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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목 윤석열의 몰락...그에게 충성한 자들이 아직 요직에 있다

[조성식의 통찰] 윤석열 정권 3년이 드러낸 검찰개혁의 필요성

25.04.09 06:30최종 업데이트 25.04.09 06:30

2020년 2월 10일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대비 전국 지검장 회의'에 참석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유성호

안국동 현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 선고를 지켜보면서 법으로 무장한 '폭력조직' 서초동파를 떠올렸다. 윤석열은 서초동파의 명실상부한 두목이었다.

국가의 기원에 관한 학설 중 실력설(force theory)이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국가는 약한 부족에 대한 강한 부족의 정복이나 억압의 산물이다. 폭력설도 이와 비슷한 개념이다. 힘이 센 자들이 약한 자들을 합법적 폭력으로 지배하는 기구가 바로 국가라는 주장이다.

폭력설에 비춰 보면 공권력은 국가 폭력의 수단이자 도구다. 경찰, 검찰, 군 등 무력을 갖춘 조직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국민의 기본권을 합법적으로 침해하는데, 그것이 불법적으로 행사될 때 국가 폭력이 된다. 우리 현대사의 어두운 장면은 대부분 야만적인 국가 폭력에서 비롯됐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12.3 비상계엄 내란 사건도 마찬가지다. 윤석열은 군과 경찰을 동원해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를 장악하고, 주요 정치인과 진보 인사, 전·현직 법관들을 체포하려 했다. 자칫 5.18 이후 최대의 국가 폭력이 빚어질 뻔했다.

조폭과 검찰의 속성, 비슷한 측면 있어

심우정 검찰총장이 지난 3월 17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연합뉴스

서초동파 '바지사장' 심우정 검찰총장은 법원의 위법적 윤석열 구속 취소 결정을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 수용하면서 재항고 또는 항고라는 정상적이고도 정당한 형사소송법 절차를 포기했다. 상황과 대상에 따라 잣대를 달리하는 공권력의 이중성을 잘 보여준 사례다.

조직이 배출한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 충성심에서 비롯된 심 총장의 일탈은 법치에 대한 국민 신뢰를 무너뜨리고 결과적으로 내란 세력에 동조한 셈이 됐다. 내란 우두머리에게 일반인과 완연히 다른 잣대를 들이댄 것은 명백한 특혜였다.

수사기관과 견원지간인 조폭은 검찰 행태가 자신들과 다르지 않다고 비난한다. 과거에 내가 알고 지낸 원로 전국구 주먹은 "우리가 밤의 폭력 집단이라면 검찰은 낮의 폭력 집단"이라며 "똑같이 폭력을 행사하는데 우리만 맨날 당한다"라고 '하소연'했다.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한 강력한 검사동일체 원칙과 조직이기주의, 지독한 제 식구 감싸기는 조폭과 비슷한 면이 있다. 조직의 위상을 흔들거나 이익을 해치거나 검사들에게 '감히' 맞서려는 사람들에 대한 철저한 응징과 보복만 봐도 그렇다.

차이가 있다면 검찰은 합법적인 폭력 조직이고 조폭은 불법적인 폭력 집단이라는 점이다. 조폭 시각에서 하는 얘기지만, 일리가 없지는 않다. 흥미로운 것은 검찰에 그토록 적대적인 조폭들이 틈만 나면 검사들에게 줄을 대려 한다는 사실이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조폭의 생리다.

접대 문화가 검찰을 지배하던 시절에는 검사들이 기업가형 조폭 두목을 후원자(스폰서)로 두거나 유착관계를 형성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향응과 뇌물은 기본이고, 이권을 공유하거나, 고소나 고발, 심지어 폭력을 청부한 검사까지 있었다.

검찰과 조폭의 속성이 비슷하다고 해서 직업적 사명감으로 조폭 소탕에 매진했던 조승식, 남기춘 등 전 강력통 검사들의 노고를 폄훼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검찰 수사권 축소가 시대적 요구인 만큼 경찰의 조폭 수사를 검사가 법률적으로 점검하고 감독하는 구조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무슨 파 따위의 폭력조직 이름은 자체적으로 지은 것도 있지만, 대체로 수사기관에서 임의로 만들었다. 주로 활동 지역이나 근거지, 두목의 이름 또는 별명에서 따왔다. 윤석열을 서초동파 두목이라고 부르는 것은 검찰 지휘부인 대검과 최대 화력인 서울중앙지검이 서초동에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평생 단죄권력을 누리며 합법적인 폭력을 행사했다. 무소불위의 수사권과 기소권으로 누군가의 죄는 먼지 털듯이 들춰내고 누군가의 죄는 적당히 덮어줬다. 누구는 멸문지화에 이를 정도로 가혹하게 단죄하고 누구는 관대하게 봐줬다. "검사가 수사권으로 보복하면 깡패"라는 그의 공언은 허언이었다.

