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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악했고, 정부는 약했다”

[인터뷰] 이보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

김백겸 기자 kbg@vop.co.kr
발행 2020-10-25 16:35:35
수정 2020-10-25 17: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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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인근에서 열린 '의료4대악 정책추진 반대 전국의사 총파업 궐기대회'에 참가한 대한전공의협의회 소속 전공의들이 의대 정원 확충, 원격의료, 공공의대 설립 등의 반대를 촉구하고 있다. 2020.08.07
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인근에서 열린 '의료4대악 정책추진 반대 전국의사 총파업 궐기대회'에 참가한 대한전공의협의회 소속 전공의들이 의대 정원 확충, 원격의료, 공공의대 설립 등의 반대를 촉구하고 있다. 2020.08.07ⓒ김철수 기자  
 
"의사들의 속마음이 다 들켜버린 거죠. 그동안 도도하게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체면도 집어던지고 싸우다 보니 천박하고 속물적인 속성이 드러난 거죠"

이보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공동대표는 지난 8월 중순부터 보름간 진행된 '의사 파업'에 대해 "의사들의 속마음이 드러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의사정원 확대' 등 정부의 의료정책을 반대하며 시작된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의사파업'을 주도한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정부, 여당의 합의로 일단락됐다.

의사파업 이후 의사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분노와 불신으로 바뀌었다. 이는 의사 파업에 동조했던 의대학생들의 의사면허 국가고시 재시를 반대하는 여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아직 의협과 정부가 합의한 '의정협의체'에서 진행될 '의사정원 확대' 등 의료정책에 대한 논의도 과제로 남아있다.

 
이보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공동대표가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보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공동대표가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철수

"의사 집단은 기득권을 위해 저항했고, 정부는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공동대표는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의사파업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미흡한 의료 개혁 마저도 무산시킨,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의사들의 집단 행동이었다"고 평가했다.

앞서 인의협은 의협이 주도한 의사 파업에 대해 "명분 없는 이익집단행동"이라며 반대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의사정원 확대안'에 대해서도 '의사 증원'이라는 방향은 합의하나 공공의료 강화가 빠진 미흡한 정책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 공동대표는 "문재인 정부의 공공의대 신설안이나 의대정원 확대안이 엄청나게 진보적인 정책도 아니지만, 이런 미흡한 정책도 기존 의사 집단이 받아 내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의사 집단이 결국 사회 기득권층이란 것을 드러내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뺏기지 않으려고 저항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의사파업에 대형병원 응급실마저 정지된 상황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정부를 향해서도 "정부가 꼼짝 못 하고 타협할 수밖에 없는 허약한 모습을 보였다"고 꼬집었다.

전문가 집단의 집단행동으로 국가 주요 시스템인 의료 체계 전체가 흔들린 현상은 의료 인력의 양성 및 운영을 시장에 맡긴 비정상적인 의료체계의 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공동대표는 "의료 시스템을 정부가 주도할 수 있을 만큼 공공병원 등 공공의료 인력들이 많았다면 좀 더 정부가 밀고 나갈 수 있을 텐데 민간집단의 파업 하나로 의료 시스템이 스톱된 상황이었다"며 공공의료 강화를 강조했다.

무엇보다 의사들의 자본가적인 인식이 드러난 사건이라고 봤다. 그는 "의사들 자체가 공공의료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면서 "국립대병원, 공공의료원 등 공공병원에서 일하는 의사 중에서도 일부가 파업에 참가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전국의사 2차 총파업( 집단휴진)에 돌입한 26일 오전 서울 2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앞에서 한 전임의가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수도권 소재 수련병원에 근무하는 전공의·전임의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2020.08.26
전국의사 2차 총파업( 집단휴진)에 돌입한 26일 오전 서울 2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앞에서 한 전임의가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수도권 소재 수련병원에 근무하는 전공의·전임의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2020.08.26ⓒ김철수 기자

특히 이번 의사파업에서는 파업에 참가한 의사들을 향한 국민들의 분노가 적극적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과거 의약분업을 반대한 의사파업 등 과거 의사들의 집단행동에서 특별한 국민 여론이 나타나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특이한 일이다.

이 공동대표는 엘리트주의를 가진 의사들이 국민들은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을 한 것을 원인으로 봤다.

실제로 그동안 의료계의 고질적인 문제인 가혹한 노동 환경에 시달려 온 전공의들이 오히려 의사파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의사정원 확대를 반대했다.

다른 한쪽에서는 문류분류 인원을 늘려 주지 않아 택배 노동자들이 연이어 과로사하는 일이 일어난 것을 생각해보면, 일반적인 임금 노동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이었다.

이 공동대표는 "필수진료 영역에서도 진료거부한 전공의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알린다면서 전교 1등의 잘난 체 같은 것들만 있고 설득력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왜 투쟁하는지 설명한다면서 '우리가 똑똑하고 우리가 이만큼 노력했으니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데 못하게 됐다'는 걸 납득시키려 하니 이상한 비유를 들고 그러다 보니 반응이 싸늘해 진거 같다"고 분석했다.

자극적인 표현과 가짜 뉴스를 이용해 자신들의 입장을 주장한 것도 국민들에게 반감을 샀다.

