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비상 [사진 : 뉴시스]
▲원·달러 환율 비상 [사진 : 뉴시스]

원·달러 환율이 1,350원 선을 돌파하면서 환율에 비상이 걸렸다. 1,350원을 넘어선 것은 2008년 금융공황 이후 처음이다. 수입업체들은 원자재값 급등에 환율부담까지 떠안으며 위기를 맞았다. 물가상승과 해외자본이탈로 이이져 ‘다시 외환위기가 오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까지 낳고 있다. 실제로 환율 상승으로 인해 66년 만에 최대 무역적자를 기록한 반면 물가는 계속 상승하는 심각한 상황에 빠져들었다.

원·달러 환율이 왜 갑자기 상승했을까? 그 원인과 문제점을 짚어보자.

환율문제의 시작, 변동환율제

환율이란 자국화폐와 외국화폐간의 교환비율이다. 각국 화폐의 국제교환시장을 외환시장이라고 한다. 환율은 외환시장에서 각국 화폐에 대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이 환율은 각 나라 물가수준, 국제수지, 국민총생산 등에 영향을 미친다.

환율에는 상대국이 있고 많은 변수가 개입한다. 이 복잡하고 골치 아픈 환율문제는 세계환율체제가 고정환율제에서 변동환율제로 변경되면서 시작되었다. 변동환율제를 촉발한 주범은 미국이다. 2차 대전 이전 환율결정방식은 금본위제 하에서 고정환율제도였다. 예를 들어 미국이 금 1온스당 35달러라면 영국은 금1온스당 7파운드가 되고, 영미간 환율은 1파운드당 5달러로 고정되는 방식이다.

2차대전 이후 브레튼우즈체제가 성립되면서 금-환본위제가 성립되었다. 미국달러만 금1온스당 35달러로 고정시키고, 나머지 국가들은 달러와의 교환비율로 환율을 결정하였다. 이 경우에는 국제수지 불균형이 발생할 때 미세한 수준의 조정만 허용하였는데, 기본은 고정환율제상태에서 약간의 환율변화만 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1971년 미국이 베트남 전비부담, 달러발행남발, 국제수지 악화 등이 문제가 되어 금-달러 태환을 정지시키는 폭탄선언을 하면서 금-달러체제가 붕괴하게 된다. 이에 따라 1976년 자메이카 킹스턴에서 각국이 금이나 금과 연동된 달러가 아니라 외환의 수급에 따라 자율적으로 환율을 결정하도록 하는 ‘킹스턴 체제’를 출범시킨다. 이것이 변동환율제의 출발이다.

▲고정환율제와 변동환율제 [출처 : 예금보험공사 블로그 캡처]
▲고정환율제와 변동환율제 [출처 : 예금보험공사 블로그 캡처]

변동환율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지옥문을 열다

변동환율제는 고정환율제에 비해 국제수지 불균형을 조정하는데 유리한 제도이다. 국제수지의 적자가 발생하면, 환율이 상승하여 수출이 증가하고, 수입이 감소하여 국제수지는 균형을 회복한다. 반대로 국제수지의 흑자가 발생하면 환율이 하락하여 수출이 감소하고, 수입이 증가하여 국제수지는 균형을 회복한다. 이것은 잘 알려진 내용이다.

그런데 변동환율제는 환율변동이 자유로운만큼 그 변동성으로 인한 ‘환리스크’를 발생시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 문제가 환율과 자본이동의 ‘자유화’라는 지옥문을 열게 된다. 바로 금융팽창을 통한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봉인을 푼 것이다.

먼저 미국은 금으로부터 이탈하여 무제한 달러를 발행하여 10년 주기로 2배씩 달러발행량을 증가시키면서 금융팽창을 주도하며, 금융자본주의, 카지노 자본주의를 가속화하였다.

