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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플라스틱 바다'와 우리 삶은 연결돼 있다

김찬국 2019. 05. 15
조회수 465 추천수 1
 
찰스 무어의 '플라스틱 바다'를 읽고 우리의 미래를 생각한다
 
06017513_P_0.jpg» 지난해 9월 11일 강원도 하점면 창우 포구 앞바다에서 잡아 올린 새우 등 수산물에서 40여 년 전에 버린 과자봉지가 최근 버려진 플라스틱이나 비닐 봉지와 함께 섞여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한 권의 책을 읽어가면서 하나의 주제에 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얻게 된다면, 그 책을 읽는 과정이 상당히 흥미롭게 느껴질 것이다. 찰스 무어 선장(Captain Charles Moore)의 책 '플라스틱 바다: 지구의 바다를 점령한 인간의 창조물'1)이 그렇다. 한 권을 읽어나가면서 그가 태평양에 위치한 거대한 ‘쓰레기 해역’을 우연히 발견한 이후, 플라스틱 쓰레기가 어디서 와서 어떻게 태평양 한가운데 모이게 되었는지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p1-1.jpg» '플라스틱 바다'의 영문판(왼쪽)과 한글판(오른쪽) 표지.
 
태평양에 거대한 쓰레기 해역이 있다!
 
찰스 무어는 태평양의 하와이와 캘리포니아 사이에 ‘태평양 거대 쓰레기 해역(the Great Pacific Garbage Patch)’이 있다는 것을 1997년에 처음 발견한 환경운동가이자 선장이다. 일부 신문이나 어린이용 도서는 ‘플라스틱 대륙’이나 '플라스틱 섬'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이 넓은 해역은 새로운 대륙이나 거대한 섬이 아니라 플라스틱을 비롯한 각종 쓰레기가 모여 ‘묽은 플라스틱 수프’와 같은 형태를 띤다(관련 기사태평양 한가운데 거대한 ‘플라스틱 수프’ 있다).
 
이렇게 해양 쓰레기가 밀집된 곳은 북태평양의 하와이와 미국 캘리포니아 사이, 일본과 하와이 사이에 위치한 넓은 고기압대 환류(gyre) 해역이다. 태평양 바다에 이런 해역이 있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진 지 벌써 20년이 지났지만, 관심이 많지 않은 이들이라면 해양 쓰레기 문제에 관해 최근 본격적으로 듣게 된 계기는 아마 2018년 언론 등을 통해 많이 다루어진 미세 플라스틱 이슈를 통해서일 것이다.
 
북태평양에 해양 쓰레기가 모여 있다고 하였을 때, (물론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보이는 먼 곳의 일이었다. 하지만 최근 우리가 먹는 굴이나 생선 등의 해산물은 물론이고 소금(해염)에도 미세 플라스틱이 포함되었다고 알려졌을 때, 우리 사회의 관심 수준은 상당히 달라졌다(▶관련 기사홍합·굴 통해 매년 미세 플라스틱 1만1천개 먹는다).
 
이 책은 태평양에 플라스틱이 많아져서 생기게 될 환경과 우리 건강상의 위협뿐만 아니라, 이 플라스틱이 어디서 생겨나서 그곳까지 이동하게 되었고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하나씩 조명하여 보여준다.  
 
‘고체 석유’와 앨버트로스
 
이 책의 표지에서는 21세기판 '침묵의 봄'이라고 홍보한다. '침묵의 봄' 만큼 이 시대에 영향력을 끼치는 책이 될지는 아직 짐작하기 어렵지만, ‘플라스틱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 세대에게 플라스틱에 대해 성찰하고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주기에는 충분할 듯하다.
  
04724684_P_0.jpg» 내전으로 쓰레기 관리 체계가 무너지자 세르비아의 한 강이 '플라스틱 강'으로 바뀌었다. 이런 쓰레기는 결국 바다로 모인다. 에이피=연합
 
현재 인류가 2년 동안 생산하는 플라스틱의 양은 지구 상 모든 남녀의 몸무게를 합친 것에 맞먹는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생산되어 소비되는 플라스틱은 육지보다 바다에서 더 오래 지속된다는 점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이 편리한 물질이 바다에 도달한 이후에도 쉽게 분해되지 않은 채로 쌓여 해양 환경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플라스틱은 석유를 기반으로 생산하기 때문에 ‘고체 상태의 석유’라고 볼 수 있다. 2007년 우리나라 서해안에서 발생한 삼성중공업-허베이스피릿호 기름유출사고는 액체 상태의 석유가 바다와 바다를 근간으로 살아가는 우리네 사람들에 영향을 미친 것이라면, 현재 우리가 직면한 해양 플라스틱의 문제는 ‘고체 상태의 석유’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요구한다.  
 
