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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원전·친기업 정부의 에너지정책 방향에 쏟아지는 우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2/07/11 10:13
  • 수정일
    2022/07/11 10:13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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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에너지 소외로 수출 경쟁력·전력망 안정성 우려…재계 민원 수용 내용에 공공성 저해 비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9일 오후 경북 울진군 신한울원자력 발전소 3,4호기 부지에서 원전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1.12.29 ⓒ뉴스1 
 
정부가 최근 발표한 에너지정책 방향은 탈원전을 뒤집기 위한 근거 마련 성격을 띤다. 재생에너지는 소외됐다. 전력망 안정성을 해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9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5일 ‘새 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골자는 ‘탈원전 폐기’의 본격화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탈원전 정책을 강하게 반대해왔다. 지난달에는 ‘바보짓’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원전 비중을 2021년 27.4%에서 2030년 30% 이상으로 늘린다.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에 대해서는 ‘합리적으로’ 재정립하겠다고 밝혔다. ‘하향 조정’으로 읽힌다. 전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두고 “간헐성과 입지·수용성 문제 등에도 불구하고 급격하게 보급을 추진했다”고 평가했다. 온실가스 주범인 석탄 발전 축소는 유보적이다. 전력 수급을 고려해 탄력적으로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전원별 발전 비중은 올해 4분기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할 때 확정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2030년 전원별 발전 비중 계획이 원전 확대, 석탄 발전 유지, 재생에너지 감소의 경향성을 보일 것이라고 우려한다.

장다울 그린피스 정책전문위원은 “주요 국가가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를 위해 재생에너지 목표량을 대폭 상향하고 있다고 분석하면서도, 한국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는 하향시키려는 모순된 방향을 잡았다”고 비판했다.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명시했다. 올해 120억원 규모의 설계 분야 일감을 조기 집행한다. 노후 원전 수명도 연장한다. 향후 세워질 원전을 포함해 2030년 총 28기를 돌릴 계획이다. 지난해 정부가 2030년 가동 원전 수를 18기로 줄이겠다고 한 정책 방향을 뒤집은 것이다.

에너지정책의 급격한 선회가 법적 근거를 결여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현행법상 발전소 건설은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 포함돼야 한다. 15년간의 전력수급계획을 담은 전기본은 2년 주기로 수립한다. 전기본은 에너지기본계획(에기본)에 토대를 둔다. 에기본은 20년간의 계획을 5년 주기로 수립한다. 현재의 제3차 에기본은 2019년 확정됐으며, 차기 계획은 2024년 수립해야 한다.

정부는 이번 에너지정책 방향으로 법정 계획인 제3차 에기본을 대체한다고 밝혔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 활동가는 “정부의 희망과 바람을 담은 비법정 계획인 ‘새 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으로 제3차 에기본을 대체한다는 건 법치주의 행정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2018년 전북 군산시 유수지 수상태양광부지에서 열린 '새만금 재생에너지 비전 선포식' 행사를 마치고 수상태양광 시설을 돌아보고 있는 모습. ⓒ뉴시스

“RE100 문제없다” 눈 가리고 아웅

정부의 소극적인 에너지 전환이 수출 기업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글로벌 기업에 납품하는 기업은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도록 압박받는다.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을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하는 RE100 가입 기업이 늘고 있다. 상당수 기업이 자사뿐 아니라 협력사에도 RE100 가입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 인식은 안일하다. 산업부는 지난 6일 설명자료를 내고 “국내 RE100 기업들의 이행에 차질이 없도록 관련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업이 재생에너지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에너지정책 방향에서 재생에너지 확대 방안이 빠졌다는 지적에 대한 해명이다.

산업부는 재생에너지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RE100에 가입한 21개 한국 기업의 전체 전력 사용량은 25TWh 규모로, 올해 재생에너지 발전 예상량 44TWh의 절반 수준이라는 것이다.

현재 RE100 가입 기업은 일부에 불과하다. 전력 사용량이 많은 기업은 가입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전력을 쓰는 삼성전자가 대표적이다. 2위 현대제철도 마찬가지다. 두 기업이 한 해 쓰는 전력은 30TWh에 육박한다. 이들만 RE100에 가입해도 재생에너지가 모자라게 된다. 2019년 기준 전력 소비 상위 50대 기업 가운데 RE100 가입 기업은 5곳 정도에 불과하다. 재생에너지가 충분한 것이 아니고, 재생에너지 조달이 난망해 기업이 선뜻 RE100에 가입하지 못하는 것이다. RE100 가입 기업 업종을 보면, 전력 사용량이 큰 제조업·철강 기업은 소수이고, 생산 공장이 없는 통신사·금융사·지주사가 상당수를 차지한다.

