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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기도 힘든 ‘고물가’…열심히 만들고 팔아도 답이 없다

등록 :2022-07-12 05:00수정 :2022-07-12 07:17

“비용은 다 오르고 손님은 끊기고…”
‘생산부터 판매까지’ 물가 직격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속해서 높아지는 가운데, 지난 7일 저녁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에서 오이와 가지 경매가 이뤄지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속해서 높아지는 가운데, 지난 7일 저녁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에서 오이와 가지 경매가 이뤄지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가격을 올리면 기사님들 부담도 커지니까, 다른 식당에 손님 뺏길까봐 많이 올릴 수도 없었어요.”
 
 지난 6일 저녁 만난 서울 용산구 청파동 ㅇ기사식당 사장 ㄱ(45)씨의 말이다. 이 식당은 지난달 대표 메뉴인 돼지불백과 대구지리의 가격을 9천원에서 1만원으로 올렸다. 8천원이던 알탕은 8500원으로 인상했다. 미국산 돼지고기 1㎏이 5천원 오르고, 러시아산 대구도 5천~1만원 오른 터다. 올해 1월부터 월세도 100만원 올랐다. 112㎡(34평) 식당의 지난달 전기요금과 도시가스는 합쳐서 130만원 나왔는데, 이달 들어 전기요금 등이 인상돼 부담이 더 늘어날 처지다. “거리두기 해제로 손님이 늘어나는 건가 싶었는데, 물가가 올라 다시 점심 손님이 줄었어요.” 시어머니와 남편과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쉬지 않고 일한다는 ㄱ씨는 “지난 8년 동안 식당을 하며 요즘같이 힘든 적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1년 1월 0.9%에서 같은 해 9월 2.4%로 높아졌다. 올해 1월에는 3.6%, 4월 4.5%, 지난달은 6%까지 치솟았다. <한겨레>가 농민·중소기업·식당·편의점 등을 취재한 결과, 원·부자재 공급난과 공공요금·인건비·임대료 상승, 이상기후 등 여러 요인으로 전방위적으로 물가가 오르고 있었다.

 

강원도 홍천 서석면에서 신성재(56)씨가 농사지은 고랭지 애호박과 오이의 도맷값도 이달에 많이 올랐다. 지난해 같은 시기 신씨가 수확한 애호박 1박스(20개)는 8천~9천원이었는데 이제 2만5천~3만원까지 받는다. 오이는 한 접(100개)에 3만5천원에서 1년 사이 13만~14만원으로 3배가량 올랐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에서 공개하는 품목별 도매가격은 지난 5일 기준 조선애호박은 20개에 4만1천원, 백다다기오이 100개는 12만3천원이었다. 비싼 값에 팔아도 신씨에게 남는 돈은 적다. “상반기에 워낙 날이 가물어서 수확량이 3분의 1로 줄었어요. 애호박은 하나하나 수확해 포장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인건비가 많이 들죠.” 신씨는 동네에 “농사를 포기하는 이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비료와 농약, 농기계용 면세유 가격이 오른 것도 신씨 같은 농민들에게는 큰 부담이 됐다. 농업용 면세유는 리터(ℓ)당 750~800원 하다가 요소수 파동과 원유값 급등 여파로 1500원으로 뛰었다. 채소 도매 경매를 하는 한국청과의 최현식 홍보부장은 “농산물은 날씨, 작황, 인건비 영향을 많이 받는다. 최근 애호박과 오이는 공급량이 부족해 가격이 상승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했다.

 

ㅎ어묵은 대형마트·백화점·온라인에서 판매하는 대표 어묵 제품 가격을 지난 2월 5100원에서 5600원으로 올렸다. ㅎ어묵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재료인) 밀가루, 연육(으깬 생선살), 택배비가 다 올라서 제품 가격을 인상했다. 어묵은 지금이 비수기인데다 물가 상승 여파로 소비마저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일상이 된 이상기후에 유가와 인건비 인상 등이 겹치면서 어민들 역시 어업을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있을지 불안해하고 있다.

 

밀 자급률이 1%도 안 되는 한국에서 많이 수입하는 북미산 밀도 많이 올랐다. 주요 제분사들은 하반기 사용분까지 재료를 확보한 상태라 추가 가격 인상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업계 예측이다. 그러나 밀가루와 팜유는 올해 상반기에 이미 지난해보다 35% 이상 인상됐고 빵값 등에 반영됐다. 파리바게뜨는 지난 2월 6.7%, 뚜레쥬르는 지난 7일 9.5% 제품 가격을 올렸다.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대란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쳐 발생한 원자재와 에너지 공급난은 기초산업 생태계에 이미 고스란히 반영됐다. 현대자동차와 두산중공업 등의 2차 협력사인 주조업체를 30여년간 운영해온 ㄴ(60)씨는 차량이나 농기계 브레이크 등에 쓰이는 합금·용해철 등을 만든다. ㄴ씨의 회사도 다른 업체들과 함께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 상반기까지 4차례에 걸쳐 용해철 1㎏ 단가를 1500원에서 2100원으로 올렸다. 용해철을 만드는 데 필요한 실리콘은 중국에서 수입하는데 코로나19 영향으로 1㎏에 980원 하다가 2700원으로 오르고 구리도 1㎏에 5천원에서 1만3천~1만4천원으로 오르는 등 원자재값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ㄴ씨는 “우리는 3디(D)업종이니 거래처에서 그나마 가격을 올려줬지만 다른 업종들은 (원청) 눈치 보느라 못 올리고 있다고 한다”고 했다.

 

월세·공공요금·인건비가 다 오르는 탓에 자영업자들의 근심은 더욱 깊어졌다. 경기도 의정부역 앞에서 20년째 72㎡(22평) 크기의 편의점을 운영하는 ㄷ(51)씨는 “최근 2년 동안 일한 아르바이트생에게 그만 나와달라는 말을 하면서 너무 미안했다. 그 아르바이트생이 양말 선물을 해주는데 마음이 안 좋았다”고 했다. 아르바이트생 대신 ㄷ씨의 세 자녀가 편의점 일을 돕기 시작했다. 권리금 1억원을 주고 시작한 편의점은 요새 매출이 20년 전 수준으로 돌아갈 만큼 사정이 나빠졌는데 월세는 도리어 30만원 더 올랐다.

 

경기도 포천에서 주유소를 부모님과 함께 운영하는 ㄹ(41)씨는 고유가에 주유소가 폭리를 취한다는 언론 보도를 보며 억울해했다. 고유가일수록 수수료 수익이 늘어나는 곳은 카드사일 뿐인데 벌이가 늘지도 않는 주유소만 욕을 먹고 있기 때문이다. 주변 주유소와 경쟁 때문에 유가가 오르든 내리든 리터당 50~80원의 마진만 책정하고 있다고 ㄹ씨는 강조했다. 1.2~1.5%로 고정돼 있는 카드 수수료는 유가가 오를수록 절대액수가 높아진다. 그만큼 주유소가 내야 할 카드 수수료가 많아지는 셈이다. 최근 ㄹ씨의 아내는 4살 아들을 돌보기 위해 13년째 다닌 무역회사를 그만두었다. ㄹ씨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지만 별도리가 없다. “뉴스 볼 때마다 물가 오른다고 하고, 상승률이 6%라고 하는데, 정말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너무 힘들 것 같아요.” ㄹ씨의 목소리는 무척 암울하게 들렸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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