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았습니다."
"제 부하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12.3 계엄의 밤 국회 본관까지 진입했던 특수전사령부 대대장이 21일 내란 형사 법정에서 한 말이다. 그의 앞에는 파면된 전직 대통령이자 내란 우두머리 혐의 피의자인 윤석열씨가 앉아 있었다. 특전사 대대장의 발언은 형식적으로는 재판장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내용적으로는 과거 윤씨가 했던 유명한 발언들을 사용해 눈 앞의 윤씨에게 하는 강한 항의였다.
각 잡힌 군복 차림으로 이날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대법정 증인석에 선 김형기(43) 육군 특전사 1특전대대장(중령)은 증언 내내 시종일관 큰 목소리로 윤씨 측 변호인 질문에 답했다. 김 대대장은 지난해 12월 4일 오전 1시께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이 가결되기 직전 자신의 상관인 이상현 특전사 1공수특전여단장으로부터 '대통령 지시사항이니 문을 부수고서라도, 유치창을 깨서라도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해온 인물이다.
"아니, 그걸 어떻게 합니까?"
'상급자에게 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면, 그 지시를 왜 수행하지 않았나'라는 윤씨 측 변호인 질문에 김 대대장은 "아니 그걸 어떻게 합니까"라고 거듭 반문했다. 그는 "군이 부여 받은 임무는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것"이라며 "(만일 지시를 이행했다면)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는 상황이었다. 폭동이 안 생긴 이유는 저희 병력들이 참았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김 대대장은 특전사 등 군인이 그때 유혈사태까지 감수하고 지시를 수행하려 했다면 민간인들이 얼마나 있었든 간에 진압이 가능했다고도 말했다. 김 대대장은 당시 국회로 간 휘하 병력 130여명 중 49명은 국회 경내로 들어갔고, 나머지는 버스에 대기시켰다고 했다.
"나는 현장에 있었다"
'그럼 증인은 올바른 판단을 했고, 이상현 여단장과 곽종근 특전사령관은 상급자임에도 잘못된 지시를 내렸다는 거냐'는 추궁에 김 대대장은 "제가 상급자를 평가할 수 없다"면서도 "분명한 사실은 저는 현장에 있었다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제가 현장에 있다 보니까, 직접 몸으로 느꼈고 체감하다 보니 '이건 잘못됐다'고 느낀 것"이라며 "책상에 앉아서 임무만 주고 지시만 하는 사람이 뭘 알겠는가,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김 대대장의 단호한 답변에 피고인 윤씨 쪽 책상에 앉은 변호인 10여명이 놀란 듯 눈이 커졌다. 눈을 감고 잠시 조는 듯한 모습을 보였던 윤씨도 고개를 들어 그를 잠시 쳐다보고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김 대대장과 윤씨 사이의 거리는 불과 3~4미터 안팎이었다.
"차라리 날 항명죄로 처벌해달라, 그러면 부하들은 항명죄도 내란죄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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