감청이나 고소원'(不敢請 固所願: 감히 드러내놓고 청할 수는 없지만 내심 그렇게 되기를 바람)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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