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비판글 썼다고 격오지 발령내고, ‘불리한 처분’은 아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사법농단, 법정의 기록](37) 비판글 썼다고 격오지 발령내고, ‘불리한 처분’은 아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입력 : 2021.05.12 06:00 수정 : 2021.05.12 08:20

 

인사실 사람들

[“존경하는 재판장님” 사법농단, 법정의 기록](37) 비판글 썼다고 격오지 발령내고, ‘불리한 처분’은 아니다?
 

대법원장의 인사 재량일까, 법관 독립을 침해하는 불리한 처분일까. ‘법관 인사 불이익’ 혐의를 둘러싸고 사법농단 재판에서 오가는 공방이다.

헌법 제106조 1항은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하며, 징계처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직·감봉 기타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독립된 재판을 할 수 있도록 법관의 신분을 보장하는 조항이다. 동시에 법원조직법은 대법원장이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고(제9조 1항), 판사에 대한 보직을 행한다(제44조 1항)고 규정한다. 대법원장 인사권에 특별한 견제장치는 없다. 1980년대까지도 정권에 불리한 판결을 하거나, 대법원장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판사가 하루아침에 전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인사권은 법관이 윗선 눈치를 보는 관료화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검찰은 ‘양승태 대법원’의 법관 인사 불이익이 헌법이 금지한 ‘불리한 처분’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음주운전이나 성추문과 같은 부적절한 행위가 아니라, 대법원 정책 비판글을 법원 내부통신망에 올리는 행위까지 인사 불이익 대상으로 삼은 것은 위법하다고 했다.

양 전 대법원장 등 피고인들은 대법원장에게는 인사 재량이 있으며, ‘불리한 처분’에 법관 인사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정당한 사유로 법관에게 특정한 인사조치를 한 것일 뿐, 그것은 불이익도 아니고 재량 범위 내의 행위라 문제없다고 한다. 증인으로 나온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인사실) 근무 판사 8명은 대체로 피고인들 주장과 유사한 증언을 했다.

■물의 야기 법관 문건, 심의관 마음대로?

대법원 정책 비판 글 올린 판사들
‘물의 야기 법관’ 문건에 포함 보고
인사실 판사 “애매하면 일단 넣어”

공식적인 징계절차가 있는데도
불투명한 인사절차로 불이익 검토
검찰 “문건에 포함 자체가 위법”

인사실에서 작성한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보고서’는 법관 인사 불이익 혐의의 핵심 증거다. 이 문건의 성격이 재판에서 일단 쟁점이다. 검찰은 대법원 정책을 비판한 판사들까지 이 문건에 포함해 인사 불이익을 검토한 것 자체가 위법하다는 입장이다. 문건에는 물의 야기 사유로 특정 판결을 기재한 대목도 있다. 인사실 심의관으로 근무했던 판사들은 이 문건이 양승태 대법원 때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고 오래전부터 관행적으로 만들었다고 증언했다. 윤리감사관실의 징계 검토 법관 명단과, 정치권·언론 등에서 논란이 된 법관을 찾아 문건에 넣는데 선정 기준은 ‘법관으로서 부적절한 행위,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이다. 윗선에서 특정 법관과 사유를 추가하거나 빼라고 지시한 적은 없었고, 심의관이 자체적으로 작성했다고 했다. 다만 문건은 윗선에 보고됐다.

많은 판사들이 물의 야기 법관으로 선정된 경위에 관해 인사실 판사들은 “애매하면 일단 넣었다”고 했다. 어차피 인사조치 결정은 인사권자 몫이기 때문에, 심의관 입장에서는 후보군을 빠뜨리지 않겠다는 차원에서 광범위하게 포함했다고 했다. 호성호 판사의 말이다. “검토가 필요한 사람들을 ‘총망라’해서 인사권을 행사하는 분들이 그 내용을 보고 판단하는 기초자료를 제공해 드린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작성했습니다.”

부적절한 행위를 한 법관에게 책임을 묻는 방법은 공식적인 징계절차가 있는데 불투명한 인사절차를 통한 불이익이 왜 필요할까. 호 판사는 “‘인사적 관점’에서 검토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며 “사법행정에 부담이 되는 행위가 문제가 된다면 어느 정도 행위가 문제가 되는 것인지, 법관의 표현의 자유로 정당화될 수 있을지 판단하기 위해 케이스가 쌓일 필요도 있었다”고 했다.

대법관 제청 관련 글을 썼다가 물의 야기 법관으로 지목된 송승용 판사는 울산·포항 배치 검토를 거쳐 통영지원으로 최종 발령났다. 통영지원은 격오지로 불린다. 당시 심의관이었던 이흥주 판사는 “(울산 배치는 불이익이) 굳이 드러나지 않게 하는 초안이었다”며 “그것을 보고 인사총괄부장님께서 정책 결정 내용(불이익)이 전혀 반영이 안 된 것이나 마찬가지라서 다른 데로 보내는 게 낫겠다고 하셔서 포항으로 배치했다”고 말했다. ‘이후 통영으로 변경하라는 지시를 받아서 배치했느냐’는 검사 질문에 이 판사는 “그렇다. 총괄부장님이 말씀하셨다”고 했다. 이 판사는 2015년 정기인사 후기 문건에 송 판사 인사와 관련해 이렇게 적었다. “통영 배치는 인사실에서는 반대했습니다만, 인사권자의 뜻이 강하여 이를 막지는 못했습니다. 본인은 물론 주변에서도 각종 글 게시에 대한 문책성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이 판사는 법정에서 “좀 교만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제가 총괄부장님과 위의 결재라인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총괄부장님이 다녀오신 다음에 하신 말씀에 비춰서 ‘통영으로 정해졌구나’라고 생각했고, (…)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취지로 말씀드린 것 같습니다.”(이 판사) 인사총괄부장이었던 남성민 판사는 대부분의 질문에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지방법원 부장판사 이하 인사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상원 변호사는 “지방법원 부장판사 이하 법관 인사는 대법원장이 사실상 관여하지 않는다”며 “일반적으로 (법원행정처) 처장도 아닌 차장 선에서 마무리하는 게 통상적”이라고 했다. 인사실 판사들은 공통적으로 “인사실은 안을 올릴 뿐 정책 결정은 인사권자가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인사 관련 실무 지침이나 기준의 변경도 윗선에 보고한 뒤 승인을 받아 진행한다고 남 판사는 말했다.

