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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간 멈춰선 대한민국 국회, 그래야만 했나

[안종주의 안전사회] 확진자 다녀간 공간 알려주는 앱 개발, '웃픈 한국' 만들어
2020.02.25 08:55:41
 

 

 

 

국회가 완전 마비됐다. 국회는 24일 오후 직원 등을 내보내고 본관과 의원회관, 도서관, 의정관과 어린이집을 모두 일시 폐쇄한 뒤 긴급 방역을 실시했다. 그리고 26일 오전 9시 다시 문을 열기로 했다. 이에 따라 39시간 동안 대한민국 입법부가 멈춰 섰다. 
 
국회는 지난 19일 미래통합당 곽상도 의원실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한국교총 하윤수 회장이 22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자 이런 조치를 취했다.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하 회장의 부인과 딸은 부산에서 21일 확진자로 판정받았으며 부인의 친구가 신천지 교인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회의 이런 결정에 대해 감염병 전문가들은 방역 측면에서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환자가 지나다니거나 머문 곳에 대해서만 소독하고 직접 관련 없는 곳에서는 정상적인 업무를 하는 것이 합리적인 대응이라는 것이다. 국회를 이틀씩 폐쇄하고 환자의 동선과 무관한 곳에 대해 무차별 소독하는 것은 코로나19에 대한 국민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공포만 극대화한다. 
 
확진자 다녀간 곳만 소독 충분, 다른 공간은 폐쇄 불필요 
 
이재갑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환자가 다녀가지 않은 지역이나 공간까지 방역을 할 필요가 전혀 없으며 설혹 다녀간 공간이라 할지라도 파악된 동선에 대해서만 소독을 한 뒤 24시간 안에 다시 문을 열어 사람이 다니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24일 밤 한 방송에 출연해 조언했다. 
 
국회 전면 폐쇄라는 극약처방을 국회가 내리면서 감염병 전문가의 조언 등은 듣지 않아 이런 일이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토론회가 열린 곳과 하 회장이 명찰을 바꾼 곳, 그가 지나다닌 복도 등에 대해서만 소독해도 충분하고 다른 공간은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그 이외의 장소에서 다른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환자가 될 위험성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회는 24일 하 회장이 다녀가지 않은 국회 각 건물 내부는 물론이고 건물 밖도 소독하는 등 방역 차원에서 별 의미 없는 과잉 조치를 취했다. 불필요한 과잉 소독과 국회 전면 폐쇄는 우리나라 국민에게는 물론이고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우리나라 코로나19의 심각성만 부각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 뻔하다.  
 
감염병이 마비시킨 국회, 사상 초유의 일  
 
국회사무처는 과거 1958년 국가보안법 개정안 통과 과정에서 경호권이 발동되며 국회를 폐쇄한 사례와 1980년 계엄령 선포에 의한 정치활동 금지로 국회를 폐쇄한 적은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폐쇄는 외부의 진·출입을 막는 제한적 폐쇄로 모든 직원과 관계자의 출입 자체를 막는 전면 폐쇄는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이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24일 예정됐던 국회 본회의와 대정부질문을 모두 취소했다. 이날 예정됐던 국토교통위원회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관련 일정도 연기 또는 취소됐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정보위원장과 교육위원장 등 상임위원장 선출과 노태악 대법관 후보자 임명 동의안, 국민권익위원 선출, 국회 코로나19 대책특별위원회 구성 등 안건을 처리할 예정이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도 본회의가 취소되지는 않았다.  
 
감염병 예방 내지는 방역과 관련해 '늑장대응보다는 과잉대응이 낫다.'는 말이 있다. 잘못된 대응, 불필요한 대응은 과잉대응이 아니다. 과잉대응이란 예를 들면 감염자나 환자가 2미터 내에 있는 접촉자에게 침방울로 바이러스를 퍼트릴 위험이 있다고 할 때 2미터가 아니라 그보다 조금 더 떨어진 3미터에 있던 사람에 대해서도 격리하는 등의 조치를 말한다. 
 
확진자 머문 공간만 소독하면 '걱정 끝', 도로·외벽 소독은 불필요 
 
코로나19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 증폭, 그리고 최근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지역사회 급 확산을 계기로 이 감염병에 대해 시민들이 잘못된 판단을 하게 만드는 비정상 대응이 자주 눈에 띈다. 예를 들어 확진자들이 다녀간 백화점, 음식점, 영화관 등의 건물이나 공간을 방역소독을 하고서도 이틀 또는 사나흘씩 폐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방역 측면에서 보면 사실 환자가 다녀간 공간에서 동선을 중심으로 잘 소독하고 몇 시간 뒤 문을 열어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소독의 완벽을 기하기 위해 24시간가량 출입을 제한한 뒤 그 공간을 다시 사용하게 하고 있다. 한데 방역소독을 실시한 뒤 건물 전체를 며칠씩 폐쇄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경제적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대구·경북의 경우도 많은 확진환자가 발생한 신천지교회나 청도대남병원의 내부뿐만 아니라 건물 주변과 주차장, 주변 인도와 차도 위, 화단과 식재된 나무, 10여 미터 높이 가로수 등에 대해서도 소독약을 마구 뿌려대거나 심지어는 거리 연막소독까지 한다. 건물 외벽에다가도 소독약을 뿌린다. 바이러스가 없는 곳에다 왜 소독약을 뿌려대는 헛수고를 하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바이러스가 연막 소독에 죽는지도 의문이다. 정말 불필요한 방역소독 행위이다. 
 
살아있는 바이러스가 길바닥에서 며칠씩 밤낮을 보내며 길거리를 지나가는 행인들을 호시탐탐 노릴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설혹 있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거리를 지나가면서 환경에서 감염된 사례는 없다. 따라서 비과학적인 방역소독은 인력과 예산을 낭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소독업체와 소독약품 업체만 좋아할 뿐이다. 
 
확진자 다녀간 공간 알려주는 앱 개발, '웃픈 한국' 만들어  
 
잘못된 대응은 공포만 유발한다. 방역에 실질적인 효과는 내지 못한다. 이런 공포 조장은 확진자가 다녀간 장소 인근 1백 미터 근처에 가기만 하면 휴대폰에서 경보음이 울리는 앱을 만드는 정말 웃지 못 할 일들까지 벌어지게 만든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일주일 전부터 지인들이 이런 앱을 퍼 나르며 휴대폰에 장착해 활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지금까지 여러 개를 받았다.  
 
한마디로 확진자가 다녀간 공간은 며칠 아니 일주일이고 한 달이 지난 뒤에도 위험하니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라는 '아무 쓸데없는' 앱이다. 이런 비과학적인 내용의 앱까지 만들고 또 이것이 그럴듯하다고 여긴 사람들이 마구 퍼트리는 현실이 정말 서글프다. 
 
국회 전면 폐쇄는 이와 유사한 발상에서 비롯한 것으로 공포 유발과 잘못된 대응의 최고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결정을 내리는데 관여한 사람이 누구누구인지, 국회의장에게 어떤 식으로 보고했는지 궁금하다. 확진환자 한 명이 증상이 있기 전 국회를 드나들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큰일 났다"는 생각에 차분한 판단을 하는 이성은 마비되고 패닉이 뇌를 지배한 것은 아닌지 '그것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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