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생존자들은 사과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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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일 오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자 청원서 제출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우리는 무엇보다 한국 정부에게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생존자들은 사과를 원한다’라는 것을 이 청원서를 통해서 분명히 알리고 싶습니다.”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해 가족을 잃거나 직접 피해를 당한 민간인학살 피해자 103명이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을 상대로 4일 ‘청원서’를 제출했다.
‘제주 4.3 평화상 특별상’ 수상을 위해 방한한 하미 마을 학살 피해자 동명의 응우옌티탄(62)과 응우옌티탄(57) 씨가 참석한 가운데 4일 오후 2시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자 청원서 제출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심아정 시민평화법정 조사팀 간사가 낭독한 기자회견문을 통해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작성한 103장의 청원서를 오늘 대한민국 청와대에 제출한다”며 “베트남 피해자의 외국 정부에 대한 집단 청원은 최초의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들은 “1999년부터 공론화된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논의가 2019년으로 20년째가 된다”며 “그 20년 동안 한국 정부는 그 어떤 진상조사를 시작하지도, 공식인정을 하지도 않았다”고 지적하고 “한국 정부는 청원법이 정한 90일 내에 103명의 피해자들에게 책임 있는 답변을 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특히 “‘베트남 정부가 한국의 사과를 원하지 않는다’라는 이야기를 한국 정부가 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한국 정부의 그 누구도 우리에게 찾아와 사과를 원하는지 묻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한국 정부가 일본에 의해 식민지배를 당했던 불행한 시기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여전히 일본 정부에게 법적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며 “한국 정부의 그러한 입장과 태도는 베트남전쟁 민간인학살 문제에 있어서도 일관되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베트남 전쟁은 1975년에 끝났지만, 우리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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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4.3 평화상 특별상' 수상차 방한한 하미 마을 학살 피해자 두 명의 응우옌티탄 씨가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했다.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가 통역을 맡았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103명의 베트남 피해자들은 청원서에서 “우리는 베트남 전쟁 중 한국군 파병 기간(1964~1973) 동안 한국군에 의해 가족을 잃거나 큰 상해를 입은 사람들”이라고 밝히고 “한국 정부는 위 시기에 325,000여 명의 한국군을 베트남으로 파병”했고, “파월 한국군은 베트남 중부 5개 성에서 작전을 수행하면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했다”고 썼다.
이들은 “베트남 전쟁은 1975년에 끝났지만, 우리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며 “2015년과 2018년에는 우리 중 일부가 한국을 직접 방문하여 학살을 증언하고 한국 정부의 사실 인정과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고 상기시켰다.
특히 지난해 4월 서울에서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시민평화법정)을 개최해 이들의 증언을 청취하고 한국 정부의 진상규명 의무와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들은 “한국 정부가 제주4.3, 광주5.18, 한국전쟁 등 과거 발생한 민간인학살 문제에 대해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진상조사를 하여 진실을 밝혔다는 사실을 높이 평가한다”면서 “한국 정부가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해 발생한 전쟁범죄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신속하게 나서줄 것을 원한다”고 밝혔다.이들은 청원서에 △진상조사 및 사실인정, △공식 사과 및 공식 선언, △피해회복을 위한 조치를 요구하고 “부디 한국 정부가 우리의 간절한 목소리에, 용기를 내 꺼낸 목소리에 응답해줄 것을 기대하고 기다린다”고 맺었다.
“한국 정부, 이 절박한 요구에 대해서 꼭 응답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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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명의 응우옌티탄 씨가 103명의 서명이 담긴 청원서를 들고 관계자들과 함께 청와대 관계자 면담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지난해 서울에서 개최된 시민평화법정에서 생존자 증언에 나섰던 응우옌티탄 씨는 베트남 꽝남성 퐁니·퐁넛마을 학살 당시 “8살에 한국군 학살로 가족을 다 잃고 전쟁고아가 됐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시민평화법정에서 최선을 다해서 진실을 말했고, 베트남에 돌아가서 한국 정부의 응답을 기다렸다”며 “지금 이 순간까지도 한국정부로부터 그 어떤 답변도 들은 바 없다”고 밝히고 “이번에는 103명의 베트남 피해자들이 직접 청와대에 전달하는 청원서를 가지고 왔다. 이번에는 한국정부가 이 베트남 청원인들의 이 절박한 요구에 대해서 꼭 응답해주고 이 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제주4.3평화상특별상을 수상하게 됐는데, 그 계기로 제주와 광주를 방문할 수 있었다”며 “제주에서 광주에서 만났던 이야기들이 저희 베트남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제주에도 광주에도 저희 베트남이 겪었던 똑같은 아픔이 있었다”고 말했다. “제주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이 이번 한국 방문의 가장 큰 기념”이라는 것.
그는 “이 청원서에 한국 정부가 세심히 관심을 기울여달라”며 “우리 베트남 피해자들을 위해서 이제는 뭔가 행동해야 될 것이라고 한국 정부에 요구한다”고 밝혔다.
