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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란 무엇인가…총통·독재관? 거대한 무위도식자?

[장석준 칼럼] 제6공화국 대통령제가 도달한 궁지

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  기사입력 2022.08.30. 08:27:56

 

대통령이 문제다. 윤석열 대통령이 문제다. 대만해협에서 고조되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한반도까지 긴장시킬 때도, 기후 재난이 수도권을 덮칠 때에도 대통령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는 휴가 중이거나 퇴근한 상태였다. 국가는 늘 대통령이라는 인격을 통해 실감된다고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그의 부재는 마치 무정부 상태인 양 심각하게 다가왔다.

아니, 부재가 아니라 존재가 문제던가? 이런 반문이 나올 만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몇 달 동안 보인 행보는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취임한 지 반년도 되지 않아 20% 대로 떨어진 여론조사 지지율은 그 실망의 정도가 어떠한지 잘 보여준다.

한데 이에 반응하는 민심이 예전과 좀 다른 데가 있다. 물론 압도적 다수는 '윤석열' 대통령에 포화를 집중하지만, 이제는 윤석열 '대통령'에 주목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이다지도 기대할 게 없는 인물을 정부 수반으로 앉혀놓은 대한민국 제6공화국의 대통령제 자체가 문제 아니냐는 의견도 간혹 보인다. 시작하자마자 혼란을 향해 달려가는 윤석열 정부의 실패는 실은 한국식 대통령제의 실패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 진단에 동의한다. 촛불항쟁과 대통령 탄핵까지 겪고도 이런 상황에 처한 한국 민주주의는 이제 특정 인물이나 정파만 문제 삼을 수 없다. 그들의 무대가 되는 제도와 시스템을 철저히 재검토하고 뜯어고쳐야만 한다. 현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어울리는지 따지는 데에서 더 나아가 도대체 그 '대통령'이 지금 우리에게 무엇인지 물어야만 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인지 확인하려면, 헌법을 찾아 읽어봐야 한다. 교과서대로라면 그렇다. 그러나 현실에서 정치가 법률 문구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법률은 정치 활동에 형식을 부여하고 경계선을 그을 뿐이다. 대통령이 하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이 점에서 헌법보다 더 풍부한 정보를 전해주는 것은 역사다.

역사 속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을 둘러싼 인상과 관념이 굳어지기 시작한 시기는 누가 뭐라 해도 박정희 정권기일 것이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남긴 영향도 컸지만, 박정희는 완전히 새로운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한국 사회의 대통령관에 전에 없던 요소들을 더했다. 이승만은 하지 않았던 일을 함으로써 이게 대통령이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퍼뜨렸다.

그것은 산업화라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사회를 총동원하는 사령관의 위상과 역할이었다. 이승만도 독재자이고 박정희도 독재자였지만, 이승만은 박정희와 달리 이런 사령관으로 군림하지 않았다. 반면에 박정희는 이승만이 가장 중요시한 분단 질서의 관리와 대외관계를 통솔했을 뿐만 아니라 경제개발계획과 산업정책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정책들을 손수 진두지휘했다. 그는 그야말로 산업화 작전의 총사령관이었다. 

그랬기에 박정희식 대통령은 '총통'일 수밖에 없었다.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신민당 김대중 후보는 박정희가 삼선에 성공하면 총통제 개헌을 밀어붙일 것이라 예언했고, 이는 1년 뒤에 유신체제 수립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대한민국 대통령은 이미 그 전부터 총통의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고 봐야 한다.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는 급속한 산업화를 추진하려면, '총통'이나 '대원수', '수령'과 비슷한 위상과 성격의 '대통령'이 필요한 법이었다. 

이렇게 오래 전 이야기를 새삼스레 꺼내놓는 이유는 이때에 다져진 대통령관이 지금껏 한국의 대통령제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유신체제의 직접적 영향은 제5공화국으로 일단락된 듯 보이지만, 1987년 민주항쟁으로 등장한 제6공화국에서도 박정희 정권기에 정착된 대통령관은 단절되지 않은 채 이어졌다. 대통령에게 총통의 역할을 기대하는 관성이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물론 제6공화국 헌법은 총통형 대통령의 부활을 막으려는 효과적 장치들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총통형 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약간의 변형만 거친 채 살아남았다. 대통령의 역할은 여전히 한국 사회 전체를 어떤 특정 방향으로 몰아가는 총사령관이었다. 다만, 그 방향이 이제는 박정희식 산업화가 아니라 박정희 이후의 독재 잔재를 극복하는 민주화로 바뀌었다. 제6공화국 수립의 한 축이었던 김영삼, 김대중은 민주화의 총사령관이 되겠다고 자처하며 서로 경쟁했고, 대중 역시 양김 씨를 그런 역사적 임무를 맡을 존재들로 바라봤다. 

