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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 기사 올리고 잘렸습니다

지역 기득권층 눈치 보는 지역언론의 현실... 참담합니다

13.05.06 20:16l최종 업데이트 13.05.06 20:16l

 

"너 혼자 정의로운 척 하지 마라."

이런 말을 듣는 건 기분 나쁜 일이 아닙니다. 정의로운 척을 했거나 아니면 진짜 정의롭거나, 어쨌든 '정의'에 가까운 행동을 했을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눈치가 조금 있는 사람이라면 이 말이 비아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최근 지역의 한 신문사 회장으로부터 이 말을 듣고 해고당했습니다. 그것도 입사한 지 불과 4개월 만에 말입니다. 이제 그 '정의로운' 저의 이야기를 잠깐 해보겠습니다.

"졸지에 기사 '팔아먹은' 기자 되다"

안동 소재 경안학원의 문제를 보도한 진민용 시민기자의 기사.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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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신문기자로 일을 하면서 다른 매체에 기사를 올리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입니다. 저 또한 이 문제를 자랑스럽거나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일이 소속 신문사 때문이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판단하시겠습니까.

사건의 발단은 4월 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경북 안동 경안학원 이사장이 기간제 교사들을 모집하면서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출석과 헌금 납부를 강요했다는 제보를 접하고 취재를 시작하면서 말입니다(관련기사 : 재계약 하려면 교회 다니라는 황당한 학교).

저는 경북 안동 <경안일보> 기자 소속으로, 이건을 취재하면서 데스크에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데스크는 이를 신문사 회장에게 보고했습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한 보도가 왜 경영진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데스크는 지역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던 회장의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했습니다. 결국 돌아온 답변은 "지금 경안학원은 기독교재단과 법적인 분쟁을 하고 있으니 중간에 끼어들지 마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기간제 교사 문제인데 재단끼리의 법적 분쟁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항변했지만 경영진에서는 아예 '경안학원'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꺼리는 듯했습니다. 이후 <오마이뉴스>에 기사가 게재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돈 받고 기사를 팔아먹었다"는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아마 신문사 회장은 <오마이뉴스> 기사 원고료가 수십만 원쯤 되는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저도 그랬다면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신문사 회장에게 차마 "몇 천 원에서 몇 만 원"이라는 말은 하지 못했습니다.

"<오마이뉴스> 같은 빨갱이 신문과 왜..."

표면적으로 드러난 지적은 "법적인 분쟁 관계에 있는 사이에 우리 신문이 왜 끼어들어 문제를 키우느냐"는 것이었지만, 누가 봐도 이 문제는 지역신문의 한계와 연관됐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신문이 익히 받아왔던 비판, 즉 신문사를 운영하는 경영진이 지자체·지역 기득권층과 관련이 있거나 그 지역 학교 출신 선후배 관계거나 이런 것들 말입니다.

결국 데스크와 신문사 경영진의 '지시'에도 저는 기간제 교사들의 황당한 재계약 조건을 취재하고 보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역신문에 이를 게재할 수 없다면 <오마이뉴스>에 보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이게 신문사 입장에서는 '배신행위'이자 월급 주는 입장에서는 '항명'이 분명했습니다. 저는 <오마이뉴스>에는 기존 언론인들도 시민기자로 많이 참여하고 있고, 특히 현직 기자들도 자유롭게 활동한다는 점을 해명했지만, 경영진의 입장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행동이었나 봅니다.

심지어 경영진은 저를 문책하며 "<오마이뉴스>에 얼마를 받고 기사를 팔아 먹었냐"고 하거나 <오마이뉴스>를 두고 '빨갱이 언론'이라는 등의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있는 지역인 경북은 보수 성향이 강해 <오마이뉴스>가 이런 취급을 받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역언론사의 길

지역언론을 향해 '정론직필'을 요구하는 건 불필요한 논쟁이라 생각합니다. 당장 관공서에서 나오는 광고라도 받아서 신문 발행에 보태려면 그들의 눈치를 봐야 하고, 적당한 선에서 압박을 넣기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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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속했던 신문사의 논조는 <오마이뉴스>의 그것과 전혀 다릅니다. 신문사 회장은 지역의 새누리당 국회의원들과의 친분도 있고, 경북도와 안동시의 정책을 견제하거나 감시하기보다는 '좋은 게 좋은' 식으로 관공서와 발을 맞춰 가자는 입장이었습니다.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언론을 향해 '정론직필'을 요구하는 건 불필요한 논쟁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관공서에서 나오는 광고라도 받아서 신문 발행에 보태려면 그들의 눈치를 봐야 하고, 적당한 선에서 압박을 넣기도 해야 합니다.

이렇게 지자체와 지역언론이 '밀당'을 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건과 진실들이 수면 아래로 사라집니다. 소위 '마사지'를 당하는 기사들도 한두 꼭지가 아닙니다. 기자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신문사를 경영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밀당'이야말로 지역에서 자리를 잡는 지름길이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관공서나 공무원들의 비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그대로 보도하는 기자는 순진한 겁니다. 그런 '건수'를 잡으면 대개는 당사자들과 '협상'을 합니다. 특히 신문사 경영진이 신문 외에 다른 사업을 하는 경우에는 '협상'의 여지를 남겨둡니다.

이 과정에서 기자는 '취재'라는 무기를 들고 경영주의 앞에 서서 '해결사' 노릇을 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지역신문 기자의 현실입니다. 최소한 제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말입니다.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기자는 '정론직필'이라는 순진한 소명을 과감히 버릴 수도 있어야 하는 것. 안타깝지만, 현실입니다.

지역신문서 '편집권 독립'은 남의 나라 일일까

저를 해고 했던 신문사 회장은 저를 향해 "제대로 취재하고 자유롭게 보도하려면 안동을 떠나 <오마이뉴스>가 있는 서울로 가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회장이 말한대로 편집권의 독립이 보장되는 언론사는 별로 없습니다. 신문사나 언론사의 논조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그 언론사의 기자 노릇을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편집권 독립을 허용하는 신문사라도 보수성향 신문사에서 일했던 기자를 진보성향 신문사에서 받아줄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생각합니다. 신문사가 가지는 정치적 성향 또는 그 신문의 특징은 곧 '논조'가 되고, 그 안에 소속된 기자들은 그 논조의 방향을 지켜주는 게 불문율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정치적 성향'이 아닌, 기본적인 팩트가 있는 사건에 대해서조차 지역의 눈치를 봐야 한다면? 그것을 '언론'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이를 깨닫는데 든 비용치고는 제게 떨어진 '해고'는 아무래도 비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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