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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기후변화 대응과 의료보장 확충 등을 골자로 한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 맨친 상원의원, 척 슈머 상원의원, 제임스 클리번 하원의원, 프랭크 펄론 하원의원, 캐시 캐스터 하원의원. ⓒ 연합뉴스
지구 온도가 너무 빨리 올라간다. 미국 기후 싱크탱크 '버클리 어스'는 지난 1월 지구 평균온도가 산업혁명 전과 대비해서 1.3℃ 올랐다고 발표했다. 유엔은 2018년 지구 온도가 1℃ 상승했다고 보고했으나 그 후 단 3년 만에 0.3℃나 올랐다. 과학자들은 1.5℃ 상승을 마지노선으로 본다. 1.5℃가 오르면 남극이 본격적으로 녹으면서 해수면 상승 등 돌이킬 수 없는 기후 붕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속도라면 1.5℃는 이제 2년도 안 남았다.
지구 온도 상승 속도만큼 지구촌의 기후대응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특히 미국과 유럽연합은 산업과 투자, 외교와 무역을 포괄하는 기후정책으로 외부 나라들과 장벽을 세우고 있다. 우리나라는 슬기롭게 대비하고 있을까?
40℃를 넘는 살인적 폭염에 시달린 미국은 8월 중순 기후위기 대응에 초점을 둔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이름과 달리 미국과 미국인을 위한 기후대응책이다. 2030년 온실가스 40% 감축을 목표로 재생에너지, 전기자동차, 배터리에 3690억 달러(약 490조 원)를 정부가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그중 절반인 1800억 달러는 재생에너지 정책에 투입한다. 온실가스와 에너지 안보도 함께 해결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 법이 입법화되자 한국산 전기자동차와 배터리는 즉각 직격탄을 맞았다. 미국에서 만든 전기자동차에만 1대당 7400달러(약 1000만 원)의 보조금을 주기 때문이다. 미국 에너지부는 미국에 생산시설이 없는 현대 전기차 5종에 보조금 지급을 제외시켰다. 아울러 우리나라 배터리에 대해서도 보조금 지급을 중단했다.
보조금 없이 경쟁에서 살아남기란 불가능하다. 지난 5월 현대차는 2030년에 한국에서 전기차 140만 대를 생산해서 미국으로 84만 대를 수출하겠다고 밝혔다. 이 계획은 지금 무너지게 생겼다.
포스코 1/3 이상 해외 생산 계획
자동차산업연합회는 지난 8월 25일 "매년 10만여 대의 전기차 수출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면서 정부에 대책을 촉구했다. 그러나 한덕수 국무총리는 같은 날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현지에 (전기차) 조립시설을 (구축)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의 이런 무대책은 일자리 절벽도 만들고 있다. 전기차 전환으로 국내 내연기관차 부품업체 30%가 사라지고 10만 8천여 명 노동자의 미래도 무너지게 생겼다.
유럽연합은 탄소에 가격을 매기는 무역장벽으로 대응한다. 지난 6월 유럽연합 의회는 '탄소국경조정제'를 통과시켜 철강, 플라스틱, 알루미늄 등 9가지 품목에 탄소국경세 적용을 결정했다. 해당 품목을 원재료로 사용한 완성품들도 모두 탄소국경세 적용을 받으니 대상이 광범위하다.
유럽연합 수입업체들은 우리나라 기업이 만든 고탄소 제품에 대해 계약을 거절할 수 있다. 런던에 있는 기후 싱크탱크 카본체인은 7월 탄소국경세 지침을 통해 "유럽연합 수입업체들은 저탄소 기업을 중심으로 장기간 계약할 것"을 권고했다. 한국 기업과 계약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 제조업의 근간인 철강, 반도체, 플라스틱도 재생에너지를 공급하는 해외로 이전할 것이다. 지난 3월 포스코 그룹은 2030년 자사 조강(쇳물) 예정 생산량 6110만 톤 중 2310만 톤을 해외에서 생산하겠다고 발표했다. 기후장벽이 더 높아지면 포스코도 사업장 대부분을 해외로 이전할 수 있다. 우리나라 수출의 90%가 제조업인데 전적으로 수출에 의존해온 한국 경제는 지금 위험하다.
기후위기가 경제와 산업에만 문제가 될까? 과학자들은 지구 온도가 1.5℃ 오르면 남극이 녹는 효과만으로도 1.5미터 해수면이 상승한다고 경고한다.(<네이처> 2020. 9)
▲ 우리나라가 정말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관료가 아니라 시민공동체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아울러 시민과 공동체에 필요한 지원을 쏟아 부어야 한다. ⓒ 셔터스톡
뉴욕에 있는 기후 싱크탱크 클라이미트 센트럴은 해수면이 1미터 상승한다는 가정 아래 2030년 우리나라 인천, 송도, 시흥, 한강하구 지역의 피해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서울시의 10배인 5900㎢가 바다에 잠기고 330만 명이 재산을 잃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기후난민들이 집단적으로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시나리오다. 이런 기후 시나리오들이 너무나 잘 맞아떨어져 걱정이다.
지난 17일 윤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100일간 세계경제의 위기 상황을 체계적으로 대응했고, 민생경제를 살리려고 노력했고, 미래 먹거리 산업을 육성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실은 기후위기 앞에서 경제, 민생, 먹거리가 총체적 위기를 겪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기후대책으로 원전 30%만을 반복할 뿐이다. 기후정책이 실종된 이 정부를 믿고 갈 수 있을까?
시민공동체가 리더십 발휘해야
총체적 기후위기를 맞아 무엇을 해야 할까? '범국민 기후행동위원회'를 법적 기구로 만들어 대책을 세워야 한다. 기후 과학자들과 현장(산업체, 공동체)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해 정책을 만들고, 그 정책을 놓고 현장과 끊임없이 소통할 때 기후위기 해결의 동력을 얻을 수 있다.
기후위기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이들은 노동자와 그 가족, 농민, 시민들이다. 기후행동위원회는 이들이 피해자가 아니라 당사자가 될 수 있도록 정책과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에서 배울 게 있다면, 기후위기 피해 시민과 공동체를 대담하게 지원하고 시민공동체를 보호한다는 점이다. 이 법은 기후위기 피해 시민들에게 600억 달러(약 75조 원)의 대규모 예산을 배정하여 청정에너지, 주택 개량, 양질의 일자리를 지원한다.
우리나라가 정말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관료가 아니라 시민공동체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아울러 시민과 공동체에 필요한 지원을 쏟아 부어야 한다. 기후위기로부터 안전해지고 싶은가? 그러려면 기후위기의 가장 큰 당사자인 시민의 편에 서야 한다.
▲ 오기출 / 푸른아시아 상임이사(소셜 코리아 운영위원) ⓒ 오기출
필자 소개: 이 글을 쓴 오기출 푸른아시아 상임이사 겸 <소셜 코리아> 운영위원은 경제학을 전공하고 1997년부터 기후위기 현장에서 기후난민들의 자립을 지원해온 기후운동가입니다. 국제기후종교시민네트워크(ICE)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고 유엔사막화방지협약 CSO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관심영역은 △무역에 온실가스가 포함되면서 구성되는 세계질서 변화 △기후위기와 인권, 식량, 전쟁, 테러의 상호 관계 △기후위기로 땅, 공동체가 붕괴된 마을 공동체의 자립과 생태복원입니다. 주요 저서로 <한 그루 나무를 심으면 천 개의 복이 온다>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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