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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서 천진암까지 세계 유일 ‘종교화합 순례길’ 기대하세요”

등록 :2022-03-09 19:47수정 :2022-03-10 02:31

[짬] 경기도 광주시 신동헌 시장
신동헌 경기도 광주시장이 지난 8일 집무실에 걸린 대형 남한산성 수어장대 사진 앞에 서서 ‘광주역사문화순례길’ 구상을 밝히고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신동헌 경기도 광주시장이 지난 8일 집무실에 걸린 대형 남한산성 수어장대 사진 앞에 서서 ‘광주역사문화순례길’ 구상을 밝히고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신동헌(70) 경기도 광주시장은 지난해 8월 남한산성과 천진암 순교 성지를 잇는 ‘천진암 성지 광주 순례길’ 조성을 위해 천주교 수원교구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그러자 불교계의 항의가 쏟아졌다. 남한산성 축조부터 수성까지 승려들의 노고와 천진암의 자비를 도외시하고 어떻게 천주교만의 성지길을 낼 수 있느냐는 이유였다. 신 시장은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기로 했다. 연구 용역을 맡겨 객관적으로 역사성을 살려내 종교 화합·치유의 순례길을 조성하기로 한 것이다. 8일 광주시청에서 신 시장을 만나 구상을 들었다.

 

작년 천주교 ‘천진암 성지순례길’ 협약
불교계 항의 ‘전화위복의 계기’ 삼아
‘광주역사문화순례길’ 연구용역 의뢰
“산티아고처럼 성찰·치유의 길 조성”
광주 토박이·방송 피디 출신 ‘기획력’
“내년 봄 모든 종교 지도자 초청 목표”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인 스님들이 남한산성의 절반을 축조하고, 산성을 지켜낸만큼 호국불교의 성지로 복원하자고 스님들과 예전부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천주교 순례길에 이어 불교도 하나하나씩 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했는데, 천주교와 먼저 협약을 해서 오해를 샀다. 불교계에선 이의를 제기할만하다고 봤기에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을 찾아 사죄를 드리고 역사성을 살려서 종교 화합의 순례길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받아줬다.”신 시장은 이번 기회를 통해 광주의 역사 문화를 널리 알려서 순례길을 스페인 산티아고처럼 내적 성찰을 하려는 종교인들을 비롯해 세계인들이 함께 걸으며 공부하고 치유하는 길로 조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광주엔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어마어마한 종교의 역사가 숨어 있다. 남한산성엔 전국에서 모인 스님들이 각기 지역별로 사찰을 지어 지켰기에, 8도 사찰이 한군데에 다 모여있는 유일한 곳이다. 대부분이 폐사됐지만 복원하면 호국불교의 최대 성지가 될 것이다. 남한산성 안엔 박해시대에 순교를 당한 천주교인들의 기념비도 있고, 현대 한국 개신교의 대표적인 인물인 한경직 목사가 말년을 보낸 우거지도 있다. 천진암은 정약용, 권철신, 이벽 등이 서(천주)학을 공부한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다. 자생적으로 천주교를 받아들인 놀라운 탄생 역사가 있는 곳이다. 애초 불교 암자로, 박해시대에 쫓기던 천주교인들을 숨겨주던 스님들도 목숨을 잃은 곳이다. 종교의 자비와 화합의 상징이 될 수 있는 곳이다.”신 시장은 종교로 인한 전쟁과 참화가 다반사인 지구촌에서 세계인들이 보면 깜짝 놀랄만한 이런 역사를 로마 교황청에도 알리고, 세계인들에도 알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종교로 인한 갈등에서 벗어나 화합의 정신을 새길만한 장소로 이만한 곳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다.“천진암이 지금은 천주교의 소유여서 천주교 차원의 성지화가 진행중이지만, 애초 불교 암자였던 곳으로 스님들의 자비심을 씨앗으로 한국 천주교가 발생한 곳인 만큼, 암자를 복원하고 순례객들이 종교 자비를 배우고 느끼는 교육과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면 좋겠다.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해야 한 종교만이 아닌, 세계인이 배낭 메고 찾아올 수 있는 화해와 평화의 장소가 될 수 있다. 천주교도 불교에 호의적이어서 가능하리라고 본다.”그는 “개인적으로 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됐지만, 시장이 되면 당을 떠나 시민을 위한 공적인 정책을 펴야 하듯이, 개인 종교는 개신교 안수 집사지만, 종교를 떠나 광주의 역사와 문화를 널리 알리고 고양시키는 게 시장으로서 사명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신동헌 경기도 광주시장은 집무실에 대형 남한산성 지도그림을 걸어두고 ‘광주역사문화순례길’ 구상을 하고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신동헌 경기도 광주시장은 집무실에 대형 남한산성 지도그림을 걸어두고 ‘광주역사문화순례길’ 구상을 하고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그는 <한국방송>(KBS) 피디 출신이다. 어렸을 때만 해도 전형적인 농촌이었던 광주 토박이인 그는 한때 농업 전문 피디로 이름을 떨치기도 했다. 그는 방송인의 감각으로, 광주의 ‘구슬’들을 하나하나 광주역사문화순례길이란 목걸이에 꿸 꿈에 부풀어 있다.“예전엔 서울 강남·송파·하남·안산까지가 다 광주였다. 어렸을 때만 해도 광주는 백제의 옛 도읍이라고 배웠다. 남한산성에는 백제를 건국한 온조대왕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정약용의 스승인 성호 이익이나 순암 안정복 같은 인물이 광주 사람이다. 허균의 누이 허난설헌의 묘가 있고, 독립운동가로 대한민국 헌법을 기초한 해공 신익희의 생가가 있다. 왕실 가마터를 비롯해 옛 가마터가 400개나 있는 도자기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팔당과 경안천 일대는 오랜 개발규제 덕분에 가마우지, 금개구리, 맹꽁이 같은 희귀동물의 보고로 남아 있다. 곳곳에 꽃농가와 토마토농가들이 즐비해 걸으면서 볼거리, 즐길거리가 가득하다. 광주 자체가 하나의 에코뮤지엄이다. 따라서 이것들을 7개 코스의 순례길로 만들면 생각거리와 볼거리가 어우러지는 공부길, 치유길이 될 게 분명하다.”신 시장은 “남한산성에서 보는 서울 야경이 최고여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지만, 호텔과 같은 숙박시설이 거의 없어 관광객들이 다시 서울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며 “남한산성 일대의 폐사된 사찰들을 복원해 호국불교의 성지도 되살리고, 관광객들이 템플스테이를 해서 남한산성에 머물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광주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모신 나눔의집이 있는 만큼 여성인권을 되새기는 평화센터도 건립할 예정”이라고 했다.“몸의 병은 약을 먹고 바르면 되지만, 역사적 아픔과 고통은 역사의 현장에서 눈으로 보고 느껴야 한다. 천진암, 남한산성, 나눔의집은 살아있는 역사다. 내년 봄엔 첫번째 순례길을 열어서 여러 종교 지도자들을 초청해 함께 걸어볼 작정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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