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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동포아줌마의 세련된 민족수다

재미동포아줌마의 세련된 민족수다
 
서울을 ‘종북’에서 ‘해방’시켜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해버리다.
 
한성 기자
기사입력: 2013/09/02 [10:26] 최종편집: ⓒ 자주민보
 
 
▲재미동포 신은미씨의 강연회. 청년미래교육원과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의 공동주최로 8월 30일 기독교회관에서 열렸다. © 한성 기자

온 나라가 정신줄을 놓은 듯했다. 8월 28일부터였다. 국정원이 일으킨 ‘내란음모’ 소동 탓이었다. 뉴스도 SNS도 ‘내란음모’가 장악했다. ‘이석기’ 혹은 ‘내란음모’가 인터넷 검색어 1위 자리에서 오랫동안 내려올 줄을 몰랐다. 기회는 찬스(chance)라고 했던가. 예의 그 ‘종북몰이’ 또한 난리법석이었다. 물 만난 고기 같았다.
 
▲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규탄하는 촛불 대오에 쏟아지는 물대포. 보수세력들에게 촛불대오는 '종북난동' 쯤으로 묘사되고 있다. ©사진 민중의 소리 펌

이민위천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고대 중국의 사가인 사마천이 느닷없이 ‘종북’이 되었다. 이유는 간단명료. 이민위천이라는 말이 북 김일성주석의 좌우명이어서이고 통합진보당 이석기의원의 집무실 벽에 표구로 걸려 있어서이다. 종북몰이는 프리미어리그 최고 클럽인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게까지 미쳤다. 독일민요로서 영국에 널리 불리워져 맨유의 응원가로 되어있는 ‘적기가’를 진보당이 정세강연회에서 불렀다는 것을 이유로 삼았다.

온 사회의 모든 곳에 종북몰이가 휘도는 듯했지만 그러나 모든 게 그렇듯 예외는 있었다. 정치1번지라고 하는 서울의 종로일대가 그 예외 지대였다.
더 구체적으로는 기독교회관 2층과 그 근처의 몇몇 호프집이었다. 지난 8월 30일이었다. 정확한 시간은 밤 8시부터 최소 12시까지.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저자 신은미씨 © 한성 기자
그때, 그곳에 ‘종북몰이’는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사람들이 쉼 없이 웃었다. 박수도 그 폭소에 정비례했다. 한 아줌마의 수다 때문이었다. 신은미. 그녀는 ‘재미동포 아줌마 북에 가다’의 저자이다. 신은미씨는 최근 북을 방문했다. 네 번째 방북이라고했다.

북 여행을 마치고 곧바로 서울로 와서는 그녀는 이곳저곳에서 보따리를 풀고 다녔다. 대전을 훌쩍 넘어가기도했다. 그 보따리에는 따끈따근한 사진자료들이 한없이 나왔다. 사진만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몇 년동안 확 달라진 평양풍경의 최신 사진자료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귀엽고 이쁘다. 농익었다. 세련되었다. 소녀같기도하다. 신은미씨의 강연회에 참여한 사람들이 평가한 내용이다. 신은미씨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신은미씨의 수다에 대한 평가였다.

북의 최신 모습과 신은미씨의 수다가 적절히 혹은 예술적으로 버무려져 기가 막히게 맛 있는 음식 같은 것이 되었다고 사람들은 즐거워했다. 요즘 유행하는 말을 써서 그 즐거움을 표현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이~ 요물!! 관객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그랬다.

끝없이 이어지는 수양딸 자랑질이며 또 수양조카의 이야기도 그랬다. 함께 여행한 남편 이야기를 섞는 것도 잊지 않았다.

주로 북의 사람들 사는 모습들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나 신은미씨의 화려한 수다는 사람들을 웃게만 한 것이 아니었다.

백두산 천지에 오르자마자 가슴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이 있었다고 했다. 무엇이었을까? 사람들은 예상은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궁금해하기도 했다. 자신도 모르게 가슴에서 치밀어 올랐으며 그것은 급기야 밖으로 튀쳐나가서는 우렁찬 목소리에 실렸다고 그녀는 설명했다.

조국통일만세!
조국통일만세!
통일조국만세!

신은미씨는 남편과 함께 그렇게 목놓아 외쳤다고 했다. 피는 속일 수 없다는 것은 맞다. 사람들은 그것을 그녀에게서 감동적으로 다시 한번 확인했다. 강연회 마지막에는 사람들도 함께 외쳤다.