이 경우에 '총통'보다 더 어울리는 말은 아마 '독재관'일 것이다. 초기에 로마 공화국은 전쟁과 같은 변란이 일어날 때마다 1명의 현인을 독재관으로 추대해 최장 1년간 비상대권을 부여했다. 양김 씨는 말하자면 총통의 기억을 씻는 역설적 총통 혹은 독재의 잔재를 정리하는 독재관이었다. 그들은 이러한 역할에 충실한 대통령이 선출돼 활동할 수 있는 틀로서 현 제6공화국 질서를 수립했고, 마침내 순서대로 그 역할을 실제 수행했다. 

한데 이게 벌써 20여 년 전 이야기다. 김영삼에 이어 김대중까지 대통령 임기를 마친 2000년대 초에 한국 사회는 이미 군부독재의 유령에서 벗어나기 위해 문민 독재관이 필요한 정세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총통과 역-총통의 대통령관이 새겨진 제6공화국 질서 안에서 이후에도 수십 년 동안 이 대통령관이 투영된 채 선출된 대통령들이 정부 수반 역할을 맡았다.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들에게는, 소속이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이든 국민의힘의 전신이든, 더는 산업화나 민주화 같은 거대 목표가 없었다. 게다가 한국 사회도 총사령관을 어깨에 태우고 한 방향으로 달음질하게 몰아세울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있었다. 그러니 아무리 대선에서 과거의 총통이나 역-총통의 기억을 되불러내며 당선됐더라도 집권 이후에 실제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물론 양대 정당 스스로도 그럴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은 없다. 그 결과가 노무현 정부부터 현 윤석열 정부에 이르는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까지도 총통이나 독재관으로서의 대통령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제6공화국 질서를 향한 불만과 분노는 대선이 돌아올 때마다 늘 그런 불만과 분노를 집행할 새로운 독재관에 대한 환상으로 표출된다. 이것이 바로 제6공화국이 그 숱한 질병과 붕괴 조짐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비결이다. 그리고 오늘날 이러한 독재관의 환상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인물이 다름 아닌 더불어민주당의 새 대표 이재명 의원이다. 

거대한 무위도식의 체제, 한국식 대통령제 

그럼 현실에서 총통이나 독재관일 수는 없는 대한민국 대통령은 실제로 무슨 일을 하는가? 흔히 '제왕적 대통령제'라고들 하지만, 여기에서 '제왕'이란 말은 좀 묘하다. 양대 정당 중 집권한 쪽의 수많은 구직자들에게 고관대작 자리를 안겨줄 만큼은 '제왕적'인 권력을 행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책의 측면에서도 그러냐면, 그렇지 못하다.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정해진 법률의 집행자일 뿐이다. 박정희나 전두환처럼 초법적 통치를 할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한데 법률을 정하는 기관은 국회다. 대통령이 추진하려는 정책을 국회가 입법을 통해 뒷받침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새롭게 벌일 수 있는 일은 없다. '제왕'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실제로 촛불항쟁 직후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2020년 총선 전까지 이를 알리바이 삼아 대선 공약 속 개혁 정책들을 제대로 추진하지 않았다. 현 윤석열 정부 역시 별로 하는 일 없이 세월을 보내며 여소야대 국회를 그 이유로 댄다. 즉, 현재 한국의 대통령은 주변의 무위도식자들에게 관직을 안겨주는 데에만 '제왕적 권력'을 사용하고, 대선에서 공약했던 일들을 추진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늘 국회를 변명거리 삼으며 스스로 무위도식할 따름이다. 

