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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주간 통계, 의미 있을까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3/06/10 11:14
  • 수정일
    2023/06/10 11:1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한국부동산원 주간 아파트 동향... ‘실거래’가 없으면 ‘호가’로 통계

늘어선 공인중개사무소 자료사진 ⓒ뉴스1
“지난주에만 집주인 요구로 호가를 올린 매물만 2개다. 집값이 오르고 있다는 통계가 나오고, 더 오를 거라는 기사가 나오니까 ‘싸게라도 팔겠다’던 집주인들 마음을 바꾼 거다. 그런데 실제로는 전월세 거래만 좀 있을 뿐 매수자는 여전히 적다. 그나마 집을 사려고 알아보는 사람들도 싼 집, 급매물만 찾는다”
- 서울 노원구 ‘ㅇ’공인중개사무소 중개사 소모씨

“아직도 매수자들은 집값이 더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는 분위기다. ‘얼마 밑으로 나오는 집 있으면 연락 달라’고 요청한 매수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집주인이 호가를 올리고 있다. 집값이 오르고 있다는 통계와 기사들에 휩쓸려 그런 결정을 한 거다. 혹시나 싶은 마음이겠지만, 솔직히 (호가를 올린)그 집들은 절대 안 팔린다”
- 서울 동작구 ‘ㅅ’공인중개사무소 중개사 신모씨

한국부동산원(부동산원)이 매주 발표하는 ‘주간 아파트 동향’ 통계에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1년째 하락 중이던 아파트값이 다시 반등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면서 일부 집주인들이 호가를 올리는 모양새다. 반면 부동산 시장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집을 사려는 사람은 여전히 적은 데, 집주인들만 호가를 올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국토교통부(국토부) 산하기관인 부동산원의 주간통계에 대해 “정확도가 떨어져 부동산 시장에 혼란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부동산원은 주간통계 집계시 표본가격에 ‘실거래가’ 대신 ‘호가(매도자가 집을 팔 때 부르는 가격이)’를 반영하기도 하는데, 이해관계자 중 하나인 중개사가 작성한 호가를 표본 가격으로 산정한다는 점에서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주간 아파트 매매값 변동률 ⓒ뉴시스

 

매주 발표되는 ‘아파트값 통계’... 믿을 수 있을까

지난 8일 부동산원이 발표한 ‘주간 아파트 동향’에 따르면 6월 첫째 주(5일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전주(0.04%) 대비 0.04% 상승했다. 5월 넷째 주(22일 기준) 전주 대비 0.03% 오르며, 1년만에 상승 전환한 데 이어 3주 연속 상승세다.

지난 3주간 서울 아파트값 상승 폭은 각각 0.03%, 0.04%, 0.04%다. 아파트값이 10억원이라고 가정하면 각각 30만원, 40만원, 40만원이 오른 셈이다. 문제는 이처럼 미미한 수준의 변화가 통계에선 ‘지수 상승’으로 표현된다는 점이다. 큰 의미를 갖기 어려운 수준의 지수 상승을 주간 단위로 쪼개 발표하다 보니 집값 반등의 신호로 오인되기도 한다.

예컨대 서울 아파트값이 매주 0.01%씩 올라, 한 달 새 0.04% 상승했고 해보자. 10억원짜리 아파트가 한 달 동안 40만원 오른 것에 불과하지만, 주 단위로 통계를 내면 상승 폭과 별개로 ‘4주 연속 상승’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통계상 유의미한 수치는 아니지만, 시장에선 연속적인 집값 상승이나 하락을 크게 받아들인다.

