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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해군 이어 육군서도…성추행·스토킹 피해 하사, 극단선택 시도

등록 :2021-08-24 04:59수정 :2021-08-24 07:03

 
육군서도 드러난 성범죄·2차 가해
작년 4월 임관 일주일만에 ‘악몽’
신고 2주 지나서야 분리 조처
사단 담당관은 “빗물에 자료 유실“
사건 축소·가해자 솜방망이·2차 가해 방치
공군·해군 성추행 사건과 판박이

민간 변호사와 고소 뒤에야 수사
수원지검은 성폭력처벌법 혐의 기소
피해자 올초 극단적 선택 이어 또…
가족 “누군가 죽어야 개선되는 집단”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공군과 해군에 이어 육군에서도 상관으로부터 스토킹과 성추행을 당한 부사관이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사건 축소·무마, 가벼운 징계, 피해자 신상유출 등 광범위한 2차 가해까지 공군·해군 사건과 판박이였다. <한겨레>는 23일 병원에 입원 중인 피해 부사관을 대신해 피해자 언니를 전화 인터뷰했다. 아무런 처벌 없이 징계만 받고 전역한 가해자는 뒤늦게 민간검찰 기소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육군은 “당시 피해자의 형사고소 의사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지만, ㄱ하사 쪽은 “제대로 된 설명을 들은 바가 없고, (군에서) 의사를 확인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부임 일주일만에 ‘교제하자’던 직속상관…거절하자 스토킹·성희롱·추행
 

ㄱ하사는 임관 직후인 지난해 4월 육군 한 부대에 배속됐다. 부임 일주일 만에 직속상관 ㄴ중사가 ‘교제를 하자’는 말을 꺼냈다고 한다. ㄱ하사는 그 자리서 정중하게 거절했지만, 그날 이후 ㄴ중사의 스토킹이 시작됐다는 게 ㄱ하사 쪽 설명이다. ㄴ중사는 ‘나와 교제하면 업무에 도움을 주겠다’는 식으로 회유했다고 한다. 새벽에 취한 상태로 전화를 하고, 전화를 받지 않으면 수십통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전화를 받지 않자 영외 숙소 앞까지 찾아와 계속 전화를 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스토킹만이 아니었다. ㄴ중사는 술에 취한 채 자신의 성경험을 ㄱ하사에게 늘어놓거나 업무 중 은근슬쩍 몸을 만지기도 했다고 한다. 4개월 가까이 직속상관의 성희롱과 추행에 노출됐던 ㄱ하사는 지난해 8월 초 다른 선임의 도움을 얻어 부대에 신고했다.

 

뒤늦은 피해·가해자 분리…고위간부는 실명 언급하며 2차 가해 부추겨
 

ㄱ하사 쪽은 상담과 조사를 진행했던 사단 담당관과 법무실 대응이 무책임하고 부적절했다고 지적한다. 즉각적으로 이뤄져야 할 피해자-가해자 분리 조처는 신고 뒤 2주가 흘러서야 이뤄졌다. 그사이 ㄴ중사는 주변에 억울함을 호소하기 시작했고, 부대에는 ‘ㄱ하사가 평소 성적으로 문란했다’는 소문이 퍼졌다고 한다. 한 중사는 ㄱ하사에게 ‘어차피 너는 이미지도 좋지 않다. 부대를 소란스럽게 하지 말고 떠나라’고 말했고, 가해자와 절친한 사이였던 다른 간부는 ㄱ하사에게 연락해 진술조서를 보여달라는 요구까지 했다. 피해자를 돕는 간부들은 ‘ㄱ하사를 왜 도와주느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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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하사는 다시 부대 고위간부에게 만연한 2차 가해를 알리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이 고위간부는 면담이 끝난 뒤 ‘위(상급부대)에 알리지 말자. 간부 교육을 철저히 하겠다’고 회유했다고 한다. 이후 이뤄진 전체 간부 교육에서 해당 고위간부는 오히려 2차 가해에 해당하는 말을 했다고 한다. ㄱ하사와 ㄴ중사 실명을 언급한 뒤 ‘뒤에서 욕하면 2차 가해로 신고당한다. 욕하고 싶으면 ㄱ하사 전출 뒤에 하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충남지역 시민단체 회원들과 정의당 충남도당이 지난 6월 공군 성추행 피해자가 근무했던 충남 서산 공군 20전투비행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철저하게 수사하고 가해자를 엄벌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충남지역 시민단체 회원들과 정의당 충남도당이 지난 6월 공군 성추행 피해자가 근무했던 충남 서산 공군 20전투비행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철저하게 수사하고 가해자를 엄벌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해자 형사처벌 없이 징계만…피해자는 내부고발 낙인에 왕따
 