다음으로 환율변동이 자유화되면서 환차손(환율차이로 인한 손해) 리스크가 발생하였다. 금태환 정지, 변동환율제로 달러가 약세로 돌아서자 석유수출국들이 앉은 자리에서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되고 결국 오일쇼크, 석유가격 불안정 시대가 열렸다. 또한 변동환율제는 자본이동의 자유로 이어지면서 막대한 자금이 미국의 금리규제를 벗어나 유로달러시장으로 이동하고, 유로달러시장의 팽창은 국가간 금융규제를 무력화하면서 결국 금융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가속화하게 된 것이다.

다음으로 환리스크는 자본축적방식에도 변화를 강제하였다. 환율변동의 자유화, 자본이동의 자유화 앞에서 산업자본들은 환율, 금리, 석유가격 등의 변동성과 리스크에 대응해야 했고, 임금유연화, 비정규직 사용증대 등 노동과 생산의 유연화로 대응하기 시작하였다. 변동환율제가 야기한 극심한 금융과 세계경제의 변동성이 생산과 산업분야에서 규제철폐와 신자유주의 세계화, 값싼 노동력과 자원을 찾아 이동하는 생산의 세계화, 자본이동의 세계화 시대를 열게된 것이다.

특히 중요한 문제는 환차익을 노린 금융투기자본이 판을 치게 된 것이다. 세계금융시장팽창이 새로운 이윤획득공간으로 부상하고, 자산가치 상승이나 차익거래, 배당이익을 노린 금융자본거래가 활성화되었으며, 주식차익이나 금리차익 뿐만 아니라 환율차익를 노리는 캐리트레이드시장이 급부상하였다. 마침내는 외환, 금리, 유가가 불안정성을 상품화하여 위험을 관리하는 파생상품까지 등장하며 세계를 금융공황의 위기로까지 몰아넣었다.

그만큼 금으로부터 이탈한 달러팽창과 변동환율제가 세계경제에 미친 영향은 막대한 것이었다.

불가능한 삼위일체와 달러패권

한국과 같은 신흥국은 거시경제정책에서 안정적인 환율과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추구해 왔다. 수출중심국가들에서 안정적인 환율은 매우 중요하다. 환율이 올라 원화가 약세로 되면 수출에 유리하다. 그러나 원화약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환율안정이다. 과거 금본위제, 고정환율제도에서 세계무역이 증가했던 것은 환율이 안정되어 환리스크가 없었기 때문이다. 환율안정은 그만큼 무역을 촉진한다.

정책당국은 자국경제상황에 따라 금리통화정책을 통해 경제를 관리한다. 경제가 과열되면 금리를 올려 물가를 안정시키고, 경기가 침체하면 금리를 내려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자본시장 개방을 통해 자유로운 자본이동정책을 추구하게 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국제금융체제는 안정적인 환율, 독자적인 금리, 자유로운 자본이동 이 3가지를 동시에 추구할 수 없는 모순구조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불가능한 삼위일체라는 국제금융이론이다.

▲불가능한 삼위일체 [출처 : 인터넷 캡처]
▲불가능한 삼위일체 [출처 : 인터넷 캡처]

한국의 경우 IMF 외환위기 이전에는 원·달러 환율이 800원에 고정된 고정환율제였으며, 독자적인 금리정책을 실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김영삼 정권 시절 OECD에 가입하며 자본시장을 개방하여 자유로운 자본이동정책을 수용하였다. 문제는 이때 미국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자 국내에 들어왔던 외국자본이 이탈하기 시작하였다. 한국정부는 금리를 올릴 수 없었다. 경기가 붕괴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한국정부는 환율을 800원으로 고수하면서 당시 보유하고 있던 약 300억 달러의 외환보유고를 쏟아부으며 달러를 시중에 공급하였다. 결국 외환보유고는 바닥나고 IMF로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변동환율제를 받아들였다. 원·달러 환율은 곧바로 2000원대까지 급상승하였다.

이렇게 한국과 같은 경우 자본이동의 자유화를 받아들이면, 독자적인 금리정책이나 안정적인 환율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97년 외환위기 시절 결국 한국은 안정적인 환율을 포기했던 것이다.

