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섭 기자 | 기사입력 2022.04.21. 15:59:21 최종수정 2022.04.22. 10:07:05
"단식농성이 3주가 넘어갈 때까지 회사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있다. 13일째에 (사측에서) 처음 천막을 찾아왔는데, 단식 중인 저한테 비타500을 주고 가시더라."
임종린 전국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 지회장의 단식투쟁이 21일자로 25일째를 넘어섰다. 2007년 파리바게뜨에 입사해 제빵기사로 일한 임 지회장은 2017년 "좀 쉬게 해 달라"며 파리바게뜨 지부 노조를 설립했다. "주휴 개념도 없이 한 달에 20일을 연속으로 근무"하고 "점심시간이 보장되지 않아 식사조차 제대로 못하고" 일하는 게 당시 제빵기사들이 겪는 노동환경이었다.
'월 6회 이상 휴무, 점심시간 보장' 등 상식선의 노동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조는 SPC그룹의 불법파견 문제를 파고들었지만, 돌아온 것은 "앞에서는 합의하자고 하고, 뒤에서는 노조 탈퇴를 강요하는" 식의 부당노동행위였다고 임 지회장은 회상한다. "고소도 하고 농성도 하고,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지노위와 중노위의 인정까지 끌어냈지만" 사측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뭘 해도) 안 되는구나, 도저히 문제가 풀리지가 않는구나, 그런 마음에 (단식을) 시작했다."
갖은 시도가 좌절된 끝에 지난달 28일 임 지회장은 곡기를 끊었다. "끝장을 봐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SPC 그룹 본사 건물 앞 한 칸 남짓한 농성천막 안에서 그를 만났다. 단식투쟁 23일째였다. 건강상태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아직 버틸 만 하다"고 짧게 대답했다. 얼마 전 천막에 연대 방문한 의료노조 조합원들은 그의 혈당과 혈압이 낮아지고, 불규칙해져 있다고 진단했다.
단식투쟁 13일째, 회사는 해결책 대신 '비타500'을 건넸다
지난 9일, SPC그룹 본사 소속 조용찬 상무가 천막을 찾았다. 단식투쟁이 13일째에 접어든 때였고, 사측의 첫 번째 방문이었다. 그날 조 상무와의 대화를 두고 임 지회장은 "그야말로 아무 말 대잔치였다"고 평했다. 실질적인 해결 의지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와서 한다는 말이 이거 (단식) 왜 하고 있냐는 말이었다. 지노위, 중노위 판정을 못 본 거냐고 물었다. 그러니까 봤다고 하더라. 그럼 뭘 또 물어보냐고,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하니, 아직 법적으로 해결이 안 난 사안이라며 (요구를 거부)했다."
그러면서 사측은 "대체 무엇을 원하냐"고 집요하게 물었다. 임 지회장은 "(방문한 사측 인사가) 계속 '속마음이 뭐냐'고 물었다"며 "마치 (투쟁에) 개인적인 목적이 있는 것처럼 (사측이) 생각하는 듯했다"고 그날 대화의 흐름을 되짚었다. 여전히 쉬지도 못하고 일하는 기사들에 대한 대책이나 합의안은 "아무것도 없었다."
해결안 대신, 조 상무는 비타500 한 박스를 임 지회장에게 건넸다. 현재 천막에선 단식을 이어가는 임 지회장은 물론 연대 방문하는 조합원들 모두가 음료와 식품을 섭취하지 않는다. "단식 중인데 이걸 가져온 거냐" 물으니 "단식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 않느냐, 국회의원들도 다 먹어가면서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측의 태도는 그 후에도 이어졌다. 18일 "정식으로 만나자"는 SPC그룹 측 요청으로 노조 관계자들이 협상을 위해 더K호텔을 찾았다. 노조는 "그 자리에서도 어떤 해결안도 확인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임 지회장은 "노조가 이미 작년부터 요구를 명확히 했는데도 (SPC그룹은) 요구안이 뭔지를 묻기만 했다"며 "왜 계속 똑같은 질문만 반복하는지 우리도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노조에 따르면 해당 간담회에서 회사는 "(SPC그룹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냐" 묻기도 했다. 임 지회장의 단식투쟁 소식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현재 소비자들 사이에선 샤니, 삼립, 파리바게뜨, 던킨도너츠, 배스킨라빈스, 포켓몬 빵 등 SPC그룹 소속 브랜드의 불매운동이 번져나가는 상황이다. 임 지회장은 "노조가 불매를 주도하고 있는 게 아니다"면서도 "단식으로 죽어가는 직원보다 장사가 더 걱정된 것"이라고 SPC그룹 측의 태도를 꼬집었다.
