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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성 아니냐'... 천안시에 기적 같은 일 일어났지만...

[최병성 리포트] 환경과 개발이 조화를 이루면 도시의 자랑이 된다

22.04.21 06:01최종 업데이트 22.04.21 06:01

▲ 3면이 바다로 둘어쌓인 한반도를 빼닮은 서강의 한반도지형 ⓒ 최병성

 
위 사진은 통일된 한반도를 상징하는 영월 서강의 한반도 지형이다.

이곳이 처음부터 유명지는 아니었다. 문화재청은 2011년 6월 7일 서강의 한반도지형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75호로 지정했다. 그러나 이곳은 내가 1999년 12월 20일 처음 발견해 세상에 공개했다.

 당시 영월군은 한반도 지형의 중간을 절개하고 높이 20m의 기둥을 세워 서강을 가로지르는 도로 건설을 진행 중이었다. 영월군에 한반도지형을 보전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영월군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그까짓 지형 하나가 뭐가 중요하냐?"는 것이었다.

영월군수는 요지부동이었다. 이미 결정된 자신들의 도시정책만 고집할 뿐, 한반도지형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주민들과 함께 거리로 나섰다.
  

▲ 서강과 한반도지형 보전을 위해 주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 최병성

 
영월 오일장이 열리는 날마다 동강교 위에서 한반도지형 보전을 위한 10만인 서명 운동을 전개했다. 영월문화예술회관에서는 서강 사진전을 열었다. 사진전 후엔 서울 지하철2호선 삼성역 역사 안에서 전시하며 오가는 서울 시민들에게도 한반도지형 보전을 위한 서명을 받았다. 결국 영월군이 도로건설계획을 변경했다. 건설 중이던 도로가 한반도지형을 훼손하지 않도록 노선을 변경한 것이다.

영월군 공무원들은 "그깟 지형 하나가 뭐 중요하냐?"고 내게 반문했지만, 그깟 지형 하나를 잘 보전한 결과, 지금은 영월군을 먹여 살리는 영월 최대 관광자원이 되었다.
  

▲ 전국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서강의 한반도지형 ⓒ 최병성

 
이제 막개발의 시대는 지나갔다. 기후 위기 시대에는 환경 보전과 개발이 조화롭게 상생하는 도시정책이 중요하다. 한 도시 안에 있는 자연 자원을 어떻게 잘 보전하느냐에 따라 도시의 가치가 올라가고 시민들이 살고 싶은 도시가 되기 때문이다.

천안시의 이율배반

충남 천안시는 '업성저수지'를 생태공원으로 조성 중이다. 773억 원의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성성물빛호수공원'으로 이름도 바꾸었다.

2018년 10월 2일 열린 '업성저수지 개발을 위한 실시설계용역 주민설명회'에서 구본영 당시 천안시장은 "업성저수지는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천안시민 모두에게 중요한 생태공원"이라며 "업성저수지를 한국농어촌공사와 함께 천안시민의 휴식처이자 랜드마크로 조성하겠다"고 강조했다.

업성저수지는 천안시민의 휴식처이자 천안시의 랜드마크가 될 만한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다른 지자체의 도심 저수지에서 만나기 어려운 세계적 희귀 철새 노랑부리저어새가 찾아오고, 천연기념물 원앙과 뿔논병아리 등 다양한 철새들이 머물고, 멸종위기종인 금개구리와 맹꽁이 등이 살만큼 생태계가 잘 보전된 곳이기 때문이다.
  

▲ 노랑부리저어새와 원앙과 뿔논병아리 등이 살아가는 업성저수지 ⓒ 최병성

 
생태공원으로 조성 중인 업성저수지 공사 현장을 몇 차례 돌아보았다. 하지만 천안시민의 휴식처요, 천안시를 상징할 수 있는 랜드마크가 아니었다. 막대한 국가 예산을 퍼부어 생태계를 파괴하고, 카페와 아파트의 사유물로 만드는 난개발에 불과했다.