그렇게 웃게도 하고 가슴을 뜨겁게도 하더니 끝판에 가서 신은미씨는 기어이 사람들을 죄다 울려버리고 말았다.

생이란 무엇인가! 북의 대중가요를 그녀는 직접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성악가다운 아름답고 세련된 목소리였다. 영어 가사로도 이어나갔다. 북의 공연에서도 불렀던 노래라고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뭉클했던 것은 성악가로서 반주 좋고 노래를 잘 불러서가 아니었다. 분단된 조국이 서러워서였고 분단된 조국을 기어이 통일시키고 말겠다는 결의를 세우느라 사람들은 가슴으로 그렇게 울었다. 뒷풀이에서 그렇게 사람들은 말했다.

그렇지만 그러한 거대담론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 수 있었다. 세련된 수다쟁이 재미동포 아줌마의 가슴 속에 거대하게 또아리 틀고 있는 민족사랑을 보았기 때문일 수도 있었던 것이다.
강연회 말미의 질문과 답변 과정에서 그녀의 민족사랑은 특히 선명하게 확인되었다.

북의 열병식 같은 그런 것을 보면서 전체주의적 인상은 받지 않았는가하는 것이 마지막 질문이었다.
일반적으로 보면 반북적인 정서에 잇닿아 있는 듯한 질문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긴장이 될 만도 했고 다소 껄끄러울 수도 있었다.

"네 저도 북을 관광하기 전에는 군인들의 열병식장면 같은 것들을 보면 무시무시하고 그랬어요. 로봇처럼 일사분란한 몸동작 등을 보았을 때 말예요"
그녀는 밝게 웃으면서 답변을 해나갔다.

열병식 등이 열리곤 하는 김일성광장의 주변에 대한 설명을 했다. 김일성 광장의 한 복판 혹은 가장 목이 좋은 자리에 사람들이 공부를 할 수 있는 대형도서관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아이들이 롤러 브레이드도 타고 한가롭게 놀이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간단하게 마무리를 했다.
“공부하는 것 방해하지마라. 아이들 노는 것 방해하지마라. 그것을 방해하면 가만있지 않겠다. 그렇게 보였어요.”

재미동포 아줌마의 세련된 수다는 그랬다. 신은미씨의 허락과 상관없이 ‘민족수다’라는 말을 개념화시켜도 되어도 좋을 순간이었다.
그날 그 일대 몇몇 호프집은 이른바 그런 '해방구'였고 그 해방구의 밤은 새벽까지도 어두워질 줄을 몰랐다. 밤을 밝힌 그 환한 불빛은 ‘종북몰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허구인가하는 것을 속속들이 드러내주고 있었다.


 
강연하기 위해 강단을 들어서는 신은미씨 © 한성 기자
 
▲ 강연회 사회자인 서울민권연대 정종성 공동대표로부터 소개받는 신은미씨 © 한성 기자
 
▲사진자료에 몰두하는 관객들 © 한성 기자
 
▲사진자료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신은미씨 © 한성 기자
 
▲ 북의 대중가요 생이란 무엇인가를 직접 연주하며 노래하고 있는 신은미씨 © 한성 기자
 
▲ 원로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신은미씨 © 한성 기자
 
▲ 강연회를 공동주최한 청년미래교육원 지철 원장으로부터 그림 선물을 받고 있는 신은미씨 © 한성 기자
 
▲ 조국통일만세를 외치는 신은미씨 부부와 관객들 © 한성 기자
 
▲강연회끝에 이루어진 기념사진 © 한성 기자
 
▲강연회가 끝나고 난 뒤 뒷풀이 자리에서 학생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신은미씨 © 한성 기자
 
▲신은미씨 강연회에는 중국 <코리안뉴스>의 대표이자 중국 칭와대 정기열 교수의 부인인 정정옥씨도 참석했다(사진왼쪽). 사진 오른쪽은 신은미씨의 남편인 정태일씨. 정태일씨는 강연회 끝부분에 그리고 뒷풀이에서 주로 조국통일만세를 연호하는 것으로 신은미씨의 부군인 것을 드러내곤해서 이날 강연회참석자들로부터 또 다른 인기를 불러일으켰다. © 한성 기자

(위 사진의 대부분은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의 페이스북에 있는 사진 자료들로서 정태현씨가 찍은 것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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