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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 지켜내자” 대통령실로 향한 분노의 행진 막은 경찰

민주노총,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윤석열 정부 규탄대회 열어…고 김용균 어머니, 고 이한빛 아버지도 참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삼각직역 인근에서 '중대재해 처벌 무력화 하는 윤석열 정부 규탄 결의대회가 열리기로 한 전쟁기념관으로 행진하다가 경찰이 저지하자 대치하고 있다. 2022.10.26 ⓒ민중의소리 
 
반복되는 일터에서의 죽음을 막고자 싸웠던 이들이 26일 다시 모여 용산 대통령실로 향했다. 윤석열 정부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시도를 규탄하고, 지금 필요한 건 오히려 '법 강화'라는 점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런 분노의 행진은 경찰에 가로막혀, 목표 지점이었던 대통령실 앞까지 다다르지 못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이날 용산 삼각지역 인근에서 '중대재해 처벌 무력화하는 윤석열정부 규탄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날 결의대회에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위해 29일간 단식 농성을 벌였던 고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씨와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 씨도 함께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고 이한빛 PD의 6주기 기일이었다.

당초 결의대회는 서울역 앞에서 집결한 뒤,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 맞은편인 전쟁기념관 앞에서 진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집회 참석 인원이 신고한 500명을 넘었다며 100여m 앞에서 펜스를 치고, 겹겹이 띠를 이뤄 이들의 행진을 가로막았다. 이 과정에서 일부 조합원들이 넘어져 뒹굴고, 넘어진 조합원을 여러 명의 경찰이 끌어내기도 했다. 경찰차에서는 "신고된 인원만 행진에 참여하라"는 방송만 반복해서 나올 뿐이었다. 이날 참석 인원은 주최 측 추산 700명이었다. 민주노총은 "경찰은 신고된 인원만 강조하면서도 실제적인 이동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아슬아슬한 대치는 20여 분 동안 계속됐고, 더 이상 집회 장소로의 진입이 어렵다고 판단한 민주노총은 부상 등의 우려를 감안해 삼각지역 12번 출구 앞 좁은 공간에서 결의대회를 진행해야 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삼각직역 인근에서 '중대재해 처벌 무력화 하는 윤석열 정부 규탄 결의대회가 열리기로 한 전쟁기념관으로 행진하다가 경찰이 저지하자 마찰을 하고 있다. 2022.10.26 ⓒ민중의소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삼각직역 인근에서 '중대재해 처벌 무력화 하는 윤석열 정부 규탄 결의대회가 열리기로 한 전쟁기념관으로 행진하다가 경찰이 저지하자 마찰을 하고 있다. 2022.10.26 ⓒ민중의소리

"투쟁으로 만든 중대재해처벌법, 투쟁으로 지키자"
 
중대재해처벌법은 반복되는 산재 사고에 대한 책임을 안전 의무를 다하지 않은 원청의 경영책임자에게 묻고, 이를 통해 회사의 진짜 책임자가 안전한 노동 환경을 만들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법이다. 지난 1월 27일 시행돼, 시행된 지 이제 1년도 안 된 법이다. 그마저도 50인 미만 사업장은 2024년 1월까지 법 적용이 유예됐으며,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하겠다는 의지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 작업에 착수했고, 기획재정부는 노동부에 경영책임자 형사처벌 규정 삭제를 제안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경영책임자 형사처벌은 중대재해처벌법의 핵심 조항이다.

지금까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건 단 두 건에 불과하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1호 업체 두성산업은 최근 위헌심판제정을 신청했다. 정부도, 기업도 중대재해처벌법을 흔드는 사이 노동자들의 산재 사망도 끊이지 않고 있다.
 
양경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삼각직역 인근에서 열린 '중대재해 처벌 무력화 하는 윤석열 정부 규탄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2.10.26 ⓒ민중의소리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은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이전하는 이유를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런데 노동자들의 살겠다는 절규마저도 외면하는 정부가 어찌 국민과 소통할 수 있겠나"라고 개탄했다.

양 위원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 목숨으로 만들었다"며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의 의미를 다시금 상기시켰다.

그는 "한 해 2천명씩 꼬박꼬박 죽어 나가는 노동자들이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 없다 외치며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요구했다. 자식 잃은 슬픔을 가슴에 안고, 김용균의 어머니, 이한빛의 아버지가 곡기를 끊고 풍찬노숙하며 만들어낸 법"이라며 "다시는 이런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절절한 절규가 만들어낸 법"이라고 강조했다.

양 위원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이 된 후 현장에서는 조금씩 변화를 느낀다고 한다"며 "그 이유는 중대재해처벌법이 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했기 때문이다. 이 단 하나의 조항이 노동자의 목숨을 조금이나마 연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이걸 훼손하고, 무력화하겠다는 윤석열 정부는 노동자 안전이 아니라 사장들이 감방 가는 거 막아주는 데 혈안이 돼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 위원장은 "노동자들은 건설 현장에서 떨어져 죽고, 제조업 현장에서 끼어 죽고 눌려 죽고, 학교 급식실에서 폐암 걸려 죽어나가고 있다. 이런 노동자들은 윤석열 정부에게는 국민이 아닌가"라며 "그래서 우리는 맞설 것이다. 우리의 투쟁으로 이 법을 만들어냈듯 우리의 투쟁으로 이 법을 지켜내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윤석열 정부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시도에 착잡한 유족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삼각직역 인근에서 '중대재해 처벌 무력화 하는 윤석열 정부 규탄 결의대회가 열리는 전쟁기념관 앞으로 행진하고 있다. 2022.10.26 ⓒ민중의소리

SPC그룹 계열사 제빵공장 산재 사망사고와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왔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임종린 파리바게뜨 지회장은 "2인 1조로 근무했다면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똑같은 이야기를 언제까지 들어야 하느냐"며 "아무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으니 계속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임 지회장은 "산재 사망 등에 대해 SPC는 제대로 처벌받고 실질적인 예방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SPC뿐만 아니라 많은 현장에서 죽어가는 노동자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이 더 강화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위해 곡기를 끊었던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 씨도 무대에 올랐다.

이 씨는 "오늘은 아들이 방송 노동 현장에서 스태프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고발하고 하늘로 떠나간 날"이라며 "혼신을 다해 추모하고 싶은데, 추모에만 몰두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고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이 씨는 "산재와 재난 참사 피해자, 유족들은 안전하지 않은 일터와 세상에서 연일 쏟아지는 노동자 시민의 비보를 들으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며 "(현실이 이런데도) 기업과 경영책임자에 면죄부를 주려는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시도에 산재 피해자와 유족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분노스럽다"고 울분을 토해냈다.

이어 "윤석열 정권은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시도를 즉각 중단하고, (법 위반에 대해) 엄중하게 처벌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 김용균 어머니 김미숙 씨도 착잡한 표정으로 대회에 참석했다.

김 씨는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올 초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더라도 아직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이 안 되고, 5인 미만 사업장도 (적용 대상에서) 빠져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시행령 개정을 통해 무력화하는 시도를 해서 너무 걱정스럽고 착잡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어도 기소도 제대로 안 되고, (기소된 기업은) 위헌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렇게 되면 다른 회사들도 산재를 막기 위한 노력을 멈출 것 같다"며 "우리는 일터에서의 죽음을 막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었는데,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건 저희 취지와 멀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삼각직역 인근에서 '중대재해 처벌 무력화 하는 윤석열 정부 규탄 결의대회가 열리는 전쟁기념관 앞으로 행진하고 있다. 2022.10.26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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