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길. 민주노총 초대위원장, 민주노동당 대표 등 그를 설명하는 경력은 대체로 ‘위원장’ 아니면 ‘대표’였다. 그러나 그는 위원장·대표 이전에 기자였다. 그는 서울신문 기자시절이던 1988년 언론노련 초대위원장을 맡으며 언론운동의 깃발을 들었다. 언론노동운동 30년을 맞아 지난 23일 권영길 언론노조 제1대~3대 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인터뷰 내내 ‘언론민주화로 사회민주화에 기여한다’는 언론노조의 제1목적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거듭 강조했으며, 언론노조가 “직종을 넘어서는 연대에 적극 나서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약속 장소였던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30년 전 사진을 넘겨보고 있었다. 사진 속 언론노련 위원장은 어느덧 백발이 되었으나 눈빛은 30년 전 그대로였다. 그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새로 태어나야 한다고 했으며 지난 30년 간 인상적이었던 언론노조 조합원 한 명으로 손석희 JTBC 대표이사를 꼽았다. 그는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두 시간 가까이 답변을 이어갔다. 그는 여전히 꿈 많은 대중 운동가였다. 2013년 정계를 떠난 뒤 지금은 사단법인 ‘권영길과 나아지는 살림살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에게 언론운동의 지난 30년을 묻고, 앞으로의 30년을 물었다. 아래는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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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길 초대 언론노련 위원장이 30년 전 언론노련 창립대회 사진을 뒤로하고 웃고 있다. ⓒ김현정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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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언론운동의 맨 앞에 있었다. 소회를 듣고 싶다.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이었고, 민주노동당 초대 대표였다. 오랜 기간 정치인으로 불렸는데, 여전히 위원장으로 불리는 게 제일 좋다. 마음속은 언론노련위원장 권영길 그대로다. 언론노조는 성찰과 희망 속에서 탄생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의 봄이 왔을 때 언론인들은 자괴감 속에 무임승차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전두환 독재, 박정희 독재 시절 언론은 독재정권의 대변자 노릇을 했다. 언론인들은 자괴감 속에 한탄하며 보냈다. 개인의 힘으로 독재정권에 맞서서 민주화할 수 있느냐, 개인의 힘으론 어렵다, 조직의 힘으로 민주화시키자, 그게 노동조합이었다. 언론이 이제는 국민들에게 사죄하고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해서 만들어진 것이 언론노조였다. 언론노조의 핵심기조는 ‘언론민주화를 통해 사회민주화에 기여한다’였다. 1988년 언론노련은 만들어질 때보다 만들어진 이후의 상황이 엄중했다. 봄은 왔지만, 봄날은 짧았다. 각 단위노조 내부도 많은 탄압을 받았다. 해고자도 많이 나왔다. 그러나 그것을 뛰어넘어 오늘날에까지 이르게 됐다.”
-30년 전 오늘 어떤 마음으로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 올랐는지 궁금하다.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이 자리가 지금은 힘든 자리이지만, 언젠가는 영광된 자리가 되도록, 내가 몸을 바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우리사회를 바꿔나가는 한복판에 서 있다는 자부심도 갖고 있었다. 1988년 7·8·9월 노동자 대투쟁이 있었다. 당시 노동자들이 민주노조를 건설해서 지금까지 한국사회 개혁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1987년부터 30년에 이르는 한국사회 역사적 흐름의 가장 큰 줄기가 바로 노동조합이다. 많은 노조 중에서도 언론노조는 보이지 않게 더 많은 감시와 통제를 받았다. 노동조합은 자기가 몸답고 있는 사회가 민주화되지 않은 사회일 때 민주화를 위해 앞장서 싸우는 게 목적이자 과제가 되어야 한다. 국제노동기구(ILO) 헌정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일보 노조가 설립됐을 때 김대중 조선일보 주필은 ‘기자들이 노조를 한다니 창피스러운 것’이라고 했다. 노조는 기름때 뭍은 육체노동자들이나 하는 것이라 생각한 거다. 노조를 모르는 무식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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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8년 11월26일 언론노련 창립대회 모습. 가운데 발언하고 있는 이가 권영길 위원장이다. ⓒ언론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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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간 언론운동의 가장 큰 성과를 꼽는다면.