우리는 플라스틱을 몸에 걸치고 헤엄치는 바다거북이나 뱃속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플라스틱을 품고 죽은 고래를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낀다. 게다가 우리가 먹는 해산물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 플라스틱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니 걱정은 더 늘어난다. 
 
최근 성곡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 작가 크리스 조던(Chris Jordan)의 사진과 영화 '알바트로스(Albatross)'가 다룬 것처럼 해양 플라스틱을 먹고 피해를 입는 대표적인 생물로 태평양 미드웨이 섬에 서식하는 레이산앨버트로스를 들 수 있다. 세계 레이산앨버트로스의 70%가 둥지를 트는 미드웨이 섬에서는 매년 약 10만 마리의 새끼가 죽는데, 이 중 40%인 약 4만 마리는 부모 새가 물어주는 플라스틱을 먹었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앨버트로스의 부리로 낚아 올리기에 좋은 크기의 반짝이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에 많이 떠 있기 때문이다. 앨버트로스 새끼는 생후 5개월이 지났을 때 뱃속에 소화되지 않은 것을 처음으로 토해내는데, 부모 새가 주는 ‘플라스틱 먹이’를 먹고 자란 앨버트로스 새끼는 첫 역류까지 살아남아 플라스틱을 함께 토해내야만 한다. 이러한 역류 기능 때문에 성장한 앨버트로스는 플라스틱의 피해를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새끼는 안타깝게도 상당수 죽게 된다. 
 
p3.jpg» 플라스틱 쓰레기로 뱃속이 가득찬 채로 죽은 레이산앨버트로스의 새끼.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해양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서 우리는?
 
그것이 앨버트로스 새끼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든 내가 먹는 해산물에 대한 우려 때문이든 태평양 상의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플라스틱 일회용품을 조금 적게 쓰고, 상식 있는 시민으로 플라스틱을 분리배출하면 충분할까?
 
이 책의 15장 ‘플라스틱 발자국 지우기’는 플라스틱의 재활용을 염두에 둔 마음 편안한 소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우리 사회가 플라스틱이 주는 편안함을 포기하고 석유에 기반한 플라스틱 산업을 바꾸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플라스틱이 모두 정해진 방식대로 분리 배출되지도 않지만, 분리수거가 잘 이루어져도 재활용이 가능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5만종이 넘는 플라스틱을 어떤 방식으로 구분하여 어떤 플라스틱으로 다시 만들어야 하는지도 남은 과제이다. 
 
오늘날 우리가 주로 듣게 되는 메시지는 “(플라스틱) 쓰레기 버리지 않기”와 “(플라스틱 분리 배출을 통한) 재활용하기”일 것이다. 이는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의 책임을 대부분 소비자 개인에 맡기는 것일 수 있다. 글로벌 경제의 부산물로 넘쳐나는 플라스틱 제품이 해양 플라스틱 문제의 핵심이라는 진단에 대해 우리가 공감한다면, ‘플라스틱 발자국’을 보다 본격적으로 지우기 위한 이 책의 제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GettyImages-897472034-2.jpg» 타이의 세계적 관광지 피피 섬 바다에 떠다니는 플라스틱 쓰레기. 게티이미지뱅크
 
바다에 가득 찬 미세 플라스틱에 대한 최근의 관심 이전에도 일회용 플라스틱은 오래 동안 우리 사회의 고민거리였다. 모두 재활용되는 것도 아니고 바다나 다시 우리 몸에 쌓이게 될 화학물질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이 책이 우리 사회에 주는 메시지는 선명하다: 지금처럼 충분히 소비하면서 플라스틱의 재활용을 조금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더이상 충분하지 않다. 현재 우리가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방식을 전면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 사회는 성층권 오존층을 고갈시키는 프레온 가스를 지구상에서 없애려는 시도에 어느 정도 성공하였다. 하지만 대기 상에 배출된 프레온 가스를 날아다니면서 없애려고 하지는 않았다. 마찬가지로 바다에 이미 배출된 플라스틱 폐기물을 모두 치우는 것은 불가능할 수 있다. 지금까지 바다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모아 재활용하려는 공상적 또는 혁신적인 장치가 여러 차례 제안되었으나 플라스틱 쓰레기가 엄청나게 넓은 바다에 흩어져있어 그러한 구상이 현실화되지 않았다. 
 
