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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있는 삶” 꿈꾸던 노동자의 삶을 꺾은 건 국가였다

김세훈 기자

분신 한 달 양회동 지대장
4년 전 “살려고” 노조 가입
노조원들 일감 살뜰히 챙겨
동료들 “노사 간 징검다리”

<b>양 지대장 추모하는 청년들</b> 양회동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지부 3지대장이 분신한 지 한 달이 된 1일 청년학생단체 소속 활동가들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 지대장을 추모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양 지대장 추모하는 청년들 양회동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지부 3지대장이 분신한 지 한 달이 된 1일 청년학생단체 소속 활동가들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 지대장을 추모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고 양회동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지부 3지대장이 정부의 건폭몰이 수사에 항의하며 분신한 지 1일로 한 달이 흘렀다. 지난 한 달간 노동·시민사회계에서는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경향신문은 양 지대장과 가까이 지내던 이들을 통해 그의 삶을 전해들었다. 동료들은 그를 ‘순한 사람’ ‘익살맞은 형’ ‘헌신적이던 지대장’으로 기억했다. “먹고살기 위해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그가 분신에 이르기까지 약 4년. 그 시간을 되짚었다.

양 지대장은 노조에 가입하기 전 철근공으로 8년가량 일했다. 손재주가 좋아 현장에서 3년 만에 반장을 맡는 등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평균 고용 기간이 2~3개월에 불과한 건설 현장에서 쉬지 않고 일감을 구하기는 어려웠다. 그는 2019년 10월 노조에 가입했다.

대형 건설 현장에선 ‘오야지’로 불리는 업자들의 중간착취가 만연했다. 이들에게 임금 10%를 떼이지 않으려고 노동자들은 노조에 가입했다. 휴일근로수당, 유급휴가 등도 노조 가입 후 보장받는 경우가 많았다. 김현웅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사무국장은 “불법 재하도급에 시달린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노조를 찾는 경우가 많다”며 “양 지대장도 생계를 꾸려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노조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양 지대장은 2022년 1월 강원건설노조 3지대장을 맡았다. 노조원들의 현장 일감을 따오는 것이 그의 주업무였다. 통상 3~5년 정도 지나야 할 수 있는 지대장 업무를 일찍 맡은 축에 속했다. 노조활동에도 열심이었다. 상경투쟁 집회가 있는 날에는 한 시간 전 집회 현장에 도착해 무대를 준비했다고 한다.

2022년 1월 40여명 남짓이던 강원건설지부 3지대 노조원은 지난달 약 150명까지 늘었다. 박석용 강원건설지부 조직부장은 “양 지대장이 지역 구석구석에 있는 현장까지 찾은 덕분”이라면서 “양 지대장은 성격이 유들유들하고 말이 잘 통해 노사 간 징검다리 역할을 잘한다며 현장에서도 인기가 많았다”고 했다.

양 지대장은 평소 주변에 “조합원들 모두 ‘저녁이 있는 삶’을 살게 해주고 싶다”고 말하고 다녔다. 그의 바람이 꺾이기 시작한 것은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이 본격화한 지난해 12월부터였다. 경찰은 건설노조를 ‘건폭’으로 규정하고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현장 사무실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되고, 녹음기를 켜고 교섭을 해야 했다.

양 지대장은 주 5~6일 300㎞ 이상 차를 몰아 속초·고성·양양을 거점으로 돌며 현장 교섭을 시도했다. 건폭몰이가 거세질수록 현장에 가도 현장 관리자를 만날 수 없는 경우가 늘었다. 현장 관리자들이 대놓고 “민주노총은 채용 못한다”고 으름장을 놓아도, 양 지대장은 한 현장을 여섯 번씩 반복해 찾아가면서 조합원 채용을 읍소할 정도로 애를 썼다고 한다.

지난 3월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공갈·협박으로 8000만원을 갈취한 혐의를 양 지대장에게 적용했다. 이귀상 강원건설지부 3지대 형틀팀장은 “처음에 자정이 넘어서까지 조사를 받았다길래 ‘형이 내가 모르는 무슨 잘못을 했나’ 싶었다. 그런데 내용을 보니 채용 과정에서 교섭한 것을 트집 잡은 것이었다”고 했다.

양 지대장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평소 어울리던 당구 동호회 사람들에게 탄원서 작성을 요청했다. 양 지대장을 비롯해 경찰 수사를 받은 노조 간부 3명 앞으로 온라인 탄원서 5000여장이 모였다.

검찰은 지난 4월26일 공동공갈 등 혐의로 양 지대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팀장은 “생전 만났을 때 농담도 별로 안 하고 수척해 보였다. 같이 술을 마시다 나한테 ‘형님, 요즘 힘들어요’ 하고 푸념하곤 했다”고 했다. 결국 양 지대장은 노동절인 지난달 1일 오전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박 조직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힘들어서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말하고 분신했다.

강원 지역 노조 급격히 위축
타지로 떠나는 조합원도

남은 이들은 양 지대장이 떠난 뒤 강원지역 노조활동이 위축되고 있다고 했다. 교섭차 현장을 찾아도 “민주노총은 못 뽑는다. 노조 조끼 벗고 들어오라”는 말을 듣는다는 것이다. 박 조직부장은 “많은 조합원들이 일자리를 찾아 타지로 떠났다. 남은 사람들도 앞으로 어떻게 노조활동을 해나가야 할지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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