“언론노조가 철저하게 자주적·민주적 입장을 취했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다. 연맹이 결성이 되고나서, 당시는 민주노총이 없었다. 전국적인 노조조직은 한국노총밖에 없었다. 당시 한국노총은 노동자를 억누르고 임금을 착취하고 탄압하는 역할을 했다. 관제노총이자 어용노총이었다. 연맹체가 되면, 우리 상급단체를 기명하게 되어 있었다. 그 때는 한국노총 밑에 출판노련이 있었다. 우리는 출판노련을 거부했다. 상급단체에 한국노총을 기재하지 않았다. 이걸 정부기관도 알고, 끊임없이 회유가 들어왔다. 상급단체 올리고 필증이 나오면 나중에 빼면 된다는 식으로, 일단 한국노총을 기입해달라고 했으나 단호히 거부했다. 나는 아예 설립신고를 내지 말아달라고 했다. 상급단체 없이 노동부에 신고했고 당연히 거부됐다. 그 때부터 언론노련 합법화를 위한 법적 투쟁에 돌입했다. 그 후 1992년 12월 대법원에서 법률 위반이 아니라는 판결이 나왔고 이후 다른 노조가 합법화됐다. 언론노련은 무엇보다 우리나라 노조의 자주화·민주화에 기여했다. 예전부터 노조를 법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노동자들이 자주적 민주적으로 만들었다고 선언하면, 노조는 인정되어야 한다. 우리는 마치 노조가 허가제처럼 존재하는데, 이 악습을 깨는 역할을 이뤄낸 것이었다.”
-언론계에서의 구체적 성과들을 꼽는다면.
“언론노조 결성의 제1목적이 ‘언론민주화를 이뤄 사회민주화에 기여한다’였다. 구체적인 언론민주화 방법은 첫째가 편집-편성권 독립이었다. 편집국장·보도국장을 정권 입맛, 사주 입맛으로 임명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직선제와 임명동의제·중간평가제를 쟁취하기 위해 파업투쟁을 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1988년 부산일보가 제일 먼저 싸워서 직선제를 쟁취했다. 공영방송 KBS·MBC나 정부 산하 서울신문 같은 매체는 낙하산 사장 거부투쟁을 벌였다. 투쟁이 수없이 일어났고, 연맹은 연맹대로 많은 집회를 열었다. 세계 언론사상 그렇게 파업으로 편집권 독립을 쟁취한 역사가 유례를 찾기 힘들었다. 당시 서울 외신기자들이 내게 두 가지를 보고 놀랐다고 했는데, 세계 어느 언론사도 이렇게 결집이 되어 민주화투쟁 집회를 여는 곳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세계 언론사에 길이 빛날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모여서 외치는데도 신문지면이나 TV화면에 한 줄도 보도되지 않는 걸 보고 두 번째로 놀랐다고 했다. 뼈아픈 이야기였다. 그러나 한국 언론노동자들은 주저앉지 않았다. 판사가 판결로 말하는 것처럼 언론노동자들은 지면과 화면으로 말하기 위해 지금까지 투쟁해왔다.”
-30년간의 언론운동 시기 중 가장 극적인 순간은 언제였나.
“1990년 4월 KBS 낙하산 사장 반대투쟁이었다. 국민들로부터 돌팔매질 당하던 KBS를 살려낸 투쟁이었다. 90년 4월 투쟁은 한국 노동운동의 흐름을 바꿀 수 있었는데, 거기까지는 가지 못했다. 당시 정권차원의 분열공작이 엄청났다. 같은 시기 울산 현대중공업 투쟁이 있었다. 제조업과 언론의 연대투쟁이 돼야한다 했지만 KBS 동지들이 당시까지 그걸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다. 참 안타까운 점이었다. 만약 함께 끝까지 연대 투쟁했다면 당시 노태우 정권이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노동조합의 생명은 자주적·민주적 운영이라고 말했는데, 그와 함께 가장 중요한 게 연대다. 연대하지 않는 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다. 전국에 있는 모든 노동조합이 함께 가야 한다. 직종을 넘어서 투쟁해야 한다. 그런데 사실 연대에서는 아직까지도 언론노조가 약하다. 가슴깊이 새겨야 할 부분이 연대다. 언론노조 틀 안에서의 연대, 민주노총 안에서 모든 직종과의 연대, 그 연대가 결국 언론노조를 살린다.”
-지난 30년 간 언론노조 조합원 중 가장 인상적인 조합원을 꼽는다면.
