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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 공약으로 힘 실리는 ‘탄소세’…“선제 도입이 국가·기업에 유리”

주요국 탄소국경세 도입으로 기업 부담은 불가피…탄소세 선제 도입이 경쟁력 강화·세수 확보 차원에서 유리

11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선거 예비후보자 선출을 위한 예비경선 결과 발표에서 본경선에 진출한 김두관(왼쪽부터), 박용진, 이낙연, 정세균, 이재명, 추미애 후보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1.07.11ⓒ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탄소 배출 감축은 세계적인 추세다. 탄소 배출량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이 효율적인 방안으로 제시된다. 한국에서도 대선과 맞물려 탄소세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일각에서는 탄소세 도입에 따른 기업 경쟁력 저하를 우려하지만, 오히려 선제적으로 도입하는 편이 국가와 기업에 유리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2일 정치권에 따르면 일부 대선 후보는 탄소세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지난달 27일 ‘탄소중립 공약 발표회’에서 탄소세 도입 공약을 공식화했다. 앞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도 23일 공약 발표에서 탄소세 도입을 언급한 바 있다.

탄소세는 지구온난화를 해소하기 위해,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기업이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도록 유도하는 취지다. 1990년 핀란드를 시작으로, 현재 스웨덴과 스위스 등 약 50여 국가가 시행 중이다.

국회에는 탄소세 도입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지난달, 이산화탄소 배출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교통·에너지·환경세법 전부개정안을 제안했다. 현재 과세 대상으로 명시하지 않은 유연탄·무연탄·액화천연가스 등 화석연료에 탄소 배출량 1톤당 5만 5천원의 세금을 부과한다는 게 골자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도 지난 3월 탄소세법안을 발의했다. 화석연료를 에너지 자원이나 원재료, 운송수단 원료로 사용하는 경우 탄소세를 부과한다. 이산화탄소 배출량 1톤당 세금은 올해 4만원에서 2025년 8만원으로 점차 인상한다.

탄소세는 화석연료에 대한 소극적인 과세가 탄소 배출 산업을 조장한다는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한다. 환경세제 실효세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실효세율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과세대상도 화석연료 일부만 포괄해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 온실가스 총배출량은 2010년 6억 5,632만톤에서 2018녀 7억 2,760만톤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OECD 국가는 2000~2019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연평균 0.5% 감축했으나, 한국은 2%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탄소세는 부과는 기업의 탈탄소를 가속화한다. 기업은 탄소세에 따른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제품 생산 과정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게 된다.

탄소세가 기업 경쟁력 저해?…국제 흐름상 선제 도입이 유리

탄소세가 기업 경쟁력을 저해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용 의원이 탄소세법안을 발의한 직후 ‘탄소세 도입 영향 추정’ 보고서를 냈다. 해당 보고서는 용 의원 탄소세법안의 점진적 세금 인상 설계 바탕으로 한국 기업 세 부담을 연간 7조 3천억~36조3천원으로 추산했다. 당시 유환익 전경련 기업정책실장은 “과도한 탄소세 도입으로 산업계 부담이 지나치게 가중될 경우 오히려 투자 위축, 일자리 감소, 물가 상승 등 경제 전체에 악영향이 발생할 수 있다”며 “탄소세 도입에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업 경쟁력 저하를 이유로 탄소세 도입을 반대하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탄소세는 이산화탄소 배출에 따른 부담을 가중시켜, 기업의 에너지 효율성 제고와 재생에너지 전환을 유인한다는 목적을 가진다. 사회적인 부작용을 유발하는 특정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교정 조세’다. 탄소세는 고탄소 제품 경쟁력을 떨어뜨리기 위함인데, 경쟁력이 저하되기에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은 앞뒤가 안 맞다는 게 용 의원실 설명이다.

국제적인 추세도 탄소세 도입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흐르고 있다. 핵심은 이른바 ‘탄소국경세’로 불리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2023년부터 탄소국경세를 도입해 적용 대상을 점차 확대한다는 계획을 밝힌 데 이어, 미국과 중국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탄소국경세는 역내로 수입되는 제품에 대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비례한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한국 기업이 제품 생산 과정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지 못하면 외국에 수출할 때 무역 관세를 부담해야 한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가 회계법인 EY한영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2023년 탄소국경세 도입 이후 한국은 EU·미국·중국 등 3개국에 수출하는 철강·석유·전지·자동차 등 주요 업종에서 한 해 약 5억 3천만달러(약 6천억원)를 탄소국경세로 지불해야 할 것으로 관측됐다.