서초동파의 이권은 확실하게 챙기고 조직원은 철저하게 보호했다. 검찰이 한국 사회에서 최고 엘리트 집단이고 가장 정의로운 집단이라고 믿는 검찰주의자의 면모를 한껏 과시했다. 정권을 잡고 나서 자신과 가까운 전·현직 검사들을 정부와 권력기관 곳곳에 배치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검찰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딴 '사단'은 대형 정치적 수사나 특별한 인사 인연에서 비롯된다. 김영삼 정부 말기 실세인 대통령 아들을 구속했던 심재륜 사단, 노무현 정부 초기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안대희 사단은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반면 박근혜 정부 때 검찰 인사를 좌지우지한 우병우 사단은 부정적 이미지를 풍긴다. 여기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의혹을 거칠게 수사하고 민정수석으로서 박근혜 정권 쇠망에 책임이 있는 우병우 전 검사에 대한 부정적 평가도 작용한다. 윤석열 변호인단으로 활약한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도 우병우 사단의 주요 인물이다.

'서초동파' 두목, 결국 대형 사고 쳤다

2017년 3월 6일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 국정농단 사건' 수사 특별검사팀 박영수 특별검사가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특검사무실에서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홍정석 부대변인, 윤석열 수사팀장, 이규철 특검보, 박충근 특검보, 박영수 특검)유성호

윤석열 사단의 주축은 윤석열을 비롯해 2016년 말 국정농단 특검에 파견된 현직 검사 20명이다. 거기에 문재인 정부 초기 적폐 청산 수사를 주도한 검사들이 합류했다.

우두머리인 윤석열이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쳐 검찰총장에 오르자 윤석열 사단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검찰 지휘부와 요직을 차지하며 특수통 전성시대를 열었다.

조국 수사 후유증으로 한동안 좌천되거나 한직으로 밀려났던 이들은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화려하게 복귀했다. 윤석열식 '의리 인사'의 결정판이었다. 다시 검찰을 장악한 윤석열 사단은 검찰정권의 수호자를 자처했다.

검찰 내부에서 김건희씨 의혹 수사를 두고 파열음이 새어 나온 것은 윤석열 사단의 황태자인 한동훈 전 대표가 용산과 같은 문제로 갈등을 빚기 시작한 때와 거의 일치한다. 한 전 대표의 사법연수원 동기인 이원석 검찰총장이 총대를 멨고, 대검과 중앙지검의 핵심 간부들이 동조했다.

조폭 세계로 치면 부두목이 뜻이 맞는 부하들과 함께 두목에게 반기를 든 꼴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한꺼번에 중앙무대에서 사라졌다. '좌천성 영전'이라는 말이 나왔다.

2인자 그룹의 반란을 진압한 두목은 그들에게 밀렸던 부하들을 새로운 심복으로 삼았다. 윤석열 사단 2기라 할 만한 이들은 대체로 윤석열이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을 지낼 때 보좌했던 검사들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벌어진, 이른바 추-윤 갈등 때 노골적으로 윤 총장 편에 서거나 검경 수사권 조정과 검찰개혁에 반기를 든 검사들이 주축이다.

물론 '원조' 윤석열 사단 중에도 건재한 검사가 적지 않다. 주가조작에 연루된 김건희씨를 무혐의 처분했다가 탄핵 소추당한 조상원 서울중앙지검 4차장, 명태균 게이트 특별수사팀을 이끄는 이지형 부산지검 2차장이 대표적이다.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에 합류한 최순호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장과 최재순 대검 범죄정보2담당관도 윤석열 사단에 속한다. 네 검사는 모두 국정농단 특검팀에서 활약했다.

