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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하철 재정난 핑계로 ‘오세훈표 인력감축’ 예고...노조 “구의역 참사 잊었나”

기재부 “지자체가 책임져라” 책임 넘기기...노조 “정부가 공공서비스 책임져야”

최지현 기자 
발행2021-06-14 18:32:26 수정2021-06-14 18:32:26
구의역 참사 5주기를 하루 앞둔 5월 27일 오후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 광진구 구의역을 찾아 김 군을 추모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가 재정 위기를 이유로 대규모 인력감축 등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도시철도 노동자들이 ‘책임 떠넘기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반복되는 도시철도의 재정 위기 문제는 근본적으로 정부가 책임져야 할 문제라며 지원 법안 처리를 촉구했다.</figcaption>

현재 국회 국토위원회에는 정부가 도시철도 무임승차의 손실액을 부담해야 한다는 내용의 도시철도법 개정안이 상정됐지만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계류된 상태다.

전국철도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협의회)의 전국 6대 도시철도운영기관 노동조합 위원장들과 민주노총, 정의당은 14일 국회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교통공사가 지난 8일 ‘2021년 임금 및 단체협약’을 위한 노사 간 교섭에서 제출한 구조조정 계획안을 비판했다.

노조가 공개한 이 계획안에는 임금 동결과 성과 중심의 임금 체계 개편, 그리고 비숙박형 근무제도 도입, 업종간 업무 통폐합, 희망퇴직, 비핵심 업무의 위탁과 외주 등을 통한 1천971명(작년 재직인원 1만6천명 기준 약 13% 수준)의 인력감축 계획이 담겨 있다. 노조는 이를 전면 거부하고 있다.

협의회는 “이 계획안은 애초 5월 중에 언급된 1천여 명의 감축 계획보다 대폭 상승된 것으로, 오세훈 서울시장의 압력이 작용한 것은 아니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며 “실제로 오 시장은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에 따라 외주화를 포함한 2천명 수준의 인력감축을 진행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협의회는 “그 상태로 있다가 결국 터진 것이 ‘구의역 참사’였다”며 “이후 김군의 죽음으로 외주화됐던 업무는 직영이 됐지만 줄어든 일자리 수가 늘어나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얼마 전 김군의 5주기 추모제에서도 인력 충원을 요구하는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도 높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구의역 추모가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다시 일자리 수를 줄이고 외주·위탁을 운운할 수 있느냐”며 “오 시장의 귀환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대훈 서울교통공사노조 위원장(협의회 상임의장)은 “얼마 전 구의역 참사 현장에 오세훈 시장이 찾아 머리를 숙이고 헌화하면서 추모했다. 과연 그 자리에서 무슨 결의를 하고 무슨 추모를 했는지 알 수가 없다”며 “오 시장은 코로나19로 재정난에 빠진 서울지하철에 10년 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지시했다. 서울지하철을 다시 ‘지옥철’, ‘사고철’로 바꾸려고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안전과 무관한 인력감축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노조는 다르게 봤다. 인력감축 대상에는 영업과 승무, 기술뿐만 아니라 차량기동반, 기지기계관리, 구내운전, 특수차 운전, 보안관 등이 포함됐다. 궤도시설 보수나 역사 누수 관리 인원은 외주화한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민중의소리와 만나 “대부분 안전업무”라며 “역 관리자나 보안관만 줄여도 문제가 생기면 당장 대응하기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김대훈 서울교통공사노조 위원장이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열린 도시철도 재정 위기, 구조조정 말고 정부가 투자하라! 노동자에게 책임전가 말라! 
< span="" style="box-sizing: border-box; text-size-adjust: none;">ⓒ공동취재사진 / 정의철 기자<>

 

협의회는 이런 도시철도의 재정 위기가 한두 해에 지적된 문제가 아닌 만큼 정부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나름의 근거도 있다.

우선 도시철도 재정 위기를 압박하는 가장 큰 요소가 노인, 장애인, 국가유공자에 대한 교통복지 차원의 무임 제도라는 점이다. 이는 전국의 도시철도에 공통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공공 서비스’인 만큼 정부가 책임을 지고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와 방역에 따른 승객 급감도 재정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승객이 줄어든 만큼 수입도 급감했지만 정부의 재정 지원은 전무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재난지원금조차 없었다는 게 협의회의 주장이다.

국회에서도 여야 구분 없이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정부 지원의 근거 법안을 마련하려고 했으나 재정당국의 반대로 여전히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다.

해당 법안은 국민의힘 이헌승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민홍철·조오섭·박홍근 의원, 정의당 이은주 의원 등 5인이 각각 대표발의한 도시철도법 일부개정법률안의 내용을 반영한 것이다. 이는 지난해 11월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한 바 있다. 하지만 곧 이어진 국토교통위 전체회의에서 기획재정부의 반대에 부닥친 이후 지금까지 처리되지 못한 채 다시 계류하고 있다.

