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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대선 분석] 11월 3일 개표는 초유의 혼란 개막? 무슨 일이 벌어질까

차기 미국 대통령을 확정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 가능성... 미국의 역량 시험대에 올라

김원식 전문기자
발행 2020-10-15 19:26:34
수정 2020-10-15 19:2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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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일 미국 대선을 앞두고 29일(현지 시간)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의 조 바이든 대선후보가 첫 TV토론에 펼치고 있다.
11월 3일 미국 대선을 앞두고 29일(현지 시간)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의 조 바이든 대선후보가 첫 TV토론에 펼치고 있다.ⓒ뉴시스/AP  
 
“우편투표는 사기이고 재앙이며 부정선거(rigged election)일 뿐이다”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미국 대선후보 1차 TV토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우편투표는 자신을 반대하는 민주당만 유리하게 할 뿐이라고 재차 강조하면서 내놓은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올해 초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확산하자 미국의 우편투표 제도를 물고 늘어졌다. 왜 그랬을까? 미 선관위 집계에 따르면 지난 2016년 대선에서 유권자의 23.6%가 ‘우편투표(mail-in vote)’로 한 표를 행사했다. 이 중 부재자 투표가 17.7%였고, 미국 내 우편투표가 5.9%였다.

그런데 이번 대선은 아직도 확산하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상황이 돌변했다. 유권자들이 감염을 막기 위해 투표소에 직접 가서 투표하는 대신 우편투표를 선호하는 현상이 더욱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캘리포니아주 등 7개 주가 모든 유권자에게 자동으로 투표용지를 발송한다.

이 밖의 주들은 우편투표를 하려면 질병이나 장애 등의 이유를 제시해야 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29개 주에서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신청만 하면 우편투표를 가능하게 했다. 이론적으로는 전체 유권자의 77%에 해당하는 약 1억8천만 명이 원하면 우편투표를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문제는 대부분 우편투표를 선호하는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직접 가기를 싫어하는 젊은 유권자들로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지난달 NBC뉴스의 여론조사에서 우편투표 의사 비율이 트럼프 지지층은 11%였지만 바이든 지지층은 47%에 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핏발을 세우는 이유이다.

 

하지만 이번 미국 대선의 우편투표가 확정적으로 민주당이 기획하는 부정선거라는 증거는 아직 없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이미 많은 유권자가 우편투표를 통해 한 표를 행사했고, 예년과는 다른 엄청난 양의 우편투표를 처리해야 하는 까닭에 개표 과정에서 대혼란이 생길 가능성은 농후하다.

지난달 24일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투표한 우편투표 7장이 폐기된 채 발견되기도 했고, 30일에는 뉴욕시 선관위가 무려 10만 장의 투표용지에 유권자 이름 등을 잘못 인쇄해 발송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 밖에도 미 전역에서 벌써 우편투표의 부정이나 불법을 고소·고발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미 언론들은 이미 트럼프 캠프 측이 1월 3일 열리는 대선의 다음 날 부정선거 소송을 제기할 예정으로 수천 명의 변호사를 전국 각 투·개표소에 투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대선이 우편투표가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하고 사전 준비에 나선 셈이다.

12월 14일까지 선거인단 확정 못하면 대혼란 불가피
결국, 법원행?

그렇다면, 미 대선 개표가 시작되는 현지 시간 11월 3일 밤 이후부터 과연 어떤 일이 발생할까? 사실 개표가 시작되자마자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나 트럼프 대통령 중 어느 한쪽이 거의 일방적으로 앞서 나가고 모든 주의 개표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당선 확정자는 이튿날 알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런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미 주류 언론을 포함해 선거분석 기관들은 이번 대선 개표가 초기에는 주로 직접 투표가 개봉되는 관계로 트럼프 대통령이 많은 선거인단을 확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모든 우편투표가 개봉될 시점에는 바이든이 승리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발생한다. 미국 대선은 각주의 최대 득표자가 그 주의 모든 선거인단을 가져가는 간선제 형태의 ‘승자 독식’ 방식이다. 현재 전체 선거인단이 538명인 관계로 과반을 넘는 270명을 확보하는 후보가 있다면, 사실 미국 대선은 당선자가 결정되는 셈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편투표가 급증한 관계로 특히, 이른바 치열한 접전을 벌일 ‘경합주(swing-state)’에서 개표 결과가 쉽게 나올 가능성이 낮아진다. 네바다주 등 일부 주에서는 대선 당일인 11월 3일자 소인이 찍혀 있으면 일주일 뒤인 11월 10일에 도착하는 우편물까지 유효 투표로 인정하기로 했다.

