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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의 공포, 나이 80에 이민 떠나는 친구

 
 
[이기명 칼럼] 그래도 뼈는 이 땅에 묻어 다오
 
이기명 | 2013-09-16 06:14:5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대검찰청 감찰1과장 김윤상 검사의 ‘사직 이유’전부를 올리는 것은 바로 김윤상의 절통한 마음을 읽고 눈물을 함께 흘리며 나이 80에 이민을 떠나는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김윤상의 심정은 국민에게도 그만큼 고통스러웠다.

 

 

 

또 한 번 경솔한 결정을 하려 한다. 타고난 조급한 성격에 어리석음과 미숙함까지 더해져 매번 경솔하지만 신중과 진중을 강조해 온 선배들이 화려한 수사 속에 사실은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아온 기억이 많아 경솔하지만 창피하지는 않다.

억지로 들릴 수는 있으나, 나에게는 경솔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법무부가 대검 감찰본부를 제쳐두고 검사를 감찰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경우다. 그래서 상당 기간의 의견 조율이 선행되고 이 과정에서 마찰이 빚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검찰의 총수에 대한 감찰 착수사실을 언론을 통해서 알았다. 이는 함량미달인 내가 감찰1과장을 맡다 보니 법무부에서 이렇게 중차대한 사안을 협의할 파트너로는 생각하지 않은 결과이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내 본연의 고유업무에 관하여 총장을 전혀 보필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책임을 지는게 맞다.

둘째, 본인은 소신을 관철하기 위해 직을 걸어놓고서 정작 후배의 소신을 지켜주기 위해 직을 걸 용기는 없었던 못난 장관과 그나마 마음은 착했던 그를 악마의 길로 유인한 모사꾼들에게, 총장의 엄호하에 내부의 적을 단호히 척결해 온 선혈낭자한 내 행적노트를 넘겨주고 자리를 애원할 수는 없다. 차라리 전설속의 영웅 채동욱의 호위무사였다는 사실을 긍지로 삼고 살아가는게 낫다.

셋째, 아들딸이 커서 역사시간에 2013년 초가을에 훌륭한 검찰총장이 모함을 당하고 억울하게 물러났다고 배웠는데 그때 아빠 혹시 대검에 근무하지 않았냐고 물어볼 때 대답하기 위해서이다. ‘아빠가 그때 능력이 부족하고 머리가 우둔해서 총장님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단다. 그래서 훌훌 털고 나왔으니까 이쁘게 봐주라’고 해야 인간적으로 나마 아이들이 나를 이해할 것 같다.

학도병의 선혈과 민주시민의 희생으로 지켜 온 자랑스런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권력의 음산한 공포속에 짓눌려서는 안된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딸이 ‘Enemy of State‘의 윌 스미스처럼 살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된다.

모든 것은 분명해졌다. ‘하늘은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는 경구를 캠퍼스에서 보고 다녔다면 자유와 인권, 그리고 정의를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쳐야 한다. 어떠한 시련과 고통이 오더라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위한 절대가치는 한치도 양보해서는 안된다.

미련은 없다. 후회도 없을 것이다. 밝고 희망찬 미래를 만들기 위해 난 고개를 들고 당당히 걸어나갈 것이다.

 

얼굴 한 번 본 적도 손 한 번 잡아본 적도 없는 김윤상(경칭 생략)의 사직 이유를 읽으면서 침침한 눈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오죽했으면 사표를 섰을까. 그렇게 힘들다는 고시에 합격을 했고 이제 감찰1과장이라는 요직에 오른 김윤상은 이미 선택받은 몸이다.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해도 앞길은 비단길이다. 후배들이 그를 얼마나 부러워했을 것인가.

김윤상은 사표를 냈다. 이유는 위에 올린 내용 그대로다. 부모는 뭐라고 했을까. ‘달걀로 바위치기다. 바람 부는대로 살아라. 네가 그런다고 세상 바뀌지 않는다’ 이러지 않았을까. 노무현대통령의 모친이 한 말 그대로 말이다. 그러나 사표를 냈다. 그의 행동에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그냥 눈물이 난다.

어디를 가도 조국은 대한민국

이민 간다는 친구는 고교동창이다. 졸업 후에도 자주 만난 친구다. 아쉬움 없이 산 친구였지만 운동권 아들이 감옥에 가고 자신도 마음고생을 무척 했지만 아들이 이민을 가자고 했을 때 한 마디로 거절한 친구다. 그런 친구가 이민을 간다니. 자식이 오라 하드냐니까 스스로 간다고 했다. 정나미 떨어져 더 못살겠다고 했다. 유신의 공포로 희망이 사라졌단다. 그날 술 많이 마셨다.

이제 다시는 못 볼 거라면서 눈물을 흘린다. 얼마나 더 살거라고 이민을 가느냐고 말리니 더 이상 마음고생 견딜 수 없을 것 같고 김윤상의 사표 이유를 보고 결심을 했다고 한다. 이 꼴 저 꼴 안 보고 안 들으면 괜찮겠지 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해 봤다. 과연 안 보고 안 들으면 괜찮을까.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친구의 얼굴 뒤로 세상 떠난 수많은 친구들이 보였다. 죽어서는 마음 편하게 살려나.