“언론민주화를 위해 신념으로 걸어온 동지들이 있다. 전부 다 생각나고 훌륭하다. 그러나 그 중에서, JTBC 사장으로 있는 손석희 조합원을 가장 인상적인 후배로 꼽고 싶다. 민주노총위원장 시절 내가 진보진영 대통령 후보로 나가야 한다는 논의 끝에 1997년 국민승리21(민주노동당의 전신)이란 정치조직체가 탄생했다. 나는 당시 언론에서 한 줄도 언급되지 않는 대선후보였다. 고민 끝에 손석희 MBC조합원을 대변인으로 떠올렸다. 당시 손석희씨는 미국 미네소타에서 공부 중이었다. 개인 돈으로 비행기 표를 마련해 사람을 보냈으나 데려오지 못했다. 이후 손석희는 한국 역사를 발전시키는 데 가장 중심적인 길을 걸어왔다. 내가 그 길을 가로막을 뻔했구나 싶어, 돌이켜보면 (대변인직을) 거절해서 정말 다행이었다.(웃음) 사람들에게 손석희를 잘 봐라, 손석희에게 배우라고 늘 얘기했다. 손석희는 어떤 정당에서든 영입 1번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영입 1번도 손석희였다. 손석희가 대단하다는 건 그 모든 유혹을 과감하게 뿌리친 것이다. 대통령 앞에서 거절할 수 없으니 아예 대통령이 부르는 곳을 가지 않았다. 그 결과 독보적인 언론인이 됐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내공을 쌓으며 MBC조합원 시절에도 연대활동을 굉장히 열심히 했다. 박근혜 정권이 청와대에서 감옥으로 가기까지 손석희가 어떤 역할을 했는가는 다 알려진 사실이다. 나는 그야말로 역사적인 인물을 사장시킬 뻔했다.”
-30년 전에는 조중동 기자들도 언론노조 소속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언론노조가 조중동과 결별하고 산별노조로 전환한 이후 언론의 정파성이 강화됐다는 지적도 있다. 해법이 있다면.
“조중동이 평화와 통일을 갈망하는 이들에게 적대시되고 있다. 안타깝다. 언론노련 결성 이후 상당한 기간까지 조중동 조합원들이 연맹체 안에서 열심히 활동했다. 많은 조합원들이 조선일보를 노동조합의 힘으로 바꿔보자고 했다. 조선일보의 명예를 회복해보자고 했다. 조선·동아는 민족지를 표방하고 있지만 지금껏 사주의 반민족행위에 대해 진실 된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자유언론운동의 횃불을 들었던 동아투위와 조선투위의 역사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자랑이 되어야 한다. 이 빛나는 역사를 회복시키기 위해 노조가 노력했고, 언론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싸웠다. 하지만 노조가 엄청난 위협과 어려움을 겪었다. 동아일보 사주는 노조위원장에게 ‘당신은 진짜 파업을 했다’며 ‘용납 못한다’고 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나왔다. 그들의 투쟁을 뒷받침할 수 있었다면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언젠가는 조선일보의 명예회복을 위해, 동아일보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동조합이 재탄생해야 한다. 허울만 유지하는 노조는 언젠가 깨어나야 한다.”
-공영방송이 정상화 과정을 밟고 있고, 정권 교체 이후 언론자유도 역시 높아졌다. 그러나 언론계에 산적한 과제가 적지 않다. 앞으로 30년, 언론운동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나.
“지금은 30년 전과 완전히 다르다. 30년 후도 지금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지금은 모든 국민이 기자다. SNS 활동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정보 전달은 스마트폰만 있으면 된다. 이 시대 언론이 뭘 하면 되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 답은 현재 언론노동자들이 찾아야 한다. 지금 미국을 보면 트럼프가 모든 주류언론을 가짜뉴스 취급하고 있다. 그리고 자기 트위터로 활동하고 있다. 이 대목을 잘 봐야 한다. 언론의 위치를 제대로 찾지 못하면 언론인들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또한 노조는 회사 경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게 정상이다. 권리와 책임을 철저하게 세우고 이행해야 한다. 지금은 심하게 얘기하면 방관자다. 노조가 경영에 참여해야 한다. 권리와 책임을 함께 가져가야 한다. 자본과 노동이다. 자본과 노동이 국가사회를 일으켜 세우는 중심이다. 그게 바로 노동이 당당한 나라다. 무엇보다 노동조합은 소통해야 한다.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
-30년 전 오늘로 돌아가면, 가장 먼저 무얼 하고 싶나.
“3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국민들에게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운동을 하고 싶다. 평등 평화 통일 운동을 새롭게 하고 싶다. 누구에게나 와 닿는 운동을 하고 싶다. 금융노조의 금융민주화, 언론노조의 언론민주화, 보건의료노조의 보편적 건강권 같은 구호가 국민들의 가슴속으로 다가가게 하고 싶다. 30년 전으로 돌아가도 여전히 대중운동을 하고 싶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 마음은 언론민주화에 있다.”
-언론계 후배들에게 당부할 것이 있다면.
“언론인은 오늘의 현상을 빚어 역사를 만드는 사람이다. 이걸 져버리면 안 된다. 왕조시대 사관은 그대로 받아 적었지만, 언론은 다르다. 그러기 위해선 사물을 정확히 봐야 한다. 바르게 보고 바르게 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언론계 후배들에게 또 하나 당부한다면, 건강에 유의하라. 4년간 투병 생활을 했다. 건강을 잃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건강할 때 건강을 지켜야 한다. 맑은 물 맑은 공기도 좋지만 가장 좋은 게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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