성층권 오존층 고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이상 프레온 가스를 배출하지 않고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것처럼(성층권 오존층은 2080년 즈음에나 1980년대 수준으로 회복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지금과 같이 매일 바다로 흘러들어가 쌓이는 플라스틱의 흐름을 이제는 멈출 필요가 있다.   
 
해양 플라스틱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끝없이 쓰레기를 만들 수밖에 없는 경제 체제와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무 생각 없는 소비가 사라지고, 꼭 필요하면서도 계속 쓸 수 있는 (고장이 나면 고쳐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신중하게 구매하는 가치가 존중되어야 한다. 현재 삶에 대한 성찰 없이 즉흥적이거나 과시적인 소비 방식이 유지되는 한 ‘플라스틱’ 바다를 벗어나기는 어렵다.
  
03176875_P_0.jpg» 버려진 스티로폼 어구 등 바다쓰레기는 이제 해안의 일상 풍경이 됐다. 연합뉴스
 
이 책은 ‘일회용 플라스틱의 사용 줄이기’나 ‘플라스틱 포장재를 적게 사용하는 물품 구매하기’와 같은 기본적인 실천의 확산을 여전히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우리 사회에서 생산하여 소비하게 될 제품들이 다음 특징을 갖추도록 요구하여 바꿀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 재활용 가능성: 이 제품은 어느 정도 재활용할 수 있는가?
 
- 교체 주기: 이 제품은 얼마나 오래 사용할 수 있는가?
 
- 보수 관리 시간: 이 제품은 보수 관리가 필요하지 않는가? 
 
- 원자재 추출 스트레스: 이 제품은 사용 후에도 100% 원자재가 되는가?  
 
- 무독성: 생물학적 관점에서 독성이 없는 부품을 사용하는가? 

 

그 외에도 지역 먹을거리와 같이 플라스틱 포장재가 적게 필요한 소비 방식으로 살아가거나, 바다에서 분해될 수 있는 물질을 개발하도록 요구하고, 플라스틱 쓰레기의 국제적 이동에 저항하는 방식도 시민으로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참여의 방식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에게: 태평양의 플라스틱 쓰레기와 대한민국에서의 삶 
 
이 책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에게 헌정되었다. “플라스틱 오염이라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세상을 만들어주길” 요청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할 책무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보다는 오늘을 살아가는 현 세대에게 있지 않을까?
 
모든 바다가 연결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북태평양의 거대 쓰레기 해역과 무척이나 먼 거리에 있다. 하와이와 미국 캘리포니아 사이나 일본과 하와이 사이의 환류 해역에 떠있는 플라스틱은 대한민국에서의 삶과 너무나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나라(한국)의 이름이 등장하는 곳이 적지 않다. 우선 세계적인 석유화학 산업 시설이 플라스틱의 원료를 생산해내고 있다. 인상적인 다른 사례로는 하와이의 카밀로 해변이라는 곳에서 눈에 띄는 세 종류의 쓰레기 중 하나로 “한국에서 정력제로 알려진 장어 어획을 위한 플라스틱 통발”이 소개되고 있다. 하와이의 카밀로 해변에서는 “참치잡이 선박과 주낙 어선이 사용하는 플라스틱 야광봉”과 “일본의 굴 양식장에서 나온 플라스틱 굴 분리기”도 눈에 띈다고 한다.  
 
p4-1.jpg» 우리나라에서 장어 어획을 위해 사용하는 플라스틱 통발. 이 책 '플라스틱 바다'에서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이름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결국 대한민국에서의 삶과 태평양의 플라스틱 쓰레기로 가득찬 해역의 연결고리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셈이다. 우리가 먹는 해산물이나 소금에 미세 플라스틱이 포함되어 있을까봐 걱정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20년 전부터 바다의 쓰레기가 어디에서 왔는지 (결국은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일 것이다)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관심을 가졌다면, 20년이 지난 지금 바다 플라스틱 문제의 해결에 보다 가까이 가 있지 않았을까? 
 
김찬국/ 한국교원대학교 교수, 환경과 공해연구회 운영위원

1) 이 책의 원제는 'Plastic Ocean: How a Sea Captain’s Chance Discovery Launched a Determined Quest to Save the Ocean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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