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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 끝에 잡았지만... 애인 말고 두목을 잡는 법

[보이스피싱의 모든 것 ⑤] 지난해 붙잡은 피의자 중 '총책'은 0.3%뿐... 어떻게 뿌리뽑을까

18.12.30 10:59l최종 업데이트 18.12.30 10:59l
그래픽: 고정미(yeandu)

 

 

 

개그 소재로도 종종 쓰이는 보이스피싱, 하지만 현실에서는 결코 만만치 않다. <오마이뉴스>는 총 일곱차례에 걸쳐 보이스피싱의 과거와 현재를 조망하고, 범죄조직의 실체를 분석하는 한편, 현장에서 보이스피싱과 대면하는 이들의 목소리에서 문제해결의 방법을 찾아봤다. 이 기사는 다섯번째다.[편집자말]
 경기 안양만안경찰서는 검찰과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사기로 억대를 가로챈 혐의(사기 등)로 이모(23)씨 등 2명을 구속했다고 22일 밝혔다. 경찰조사 결과 이들은 범죄수익금을 들고 웃는 모습을 찍어 서로 공유한 것으로 확인됐다.
▲  2016년 3월 22일 경기 안양만안경찰서는 검찰과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사기로 억대를 가로챈 혐의(사기 등)로 이모(23)씨 등 2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조사 결과 이들은 범죄수익금을 들고 웃는 모습을 찍어 서로 공유한 것으로 확인됐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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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 신원불상으로 기소중지를 할 때마다 '이러려고 검사가 됐나' 싶었다."

검찰 내에서 '보이스피싱 저승사자'로 불리는 박경세 부산지방검찰청 검사(변호사시험 2기)는 자신이 악착같이 수사에 나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기소중지는 피의자의 소재불명 등으로 수사를 더 이상 진행 할 수 없을 때 내려지는 결정이다.

<오마이뉴스>가 취재 중 만난 판사는 한 지방법원 영장판사로 근무했을 때 보이스피싱 피의자들을 상대로 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떠올리며 "두목 애인은 있었는데, 두목은 없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보이스피싱 범죄 피의자 상당수가, 특히 총책으로 불리는 거물급 피의자는 결국 수사망을 빠져나간다는 얘기다.

검거자 중 절대다수는 현금인출팀 말단

 보이스피싱 직책별 검거인원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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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조직은 완전체 조직이다. 피해자를 낚는 '콜센터팀'과 낚인 피해자들 대면하는 '현금인출팀'으로 나뉘어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그 위에는 우두머리인 '총책'이 최정점에 있다(관련 기사 : "조폭보다 훨씬 무섭다" '완전체 기업' 대해부).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7년 검거된 보이스피싱 범죄 피의자 2만 5473명 가운데 총책은 72명에 불과하다. 피라미드식 구조로 이뤄지는 범죄 특성상 총책보다 콜센터팀이나 현금인출팀의 검거인원이 훨씬 많을 수밖에 없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극소수의 총책만 검거되고 있다는 게 김 의원실의 설명이다.

수사기관에 붙잡히는 보이스피싱 범죄자 대다수는 피해자에게 현금을 받아 전달하는 현금인출책이다. 콜센터는 주로 해외에 위치한 데다 최근에는 1차 콜센터, 2차 콜센터 등으로 분화돼 더욱 검거가 쉽지 않다. 현금인출책의 경우 은행이나 대면 현장에서 검거가 가능하지만 콜센터의 경우 신고가 사후적으로 이뤄진다는 것도 영향을 미친다.

현금인출팀 역시 점 조직으로 운영돼 검거되더라도 수사가 보이스피싱 조직 전반으로 확대되기 어렵다. 현장에서 검거되는 말단 조직원은 상위 지시자 한 명 외엔 윗선과 소통하지 않는다. 한 검사는 "현금인출책을 검거하고 거기에 한 명을 더 검거하는 경우도 운이 좋을 때"라고 설명했다.

[해법 ①] 머리를 잡으려면 : 국제공조
 
 27일 오전 서울 마포 경찰서에서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 수사대 수사관들이 제주에서 대만인이 운영한 중국인 상대 대규모 보이스피싱 콜센터를 검거하고 압수한 증거품을 조사하고 있다.
▲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수사관들이 2017년 12월 27일 서울 마포경찰서에서 대만인이 제주에서 운영한 중국인 상대 대규모 보이스피싱 콜센터를 검거하고 압수한 증거품을 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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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보이스피싱 조직의 총책까지 일망타진을 위해서는 먼저 콜센터팀을 잡아야 한다. 현금인출팀은 조직원이 사실상 개별적으로 움직이지만, 콜센터는 상호 관계가 두터운 경우가 많다. 주로 가족·친척·지인 소개로 합류한 조직원들은 해외에 거점을 둔 콜센터로 건너간다. 조직원 한 명을 잡거나 콜센터 위치정보 등을 알아낼 경우 조직의 상당 부분을 잡아낼 수 있다. 그렇기에 콜센터가 위치한 국가와의 국제공조가 중요하다.

지난 2015년 경찰은 중국 공안과 공조 수사를 벌여 처음으로 중국 내 보이스피싱 총책과 조직원 45명을 무더기로 검거했다. 수사에 참여한 경찰 관계자는 "콜센터 위치가 중국으로 확인되면 통상 수사를 종결했었는데, 당시에는 경찰청 고위 간부가 직접 중국을 방문해 공안부의 수사 책임자를 설득한 끝에 중국 조직원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한국인을 상대로 한 보이스피싱 범죄는 중국뿐 아니라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여러 국가로 확산돼 벌어지는 것으로 수사기관은 파악하고 있다. 그동안 중국과의 협조가 어려워 총책 등 조직 일망타진이 어려웠지만, 공조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또 중국인 보이스피싱 피해자도 늘어나는 추세라 중국 공안이 적극적으로 수사에 협조할 것으로 수사기관은 내다보고 있다.

