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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살 때 한글 뗐는데, 생애 처음 쓴 말이 ‘죽고 싶다’였어요”

등록 :2022-04-20 04:59수정 :2022-04-20 07:54

자살로 인한 ‘장애인 사망률’ 일반인의 2배
장애인 54% “자살 생각”, 46% “자살 시도”
우울증 진료는 전체 장애인의 2.3%에 불과
“체계적인 장애인 자살예방 프로그램 필요”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19일 오후 서울역 들머리 계단에 이제석 광고연구소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펼친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F·Barrier Free) 인증 확대 캠페인 스티커가 붙어 있다. 참석자들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 등이 계단 앞에서 처한 난감한 상황’을 표현한 스티커를 붙이며, 시민들에게 인증 제도 확대를 알렸다.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 모든 시설 이용자가 각종 시설물을 더욱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지정기관이 편의시설의 설치·관리 여부를 평가하여 인증하는 제도로 2008년 시행됐다. 2021년 12월에 민간 시설물로 확대됐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19일 오후 서울역 들머리 계단에 이제석 광고연구소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펼친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F·Barrier Free) 인증 확대 캠페인 스티커가 붙어 있다. 참석자들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 등이 계단 앞에서 처한 난감한 상황’을 표현한 스티커를 붙이며, 시민들에게 인증 제도 확대를 알렸다.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 모든 시설 이용자가 각종 시설물을 더욱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지정기관이 편의시설의 설치·관리 여부를 평가하여 인증하는 제도로 2008년 시행됐다. 2021년 12월에 민간 시설물로 확대됐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서울시 공무원이었던 김지철(가명·62)씨는 1994년 새벽, 회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다 차에 치여 4년간을 꼬박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에 누워있었다. 퇴근 뒤 행정대학원에 다니며 일본 연수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다행히 지철씨는 의식과 기억을 되찾았지만, 팔과 다리는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의 나이 불과 38살이었다. 김씨는 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았다.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배양 연구’가 성공하면, 다시 걸을 수 있을거라 믿었다. 하지만 2004년 김씨의 유일한 희망은 절망이 됐다. 김씨 가족은 “줄기세포를 배양해 손상된 부위를 회복하면 휠체어를 타지 않을 수 있다고 기대했는데 사기라고 하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며 “동생은 밥 먹기를 거부하고 죽고싶다고 했다. 12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려고 했을 때 ‘같이 따라 죽자’며 함께 울었다”고 말했다. 이후 지철씨는 3년 동안 우울증약을 먹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장애인의 절반 이상이 지철씨와 같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다고 생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높은 자살률과 달리 이들을 위한 자살예방 프로그램은 부재해, 체계적인 예방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보건복지인재원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으로부터 받은 ‘장애인 자살예방교육프로그램개발 연구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12월14일부터 21일까지 설문조사에 참여한 103명의 장애인 가운데 54.4%가 ‘자살을 생각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실제 자살 시도를 했다는 응답자도 46.4%에 달했다.
 
연구팀은 사회의 차별적 시선과 왜곡된 인식이 장애인들의 우울감을 키우고, 높은 자살률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지철씨 가족도 일상에서 반복되는 차별이 고통을 키운다고 지적했다. 지철씨 누나 김진주(가명·68)씨는 얼마 전 날씨가 좋아 장애인 동생과 근처 공원으로 외출을 하려다 어르신들로부터 “코로나19도 있는데 집에 있지 뭐하러 나왔냐”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중증 지체장애인인 동생을 전동휠체어에 태우고 함께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였다. 김씨는 “혀를 쯧쯧 차며 말하는데 가슴이 너무 아팠다. 우리나라는 장애인 인식이 개선되려면 아직도 멀었다”고 울먹였다.
 
장애인들이 겪는 심리적 어려움은 보고서에 담긴 심층면접 결과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 장애인은 조사에서 “10살 때 처음 한글을 떼자마자 죽고 싶다는 말을 썼다. 왜냐하면 시설에서 인권 보장이 안된다”며 “16살까지 남자와 여자가 구분이 안돼 (함께) 목욕을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장애인은 “직장에 들어간 뒤 적응을 못해 4평짜리 자취방에서 수면제를 모아뒀다 먹었다”라고 고백했다. 실제 2020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20년 장애인의 국가건강검진 우울증 검사 비율을 보면, 장애인의 수검률은 63.7%로 암 등 일반검진 수검률(61.4%) 보다 높았다. 같은해 일반인들이 우울증 검사(62%)보다 일반검진(68.1%)을 더 받는 것과는 정반대의 양상이다. 하지만 정작 우울증 진료를 받은 장애인은 전체 장애인의 2.3%에 불과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살로 인한 장애인의 조사망률(전체 인구 대비 1000명당 사망자 비율)은 전체인구 조사망률과 견줘 2배 이상 높다. 국립재활원 자료를 보면, 2020년 고의적 자해(자살)로 인한 장애인 조사망률은 57.2명으로 전체인구 자살 조사망률(25.7명)보다 2.23배 높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최근 3년간 자살로 인한 장애인 조사망률은 62명→61명→57.2명으로 감소 추세지만 전체인구 조사망률과 견줘 2.2∼2.3배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장애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끊으려 시도하는 사례가 줄지 않고 있지만,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자살 예방교육은 마련돼 있지 않다. 김진주씨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자살 예방 프로그램이나 활동지원사 외 전문 상담인이 한 달에 20분이라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전해주며 활력을 주고 정신적인 돌봄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혜영 의원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장애인의 경우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인한 우울과 불안 등에 쉽게 노출되기 때문에 장애인 자살은 사회적 문제로 여겨야 한다”며 “장애인 자살 위험을 낮추기 위한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하고 이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계적인 자살예방프로그램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애인 자살예방교육프로그램개발 연구’에 참여한 이기연 한국보건복지인재원 교수는 “그동안 장애인 자살 등 문제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생각하고 신체적인 어려움에만 초점을 맞췄다. 장애인의 심리적 어려움을 세밀하게 살피지 못했다”며 “이번 연구를 토대로 장애인 자살 예방교육 프로그램 시행과 더불어 장애인 이동권과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이 같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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