탄소세는 무역 장벽으로 작용할 탄소국경세에 선제 대응한다는 의미가 있다. 탄소국경세가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전에 기업 체질을 개선할 수 있다. 당장의 세 부담을 이유로 저탄소 전환을 미룰 수 없는 상황에서, 탄소세는 기업이 세계적인 흐름에 발맞출 수 있도록 하는 기제가 된다.

이 지사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신속한 저탄소 체제로의 대전환만이 국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반 발짝 늦으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반 발짝 빨리 가면 막대한 비용을 줄이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세계를 선도할 수 있다”고 탄소세 도입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탄소세 도입은 한국 정부 세수 확보에도 유리하다. 탄소국경세와 탄소세는 이중 과세되지 않는다. 한국에서 납부한 탄소세는 동일 품목에 대한 다른 국가의 탄소국경세에서 차감한다. 탄소세를 도입하지 않으면 외국으로 납부될 세금이 탄소세 도입 이후에서는 한국 세수로 모인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들어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탄소세 관련 연구용역을 발주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주요국이 탄소국경세 도입을 검토하는 상황에서 탄소세 도입이 세수 확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용 의원실 관계자는 “과거에도 탄소세 도입 논의가 있었으나, 한국은 수출 주도 국가여서 기업 경쟁력을 고려해야 한다는 논리에 막혔다”며 “거대 시장에서 탄소국경세 도입이 가시화하자, 기재부도 탄소세 도입 검토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화력발전소 자료사진ⓒ뉴시스

탄소세 재정 활용처는?…최대 피해자인 국민 지원이 중론

거둬들인 탄소세는 서민 경제를 위한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기업은 탄소세 비용을 가격에 반영하게 된다. 탄소세 부과에 따른 부담은 기업이 아닌 소비자로 전가된다는 의미다. 철강이 사용되는 자동차, 선박을 통한 유통 물류비용, 석탄 발전에 기반한 전기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소비자 부담이 늘어난다.

용 의원 발의안은 탄소세 세입 전부를 국민, 결혼이민자, 영주 자격을 가진 외국인에게 배당 형태로 균분 지급하도록 규정한다. 탄소세 도입으로 발생하는 추가재정은 도입 후 5년간 연평균 약 46조원으로 추산된다.

박 의원도 탄소중립 공약 발표 과정에서 “탄소중립 사회 이행과정에서 산업구조 변화와 에너지 가격 상등 등 필연적으로 피해를 보는 계층이 발생한다”며 “사회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과 함께 지역 사회의 원활한 탄소중립 전환과 피해지원을 위해 탄소세로 만들어진 재정을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추 전 장관도 탄소세 명목으로 걷은 세금을 전 국민에게 배분한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탄소세 재정으로 국민의 물가 상승 부담을 보전하는 방안은 조세저항을 완화한다는 의미도 있다. 탄소세를 기본소득 재원으로 활용한다는 이 지사 구상은 이 대목을 짚고 있다. 그는 “탄소세 부과는 물가 상승과 조세저항을 부른다”며 “탄소세 재원 전부 또는 일부를 전 국민에 똑같이 나누면 조세저항 없이 효과적으로 에너지 전환을 이룰 수 있다”고 설명한다.

재계에서는 탄소세를 부담하는 기업을 지원하는 데 탄소세 재정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탄소세 목적이 탄소 배출량 감축이라면, 기업의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기술개발과 세제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 부담과 기업 부담을 절충한 사례로 스위스가 꼽힌다. 스위스는 탄소세로 거둔 재원 중 3분의 2는 전 국민에게 배당하고, 나머지를 기업에 지원한다.

다만, 그간 탄소 배출에 따른 환경 오염을 담보로 막대한 이익을 취한 기업을 지원하는 데 탄소세 재정을 활용한 게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남는다. 경쟁력 저하를 빌미로 한 기업 지원은 전형적인 기업 논리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용 의원실 관계자는 “예를 들어 탄소 배출량이 가장 많은 철강은 환경과 국민에 비용을 전가해 성장한 셈”이라며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탄소세 재정을 다시 기업 지원에 쓰는 게 타당한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정부는 기술개발 정책 예산에 탄소중립 전환 비용을 할당하고 있다”며 “기업 지원 예산은 탄소세와 별도로 마련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민주당 탄소중립 공약 발표회에서는 탄소세 외에도 다양한 정책이 제시됐다. 이 지사와 이낙연 전 대표는 에너지 전환과 기후변화를 전담할 기후에너지부 신설을 내걸었다. 내연기관차 등록 금지 공약도 나왔는데, 이재명·이낙연·김두관·박용진 후보가 한목소리를 냈다. 특히 김 의원과 박 의원은 2035년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이밖에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현 정부가 기반을 닦은 그린뉴딜 정책의 지속적인 추진, 추 전 장관은 신재생에너지 연구개발 투자 확대를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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