홍콩의 경우에는 독자적인 금리정책을 포기한 케이스다. 자본이동의 자유화와 안정적인 환율을 추구하는 대신에 홍콩달러는 미국달러에 연동(페그)되어 있다. 따라서 미국이 금리를 올리거나 낮추면 홍콩도 자동적으로 금리가 올라가거나 내려간다. 홍콩사태 직전 홍콩은 심각한 부동산 거품이 문제가 되었다. 그런데 하필 당시 미국은 금리를 내리고 있었다. 홍콩은 부동산거품을 잡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미국달러와 연동된 홍콩달러 금리를 올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위안화 세계화를 추구하는 중국은 이같은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안정적 환율과 독자적인 금리정책을 고수하면서 신중하고 치밀하게 자본이동의 자유화를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자유로운 자본이동과 안정적인 환율, 독자적인 금리정책 3가지를 모두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나라는 미국뿐이다. 왜냐하면 미국달러가 세계기축통화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이 세계기축통화인만큼 거시경제정책을 세계경제 전체상황을 염두에 두고 운영해야 하는데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미국은 자국경제를 중심으로 금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고, 막대한 달러자금력으로 세계자본시장을 주물럭거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나라들은 여기에 따라 환율이 요동치고 심각한 외환위기에 노출되는 것이다. 달러를 대체하는 새로운 기축통화, 금융시스탬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경제의 환율 불안정성

자본개방 이후 한국경제 환율비상사태가 벌어진 것은 크게 3번이다. 첫 번째는 IMF외환위기 시기로서 원·달러 환율이 2000원에 달했다. 두 번째는 2008년 금융공황시기로 1600원대를 치고 올라갔다. 그리고 지금이다. 보통 외환리스크가 심각하게 발생하는 환율 마지노선을 1280원으로 보는데 이미 70원을 초과하여 1350원대에 올라선 것이다.

한국경제의 환율 취약성은 예속적인 개방경제의 숙명이다. 그나마 환율취약성을 보완하려면 자본이동을 규제해야 하는데, 한국은 자본시장개방정도가 가장 높고, 기축통화국도 아니다. 따라서 세계경제위기가 발생하면 한국의 환율이 급상승하는 상황은 언제나 반복된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은 관리변동환율제를 유지하고 있다. 변동환율제하에서도 통화당국이 개입하여 안정적인 환율을 유지해야 수출입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리변동환율제를 유지하는 무기는 외환보유고이다.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고 3400억 달러정도이다. 환율방어를 위해 외환당국이 강력한 구두개입에 나서고, 달러를 사들이면서 300억 달러가 축소된 결과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외환보유고가 있어야 환율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까? 환율방어력이 있는 외환보유고 계산은 일차적으로 3개월간 무역수입액에 당장 갚아야 할 단기외채를 합친 정도를 말하며 3천에서 4천억 달러 정도면 된다. 그런데 여기에 외국인이 투자한 포트폴리오 중 1/3정도를 계산에 넣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내에 주식과 채권에 투자한 외국자본이 일거에 빠져나가는 위험을 반영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6천억 달러 정도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현저히 부족하다. 때문에 2008년 600억 달러 정도의 한미간 통화스와프를 한 것처럼 예비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미국은 현재 한국과 통화스와프를 할 생각이 전혀 없다.

환율비상의 주범은 연준

▲미 연준의장 제롬파월 [사진 : 뉴시스]
▲미 연준의장 제롬파월 [사진 : 뉴시스]

그렇다면 지금 왜 원·달러 환율이 1350원대로 급상승하는 것일까?

