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고양이도 있고 도계장 앞에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나는 일단 구조해야겠어."
결국 우리는 일단 구조하기로 했다. 운송 기사에게 닭을 데려가도 되겠냐고 하자 운송 기사는 흔쾌히 승낙했고 그때부터 잎싹이 구조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널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려는 거야"라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닥치는 대로 자신의 동료를 잡아 내팽개치고 죽이고 먹는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우리가 닭을 잡으려 할 때마다 닭은 다 자라지 않은 날개로 힘껏 날갯짓하거나 두 발로 콩콩 달리며 저 멀리 도망가 버렸다. 얼른 구조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한편으론 안도했다. 힘차게 도망치는 모습이 건강해 보였기 때문이다.
몸을 웅크려 트럭 밑에 들어가기도 하고 풀숲을 헤치기도 했다. 우릴 지켜보던 운송 기사는 보다 못해 닭을 잡을 때 사용하는 쇠막대기를 건네주는 친절(?)을 베풀어주기도 했다. 한 시간가량 쫓고 쫓기는 상황이 반복됐다.
'우리가 정말 닭을 구조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커질 무렵, 트럭 바퀴 위에 올라간 닭을 혜린이 두 손으로 낚아챘다. 죽이는 손이 아니라 살리는 손이었다. 몇 번의 푸드덕 날갯짓 끝에 활동가 혜린 품에 안긴 닭은 삐악삐악 소리를 냈다. 우리는 옅은 웃음을 지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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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동가 혜린이 잎싹이를 구조한 뒤 품에 안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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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하는 동안 총 3대의 차량, 9천 마리의 닭이 도계장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구조한 닭은 사육장, 운송차, 그리고 도계장에서 기적처럼 살아남은 생존자였다. 생존자의 이름은 <마당을 나온 암탉>의 주인공에서 따와 '잎싹이'라고 지었다. 우리는 9천 마리의 닭을 무기력하게 보냈고 잎싹이 한 명만을 데리고 서울로 돌아왔다. 택시 기사는 오늘 첫 손님은 강아지였는데, 닭 손님은 난생처음 태워본다며 신기해했다.
잎싹이
활동가 집으로 온 잎싹이는 침대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도망치느라 긴장하고 피곤했을 잎싹이가 심신을 가라앉힐 수 있도록 우리는 다른 방으로 자리를 피했다. 10분이 지났을까. 옆방에 있던 잎싹이가 우리에게로 한 발 한 발 다가오기 시작했다.
다가오는 잎싹이에게 쌀과 물을 건넸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백미, 현미, 퀴노아는 골라 먹었고 흑미는 먹지 않았다. 취향이 분명했다. '닭대가리'라는 단어를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잠시 후 잎싹이는 활동가 명일의 무릎에 올라섰다. 입이 떡 벌어졌다. 집에 온 지 불과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잎싹이는 우리의 팔과 등, 어깨에 올라섰다. 잎싹이 발을 통해 잎싹이의 온기가 전해졌다. '경계심에 숨어 지내진 않을까, 식음을 전폐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우리 넷은 어느새 서로의 몸을 맞대고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눈앞에 벌어지는 일을 보면서도 어안이 벙벙했다.
돌이켜보면 잎싹이에게 도계장이 두려웠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잎싹이를 만나기 전에 내가 알던 '닭의 세계'는 모두 무너졌다. 그야말로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앞으로 잎싹이와 함께 새롭게 만들어갈 동물해방의 여행이 기대된다. 그리고, 이 여행에 당신을 초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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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동가 명일의 무릎에 올라간 잎싹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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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구조된 잎싹이는 당분간 활동가 자택에서 머물며 추후 거처를 정할 예정입니다. 도계장에서 나온 잎싹이의 새로운 삶을 위해 시민들의 관심과 후원이 필요합니다. 건강검진을 비롯해 추후 거처 마련, 식비에 사용될 예정입니다. 이 글은 개인 브런치 계정에도 실립니다.
* 서울애니멀세이브 홈페이지 : https://linktr.ee/seoulanimals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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