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주가지수가 5000을 넘어섰습니다. 버블일까요?
2024년말 코스피에 상장된 회사들 전체 영업이익을 찾아보니 190조 원 정도 되더군요. 그때 주가지수가 2500정도 됐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은 5000입니다. 그렇다면 올해 코스피에 상장된 회사들의 전체 영업이익은 2배는 되어야 합리적이죠?
조사를 해보니 다행히 2배가 됩니다. 아니, 증권사들의 전망치가 400조 원에서 440조 원이니 2배가 더 넘을 수도 있겠습니다. 여기에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합쳐 올해 영업이익이 200조 원이 될 것이라고 환호하더니 지금은 250조 원도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다수 나옵니다. 그렇다면 코스피의 전체 영업이익은 440조 원이 아니라 500조 원 안팎이 될 수도 있겠지요. 지수가 2배나 올랐지만 여전히 전망치의 숫자로는 합리화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코스닥은요? 정부와 집권여당이 코스닥 3000도 외치고 있습니다. 코스닥의 영업이익도 크게 성장했습니다. 2024년 코스닥에 등록된 전체 기업들의 영업이익은 9조 6000억 원 정도였지만, 지난해는 16조 원 정도가 될 것 같고, 올해는 25조 원쯤일 것으로 증권사들은 전망하더군요.
코스닥도 2배 이상 영업이익이 올랐으니까 당연히 2024년 대비 2배 이상은 올라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미 코스닥의 주당순이익에 근거한 주가수익비율(PER)은 코스피보다 훨씬 높거든요. 코스닥의 어떤 기업은 주가수익비율이 이미 7천 배나 됩니다. 삼성전자가 아직도 10배 수준인데 말이지요.
물론 기술벤처기업들이 미래 성장성이 높을 수도 있지요. 그러나 성장성은 스토리지요. 이성적 숫자라기 보다는 미래에 대한 꿈이 담긴, 실러 교수가 말한 이야기(narrative)에 가깝습니다.
같이 꿈을 꾸면 행복합니다. 이야기는 전달되기 쉽지요. 그러나 여러 종류의 숫자를 보고 판단하는 건 골치 아픕니다. 면밀히 조사하고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뇌는 먼 옛날 수렵시대부터 그런 골치 아픈 판단보다는 직감으로 움직이도록 튜닝되어 있습니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었으니까요. 탓할 수 없지요. 생존 본능을.
그러나 탓해야 합니다. 수렵시대도 아닌데 수렵시대의 원시인처럼 현대인이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을.
그래서 유진 파마의 말처럼 코스닥도 지수(Index)에 투자해버릴까요? 그럼 속은 편하겠지요.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지수를 구성하는 것도 결국 종목들입니다. 코스닥에 등록된 종목들.
결국 지수도 코스닥에 등록된 종목들의 "실적"에 따라, 숫자에 따라 오르고 내린다는 것이죠. 언제? 그건 모르죠. 종국에는. 종국에는 이야기에 의해 아무리 올라도 결국 숫자가 확인되면 꺾일 것이고, 종국에는 아무리 흉흉한 소문 때문에 떨어져도 결국 실적이 뒷받침 된다면 오를 겁니다. 이익에 수렴할 겁니다. 결국은 그럴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게 '언제'인지를 모른다는 것뿐. '언제', '얼마큼' 우리가 이야기에 탐닉하다가 숫자를 돌아보게 될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자주 이 노래의 가사를 떠올려보세요.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연극이 끝난 후/샤프, 1980년 대학가요제 은상곡)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
시장은 대체로 옳습니다. 유권자는 대체로 현명합니다. 언론인이 충성해야 할 대상은 독자나 시청자입니다. 정치인은 국민을 믿고 정치를 하는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시장이 틀렸다면, 시장이 너무 광분했다면, 유권자가 멍청했다면, 독자나 시청자들이 어떤 미신, 인물, 편견, 선입관 등(예를 들어 백인은 흑인에 비해 우월하다)에 근거한 이야기에 빠져 있거나 갇혀 있다면 정치인이나 애널리스트나 언론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 그러나 위 진술에도 한 가지 편견이 들어 있군요. 어떤 특정의 정치인, 애널리스트, 지식인들은 대중보다 우월한 판단력을 지녔다는.
행동경제학자들에 따르면 심지어는 주식시장에서 가장 평정심을 유지해야 할 애널리스트들도 당시의 시장 분위기에 따라 보고서를 낸다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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