2018년 6월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경기도 성남시 자택 인근의 놀이터에서 사법농단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당시 양 전 대법원장은 "특정 성향 판사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준 적이 없다"며 “어떤 사법행정 처분에 있어서도, 법관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은 단호히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8년 6월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경기도 성남시 자택 인근의 놀이터에서 사법농단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당시 양 전 대법원장은 "특정 성향 판사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준 적이 없다"며 “어떤 사법행정 처분에 있어서도, 법관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은 단호히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헌법상 불리한 처분에 인사 불이익 해당 안 돼”

피고인들 “인사 재량 범위” 주장
대법원장 재량도 무한할 수 없어
법관 독립 저해한다면 견제 필요

피고인들의 입장은 ‘인사 재량’으로 모아진다. 피고인들은 물의 야기 법관 선정과 인사조치가 잘못된 불이익도 아닐뿐더러, 법관 독립을 침해하는 ‘불리한 처분’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의 변호인은 “공소사실은 법관뿐 아니라 조직 인사의 기본원리에도 반한다”며 “구성원 중 문제가 있거나 문제의 소지가 있으면 인사조치를 해야 하고, 인사권자의 재량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인사실 판사들의 답변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법관의 어떤 행위를 물의 야기로 판단할 것인지도 인사 재량이고, 대법원장이 정하면 그게 바로 인사 기준이라고 했다. 특히 매년 전체 법관의 3분의 1이 다른 법원으로 근무지를 이동하는 전보인사가 이뤄지고 대다수의 법관이 희망한 법원에 배치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희망한 근무지로 가지 못했다고 불리한 처분이라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다고 했다.

남성민 판사는 “법관이 전보를 희망하고 있다면 특정 법원으로 전보되는 게 불이익은 아니다”라며 “어떤 법원으로 보낼지는 인사 재량의 범위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재호 판사도 “법관의 직은 직위나 보직, 지역과 상관없이 모두 다 똑같은 것”이라며 “전보인사에서 본인의 희망과 달리 임지가 주어졌다고 해서 헌법에서 말하는 불리한 처분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검찰은 양승태 대법원의 법관 인사 불이익은 “특정 법관의 희망지 검토를 원천적으로 배제한 것”이라며 전보인사에서 희망지에 배치되지 않아 인사 불만을 갖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반박했다.

인사실 판사들은 각종 자료와 판례도 언급했다. 김연학 판사는 자신이 검토해본 결과 헌법에서 말하는 ‘불리한 처분’은 인사가 아니라 징계를 뜻한다고 주장했다. 1960년 개정 헌법에선 법관의 징계 종류로 정직·감봉만을 명시하고 있었는데, 법관징계법은 정직·감봉 외에 견책도 규정하고 있어 두 법의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해 1963년 개정 헌법에 ‘불리한 처분’이라는 문구를 넣었다는 것이다. 또 대법원장은 법관 독립과 책임을 모두 달성해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다고 했다. “불이익은 법관 인사뿐 아니라 보수 삭감과 같은 것도 있는데, 법관이 불이익하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 모두 불리한 처분에 해당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법령 해석, 입법자의 의사, 법 개정 경과 등을 볼 때 ‘불리한 처분’에 법관 인사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하다고 생각합니다.”(김 판사) 이흥주 판사는 ‘명확한 법규 위반이 없으면 인사 재량의 범위에 해당한다’는 검사 인사 관련 대법원 판례를 봤다면서, 법관 인사에 대해서는 선례가 없지만 같은 취지로 대법원이 판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대법원장의 인사 재량은 무한한 것일까. 재량도 한계를 넘으면 위법이 된다. 1993년 한 판사가 대법원장의 전보인사가 부당하다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헌법재판소의 몇몇 재판관이 대법원장의 인사 재량을 언급했다. 한병채·김양균 재판관은 한국 사법 역사에서 법관 인사가 징계 수단으로 악용된 사례들이 있고, 오히려 건국 이후 법원조직법에는 대법관회의 의결을 거치거나 고등법원장 의견을 듣도록 하는 등 대법원장 인사권의 견제장치가 있었다고 했다. 두 재판관은 “대법원장이 판사 보직에 관해 아무런 제약 없이 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은 현행 법 제도(1981년 개정 법원조직법) 아래서뿐”이라며 “사법권 독립은 법관의 인적 독립의 보장 없이 이뤄질 수 없다”고 했다. 변정수 재판관은 “전보발령이 유리한 인사냐, 불리한 인사냐의 여부는 전보발령된 법관의 의사에 따라 정해져야 한다”며 “아무리 인사권자라 하더라도 객관적인 합리적 이유 없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함부로 근무지를 이동시켜서는 안 된다”고 했다.

독일은 법관의 의사에 반한 전보를 금지한다. 인사권자가 마음대로 법관의 근무지를 바꾸는 것은 법관 독립을 저해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5120600005&code=940301#csidxc2a62901de1ff469e96af64f60c41f3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