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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으로 쓰러지고 죽는 노동자들 “노동부, 특단의 대책 내놓아야”

실내 온도 37.5도 ‘찜통’ 물류센터부터 땀으로 곰팡이 슨 헬멧까지…폭염과 사투 벌이는 노동자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회원들이 11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혹서기 노동부 지도감독 강화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07.11. ⓒ뉴시스
 
폭염과 사투를 벌이는 노동자들이 11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 모였다. 때 이른 무더위로 물류센터에서, 급식실에서, 거리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온열질환으로 쓰러질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고용노동부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요구하기 위해서다.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는 이날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들은 폭염으로 인해 건강과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며 이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지도·감독 강화를 촉구했다.

민병조 쿠팡물류센터지회장은 실내 온도가 30도를 훌쩍 넘는 찜통 물류센터의 현실을 전했다. 쿠팡 물류센터는 에어컨 등 내방 시설도 부족할 뿐 아니라 잠시 더위를 식힐 휴게 공간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민 지회장은 "쿠팡 고양 물류센터에서는 7일 37.5도가 기록됐고, 인천 물류센터에서는 연일 85%가 넘는 습도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동탄 물류센터에서는 두 명의 여성 노동자가 더위에 탈진해 119에 실려 가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민 지회장은 "앞으로 장마가 지나가고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할 즈음에는 전국에 있는 물류센터 현장에서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탈진해 119에 실려 갈 것이며, 그중에서 또 몇 분의 노동자가 중증 온열질환으로 고통받을지 걱정"이라며 "고용노동부는 형식적인 탁상공론식의 미봉책을 폭염 대책인 양 너스레 떨지 말고 현장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쿠팡 물류센터 온·습도. 왼쪽부터 6월 26일 오후 1시 동탄센터, 7월7일 인천4센터 2층, 7월7일 인천4센터 4층 ⓒ공공운수노조 측 제공

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사로 일하는 오성희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서울지부 수석부지부장은 "학교 급식실은 불 앞에서 더위와 습도에 시달려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오 부지부장은 "이 날씨에 아이들이 먹는 음식의 위생을 위해 모자, 마스크, 토시, 앞치마, 고무장갑, 장화를 착용하고 국이 펄펄 끓고, 180도, 190도가 넘는 솥에서 튀기고, 채소를 볶고, 소스를 끓여야 한다"며 "급식실은 마치 전쟁터와 같다"고 비유했다.

오 부지부장은 "지난주 경기도에서는 2명의 급식실 노동자가 열사병으로 쓰러졌다고 한다"며 "급식실 노동자들은 학생의 건강한 급식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일터가 골병 드는 급식실, 숨쉬기도 어려운 온도라면 건강한 급식을 안정적으로 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집배노동자인 고광완 민주우체국본부 사무처장은 땀으로 변색되고, 녹이 슬고, 심지어는 곰팡이까지 핀 집배노동자의 헬멧을 찍은 사진을 들고 발언에 나섰다.

고 사무처장은 "무거운 안전모를 쓰고 하루에도 4시간, 5시간씩 일을 하면 더워서 땀이 나고, 그 땀이 안전모 내피에 쌓이고 쌓여서 다음 날 하얗게 소금기가 낀 안전모를 다시 써야 하고 그 안전모 내피 안에는 곰팡이가 슬어서 도저히 냄새 때문에 쓸 수가 없는 지경이지만, 우정사업본부(우본)는 이를 전혀 개선할 생각이 없다"며 "집배원들에게 여름용 가벼운 경량 안전모를 지급하라고 요구했지만, 우정사업본부는 그럴 수 없다고 답했다"고 규탄했다.

고 사무처장은 "우본은 '더우면 카페 같은 곳에 들어가서 쉬라'고 한다"며 "이게 말인가. 농어촌 지역에서 배달하는 집배원이 카페를 찾아가는 것도 힘들지만, 도심 지역에서 배달하는 이들 또한 이륜차를 끌고, 제복을 입고 어떻게 카페에 들어가 여유 있게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단 말인가"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 우본은 집배원의 안전과 온열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사계절용 경량 안전모를 취급하고 제대로 쉴 수 있는 쉼터를 만들 것을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땀으로 녹슬고 부식된 우체국 집배원의 헬멧 내부 모습. ⓒ공공운수노조 측 제공


도시가스 안전점검 노동자인 이은정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서울도시가스분회 조합원은 "요금 검침을 해야 하는 계량기가 많다 보니 빠른 걸음으로 다녀야 한다. 이 외에도 세대 방문 고지서 송달, 고객 민원 전화 응대도 해야 한다"며 "그래서 장마와 폭염으로 가스 사용량이 적은 6월에서 9월 사이에는 격월 검침을 시행하자고 가스 회사에 요청했지만, 오히려 회사는 매월 검침하는 것으로 바꿨다"고 비판했다.

이 조합원은 "회사는 현장 노동자의 안전이나 건강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무시하고 있다"며 "우리는 건강하게,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한편, 때 이른 폭염으로 온열 환자 수가 급증하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정부 차원의 조속한 대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11일 질병관리청의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 운영 결과'에 따르면 집계를 시작한 5월 20일부터 7월 10일까지 온열질환자 수는 733명이며, 온열 질환으로 인한 사망 추정자는 6명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 집계를 보면, 온열질환자는 184명, 온열 질환 사망 추정자는 3명이었다. 

이날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회견 후 서울지방노동청 관계자에게 노조의 요구를 전달하는 등 폭염 대책과 관련한 면담을 이어갔지만, 책임있는 답변은 듣지 못했다고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는 전했다.

이 관계자는 "(서울지방노동청 측은) 관할이 아니라는 식의 답변이 많았다"며 "현안이 해결되도록 관계부처와 적극적으로 협의할 것과 관할 당국인 지청에 현장 지도·감독을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 남소연 기자 ”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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