이 공동대표는 "공공의대를 만들어서 시민단체 자제를 입학시키려 한다든지, 의사들을 북한으로 보내려고 한다든지 설득력 없는 주장을 하면서도 '왜 국민들은 이해하지 못하냐'고 오히려 분노하는 모습들이 의식있는 시민들에게는 이해가 안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의사파업이 주장한 의사정원 확대 반대, 공공의대 반대 등 논점에 보수 세력을 끌어들여 정치 논쟁화 한 것도 문제였다. 실제로 공공의대와 관련한 대부분의 가짜뉴스들이 진보세력와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것들이었다.

국민 여론이 국시 재시를 거부하고 있는 것도 의대생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공동대표는 "의협과 정부, 여당이 합의를 하면서 상황이 끝났고 한차례 국시가 연장되기도 했는데 계속 거부하는 명분이 뭔지 알 수 없는 모습을 보였다"면서 "안 그래도 채용 같은 공정성에 민감한 국민 여론이 의사파업으로 의사를 실체를 알게 되면서 반응이 싸늘해 진 것"이라고 봤다.

이보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공동대표가 진료를 보고 있다.
이보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공동대표가 진료를 보고 있다.ⓒ김철수

"결국 공공의료 강화...의사들이 공적인 시스템에서 일하게 해야"

의사파업으로 드러난 의사들의 인식은 오랫동안 공공의료를 무시해 온 비정상적인 의료 구조에 기인한다. 공공의료를 책임질 공공병원이 부족하니 민간병원 위주로 의료체계가 운영되고, 의사들은 자본을 쫓아 민간병원과 개원가로 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공동대표는 비정상적인 의료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결국 공공의료가 강화되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공공병원이 늘어나서 의사들이 영리적인 목적이 아닌 의사 본연의 의무를 다하면서도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병원이 많아져야 한다"면서 "지금은 의사들이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해야 되는 구조인데 공공에서 일하는 의사들이 존경받을 수 있는 구조가 돼야 (의료 구조가) 바뀔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한국에서는 코로나19 상황에 의사가 늘어나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에도 의사들이 반대하는데, 독일에서는 의사들이 나서서 의사 증원을 환영하기도 한다"면서 "공적인 시스템에서 의사들이 일하면 상식적인 게 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공동대표는 의협과 정부만으로 구성되는 '의정협의체'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국민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의료정책을 이익을 앞세운 전문가집단과의 논의로만 결정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그는 "의정협의체에서 국민 건강을 좌지우지할 의료정책을 결정해선 안 된다"면서 "이익집단과 정부와의 거래가 의료체계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의사정원 확대를 반대한 의협과 미흡한 의사정원 확대안을 냈던 정부가 논의할 경우, 의사정원 확대 정책이 정부안보다 더 후퇴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를 막기 위해 의료서비스의 또다른 주체인 국민이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고 이 공동대표는 주장했다. 그는 "보건 의료, 국민 건강의 문제는 의사와 국민이 주체"라며 "정부가 국민을 완전히 대변한다고는 할 수 없으니 정부와 의사에게만 맡겨선 안 되고 시민사회 분야에서 견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시민사회단체가 포함된 협의체를 구성해서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친 뒤 합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요 대학병원장들이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를 찾아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예방하고 있다. 사진은 사진은 왼쪽부터 김영훈 고려대의료원장, 윤동섭 연세대의료원장, 김연수 서울대병원장, 김영모 인하대의료원장. 2020.10.13
주요 대학병원장들이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를 찾아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예방하고 있다. 사진은 사진은 왼쪽부터 김영훈 고려대의료원장, 윤동섭 연세대의료원장, 김연수 서울대병원장, 김영모 인하대의료원장. 2020.10.13ⓒ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이 공동대표는 반대 여론이 높은 국시 재시와 관련해서는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재시가 진행되지 않을 경우 의료체계에 가해지는 충격을 우려했다.

그는 "내년 의대 졸업생 중에 일정 정도는 군의관, 공중보건의로 충원돼야 하는데 한 해에 수가 부족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면서 "또 다음 해에는 병원에 들어오는 인턴 규모가 2배가 되니까 인턴과 레지던트에 의존하는 수많은 병원은 힘들어진다"고 우려했다.

이어 "의대생들이 현재 의료체계에서 전문성을 가진 강자라는 걸 알고 이 같은 집단행동을 벌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시는 실기기험으로 응시 대상자 중 14%만이 응시했다. 내년 1월에 치러지는 필기 시험에는 응시 대상자 대부분이 응시한 상태다. 이에 올해가 아닌 내년 상반기에 실기 시험을 한번 더 진행해 인턴 부족·몰림 현상을 완화할 방안도 거론된다.

이 공동대표는 이번 국시에 응시한 의대생들의 차별을 받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의대생 사이에서 국시 거부에 반대 입장을 보이기가 쉽지 않은 분위기라는 말들이 들려온 만큼 국시에 정상적으로 응시해 먼저 병원에 가게 될 인턴들이 의사 사회에서 차별을 당할 수도 있다는 우려다.

그는 "올해 시험을 보고 정상적으로 올해 의사면허증을 받은 학생은 3월에 인턴으로 출근하게 될 텐데 현재로서는 극소수가 될 것 같다"면서 "이 인턴들은 병원에서 보기에 '파업에 열심히 참여 안 했겠지'라는 시선으로 보여서 차별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백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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