처음부터 이게 구조적 숙명인 것은 아니었다. 김영삼, 김대중도 똑같은 헌정 구조 안에서 대통령직을 맡았지만, 그들은 국회를 탓하지 않았다. 양김 씨에게는 그래도 후계자들과는 달리 명확한 목표가 있었고, 그들은 그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국회의 각 정당을 상대로 고도의 정치술을 구사했다. 이후의 대통령들이 하지 않았거나 못한 게 바로 이것이었다. 또한 촛불항쟁 직후에 문재인 정부가 공동정부 구성을 통해 수행해야 했으나 하지 않은 것도 이것이었다. 이제는 어느덧 이런 무위가 한국식 대통령제의 관성이 되었고, 구조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한국식 대통령제 덕분에 대통령만 무위도식하는 게 아니다. 국회 역시 놀고먹는다. 여기에서 필수적인 전제는 국회가 서로 번갈아 대통령을 배출하는 양대 정당에 늘 독점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양대 정당이 독점하는 국회는 입법 성과나 국회 자체의 평판으로 평가받지 않는다. 양대 정당 중 어느 한 쪽에 속한 현 대통령과 벌이는 끊임없는 권력 게임이 다음 총선 결과를 결정한다. 따라서 양당 소속인 압도적 다수의 국회의원들은 이 게임에만 충실하면 될 뿐이다.

대통령은 국회를 탓하며 새로운 일을 벌이지 않고, 국회는 입법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 대통령도 일을 하지 않고, 국회도 일을 하지 않는다. 한국식 대통령제는 이렇게 거대한 무위도식 체제의 이름이 돼버렸다.

그런데 어떻게 국가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인가? 실제로 통치하는 것은 관료기구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임명한 관리형 국무총리가 이 거대 관료기구의 인격적 대변자 역할을 하며, 늘 하던 대로 대한민국을 끌고 간다.

달리 말하면, 한국식 대통령제는 관료 통치의 다른 이름이다. 고위 공무원들이 통치하는 나라를 효과적으로 가리는, 화려하고 난잡한 'K-드라마' 정치다. 그리고 대통령 자신이 이러한 고위 공무원 출신인 현 윤석열 정부야말로 'K-드라마' 정치가 도달한 궁극적 형태(막장?)일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대학로 한 극장에서 연극 '2호선 세입자'를 관람한 뒤 출연진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연극 공연에는 김건희 여사도 동행했으며 인근 식당에서 배우들과 식사를 하며 연극계의 어려운 사정을 청취하고 배우들을 격려했다. ⓒ연합뉴스

대안은 그럼 의회제 정부인가? 아니면…. 

그럼 대안은 무엇인가? 대통령제가 문제라면, 흔히 '내각제'라 불리는 의회제 정부가 대안인가? 나는 큰 방향에서 의회제 정부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동의하며, 제6공화국 질서를 넘어서려는 어떠한 대안도 다당 구도에 바탕을 둔 의회제 정부의 요소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교과서 속 '순수' 내각제가 곧바로 한국식 대통령제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국식 대통령제가 도달한 막다른 골목에도 불구하고, 이를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에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 유효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령 윤석열 대통령이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을 만날지 말지를 놓고 우왕좌왕할 때에 다들 우려하던 상황과 관련된다. 윤석열 정부의 무능이 내치와 관련될 때에는 한숨만 쉬지만 외교와 관련될 때에는 식은땀을 흘리게 되는 사정 말이다. 

앞으로 이 지면에서 이 주제를 놓고 몇 번 더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큰 방향에서는 의회제 정부 요소를 강화하더라도 기존 대통령제에서 이어받아 새롭게 발전시킬 요소가 있지는 않은지를 대한민국의 특수한 조건과 역사를 중심으로 살펴보려 한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주로 참고할만한 사례로 핀란드의 헌정 구조를 검토해보려 한다.

하지만 그 전에 일단 분명히 해야 할 것은, 현재 윤석열 정부가 보이는 난맥상에서 윤석열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제6공화국 질서의 문제를 봐야 한다는 점이다. 그 문제의 핵심에는 한국식 대통령제가 도달한, 무능과 무책임의 정치 질서가 있다. 관료 통치와 'K-드라마' 정치만 있고, 뭔가를 바꾸고 새로 세우는 정치가 실종된 현실이 있다. 제6공화국을 극복해야 한다고 할 때, 극복해야 할 핵심은 바로 이 현실이다.

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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