해당 법안은 도시철도운영자가 노인 등을 위한 운임 감면 등 공익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소요되는 비용을 국가 등 원인제공자가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이에 대해 안일환 기획재정부 제2차관은 지난해 11월 19일 국토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영업 손실과 코로나19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도시철도를 지원하기 위한 법안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면서도 우려되는 지점이 있다며 법안 처리를 반대했다.

안 차관은 “노인복지법 등에서는 어르신 무임승차 등을 제공할 수 있는 주체로 국가 또는 지자체를 규정하고 있다”며 “정부가 국가시설인 일반철도의 무임승차 비용을 부담하고 있듯이 지자체는 지자체별로 (도시철도의) 해당 시설물과 관련된 무임승차 비용 등 운영 경비를 부담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로 인해 재정 상황이 결코 녹록지 않은 상황이라며 “재정의 적자를 키워서 대도시의 도시철도를 지원하는 방법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방안을 먼저 고민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안 차관은 “고령화 심화, 수명 연장, 과거에 비해 길어진 현직 연령, 늘어나는 도시철도 운영 적자 문제 등을 고려할 때 지금의 무임승차 연령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지, 20년 넘게 유지해온 100% 감면이 적정한지, 소득과 형편을 따지지 않고 모든 분들에게 동일한 혜택을 드리는 것이 맞는지 여기에 대한 논의를 먼저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러한 선행 논의를 거쳐서 관련 입법에 대한 검토가 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앞서 손명수 국토교통부 제2차관도 11월 17일 열린 열렸던 국토교통위원회 교통법안심사소위에서 "범국가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야 할 사항"이라며 바로 법안을 처리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안일환 기획재정부 제2차관 자료사진ⓒ뉴시스

이에 대해 국민의힘 소속 이헌승 소위원장은 “‘'근본적인 방안을 검토해야 된다’고 아주 원론적인 말씀을 하셨는데 그러면 지난 몇 년 동안 뭘 하셨느냐”며 재정당국이 이 문제를 등한시했다고 비판했다. 이 소위원장은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같은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고 충분한 논의가 이뤄졌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논의 끝에 더불어민주당 소속 진선미 위원장은 “조금 더 진전된 입장을 들고 오라”며 기재부에 대안을 마련해올 것을 요구하면서 법안을 처리하지 않았다.

이후 같은 해 12월 3일 열린 국토위 전체회의에서 이 소위원장이 “소위에서 다시 논의해서 전체회의에 (대안 법안을) 회부할 것”이라는 계획을 알린 뒤로는 더 이상 공식적인 논의가 없는 상태다.

그러는 사이 지난해 6대 도시철도 운영기관의 당기 순손실은 총 1조8천5억 원에 달하게 됐다고 노조 측은 전했다. 서울 1조954억 원, 부산 2천634억 원, 대구 2천62억 원, 인천 1천591억 원, 광주 374억 원, 대전 390억 원이라는 것이다. 협의회는 “올해는 이를 훨씬 뛰어넘는 적자가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협의회는 “이처럼 적자가 눈덩이 불어나듯 하는데도 문재인 정부는 부채비율을 늘리는 식으로 자치단체와 운영기관이 부담할 것을 요구했다”며 “이를 두고 오죽했으면 언론이 ‘폭탄 돌리기’라고 지적했겠나”라고 한탄했다. 최근 서울교통공사의 부채율을 130%까지 올린 행정안전부를 비판한 것이다.

협의회는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상왕십리역 추돌사고, 구의역 참사의 경험을 다시 해서는 안 된다”며 “도시철도의 위기 극복을 위해 국회는 하루빨리 계류 중인 관련 개정안을 통과하고 정부는 도시철도에 대한 투자를 주저해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법안 대표발의자 중 한 명인 이은주 의원은 “정부와 국회가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서 노동자에게 더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하고 시민에게 더 위험한 지하철을 강요하는 게 ‘효율’이란 이름으로 용납되어선 안 된다”며 “안전 투자 축소, 인력 감축 등 기존의 노동조건에서 크게 후퇴하게 될 이번 (구조조정 계획안) 발표에 단호하게 반대하며, 문재인 정부가 책임지고 정부 투자 확대와 공적서비스 의무에 대한 재정지원법 통과에 적극 협력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편 협의회는 7월 전국 6대 도시철도 노조 공동으로 대의원대회와 조합원 찬반 투표를 통해 공동쟁의행위를 결정할 예정이다. 그 결과에 따라 8월 말이나 9월 초 파업을 포함한 공동 연대투쟁을 할 계획이다. 전국 6대 도시철도가 공동쟁의행위를 결의하는 건 최초인 만큼, 실제 이뤄진다면 그 규모도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대훈 서울교통공사노조 위원장이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열린 '도시철도 재정 위기, 구조조정 말고 정부가 투자하라! 노동자에게 책임전가 말라!' 서울교통공사 구조조정 반대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1.06.14.ⓒ공동취재사진 / 정의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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