이지언 활동가는 “전력 다소비 기업은 아직 RE100에 들어오지 않았다”며 “정부 해명은 지나치게 방어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뉴시스

안정성 우려되는 원전 중심 전원 믹스

탈원전 폐기와 재생에너지 속도 조절은 공급 관리 측면에서 효율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공급 관리에 실패하면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이 발생할 수 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초과하면 전력망에 과부하가 걸린다. 한국도 2011년 전국적인 정전이 약 5시간 이어진 적이 있고, 이후에도 국지적인 정전을 수차례 겪었다.

원전과 재생에너지 조합은 공급 관리가 취약하다. 원전은 전력 수요에 따라 발전량을 조절하기 어려운 이른바 ‘경직성 전원’이다. 일종의 냉각재를 사용해 전력 발전량을 조절할 수는 있으나, 시간이 오래 걸려 실시간으로 대응할 수 없다. 재생에너지는 기후환경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진다. 날씨가 좋을 때 생산한 전력을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저장해놓고 필요할 때 쓰는 방법이 있으나, 비용이 많이 든다. 재생에너지 변동성을 보완할 전원이 필요한데, 원전은 그 역할을 수행하기에 부적합하다.

통상 재생에너지 비중이 20% 수준이 되면 불안정성이 발생한다고 본다. 정부가 재생에너지 목표 비중을 하향한다고 해도, 2030년에는 20%대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30%로 잡았다. 재생에너지 확대로 변동성 보완 중요성이 커지는 시기에 신한울 3·4호기가 완공되는 것이다.

구준모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기획실장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졌을 때 원전 중심의 전원 믹스는 전력망 운영 안정성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대접견실에서 한화진 환경부 장관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2.07.06. ⓒ뉴시스


공공성 결여된 재계 민원 수용

이번 발표에는 재계 민원이 반영됐다. 대표적인 게 민간 LNG 도입 확대다. 에너지 공급망 강화를 위한 수입선 다변화 방안으로 제시됐다. 산업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된 건 아니다”라며 “기업 애로사항이 있으면 해소해주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GS EPS, SK E&S, 포스코에너지 등 재벌 그룹 LNG 발전 계열사는 외국에서 가스를 들여와 전력을 만들어 한국전력에 판다. 각사 연간 영업이익은 수천억원에 이른다.

민간 LNG 발전사는 가스를 한국가스공사로부터 조달하거나, 국제 시장에서 직수입할 수 있다. 두 조달처를 저울질하며 유리한 가격에 사 온다. 국가적인 에너지 조달 차원에서 보면, 민간과 가스공사가 경쟁하는 구조다. 민간이 국제 시장에서 각자 조달하도록 열어두면 가스공사 구입 물량이 줄어 가격 협상력이 떨어진다. 최근 한전과 발전자회사가 재무개선을 위해 유연탄을 공동 구매해 구입단가를 절감하겠다고 한 것과 반대된다. 민간 LNG 도입이 공공성을 해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기업의 비용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정부는 민간의 자발적 탄소중립 투자 활성화를 명분으로 배출권거래제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신·증설 공장에 대한 배출권 추가 할당 조건을 완화한다. 에너지정책 방향 발표 전후 대한상공회의소가 환경부에 건의한 내용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일정 규모 이상인 기업은 정부가 매년 배출권을 준다. 할당량을 초과해 온실가스를 배출한 기업은 배출권 거래 시장에서 배출권을 사야 한다. 배출권이 남는 기업은 팔 수 있다. 할당량은 기업의 배출량에 비례한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면 배출권을 많이 준다. 배출권의 90%는 무상이고, 유상 비율은 10%에 불과하다.

신설 공장은 첫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어 배출권을 충분히 못 받는다는 게 재계 불만이다. 현재는 새로 구축한 시설을 가동해, 해당연도 예상 배출량이 전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하면 배출권을 추가 할당한다. 재계는 증가 폭 기준을 1.5배로 완화해달라고 요청한다. 반도체 기업을 중심으로 증설 시설에 대한 추가 할당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재계 입장은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배출권이 모자라면 돈을 내고 사면 될 일이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배출권 할당량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의 배출권 할당량은 2030년 NDC 목표를 상향하기 전에 산정됐다. 지난해 정부는 2030년 NDC 목표를 기존 26%에서 40%로 높였다. 국가 차원에서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강화된 만큼 기업의 배출량을 줄여야 셈이 맞다.

한편, 환경부와 대한상의는 지난 6일 규제 핫라인을 구축하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기업이 탄소중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규제 걸림돌 해소를 비롯해 정부의 명확한 정책 시그널과 경제적 보상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정부는 기업이 탄소중립에 투자할 수 있는 유인구조를 강화하는 역할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화답했다.

 

“ 조한무 기자 ”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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