[관련기사]
천안 호수공원의 충격, 다음 피해자는 천안시민들?(http://omn.kr/1y9e5)

업성저수지 개발 계획 중 저수지의 식생을 원래 그대로 보전하는 습지는 딱 두 곳뿐이다. 그러나 그중 남쪽 수변에 있는 습지 바로 옆엔 카페와 빌라들이 들어섰다. 수변 가까이 산책로가 만들어졌다. 습지를 보전했다고 주장하지만, 이곳은 더 이상 생명들이 살아갈 수 있는 습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 습지를 그대로 보전했다고 하지만, 바로 곁에 고층 아파트와 카페와 빌라들로 가득하다. 더 이상 이곳에 생명들이 살 수 없다. ⓒ 최병성

   
철새들의 쉼터 역할을 할 수 있는 습지는 이제 단 하나 남았다. 버드나무 군락이 있어 업성저수지에서 환경이 가장 좋은 습지다. 노랑부리저어새도 이곳을 좋아한다. 수면이 낮고 먹을 것이 풍부하고 사람들의 발걸음으로부터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천안시는 습지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시민들의 산책로를 설치했다. 습지의 소중한 생태 공간을 단절시킨 것이다. 그 결과 비행을 위해 넓은 활주로가 필요한 철새들에게 치명적인 흉기가 되었다. 수시로 오가는 사람들로부터 위협을 느끼는 노랑부리저어새와 철새들이 과연 이곳에 계속 머물게 될지 의문이다.
 

▲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전된 습지이지만, 중간을 가로지르는 데크가 건설되었고, 양변에 39층 고층아파트 건설이 추진 중이다. ⓒ 최병성

 
실제 그 많던 원앙의 수가 급감했다. 습지의 갈대 속에 조잘거리던 개기비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멸종위기 2급인 흰목물떼새도 생태공원 조성 사업 이후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흰목물떼새는 물가의 낮은 모래자갈밭에 산란하는데, 수변을 따라 건설된 데크 탓에 살아갈 공간이 없어진 것이다.
  
환경부는 호수를 보전하라고 했건만

업성저수지 생태공원 조성 사업은 농림축산식품부와 천안시가 함께 하는 사업이다. 농어촌공사가 업성저수지 관리 주체이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 홈페이지에서 업성저수지 개발을 위한 전략 환경영향평가서 검토 의견을 살펴보았다.

환경부는 '항목별 검토의견' 중 자연환경의 보전을 위해 "호소 가장자리(특히 하천수가 유입되는 지역)의 수생식물군락은 어류의 산란장, 치어 생육장소 등의 역할이 있는바, 공사 시 훼손이 최소화되도록 사업계획을 수립하여야 함"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농림부는 '호수 가장자리 훼손을 최소화하여 산란장, 치어 생육 장소로 유지될 수 있도록 계획을 수립하였다'며 환경부의 지시 사항을 반영했다고 밝혔지만 사실은 달랐다. 물 위에 데크를 건설하면서 수변이 초토화된 것이다.
  

▲ 호수가를 보전하라고 의견 제시한 환경부. ⓒ 농림축산식품부

 

▲ 물고기들이 산란하고, 철새들의 보금자리인 저수지 호수가 수면 위에 산책용 데크를 설치했다. ⓒ 최병성

 

▲ 수면 위에 산책용 데크를 건설하며 저수지 가장자리가 초토화되었다. ⓒ 최병성

 
게다가 업성저수지의 남은 생태계를 파괴하는 더 큰 위협도 시작되고 있다. 천안시가 습지 양변에 39층 고층 아파트 건설 계획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저수지 남동쪽 수변은 고층아파트와 빌라와 카페와 골프연습장 등이 빈틈없이 들어섰다. 동쪽 상단 수변은 저수지 둑과 도로가 차지했다. 자연형태로 남은 곳은 저수지 북쪽 수면 딱 한곳뿐이다.

업성저수지 북쪽 수면부엔 두 개의 지형이 저수지 중앙부로 돌출되어 있고, 그 사이가 식생이 그대로 보전되는 습지다. 노랑부리저어새가 찾아오고, 원앙과 많은 철새들이 살아가기 좋아하는 곳이다. 이곳 수변 가까이에 업성지구, 업성2지구라는 이름으로 39층 아파트가 들어 설 예정이다.

업성저수지에서 유일하게 남은 습지 양변에까지 39층 아파트를 건설해야 할 정도로 토지가 없는 걸까. 아니다. 그 뒤편으로 충분한 토지가 존재한다. 토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도심 속 호수공원의 가치를 모르는 천안시의 무지한 도시계획 때문이다.
  

▲ 천안시가 개발 계획 중인 업성지구와 업성2지구 뒤편에 아파트를 지을 충분한 공간이 있다. ⓒ 최병성

 
천안시는 고층 아파트를 건설하는 두 개의 사업을 동시에 추진 중이다. 도시계획이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전형적인 난개발이다. 사업자가 소유한 토지 모양에 따라 기괴한 형태로 진행되는 무계획적인 아파트 건설에 불과하다.