또 한 명의 응우옌티탄 씨는 “저는 (제주4.3평화상 특별상)상을 수상했다라고 하는 기쁨보다는 제 명예가 회복되었다고 하는 영예가 훨씬 더 크게 다가왔다”며 “이 상을 수상한 이 영예를 우리 마을에서 희생됐던 135분의 영령들과 함께 나눌 것이다. 고향에 돌아가면 이 상을 그분들의 영전 앞에 바치고 향을 먼저 피우겠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마을의 위령비 뒷면으로 과거 한국군의 전쟁범죄를 기록한 비문이 있었다. 그런데 그 비문이 한국 대사관의 압력에 의해서 지금은 덮여있다”며 “정작 우리 피해자들은 동의한 적이 없다. 우리 주민들이 그 비문을 덮는데 동의하지 않는 것은 진실은 진실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관련 질문에 “그 비문이 연꽃무늬 대리석으로 덮힌 게 2000년”이라고 확인했다.
그는 “굉장히 많은 분들이 제주 4.3위령제에 와 주었더라. 그리고 한국의 총리가 직접 위령제에 찾아주는 것을 보면서 그래도 이분들은 저승에서나마도 이제는 좀 따뜻할까 그런 생각을 했다”며 “우리들의 이러한 절박한 요구에 한국 정부가 가장 빠르게 답변할수록 좋다고 생각한다”고 촉구했다.
“울음바다 속에서 이 청원서 한 장 한 장을 작성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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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나비 네트워크’ 6기 전국대표를 맡고 있는 이태희 학생이 제주4.3의 상징인 붉은 동백꽃 뱃지를 두 응우옌티탄 씨에게 직접 달아주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는 “청원 작업은 3월 1일부터 3월 15일까지 지난달 보름간 베트남의 중부지방 2개성, 꽝응아이성과 꽝남성에서 이루어졌다”며 “이 두 곳은 과거 청룡부대가 주둔했던 지역이고, 이 곳에 굉장히 많은 피해자 분들이 계시지만 시간적인 여러 가지 한계로 이번에는 16개 마을 밖에는 돌아다니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 서명이 끝나고 내가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굉장히 많은 베트남의 피해자 분들께서 청원하고 싶다고 하는 그런 연락을 계속 주고 있다”며 “아직 가지 못했던 빈딘성, 푸옌성, 그리고 카인호아성, 이렇게 한국군 주둔지를 중심으로 굉장히 많은 피해자 분들이 한국 정부에 한목소리로 요구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전해드린다”고 말했다.
구 상임이사는 “대부분의 베트남 피해자분들은 한국군에 의한 50년 전의 학살로 나는 가족을 잃었고, 그리고 집과 모든 재산을 잃었고 그리고 배움의 기회마저 잃었다고 말씀하셨다”며 “대부분의 피해자 분들이 울음바다 속에서 이 청원서 한 장 한 장을 작성하셨다”고 전했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대학생 프로젝트 동아리, 평화나비 네트워크’ 6기 전국대표를 맡고 있는 이태희 학생은 “지난 1월 나비기금과 함께하는 베트남 평화기행을 다녀왔다”며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또 얼마나 깊은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 남은 삶을 살아가는지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 할머님들의 모습과 많이 겹쳐보였다”며 “한국의 가해 역사를 기억하고 진상규명과 한국 정부의 공식 사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그리하여 다시는 이러한 전쟁이 비극이 발생되지 않도록 평화나비의 대학생들도 곁에서 함께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겠다”고 다짐했다.
“20년만에 한-베 베트남 전쟁 새롭게 대면하는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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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시민평화법정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임재성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지난해 시민평화법정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임재성 변호사는 “1999년으로부터 20년만에 베트남 민간인학살 피해자들은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라 스스로 권리를 행사하는 주체로서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며 “20년만에 한국과 베트남이 50년 전에 있었던 전쟁에 대해서 새롭게 대면하는 계기가 바로 오늘 청원서를 접수하는 계기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임 변호사는 “외국인 역시 청원법에 근거해서 국가기구에 청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아시고, ‘나도 청원에 참여하고 싶다. 그리고 나 혼자만의 청원이 아니라 보다 더 많은 사람이 이 청원에 함께했으면 좋겠다’ 말씀하셨다”며 “나와 김남주 변호사는 103명의 법률적 대리인으로 이후의 진행 상황들을 우리가 수신을 하고 또 베트남에 계신 103명들에게 어떠한 진행 상황들이 만들어지는지 보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한국의 중앙정보부가 1969년 당시 퐁리·퐁넛 마을에서 학살을 했던 1소대, 2소대, 3소대장, 그리고 중대장을 모두 소환해서 조사를 했다는 사실이 2000년에 <한겨레21>에 보도가 됐다”며 2017년 국가정보원에 행정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거부당해 법원에 제소해 1,2심에서 정보공개 판단을 받았지만 국정원은 여전히 공개하지 않고 있다면서 “1969년에 퐁리·퐁넛 학살을 조사한 기록들을 신속하게 공개할 것”을 촉구했다.
두 응우옌티탄 씨와 구수정 상임이사, 인성재 변호사 등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103인의 청원서를 접수하기 위해 청와대로 향했다.
( 추가, 5일 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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