윤 전 대통령 구속 취소 사태 때 대검 지휘부가 보인 비상식적 행태는 조폭 집단의 의리를 떠올리게 한다. 조폭 세계에서는 우리 편 아니면 적이다. 철저한 이분법이다. 우리는 무조건 선이고 우리와 맞서는 쪽은 무조건 악이고 제압해야 할 대상이다.

서초동파 두목 윤석열은 대통령이 된 후에도 이런 조폭스러운 기질을 버리지 못하고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을 적대시하고 그 대표를 범죄자 취급했다. 세상 모든 사람을 잠재적 피의자로 여기고 심판자를 자임하는 그는 민주공화국의 지도자임에도 대화와 타협을 거부하고 철저하게 힘의 논리에 기댔다.

그러다 결국 대형 사고를 쳤다. 채상병 특검법, 김건희 특검법, 명태균 게이트 등으로 부부에게 비상사태가 발생하자 국가 비상사태라고 둘러대며 외침에 맞서야 할 군을 사조직처럼 동원하고 나아가 장기 집권을 꿈꾸었다. 돈키호테 뺨치는 망상가이자 맥베스를 능가하는 모략가였다.

게다가 자신의 지시를 따랐다가 구속되거나 재판을 받게 된 부하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발뺌하는 모습은 3류 조폭 두목의 전형이었다. 그런 비겁한 자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고 친위 쿠데타에 동원됐다가 불명예스럽게 군복을 벗게 된 고위 장교들이 불쌍할 따름이다.

'조폭 대통령' 탄생시킨 검찰의 자성 필요해

지난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앞에서 열린 윤석열퇴진비상행동 주최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내란공범 검찰해체'가 적힌 대형 깃발을 흔들고 있다.권우성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만큼 윤석열은 이제 내란죄 외에 직권남용죄나 공직선거법 위반죄 등으로도 수사받아야 할 처지다. 그에 따라 서초동파의 움직임에 관심이 쏠린다.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대역죄를 저지른 자에게 충성한 자들이 여전히 요직에 앉아 있는 만큼 경계심을 늦출 수 없다.

서초동파의 쇄신은 마땅히 시민사회의 숙원인 검찰개혁 완성으로 귀결돼야 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서초동파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활용하지 못하게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그래서 다시는 정치검찰의 칼춤으로 민주주의가 퇴보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검찰개혁의 목표는 말 그대로 검찰권력 해체이고 검찰 정상화다. 검찰의 긍정적 기능은 살리되 부정적 기능은 없애야 한다. 임무와 역할을 대폭 조정하고, 불필요한 직책과 기구를 줄이고, 조직과 인원을 재정비해야 한다.

수사·기소 분리라는 대원칙 외에도 검토할 게 많다. 이를테면 대검찰청을 해체하거나 축소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전국 검사들이 총장의 지휘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조폭 조직과 닮았다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차관급인 대검 검사급(고검장, 검사장, 고검 차장) 자리가 너무 많고, 집무실도 지나치게 넓다. 상대적으로 한직인 고등검찰청이 존속할 필요가 있는지도 고민해 봐야 한다.

고등검찰청이 사라지면, 각 지방검찰청장이 독립적이고 대등한 위치에서 검찰 사무의 최종 책임을 지면 된다. 그 경우 검사장 직선제도 검토할 만하다. 다만 사전에 장단점을 따져본 다음 판단하는 게 좋겠다.

검찰의 부정적 면을 조폭에 비유하기는 했지만, 대다수 검사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늘 문제가 되는 것은 정의보다 출세를 지향하는 정치검사들이고 조직의 이익을 국민의 이익보다 중시하는 검찰주의자들이다. 비록 소수지만 조직의 실세인 그들이 권력과 야합하기에 검찰 전체가 욕먹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법치를 철저하게 파괴한 '조폭 대통령'을 배출한 검찰은 자성부터 해야 한다. 헌재의 탄핵 심리가 한창일 때 검찰 특수통 출신 법조인은 내게 "윤석열이 검찰을 완전히 망가뜨렸다"며 "검찰의 직접 수사권은 폐지하고 수사 지휘와 기소에 전념하게 해야 한다"고 탄식하듯이 말했다.

다가올 새 시대를 맞아 서초동파가 정의롭고 공정한 국가 기관으로 거듭나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게 되기를 바란다.

#윤석열 #검찰 #조성식의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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