천안시의 도시계획대로 업성지구, 업성2지구에 39층 아파트가 들어서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난개발 천국으로 유명한 경기도 용인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최근 용인시는 인구 100만이 넘는 특례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사업자가 신청하는 대로 아파트가 우후죽순 들어선 된 결과, 환경 파괴는 물론 도로는 좁고, 공원은 찾아보기 어렵다. 과밀학급이 된 학교는 교육 환경이 더더욱 열악하다. 수도권에 위치한 덕에 베드타운으로 인구만 늘었을 뿐, 지금도 도시 곳곳에 난개발로 인한 시민들의 아우성이 빗발치고 있다.

다른 지자체 호수공원 좀 보라

지난 4월 12일 경기도 수원 광교저수지를 살펴보았다. 광교저수지는 벚꽃 구경 나온 시민들로 인산인해였다. 광교저수지 역시 업성저수지처럼 저수지 수변을 따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동일한 형태의 데크였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천안시는 물 위에, 수원시는 물가에 산책로를 조성한 것이다. 
   

▲ 물 위에 산책로를 만들어 생태계를 파괴한 천안시와 물가에 산책로를 만든 수원 광교저수지. 무엇이 옳은 방법일까? ⓒ 최병성

 
더 큰 차이는 벚꽃 터널이었다. 업성저수지는 산책용 데크가 물 위에 만들어져 그늘 한 점 없다. 그러나 광교저수지는 시민들이 걷는 산책로 위로 벚꽃이 터널을 이루고 있었다. 봄 햇살이 따가웠지만, 꽃 터널 덕분에 양산을 편 사람이 없었다. 이곳은 무더운 한여름에도 시원한 그늘을 걷는 행복한 산책로가 되어주고 있다. 광교저수지가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장소가 된 이유다.

광교저수지 철새들의 환경은 어떨까? 산책로가 수변에 조성되고, 물가 습지는 그대로 보전되었다. 철새들의 터전을 침범하지 않고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으로 계획된 것이다.
  

▲ 환상적인 벚꽃터널 속을 걸을 수 있는 수원 광교저수지 ⓒ 최병성

 
일산 호수공원 주변에도 고층아파트와 빌딩들이 많다. 그럼에도 일산 호수공원이 고양시의 랜드마크가 된 것은 호수와의 충분한 이격거리를 두고 나무를 심고 다양한 문화광장들을 조성했기 때문이다.

천안시의 랜드마크 만들려면

노랑부리저어새와 고라니를 사진 한 장 속에 촬영하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지난 기사가 보도된 후, 천안 지역의 시민단체에 합성 사진이 아니냐고 물어오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천안지역 시민들도 업성저수지의 소중한 생태를 지금까지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 많은 독자들이 합성이 아니냐고 믿기 어려워했던 장면이다. 노랑부리저어새와 외가리와 고라니를 사진 한장에 담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 최병성

 
천안시의 업성저수지 개발 계획은 폭력적이다. 저수지에 살아가는 생명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 생태공원이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저수지의 소중한 생태를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제 국가 예산을 들여 환경을 파괴하는 난개발을 멈추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개발로 도시정책의 패러다임이 변화되어야 한다.

수많은 생명들이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수변 가까이에 계획 중인 고층 아파트를 조금만 뒤로 물러서 철새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고, 시민들이 시원한 나무 아래 걸을 수 있도록 나무를 심을 충분한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업성저수지 수면 위에 설치된 데크 중 유일하게 보전된 습지 중앙을 가로지르는 부분을 철거하여 습지 뒤로 돌아가도록 설치해야 한다. 습지 주변에 나무를 심어 업성지구와 업성2지구의 녹지가 연결되게 해야 한다. 철새들도 안전하고, 시민들도 행복한 산책로가 되는 최고의 방법이다.
  

▲ 습지 중앙을 가로지르는 데크를 철거하여 습지 뒤편을 우회하도록 변경 설치해야 하며, 습지 둘레에 나무를 심어 철새들이 안전하고 시민들에게 시원한 산책로를 조성해야 한다. ⓒ 최병성

 
영월군은 한반도지형의 보전을 위해 공사 중임에도 도로 건설 노선을 수정했다. 그 결과 영월군 최고의 관광자원이 되었다. 천안시는 이제 겨우 도시개발사업지구 지정을 위한 공고 공람 후 시민 의견을 받은 상태다. 앞으로 도시계획심의위원회도 남아 있다. 난개발이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는 도시계획이 되기 위해 천안시가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된다.

업성저수지가 노랑부리저어새와 고라니가 함께 뛰노는 호수공원으로 거듭난다면 업성저수지는 천안시의 자랑스런 랜드마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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