이 역시 미국 때문이다. 특히 미 연준의 실수와 미국중심주의 때문이다. 미 연준 의장 제롬 파월은 작년 물가가 오를 때 “인플레는 일시적”이라면서 계속 양적완화를 지속하였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이  급상승하며 계속되는 양상을 보이자 뒤늦게 금리를 올리며 긴축에 들어갔다. 그러다보니, 빅스탭(0.5% 금리인상)이니 자이언트스탭(0.75% 금리인상)이니 하면서 단기간에 금리를 0.5%에서 2.5%까지 급격하게 끌어올렸다. 미국의 금리인상속도가 너무 빠르자 다른 나라들이 이를 쫓아가지 못하고 약세로 돌아서면서 달러초강세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원화약세가 발생하고 원·달러 환율이 급반등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은 자국의 고용이 안정되어 버틸 만 하다면서 금리를 계속 올리고 있으나 다른 나라들은 그렇지 않다. 유럽같은 경우 물가가 8%대로 치솟고 있으나 미국처럼 금리를 올릴 수 없다. 그리스, 이탈리아 등 남부유럽국가들 경제가 붕괴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독일경제도 안 좋다. 금리인상 여력이 없는 것이다. 일본은 더 심각하다. GDP대비 국가부채가 260%로 세계 1등인 일본이 금리를 올리면 공무원 월급도 줄 수 없는 상황이 온다. 일본은 수입물가가 폭등하고 있는데도 금리를 올리지 읺고 있다. 중국은 최근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서 오히려 금리를 낮추고 있다. 이렇게 되어 미국 달러가 초강세를 이루고 다른 모든 나라들의 통화가 약세로 빠지면서 환율이 오르고 있다. 유일하게 러시아 루블화만이 달러대비 강세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지난 26일 미국 와이오밍주에서 열린 세계경제세미나인 잭슨홀 미팅에서 제롬파월 의장이 “인플레이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고통이 오더라도 금리를 계속 인상하겠다”는 취지의 매파발언을 함으로써 원·달러 환율은 1350원대를 넘어서고 말았다. 잭슨홀 미팅에는 전세계 중앙은행장들과 유력 경제학자들이 다 모인다. 결국 이 자리에서 제롬 파월은 전세계에 ‘고통을 감수할 각오를 하라’는 공개협박을 한 셈이다. 이 발언 이후 곧바로 전 세계 증시는 폭락하고 심각한 동요에 빠졌다.

외환위기가 또 오는가

환율급등으로 1997년처럼 외환위기가 오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팽배하다. 왜냐하면 현재 미국과 한국의 금리가 동률이 조건에서 미국이 9월 FOMC회의에서 다시 한번 0.75% 정도의 금리를 인상하게 되면 한미간 금리역전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미간 금리차가 매우 크게 되면 자본이탈을 가져오고 원·달러 환율이 더욱 급상승하면서 달러고갈로 이어져 결국 외환위기로 이어질 것 아닌가 하는 우려이다.

그러나 대체로는 외환위기까지 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우선 현재의 달러강세가 미국경제의 펀더멘탈에 기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경제는 지난 2분기 침체를 겪었고 내년에도 경기침체에 대비해야 한다는 미국여론은 74%에 이른다. 즉 달러는 과대평가 되어있고, 원화는 과소평가되어 있기 때문에 환율이 조정될 것이라고 본다.

또한 이창용 한국은행장이 ‘한미금리역전’이 온다고 해서 곧바로 자본이탈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취지로 ‘기계적’이지 않다는 발언에서 보듯이 자본이탈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생각해 봐야할 지점이 있다. 최근 한국의 금융위기는 외환위기보다는 가계부채위기 형태로 터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국은행도 외환위기 보다는 가계부채위기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때문에 한미간 금리차가 높아지더라도 한국금리를 더 천천히 올리고 있다. 가계부채 폭탄이 터지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은 연말까지 3차례 더 금리를 올릴 것이고, 한국은 2번 남았다. 결국 한미간 금리차가 1%까지 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에 투자한 외국인들이 채권금리 역전으로 이어지면서 미국 채권시장으로 빠져나가게 된다. 한국 채권시장이 경색되면 기업들은 기업채권이 안 팔리니 은행대출로 이동하게 된다. 은행들은 기업대출을 위해 가계대출을 줄이게 되고 결국 다시 가계부채위기가 심화되는 문제를 낳는다. 이미 8월에 외국인이 한국채권을 2조달러 넘게 팔고 있다고 한다.

최근 원·달러 환율 급상승은 수입업체 채산성 악화, 수입물가 급등, 무역적자 등의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 자체로도 심각한 고통이다. 그런데 환율급등은 외환위기 뒤에 숨은 가계부채위기라는 새로운 금융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 외환위기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말에 속지 말고 계속 긴장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