현재 선거인단 과반(270명)은 모든 주가 정상적으로 투표해서 538명의 선거인단을 모두 정상적으로 선출했을 때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그런데 특히 경합주에서 우편투표에 따른 무효 소송이 잇따른다면, 최종적으로 선거인단을 확정하지 못하는 여러 주가 나올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효 소송을 제기하기 위해 수천 명의 변호사와 투표 감시원들을 투입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도 이 점을 노렸다는 분석이다. 그는 13일에도 트윗을 통해 우편투표는 미 전역에 자행되고 있는 부정선거라며 “변호사들이여, 시작하라!”고 노골적인 지시를 남겼다.

그런데 미국 대선은 133년 전에 제정된 ‘선거인계수법(Electoral College Act)’에 의해 각 주가 오는 12월 14일까지 워싱턴DC 연방의회로 확정된 선거인단 명단을 보내야 한다. 하지만 소송 등으로 선거인단을 확정하지 못한 주에서는 대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각 주의회에서 다수당을 자치하고 있는 당이 자신들의 정당에 유리한 선거인단을 연방의회로 보내는 사태도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1960년 미 대선에서 하와이주는 치열한 소송전 와중에 당시 공화당 소속 주지사와 민주당 소속 주의원들은 각기 다른 선거인단 선출 명부를 승인했다.

하지만 당시 공화당 소속 현직 부통령이었던 리처드 닉슨 대선후보는 “혼란의 선례를 만들기 싫다”며 존 F. 케네디 민주당 대선후보의 승리를 인정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우편투표는 사기”라고 외쳐온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대법원이 결정할 것”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끝까지 소송전을 불사할 태세다.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한 우체국 직원이 2020년 대선 우편투표 기표 용지가 담긴 박스를 옮기고 있다. (2020.10.1 자료 사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한 우체국 직원이 2020년 대선 우편투표 기표 용지가 담긴 박스를 옮기고 있다. (2020.10.1 자료 사진)ⓒ뉴시스/AP

실타래처럼 꼬인 美대선 경우의 수
전대미문의 불확실성 시대 올지도

이렇게 특히 경합주 등에서 선거인단을 확정하지 못하고 소송전이 치열하게 진행된다면, 미국 대선은 더욱 복잡하게 꼬인다. 미국 헌법은 선거인단의 ‘과반을 확보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만약 후보 중 누구도 선거인단의 ‘과반을 얻지 못하면’ 연방 하원이 대통령을 선출한다고 규정돼 있다.

만약 미국 대통령을 연방 하원이 선출하는 쪽으로 간다면, 오히려 민주당의 바이든 후보의 당선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될 가능성이 커진다. 전체 연방하원을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지만, 이때는 각주가 오직 한표씩 갖기 때문이다. 즉 주별로 연방하원 의석수가 더 많은 정당이 그 주의 한 표를 독차지하게 된다.

현재 50개 주 중에서 26개 주는 공화당이, 23개 주는 민주당이 연방하원 의석수가 더 많다. 나머지 한 주는 동석(同席)이다. 따라서 만일 이 상태로 대통령을 결정하는 투표가 진행된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할 가능성이 오히려 높은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또 과연 ‘과반’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규정도 없다. 현재는 선거인단 과반(270명)의 기준은 모든 주가 정상적으로 투표해 538명의 선거인단을 모두 정상적으로 선출했을 때의 기준이다. 만약 소송전으로 여러 주를 합해 수십 명의 선거인단이 선출되지 않았을 경우 이를 빼고 과반을 새로 정해야 할지, 아니면 기존 270명 기준을 그대로 적용해야 할지 등 규정이 없다.

전례가 없는 만큼 ‘과반’에 대한 규정이나 최종 선거인단 확정은 물론 대통령 결정 방식을 놓고 이 또한 치열한 소송전이 벌어질 수밖에 없고 최악의 경우 차기 대통령을 연방대법원이 결정하는 상황으로 갈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기를 쓰고 공석 중인 연방대법원 판사에 자기편을 지명한 이유이다.

일부 여론조사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의 바이든 대선후보에게 약 17%포인트 이상 밀리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여론조사만 놓고 보면 미국 대선은 거의 끝난 셈이다. 즉 개표가 시작되자마자 바이든 후보가 월등히 앞서간다면 트럼프 대통령도 심술을 부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2016년 대선에서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선후보는 당선을 거머쥐었다. 이번에 특히 경합주에서 일부 개표마저 소송 등으로 지연된다면, 새 미국 대통령이 취임해야 하는 내년 1월 20일까지도 당선자를 확정하지 못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웃지 못할 시나리오가 현실화한다면, 우리는 최소한 내년 봄까지 차기 미국 대통령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는 기가 막힌 불확실성 시대에 살아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라는 전대미문의 대통령을 만난 미국민들의 역량이 전 세계 시민들 앞에서 시험대에 올라와 있다.

김원식 전문기자

국제전문 기자입니다. 외교, 안보,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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