실제 일부 언론들은 최근 부동산원 주간 통계를 두고 “집값 상승 심상찮다”, “집값 반등 시작되나”, “반짝 상승 아니었다” 등의 기사를 통해 마치 집값이 반등할 것처럼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동산원 주간 통계를 전국단위로 살펴보면 최근의 지수 상승을 집값 반등의 신호로 보기 어렵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우선 아파트값 상승은 서울 등 수도권(0.01%)과 세종(0.18%)에 국한됐다. 반면 ▲제주(-0.12%) ▲부산(-0.10%) ▲대구(-0.08%) ▲전북(-0.07%) ▲전남(-0.07%) ▲경남(-0.06%) ▲강원(-0.06%) ▲울산(-0.06%) ▲광주(-0.05%) 등 대부분의 지역에선 하락세가 지속됐다. 집값 반등보단 부동산 침체기가 지속되고 있다는 분석이 더 적합해 보인다.

거래량도 급감했다. 집값 반등 추세를 논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거래량이 받쳐줘야 한다는 게 부동산 업계 정설이다. 하지만 주간 통계상 서울 아파트값이 상승 전환한 5월 거래량은 오히려 하락세가 지속되던 4월보다 40%가량 급감했다. 서울시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5월 서울 아파트 매매거래는 1,768건으로, 전월(3,184건)에 한참 못 미쳤다.

특히 주간 통계상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를 견인한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의 거래량도 크게 줄었다. 강남구의 5월 거래량은 90건으로 전월(185건)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서초구의 역시 전월(153건)의 1/3 수준인 52건을 기록했다. 대단지 아파트가 많은 송파구는 5월 159건이 거래됐으나, 전월(277건)보단 큰 폭으로 줄었다.

한문도 전 연세대 정경대학원 금융부동산학 교수는 “부동산원의 주간 통계는 일부 팩트가 맞을 순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가짜뉴스에 가깝다”며 “팩트체크를 위해 부동산원 측에 아파트 표본을 공개해 달라고 수없이 요청했지만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런 통계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자료사진 (해당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입니다.) ⓒ뉴시스

 

‘정확성’도 담보 못하는 주간 통계


부동산원 주간 통계의 가장 큰 맹점은 정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국토부 산하기관인 부동산원의 통계라면 그 정확도에 대해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지만, 결과물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게 부동산 전문가들의 평가다.

정확도가 떨어지는 가장 큰 원인은 지나치게 짧은 ‘조사 기간’에 있다. 부동산원은 매주 화요일부터 다음 주 월요일까지 조사를 진행해 그 주 목요일 ‘주간 아파트 동향’을 발표한다. 전국 단위 통계를 매주 내고 있는 셈이다.

정확한 통계를 위해선 실거래가가 필수다. 하지만 주간 통계는 조사 기간이 짧아 거래가 없을 수 있다. 이 경우 부동산원은 실거래가와 호가를 섞어 사용한다. 부동산원 관계자는 “주간 통계 작성시 조사 기간 내 표본이 된 아파트에서 실거래가 이뤄지면 이를 표본 가격으로 반영하지만, 거래가 없으면 인근 유사 단지의 실거래나 호가를 활용한다”면서 “유사거래마저 없을 땐 최근 거래 사례나 호가를 활용해 표본가격을 산출한다”고 설명했다.

호가는 매도자, 즉 집주인이 집을 팔 때 부르는 가격이다. 집주인과 매수자가 합의해 실제 거래한 실거래가와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호가를 적용할 경우 통계의 정확성을 담보할 수 없는 이유다.