[해법 ②] 범죄 도구를 없애라 : 대포통장과 대포폰 차단 
 
 전남 여수경찰서는 30일 "수사기관이나 금융기관을 사칭해 수억원을 가로챈 조선족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2개 조직원 14명을 붙잡아 그 중 7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경찰이 압수한 증거품.
▲  전남 여수경찰서는 2015년 6월 30일 "수사기관이나 금융기관을 사칭해 수억원을 가로챈 조선족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2개 조직원 14명을 붙잡아 그 중 7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경찰이 압수한 증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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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공조수사가 사후 처벌을 통한 예방방법이라면 애초 범죄에 쓰이는 도구를 차단하는 사전 예방방법도 있다. 보이스피싱에 사용되는 대표적 도구가 대포통장과 대포폰이다. 이 두 도구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수사망을 피해 숨을 수 있게 해주는 '무기'다. 금융범죄 전문가들은 보이스피싱 범죄 도구인 대포통장과 대포폰을 없애는 게 근본적인 방안이라고 말한다.

건수는 점점 줄고 있지만 대포통장은 여전히 보이스피싱 범죄의 주요 수단이다. 금융감독원 불법금융대응단의 자료에 따르면, 대포통장을 이용한 사례는 지난 2016년 약 4만 6천 건(월평균 3885건)에서 지난해 상반기에는 약 2만 건으로 월평균 3497건으로 감소했다.

이런 감소세는 금융당국이 신규 계좌 개설 절차를 강화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은행에서 새로운 계좌를 만들기 위해서는 신분증, 주민등록등본을 지참하는 동시에 계좌 개설 목적 등을 자세히 밝혀야 한다. 그러나 대포통장만을 전문적으로 만들어 보이스피싱 조직에 유통하는 일당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대포통장에 비하면 대포폰은 제재가 훨씬 덜 하다. 1인당 개설할 수 있는 휴대폰 개수에 사실상 제한이 없다. 주요 이동통신사 3사(SKT·KT·LG)와 알뜰폰 약 30개 사를 포함해 사용자 한 명이 휴대폰을 100대 넘게 개통할 수 있다. 휴대폰을 개설하면서도 개통자가 직접 대면할 필요도 없다.

박경세 검사는 범죄 도구 마련에 많은 자금이 들게 하는 방식으로 범죄 이익의 기대치를 낮춰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보이스피싱 조직은 대포통장과 대포폰에 많은 돈을 사용한다"라며 "대포통장, 대포폰의 시세가 올라야 조직이 적자가 본다, 그렇기 위해선 대포통장, 대포폰 양도 사범들을 엄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대포통장과 대포폰을 타인에게 팔아넘기는 범죄자의 형량을 높이면 그에 따라 시세도 올라간다는 주장이다.

[해법 ③] 엄벌을 위하여 : 걸리면 '조직 범죄'로
 
 충북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2일 중국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조직으로부터 사기 수법을 배워 국내에서 서민들을 등친 한국인 일당이 무더기로 적발했다. 사진은 경찰 조사를 받는 피의자들.
▲  충북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2015년 6월 2일 중국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조직으로부터 사기 수법을 배워 국내에서 서민들을 등친 한국인 일당을 무더기로 적발했다. 사진은 경찰 조사를 받는 피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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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보이스피싱이 성향하는 것은 법이 관대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바로 양형의 문제다. 대포통장·대포폰을 만들어 보이스피싱 범죄에 건네고 그 대가로 돈을 챙기는 범죄자는 보통 무죄나 벌금형을 선고받는다. 미국의 경우에는 징역 수십 년을 받을 수 있는 범죄다.

총책 등 주범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지난 2015년부터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한 피고인에게 징역 5년 이상을 구형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지만, 재판부마다 다르게 판단하고 낮게는 징역 1년을 선고하는 사례도 있다.

한 판사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적용되는 '사기죄'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통상적으로 한 사람이 수억 원 이상 피해를 당하는 게 아니라 수십 명의 사람이 각각 수백만 원의 피해를 본다"라며 "사기죄로는 기껏해야 징역 10년 이하고, 상습 사기로 걸어도 형량이 높지 않다, 상한선 10년도 총책을 기준으로 하면 나머지 공범들의 형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한 사람이 5억 원 이상을 손해 본다면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적용돼 재판부가 가중처벌을 내릴 수 있지만, 개별 사건이 여러 건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단순 사기로밖에 볼 수 없다는 의미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검찰은 보이스피싱 조직 윗선에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하기도 했다. 형법 제114조인 범죄단체조직죄는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 또는 집단을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했을 경우 성립하며, 이전까지는 조직폭력배에게 주로 적용돼왔다.

그러나 지난 2016년 8월 수원지검 안산지청이 기소한 보이스피싱 조직은 조직원만 110명에 달하는 '기업형 조직'으로 피해자들에게 총 약 54억 7천만 원을 가로챘다. 당시 검찰 관계자는 "조직 핵심 간부들에게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해 기소한 건 전국적으로 처음"이라고 밝혔다.

박경세 검사는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할 경우, 양형이나 구속 여부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범죄단체조직죄로 재판에 넘겨진 총책에게 징역 20년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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