"코로나 검사도 못 받게 해" … 여전히 가혹한 파리바게뜨 기사들 노동환경
"월 6회 이상 쉴 수 있게 해 달라, 연차나 복원휴가를 사용할 수 있게 해 달라, 점심시간 1시간만 보장해 달라, 일한 만큼 연장수당을 제대로 지급해 달라... 이렇게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니 노조탄압이 시작됐다. 노조가입 여부에 따라 진급을 차별하고, 관리자들이 노조 탈퇴를 강요하고..."
'노조 요구안은 이미 명확하다'는 임 지회장의 말처럼 파리바게뜨 단식투쟁 사태는 그 쟁점이 명확한 편이다. 한 축은 2017년 노조 설립 당시부터 제기된 임금 체불, 적정 휴무의 불보장 등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에 대한 처우 문제고, 또 한 축은 그 투쟁 과정에서 나타난 민주노총(화섬노조) 소속 조합원들에 대한 사측의 노조 탈퇴 강요·회유 등 부당노동행위 문제다.
17년 말,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노동자 처우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지적된 파리크라상(파리바게뜨) 측 노동자 불법파견 문제를 인정하며 사측에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18년 1월엔 노사 및 점주협의회와 정당, 시민대책위 등 7자가 △본사가 책임지는 자회사로의 직고용 △3년 내 본사 정규직과의 동일임금 보장 △부당노동행위자 징계 등을 내용으로 담은 사회적 합의를 도출했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선 열악한 노동환경도, 부당노동행위도 개선되지 않았다. 해당 문제들은 "22년 현재까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임 지회장은 "(회사가) 코로나 확진자 증가 때문에 지금은 휴무 보장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인력 부족 문제는 코로나 이전부터 지속돼온 문제다"라며 현장 기사들이 최근 겪고 있다는 인력 문제를 꼬집었다. 현장의 인력 부족 문제는 코로나로 인한 돌발 상황이 아니라, 가혹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퇴직자가 많아져 생긴 만성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월 4회 쉬는 분들이 굉장히 많다. 더구나 코로나 이후 52시간 특별연장근로를 (회사가 노동부에) 신청한 상황에, 연장근로에 동의하지 않은 분들에게는 근무시간을 1시간만, 30분만 줄여서 써달라는 식으로 '유령노동'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유행이 심화하면서는 기사들의 건강권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임 지회장은 "조합원들은 물론 비조합원들한테도 연락이 온다"며 현장 기사들이 직접 전한 현재의 상황을 설명했다.
"근무 중 자가 검사로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은 한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회사에 그 사실을 보고하자, 회사는 '점주에게 비밀로 하고 퇴근 이후에 검사를 받으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증상이 있어서 검사를 받고 확진 판정을 받으면, 오히려 왜 검사를 받아서 (업무에) 차질을 빚느냐고 혼을 낸 경우도 있다. 코로나 증상이 심해서 출근 못하겠다는 노동자를 억지로 출근시켰다는 말도 나온다."
임 지회장은 관련 문제를 종합해 사측에 항의했다. "기사를 사람으로 보긴 하는가" 싶었다. 더구나 양성 판정을 받은 기사를 점주도 모르게 근무시키는 일은, 기사의 건강권은 물론 점주와 소비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기도 했다. 회사의 태도는 단호했다. 임 지회장의 항의엔 "인력이 너무 부족하다, 관리자들도 오죽하면 그랬겠느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결국은 돈 문제다. 인력부족 문제의 근본 해결책은 사람을 더 뽑고 근무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다. 당장 그렇게 하기 힘들어도 방법은 있다. 점포 운영을 쉬면 된다. 파리바게뜨가 무슨 국가사업도 아니지 않나. 점포들이 돌아가면서 하루씩만 쉬어도 기사들 휴무가 보장된다. 점포 문은 죽어도 못 닫겠다고 한다. 심지어 가맹점주가 확진이 되어서 휴무를 요청해도 점포 문을 못 닫게 한다."
