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채 상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이 이는 주요 고비마다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총 네차례 직접 전화를 건 사실이 드러나면서 ‘대통령실’ 개입 의혹이 아닌 ‘대통령’ 개입 의혹으로 국면이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사건 처리 과정을 뒤흔든 결정적 순간인 ‘사건 회수’ 당일 윤 대통령이 이 장관에게 세차례나 전화했다는 점은 불법성 짙은 이 행위에 윤 대통령이 직접 관여했을 가능성을 키운다. 입수된 이 장관 통화 내역에는 윤 대통령 외에도 대통령실 인사들이 광범위하게 등장해, 당시 사건을 두고 긴박하게 돌아갔던 대통령실과 국방부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자체 판단으로 이첩 보류 지시 등을 결정했다는 이 전 장관 주장의 신빙성도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 언론브리핑 취소 및 이첩보류 지시…7월31일
28일 한겨레가 입수한 이 전 장관의 통화 내역을 분석하면, 대통령실 관여 정황은 이른바 ‘브이아이피(VIP) 격노설’이 일었던 지난해 7월31일부터 드러난다. 이날 오전 11시께부터는 윤 대통령이 참석한 국가안보실 회의가 열렸다. 회의가 끝날 무렵인 같은 날 오전 11시54분, 이 전 장관은 대통령실이 사용하는 ‘02-800’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아 168초 동안 통화했다. 이 전 장관은 이 통화 직후인 오전 11시57분 자신의 비서 역할을 하는 박진희 당시 군사보좌관의 전화로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 이첩을 보류하고 이날 낮 2시로 예정된 언론 브리핑을 취소하라고 지시했다.
이 전 장관은 낮 2시20분께부터 5분가량 정종범 해병대 부사령관을 국방부 집무실로 불러 지시를 내렸다. 이 자리에는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 등이 참석했다. 당시 정 부사령관이 메모한 기록을 보면 “누구누구 수사 언급하면 안 됨” “사람에 대해서 조치·혐의는 안 됨” “법무관리관이 (박정훈) 수사단장에게 전화 검토”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첩 보류 지시 이후 이뤄져야 할 후속 조처를 논의한 흔적으로 보인다.
이 회의 직후 이 전 장관은 국방부 청사를 떠나 우즈베키스탄 출장을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낮 2시56분께(공항으로 가던 중으로 추정) 이 전 장관은 임기훈 당시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의 전화를 받는다. 통화는 11분 넘게 이어졌다. 해병대 부사령관 등과 했던 회의 내용을 임 전 비서관에게 자세히 전달했을 것으로 보인다.
■ 경찰로 이첩 뒤 사건 회수…8월2일
해병대수사단이 임성근 당시 해병대1사단장 등 8명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시해 채 상병 순직사건을 경북경찰청으로 이첩한 지난해 8월2일에는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이날 해병대수사단이 경북청에 사건 이첩을 완료한 시각은 오전 11시50분께다. 이첩이 채 끝나기 전인 이날 오전 11시45분께 조태용 당시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이 전 장관에게 문자를 보낸다. 이후 오전 11시49분부터 2분40초가량 둘 간 통화가 이뤄진다. 이날 낮 12시4분, 김 사령관은 이 전 장관에게 전화를 건다. 이 통화에서 김 사령관이 당시 경찰 이첩 등 상황을 보고하고 이 전 장관의 지시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첩이 완료되고, 그런 상황이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추정되는 시각 이후 윤 대통령이 본격 등장한다. 윤 대통령은 낮 12시7분부터 자신이 검사 시절부터 사용하던 휴대전화로 직접 이 전 장관에게 세차례 전화를 걸었다. 당시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은 ①낮 12시7분44초부터 12시11분49초까지 약 4분 동안 ②낮 12시43분16초부터 12시56분59초까지 약 13분 동안 ③낮 12시57분36초부터 12시58분28초까지 1분 못 미치게 통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차례 모두 윤 대통령이 이 전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 대통령의 첫 통화 이후 30여분 지난 이날 낮 12시45분에는 김 사령관이 박정훈 전 해병대수사단장(대령)을 자신의 집무실로 불러 “지금부터 보직 해임이다. 많이 힘들 거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슷한 시간대인 낮 12시40~50분 사이에는 국가수사본부 과장이 사건을 넘겨받은 경북경찰청 수사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첩했던 기록을 회수하고 싶다’는 군의 의사를 전달했다. 당시 경북경찰청 수사부장에게 전화를 건 국수본 과장은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과 통화를 한 뒤 경북청 수사부장에게 전화를 건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또 낮 12시51분에는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파견 해병대 대령이 김 사령관의 비서실장과 전화 통화를 시도했다.
윤 대통령이 이 전 장관에게 전화를 건 낮 12시7분 이후 1시간 사이에 박 대령의 보직 해임이 이뤄졌으며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과 국가안보실이 동시에 움직였다는 뜻이다. 경찰에 이첩된 사건을 군이 다시 회수하는 이례적인 일도 벌어졌다. 통화 내역에 비춰보면, 이 모든 과정에 윤 대통령이 깊게 관여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 국방부 조사본부 재검토 결정 전날…8월8일
윤 대통령은 휴가 중이던 지난해 8월8일에도 이 전 장관과 통화했다. 이 전 장관이 회수한 사건을 국방부 조사본부에 재검토시키기로 결정하기 하루 전이다. 8일 아침 7시55분 이 전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33초가량 통화했다. 당시 국방부는 경찰에서 회수한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지 논의하던 중이었다.
당시 국방부 조사본부는 ‘해병대수사단과 조사본부가 모두 경찰에 해당하는 기관인데, 같은 역할을 하는 기관에서 사건을 재검토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취지로 자신들이 사건을 맡는 데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8월9일 이 전 장관이 직접 박경훈 조사본부장 직무대리 등을 불러 재검토를 맡으라고 지시했다. 결국 조사본부가 채 상병 순직사건 재검토를 맡게 됐다. 조사본부는 해병대수사단이 혐의를 적시했던 8명 중 하급자 2명은 제외했고, 임 전 사단장 등 4명은 범죄 혐의를 적시하지 않은 채 대대장 2명에게만 혐의를 적시하는 거로 결론 냈다.
채 상병 순직사건 외압 의혹은 ①이첩 보류 및 혐의 적시 제외 ②경찰 이첩 사건 회수 ③최종 이첩 때 혐의자 축소 세 갈래로 나뉘는데 세차례 모두 윤 대통령이나 대통령실이 직접 개입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한편 이 전 장관을 대리하는 김재훈 변호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적법하지 않은 자료에서 확인된 내용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 윤 대통령과의 통화 여부에 대해 밝히지 않겠다는 게 이 전 장관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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