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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군기지 5곳 지하수 ‘기준치 15배’ 발암물질

[단독]주한 미군기지 5곳 지하수 ‘기준치 15배’ 발암물질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입력 : 2020.01.16 06:00

 

의정부 2곳·대구·칠곡·군산서 ‘과불화화합물’ 최대 1066ppt 검출
암 발병·생식기능 저하 유발에 환경오염…주민 건강 조사 등 필요

경기 의정부시 고산동에 있는 캠프 스탠리 주한 미군기지의 문이 15일 굳게 닫혀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경기 의정부시 고산동에 있는 캠프 스탠리 주한 미군기지의 문이 15일 굳게 닫혀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경북 칠곡군과 경기 의정부시 등에 있는 주한 미군기지 5곳의 지하수에서 기준치를 최대 15배 초과한 발암물질이 확인됐다. 미군기지 안팎의 지하수 오염 실태 및 인근 주민에 대한 영향 등을 정밀 조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미국 국방부의 ‘과불화옥탄산(PFOA)’과 ‘과불화옥탄술폰산(PFOS)’ 관련 보고서를 보면 대구·경북 2곳, 의정부 2곳, 군산 1곳의 미군기지에서 기준치를 넘어선 과불화화합물이 검출됐다. 

PFOA와 PFOS 등 과불화화합물은 방수 소재, 패스트푸드 포장지 등 종이코팅, 조리기구, 소화장비 등에 주로 사용되는 물질이다. 전립선암, 신장암 등 암과 생식기능 저하를 유발하는 유해화학물질이자 자연에서 거의 분해되지 않는 잔류성유기오염물질(POPS)로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키기도 한다. 

모린 설리번 미국 국방부 부차관보가 2018년 3월 작성한 이 보고서를 보면 칠곡군 캠프 캐럴의 PFOA와 PFOS 복합 농도는 76~1066ppt, 대구 캠프 워커는 91~789ppt로 나타났다. 의정부 캠프 레드클라우드는 171~466ppt, 의정부 캠프 스탠리는 80~1061ppt, 군산 공군기지는 55~85ppt 사이의 농도가 검출됐다. 이는 미국과 한국 정부의 기준치(70ppt)를 크게 뛰어넘는 수치다. 캠프 캐럴과 캠프 스탠리의 과불화화합물 농도는 기준치의 최대 15배, 캠프 워커는 최대 11배, 캠프 레드클라우드는 최대 6배가 넘는다. ppt는 물질의 농도를 나타내는 데 사용되는 단위로 1조분의 1을 의미한다.

최경호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과불화화합물은 세계적으로 사용이 금지되는 추세로 기준치도 강화되고 있다”며 “미국의 경우 미시간주처럼 9ppt로 더 엄격한 기준치를 적용하는 곳도 있고 미국 환경단체 환경워킹그룹(EWG)은 1ppt를 적절한 기준치로 권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미군기지 반환 협상 및 정화 과정에서는 주로 유류오염 문제가 다뤄졌으며 과불화화합물 오염 여부는 주목받지 못했다. 반환될 미군기지는 물론 기존에 반환된 미군기지에 대해서도 과불화화합물 오염 여부와 주민건강 영향조사 등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 교수는 “확인된 오염 농도로 볼 때 지역 주민, 미군을 포함한 군무원, 군부대 반환 이후 해당 지역을 사용하게 될 국민들에게 문제가 될 소지가 크다”며 “오염원을 찾아내 정화해야 지하수 오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군기지 내 소방장비 ‘오염원’ 추정 

[단독]주한 미군기지 5곳 지하수 ‘기준치 15배’ 발암물질

과불화화합물, 인체 축적 악영향…전세계 사용 금지 추세 
“작년 낙동강 오염 때처럼 환경당국 나서 유출지점 찾아야”

미국 국방부 보고서를 통해 국내 미군기지 5곳에서 오염 실태가 드러난 과불화화합물은 자연은 물론 인체 내에서 거의 분해되지 않고 잔류, 축적돼 악영향을 미치는 탓에 ‘영원한 화학물질(forever chemicals)’이라고 불린다. 현재까지 드러난 인체 악영향은 주로 생식기능 저하와 암 발생 등에 집중돼 있다. 

미 국방부의 과불화옥탄산(PFOA)과 과불화옥탄술폰산(PFOS) 관련 보고서는 “제한적인 인체 연구들이 이 물질들에 대해 태아와 어린이의 발달 지연, 콜레스테롤 증가, 전립선·신장·고환암 등과 관련이 있을 수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암연구소는 PFOA를 발암 추정물질을 의미하는 ‘그룹2B’로 분류하고 있다. 

과불화화합물의 인체 악영향이 큰 데다 국제적으로 기준치가 점점 강화되는 추세여서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인근 주민들에게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물론 건강 영향 파악을 위한 역학조사를 시급히 실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번에 국내 5곳 미군기지에서 확인된 과불화화합물 최고 농도는 미국이나 국내 기준치와 비교해도 15배가 넘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문제가 된 기지들을 아직 미군이 이용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오염원이 그대로 존재하면서 비가 올 때마다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있을 가능성도 높다. 

미군기지 내 과불화화합물 오염도가 높은 것은 주로 이 물질이 포함된 소방장비를 사용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인체 유해성과 환경 악영향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사용이 금지되는 추세지만 여전히 화재에 민감한 군, 특히 공군에서는 이 물질이 포함된 소방장비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일본에서도 도쿄 인근 주일미군의 요코타기지 주변에서 도쿄도가 우물 4곳의 과불화화합물 농도를 측정한 결과 최대 1340ppt가 검출됐다는 내용을 아사히신문이 보도했다. 이 기지 내에서 유출된 소화액이 원인일 가능성도 있어 도쿄도가 일본 방위성을 통해 미국 측에 기지 내 지하수 농도 등을 밝힐 것을 요청했으나 회신을 받지 못한 상태다. 오키나와 가데나기지와 주변에 대한 조사에서도 498∼1379ppt 사이의 높은 농도가 나타났다. 

국내에서는 2018년 낙동강 수계 정수장에서 과불화화합물이 검출되면서 시민들이 식수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한 바 있다. 당시 확인된 최고 수치는 454ppt가량이었다.

미국에서는 다국적기업들이 일으킨 과불화화합물 오염으로 인해 주정부, 주민 등이 소송을 제기하고, 대규모 역학조사가 실시되면서 이 물질의 건강 악영향이 드러났다. 3M은 2018년 오염 정화를 위해 미네소타주에 8억5000만달러(약 9838억원)를 배상하기로 한 바 있다. 잔류성유기오염물질에 관한 국제협약인 스톡홀름협약은 2011년 PFOS의 제조·사용을 금지했으며 지난해는 PFOA의 제조·사용도 금지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최경호 교수는 “과불화화합물에 대한 국제적인 우려가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국내 미군기지 반환 협상에서는 이슈가 되고 있지 않다”며 “기존의 토양 오염조사에서도 과불화화합물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낙동강에서 오염이 확인됐을 때 환경당국이 배출업체를 찾아내고, 엄격히 관리한 것처럼 미군기지 내 오염원을 찾아내는 것이 오염 해결의 첫 단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1160600115&code=940100#csidx9bfcd332843e06ea5df04c1eaf3210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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