민주노총 조합원을 대상으로 노조 탈퇴를 강요하거나 회유하는 부당노동행위도 "현장에선 여전하다." 임 지회장은 특히 SPC그룹이 "18년 사회적 합의 이행 과정에서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을 패싱"했다고 주장한다. 18년 사회적 합의 체결 이후 이행 기일이 다가오자 사측이 "교섭은 한국노총과 하겠다"고 통보하고 일방적으로 '합의가 이행됐음'을 선포했다는 것이다.
이에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이 반발하자, 사측의 "적극적인 노조탄압이 시작됐다." 지난 12일 민변 등 노동법률단체들의 성명에 따르면, SPC그룹 측은 △민주노총 조합원 탈퇴 시 해당 관리자에게 포상금 지급 및 탈퇴자 한국노총 가입 시 추가포상금 지급 △육아휴직 중이던 조합원에게 노조 탈퇴를 강요 △신입사원에게 한국노총 가입서 작성 요구 △민주노총에 대한 진급차별 △위조탈퇴서 제출 등의 부당노동행위를 전개해왔다. 설립 이후 760명까지 불어났던 조합원 수도 현재 210명까지 줄어들었다.
고용노동부는 SPC그룹 측 관리자 지위의 제조장 3명을 해당 혐의들로 검찰에 송치한 상태다. 노동부는 지난 1월 노동조합 가입에 따른 진급차별 등의 혐의로 SPC그룹 측 전체 9개 지역본부장 중 6명을 검찰에 송치하기도 했다. SPC그룹은 해당 혐의들은 "(혐의를 받는) 개인의 돌발행동"이며, 문제가 된 제조장들 대해서도 "관리자가 아니라 노동자"라고 주장했다.
6년째 접어든 투쟁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17년도부터 지금까지 햇수로는 벌써 6년째다. 여러 가지 약속이나 합의가 있었지만 그것이 제대로 지켜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단식투쟁이라는, 다소 극단적인 투쟁 방식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임 지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주변 조합원도 "몸부터 챙기면 안 되겠느냐" 걱정하지만 "계속 싸우고 투쟁해야 한다"는 그의 결심엔 변함이 없다. 그는 "처음 외쳤던 '쉬게 해 달라'는 요구 사항조차 여전히 요원한 상황"을 투쟁의 이유로 꼽았다. 지난 6년간의 싸움 끝에 임 지회장이 가졌던 "회사에 대한 믿음은 완전히 사라졌다."
"합의해 놓고 안 지키고, 또 어느 정도 약속 받고, 뒤집고... 이런 식으로는 답이 안 나온다. 이 투쟁이 내년에 또, 내후년에 이어지게 할 수는 없었다. 그냥 이번 기회에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사회에선 임 지회장과 연대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20일엔 4000명 이상이 참여한 'SPC 파리바게뜨 노조 탄압 문제 해결 촉구를 위한 시민선언'이 일간지 신문에 게재됐다. 농성장 인근의 거주민이 임 지회장을 응원하기 위해 천막을 방문한 경우도 있다. 최유경 파리바게뜨 지부 수석부지회장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SPC 본사 건물 옆 아파트에 거주하는 한 시민께서 19일 밤 응원 차 방문했다"며 "어렵게 투쟁하고 있는 걸 알고 있다고 응원의 뜻을 전했다"고 시민과의 일화를 소개했다.
다만 임 지회장의 단식이 25일째를 맞이한 21일 현재까지 SPC그룹은 단식투쟁에 대한 별다른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19일 천막을 방문했던 일화 속 시민은 "SPC 측에서 인근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상품권을 돌렸다"는 이야기를 전해오기도 했다. 해당 아파트 입구엔 현재 집값 하락과 소음 등을 이유로 집회를 비판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에 일각에선 'SPC 측이 노조에 대한 혐오적인 여론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인다.
임 지회장은 "21일 회사를 다시 만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그 만남으로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다소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한 번 이슈가 크게 터지면 대화하는 척만 하던 게 지금까지 사측의 태도였다"며 "이젠 달라야 한다.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사측이 직접 마련해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서초구 SPC그룹 본사 건물 옆 주상복합 아파트 한솔로이젠트의 입구에 걸려있는 현수막 ⓒ프레시안(한예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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