사단 법무실은 ㄴ중사를 형사처벌하지 않고 징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ㄱ하사가 스토킹·추행·성희롱 사실을 진술했고, ㄱ하사 가족도 직접 국방부 조사본부에서 운영하는 국방헬프콜에 전화해 철저한 조사를 요청했지만, 증거가 될 만한 시시티브이(CCTV) 자료나 통화내역 확보를 위한 강제조사는 진행되지 않은 것이다. ㄴ중사가 ㄱ하사에게 보낸 편지 등 각종 자료를 갖고 있던 사단 담당관은 ㄱ하사가 돌려 달라고 요구하자 ‘빗물에 유실돼 사라졌다’는 납득하기 힘든 이유를 대며 거절했다고 한다.

 

이후 ㄴ중사는 군 수사기관으로부터 별다른 조사도 받지 않은 채 ‘품위유지 의무 위반’이라는 이유로 파면 보다 낮은 수준 징계인 해임 처분을 받는데 그쳤다. 심각한 2차 가해를 저질렀던 부대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와 징계, 처벌은 없었다. 오히려 한 간부는 그 와중에 피해사항과 인적사항이 적힌 ㄱ하사 전출희망서를 촬영해 유출하는 등 또다른 2차 가해를 저질렀다고 한다.

 

결국 가해자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는 ㄱ하사가 그해 11월 직접 민간 변호사를 찾아가 수사기관에 고소한 뒤에야 이뤄졌다. 수원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는 지난 6월 가해자를 성폭력처벌법(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로 기소했다. 같은 사안에 대해 징계 처분하는 데 그쳤던 사단 법무실 결정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육군본부 공보정훈실은 <한겨레>에 보내온 입장문에서 “(가해자) 징계 절차 당시 피해자의 형사고소 의사가 확인되지 않아 징계 절차부터 신속하게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ㄱ하사 쪽은 “당시 징계절차 등 사건 처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피해자에게) 제대로 공유되지 않았다. 피해자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았고, 법적 절차에 대한 안내도 거의 없었다”고 했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징계 절차 그 자체로 피해자 쪽에서 이 문제를 사건화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 결과 가해자가 해임됐다는 것은 성추행 사실이 일부나마 확인이 됐다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군이 형사 절차를 병행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주 궁색한 해명”이라고 했다. 육군은 “당시 사건을 담당한 군 수사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육군 중앙수사단에서 처리 과정의 적절성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라고 했다.

 

가해자 쪽은 법정에서 사실관계를 다투겠다는 입장이다. 변호인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피해자가 느끼는 피해감정과 별개로 피해 일시·장소·방법 등 법적인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이 부분을 법정에서 다투겠다”고 했다.

 

“2차 가해도 처벌하는 제도 만들어야”
 

군의 가해자에 대한 미온적 조처와 허술한 피해자 보호는 2차 가해를 키우는 온상이 됐다. 초임 부대를 떠나 새로 전입한 부대에서도 ‘직속상관을 찔러서 부대를 와해시킨 문제아’라는 낙인이 ㄱ하사를 쫓아다녔다. ㄱ하사의 전출 사유와 인적 사항은 이미 부대에 파다하게 퍼져있었다. ㄱ하사 이름이 집중적으로 검색된 탓에 군 인트라넷 검색시스템에서 ㄱ하사 인적사항이 ‘블라인드’ 처리되는 상황까지 발생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ㄱ하사는 전출 뒤 두달 간 새 부대에서 사실상 왕따를 당했다고 한다.

 

ㄱ하사는 올 초에 이어 최근 또한번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상태에서 발견돼 현재 병원에 입원 중이다. ㄱ하사 쪽은 공군 부사관 성추행 사망 사건을 계기로 진행된 국방부 특별 신고 기간에 다시 신고했다. 육군은 “2차 가해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는 현재 지역군단에서 진행 중이다. 피해자 의사를 고려해 관할조정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지만, ㄱ하사 쪽은 군에 대한 신뢰를 잃은 지 오래라고 했다.

 

ㄱ하사 언니는 “공군·해군 피해 부사관들이 겪었던 일들이 육군에 복무하는 동생이 겪었던 일과 너무나 흡사해서 충격을 받았다. 직접적인 가해자도 문제지만, 간접적인 가해자들도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명확한 기준과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했다. ㄱ하사의 언니는 지난 20일 청와대 국민게시판 청원을 올렸다.

 

“누군가의 죽음으로써 문제가 개선되는 집단이라면 살아있는 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날카로운 눈빛과 지속적인 물음으로 군대 내 성폭력 예방, 사건에 대한 투명한 조사와 강력한 처벌을 지지해달라.”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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