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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도 근거도 없는 기재부 ‘국가채무 40% 룰’

국가채무 OECD 평균 111.3%, 한국은 매우 안정적…전문가들 “재정 건전성 우려, 오히려 독 될수도”

 

홍민철 기자 plusjr0512@vop.co.kr
발행 2019-05-21 18:57:22
수정 2019-05-21 18:5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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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청와대 본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자료사진)
문재인 대통령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청와대 본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자료사진)ⓒ제공 : 뉴시스
 

‘국가채무비율 40%’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지난 16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가채무비율을 40% 선으로 유지하겠다”고 밝히자 회의를 주재한 문재인 대통령이 “OECD 국가채무비율 평균이 100% 이상인데 우리나라만 40%가 마지노선인 근거가 무엇인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촉발됐다.

“국고가 텅텅 비어 간다”(나경원)거나 “현실망각의 결정판”(황교안)이라는 식의 정치 공방과는 별개로, ‘국가채무비율 40% 유지’라는 기재부 재정운용 방향을 보는 전문가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근거도 없는 ‘40% 룰’에 갇혀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나라 곳간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계획에 따르면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향후 3년간 40% 초반을 넘어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는 올해 39.5%인 국가채무비율이 내년 40.3%, 2021년 41.1%, 2022년 41.8%로 소폭 상승한다고 전망했다. 홍남기 부총리는 재정확대를 주문하는 문 대통령에게 “건전성에도 유의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기재부의 조심스런 입장이 오히려 한국 경제에 독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세계적 불황으로 수입이 줄고 고용률이 낮아지는 상황에서 확장 재정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조영철 고려대 교수는 “건전성을 지나치게 우려해 소극적 재정운영으로 성장률을 낮추는 게 더 큰 문제”라며 “정부가 6.7조원 추경을 내놨는데, 이정도 규모로 2.6% 성장률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최근 재정 상태를 봐도 확장적 재정 투입에는 무리가 없다는게 중론이다. 나라살림연구소 이상민 연구위원은 “2017년 초과세수는 23조원, 지난해 초과세수도 25조원으로 최근 2년간 정부가 예상한 것보다 수십조원의 세금이 더 걷혔다”며 “최소한 현 시점에서 올해 추경은 물론이고 그 이상의 지출 여력도 충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기재부의 ‘40% 룰’은 글로벌스탠다드에 비해도 지나치게 안정적 수준이다. 2018년 기준,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은 40% 수준으로 프랑스(122.0%), 영국(116.8%), 이탈리아(153.0%), 일본(225.5%), 미국(107.1%)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OECD 평균 국가채무 비율은 111.3%다. 28개 회원국 중 GDP 규모가 한국과 유사한 국가 중 우리보다 채무 비율이 낮은 나라는 스위스(40%)와 멕시코(38%) 단 둘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6일 세종 어진동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9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6일 세종 어진동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9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제공 : 뉴시스

유럽연합(EU)은 국가채무비율 60%이내를 건전성 판단기준으로 본다. 유럽이 60% 기준을 세운 것은 18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 열강이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벌일 당시 제국주의국가들은 여러곳에서 자금을 조달했는데, 종종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는 국가들이 있었다. 결국 자금조달에 기준이 필요했는데, 국가채무비율이 60%를 넘어가면 파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경험이 쌓이면서 이 수치가 재정 건전성 기준이 됐다는 게 정설이다.

최배근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200년 전, 유럽에서도 국가채무비율 60%를 건전성의 기준으로 봤다”며 “재정관리시스템이 고도로 발달한 한국에서 40%가 건전성의 기준이 된다는 주장은 이론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전혀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홍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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