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대출 규제와 금리 인상으로 가계부채 관리에 나섰다.

고승범 신임 금융위원장은 가계부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단계적 총부채상환원리금비율(DSR) 규제를 앞당겨 실행하고, 개인신용대출 한도를 '연 소득 이내'로 축소할 것을 금융권에 요구했다.

한국은행은 지난 26일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연 0.75%로 0.25% 포인트 인상했다. 작년 5월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인 0.5%로 내린 지 1년 3개월 만의 인상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연내 추가 인상 가능성도 시사해 1%대 기준금리 인상이 예상된다. 기준금리 인상은 “경기 회복세 지속, 물가 상승 압력, 금융 불균형 누적 세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부채 폭탄과 자산 거품이 위험수위에 와 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지난 2분기 가계부채는 1805조9천억 원으로 올해 상반기에만 77조9천억 원이나 급증했고, 2019년 증가 폭의 3배가 넘는다. 지난달까지 1년 2개월간 전국 아파트 매맷값은 14.47%, 수도권 아파트 매맷값은 16.86% 폭등했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금융당국은 뭘했나.

서민금융대책이 없다

이번 대출 규제와 금리 인상 조치에는 서민을 위한 금융 대책이 빠져있다.
부동산은 금융현상이다. 처음부터 입구에서 투기 세력의 돈줄을 막고, 출구에서는 강력한 과세를 통해 불로소득을 환수함으로써 부동산을 잡았어야 했다. 그런데 돈줄은 풀어놓고, 규제는 사후적 핀셋 규제로 일관하다가 풍선효과가 연쇄적으로 전국화하면서 집값 폭등을 막지 못했다. 국토해양부가 아니라 금융당국의 책임이 크다.

뒷북만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영끌’과 ‘빛투’를 방치, 조장하다가 지금 와서 대출을 총량규제로 통째로 틀어막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실수요층, 생계형 대출이 절실한 서민층과 자영업자에게 돌아가게 된다. 지금 금융당국의 과격한 보복성 대출 규제는 범인이 범인을 잡겠다는 식으로 노동자 민중, 서민에 대한 금융 대책은 완전히 빠져있다.

실수요자라 할지라도 대출을 막으면 주택구매는 유보할 수 있다. 그러나 대출이 막히고 이자 부담이 늘어난 다주택자는 전세를 올리고, 전세를 월세로 전환해가며 서민층에 전가하는 현상으로 이어질 것인데, 이에 대한 대책은 빈약하다. 또한 금리 인상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정책효과이다. 이를 보완하려면 맞춤형 재정 대책이 추가로 나와야 한다. ‘통화는 수축적으로 하면서 왜 재정은 확대하느냐’,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은 함께 가야한다’는 식의 한가한 거시경제론자들의 잠꼬대를 들을 것이 아니라 금리정책의 획일성으로 인한 피해를 서민을 위한 재정정책으로 메꾸는 적극적 대책이 시급하게 나와야 한다.

경착륙에 대비해야 한다

자산버블 붕괴에는 연착륙이 없다. 금융당국은 초저금리 상태를 지속할 경우 부채가 더욱 확대되고 자산시장 과열로 이어져, 결국 버블 붕괴와 부채폭발로 금융위기가 초래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사전에 연착륙시켜보자는 의도일 것이다. 금리 인상의 때를 놓쳐 30년 장기침체에 들어간 일본의 경험이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상황은 미국의 테이퍼링과 금리 인상이 본격화할 경우 심각한 경착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높다. 달러패권에 편입된 나라의 숙명은 미국보다 높은 금리를 유지하지 않을 경우 급격한 자본이탈과 환율 불안정, 경제충격으로 이어지며, 무자비한 양털깍기를 당하게 된다. 97년에는 외환위기였지만, 이번에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와 같은 가계부채가 뇌관이 될 수 있다. 금융당국은 이에 대한 뾰족한 대책은 없어 보인다. 달러 체제 안에서 금융 주권을 상실한 금융 당국에 중장기 자본통제 대책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약탈적인 금융자산경제를 손봐야

금융 당국에게 자산팽창에 따른 심각한 불평등을 해소하는 구조개혁전략은 있는가 의구심이 든다. 오히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가계부채 폭탄에 대한 면피 수준의 금융정책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뿐이다.

오늘날의 부채위기는 세계적 현상이며, 장기 저성장과 디플레이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부채를 끌어들여 해결해 오면서 누적된 문제이다. 수출과 내수의 동시 하락으로 3%대의 저성장에 접어든 한국경제에서 역대 정권들이 부동산과 주식시장 부양을 통해 자산효과로 경기를 일으켜 정책실패를 모면해보려는 폭탄돌리기를 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현 정부 역시 코로나 위기19로 실물경제의 타격이 오자 자산경제로 경기를 부양하고자 하는 정책 기조를 더욱 강화하며 부채를 키웠다. 지금 부채와의 전쟁을 선포한 금융당국자, 재정당국자들이 바로 이러한 부채 확대와 자산팽창, 빈부격차 정책의 기획자, 설계자이고, 집행관들이었다.

문제는 과잉유동성과 금융팽창에 따른 자산 버블이 약탈경제이며, 언젠가는 터진다는 데 있다. 지금 심각한 부동산 문제만 놓고 보아도 그렇다. 정부가 부동산 경기부양책을 입안하고, 은행이 대출을 통해 종자돈을 보장하며, 건설업체는 아파트라는 규격화된 투자상품을 제공함으로써, 부동산 폭등과 가계부채 확대라는 싸이클을 키워왔다. 저금리로 확보한 과잉유동성이 실물경제로 들어가지 않고 집값 폭등과 부동산 거품을 야기하며, 오히려 실물경제에서 어렵게 쌓은 노동자 민중의 소득을 착취해가는 약탈경제가 가계부채 뒤에 숨은 실체이다.

그런데도 부채 폭탄이 터지면 금융권을 살리기 위해 다시 어마어마한 혈세를 동원한 공적 자금을 투입할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며, 약탈자들은 새로운 잔치를 준비한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다. 위기를 피할 수 없다면 노동자 민중은 이 기회를 부동산 불평등과 약탈경제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체제 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편집국 news@minplu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