특히 최근처럼 거래량이 급감한 상황에선 ‘실거래가’보다 ‘호가’가 표본 가격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지난해 고금리로 인한 집값 대세하락 이후 급감했다. 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5년(2017~2021년)간 서울 아파트 연평균 거래량은 약 8만3,800건이다. 하지만 지난해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1만5천여건(17.8%)으로 크게 줄었다. 올해 거래량은 1월 1,167건, 2월 2,286건, 3월 3,234건, 4월 2,981건, 5월 1,768건이다. 월 거래량이 1천건 아래로 떨어졌던 작년보단 소폭 상승했지만, 여전히 예년 월평균 거래량인 6천여건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호가의 특성상 집값 상승기엔 집주인들의 기대감이 반영돼 실거래가보다 빠르게 상승하고, 반대로 집값 하락 국면에선 가격하락을 인정하기 꺼리는 심리 때문에 천천히 반영된다”며 “정부가 굳이 이런 호가를 이용해 주간 통계를 내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부동산원의 주간 통계의 허점은 미국 부동산 통계와 비교하면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미국의 대표적인 주택가격지수 중 하나인 ‘케이스-실러’지수는 뉴욕, 시카고 등 주요 20개 대도시를 대상으로 산출된다. 부동산원의 ‘주간 아파트 동향’과 유사하게 주택의 가격 변화를 지수화한 통계다.

케이스-실러 지수는 ▲20개 대도시별로 지수 산출한 ‘개별 대도시지수’와 ▲20개 대도시지수를 종합한 ‘20대 대도시지수’ ▲10개 대도시지수를 종합한 ‘10대 대도시지수’ ▲전국의 지수를 종합한 ‘전국지수’ 등 네 가지로 구분된다. 하지만 주간 단위로 발표되는 부동산원의 통계와 달리 3개월 혹은 월 단위로 발표된다.

특히 케이스-실러 지수는 실거래가 없을 때 ‘호가’를 표본 가격으로 활용하는 한국과 달리 최소 2번 이상 거래된 주택의 가격 변동률만 통계를 내 신뢰도가 높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주간 단위로 신뢰성 있는 통계를 내놓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봤다. 최은영 소장은 “불가능한 통계를 억지로 내다보니, 호가를 적용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라며 “정부의 이런 부정확한 통계는 부동산 시장에 혼란을 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하루라도 빨리 없애는 것이 맞다”고 꼬집었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 교수도 “당장 지금 거래된 아파트의 실거래가 신고도 한 달이 소요되는 데, 관련 통계를 일주일마다 내놓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부동산 시장에 혼란을 초래하는 통계를 대체 왜 발표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감사원 (자료사진) 2022.05.27 ⓒ민중의소리

 

이미 신뢰 잃은 부동산원 주간 통계... “진짜 문제는 짧은 통계 주기”


부동산원 주택가격 통계를 둘러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집값 상승이 한창이던 2020년 7월 김현미 당시 국토부 장관이 국회에서 부동산원 주택가격 동향조사를 근거로 “서울 집값이 (지난 3년간) 11% 올랐다”고 말해 논란이 된 바 있다. 같은 기간 KB부동산 통계에서는 서울 아파트값이 52%나 오른 것으로 나와 격차가 심했기 때문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도 해당 기간 서울 전체 주택 가격은 34% 올랐으며, 이 중 아파트값 상승률은 52%에 달한다고 발표해 부동산원 통계에 대한 의문이 커졌다.

이후 국가승인통계를 작성하는 부동산원이 부동산 시장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부동산원은 2021년 7월 주간 아파트 조사 표본을 기존 9,400개에서 3만2,900개로 늘리기도 했다.

감사원은 작년 9월 말부터 부동산원에 대한 감사를 진행 중이다. 부동산원이 표본을 치우치게 추출해 통계를 왜곡했다는 이유에서다. 감사 결과는 조만간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부동산원은 감사 결과에 따라 주간 통계에 대한 개편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한문도 교수는 “이미 감사원으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는 부동산원이 여전히 정권의 입맛에 맞춘 통계를 내놓고 있다”며 “자신들의 의무를 망각하고 기득권에 유착하는 형태의 통계가 나오는 것이 상당히 실망스럽다”고 비판했다.

최은영 소장은 “부동산원이 표본을 3만여개로 늘렸는데, 이건 표본을 늘려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진짜 문제는 턱 없이 짧은 통계 주기다. 수많은 통계를 내는 통계청에서도 주간 단위로 나오는 통계는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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