개똥밭에 굴러도 내 나라가 좋다

미국에서 대학병원 원장급에 예우를 받는 친구가 얼마 전 귀국했다가 한 말이 생각난다. ‘이제 미국생활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겠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50여년을 살아 온 성공한 의사친구의 말을 들으며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 마음을 왜 모르랴. 이민을 간다는 친구가 ‘죽으면 뼈는 한국에 묻어 달라’는 말과 무엇이 다르랴.

아는 법조인들이 있다. 검찰출신들도 있고 판사출신들도 있다. 모두 존경받는 분들이다. 검찰출신 법조인이 하는 말이 있다. 대화를 하다 보면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걸 늘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종의 자격지심일 것이다. 또한 스스로 검찰에 대한 세상의 평가를 자성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김기춘도 남재준도 황교안도 세간에 떠도는 말들을 들었을 것이다. 판단 역시 자신들이 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존경을 받고 싶어 한다. 대통령도 같다. 법조인이라고 다를 것이 있으랴. 그들도 어디 가서나 존경받는 법조인으로 대접을 받고 싶어 할 것이다.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가. 진짜 대접을 받을만한 사람이 못 받는 경우도 있고 대우는커녕 지탄을 받아야 할 사람이 엉뚱하게 대접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이게 바로 모순이고 이래서 사이비 법조인도 생기는 것이다.

사법살인의 판결문을 읽고 방망이를 두들긴 법조인들이 행세를 한다. 성공한 쿠데타는 쿠데타가 아니라고 한 법률가도 있다. 거들먹거리고 산다. 존경받는다고 생각할까.

존경은 강요한다고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검찰이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시퍼런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존경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불의한 정권의 탓이라고 책임을 전가해도 실은 자기들 스스로의 책임이다. 채동욱 검찰총장을 옹호하는 여론이 들끓고 김윤상을 칭찬하는 국민의 소리가 높은 것은 그들이 존경받을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정권이 무슨 죄목을 달아 채동욱을 쫓아내도 국민은 믿지 않는다. 국민은 어리석은 듯해도 현명하다. 그래서 하늘이라고 하지 않는가. 하늘은 저 높은 곳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숨이 멎는 것만이 죽는 것은 아니다

정권이 하는 기막힌 일은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15일의 청와대 발표는 또 한번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채동욱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채동욱은 아직도 검찰총장이고 하루 빨리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는 것이다.

채동욱은 이미 만신창이가 됐다. 진실이 밝혀져 조선일보의 혼외아들 보도가 오보로 밝혀지면 채동욱은 다시 검찰총장으로 복귀하는가. 복귀할 것 같은가. 명예가 회복되는가. 인간은 숨이 멎어서만 죽는 것이 아니다. 채동욱을 이렇게 죽여놓고 죽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 뻔뻔한 정권이라는 것은 국민이 다 알고 있다. 그렇기에 김윤상이 참을 수 없는 분노로 사표를 냈다. ‘전설적 영웅인 채동욱의 호위무사였다는 것을 긍지로 삼고 사표를 낸 것이다.’

검찰은 기로에 서 있다. 대한민국의 정의가 살아 있는지의 판가름을 내려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법이 정의라는 신념으로 살아 왔을 검사들이 법의 가치를 수호해야 하는 것이다. 옹달생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아무 힘이 없다. 그러나 그들이 흘러가며 서로 모이고 개울이 되고 강물이 되면 그 힘은 두렵다. 검찰에서부터 지금 강물이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강물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지켜봐야 한다.

유신으로 회귀하는가

한국정치의 현상을 지켜보면서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유신으로 다시 회귀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다. 생각만 해도 끔찍해진다. 그러나 그냥 넘겨 버릴 수가 없다. 도처에서 그런 징조가 체감되고 있기 때문이다.

채동욱에게 혼외 아들이 있다는 정보를 알 수 있는 기관이 어디인가. 채동욱도, 당사자라는 임 여인도 아니라는데 그것을 기정사실화 하는 조선일보의 황당한 보도가 나오는 배경을 국민은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국민들은 무시무시한 국정원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정권안보를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자행한 것이 중앙정보부요 안전기획부요. 지금의 국정원이 그 뒤를 이어가고 있다. 국정원이라는 권력기관이 검찰이라는 권력기관의 총수를 근거없는 모함으로 사표를 내게 했다. 지금 검찰이 몸부림 치고 있다. 채동욱은 정정보도와 유전자 감식을 요구하며 정면대응하다 감찰카드라는 벼락을 맞고 사표를 냈고 바로 감찰과장인 김윤상은 이에 저하면서 사표를 냈다.

전국 검찰의 검사들이 정면대응을 하고 있다. 국민의 여론이 들끓는다. ‘어마 뜨거라’인가. 청와대는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고 발을 뺀다. 이 역시 국민들은 꼼수라고 생각한다. 정치는 정도로 해야 한다. 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꼼수나 쓰다보면 버릇이 되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는 영영 잃어버리게 된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치를 병들게 만들고 결국은 자신들 스스로를 망하게 만든다.

박대통령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정치는 상대가 있다. 지금 국민과 야당이 무엇을 요구하는가. 남재준 국정원장의 해임과 국정원 개혁이다. 들어주면 된다. 손해날 것이 없다. 왜냐면 국민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야당은 원하는 것을 들어줬으면 정부에 협조를 해야 한다. 그러면 정치가 정상적으로 돌아간다. 목을 매서 끌고 갈 생각을 말고 함께 갈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은 유신의 공포를 잊지 않고 있다. 국민은 유신의 망령이 서서히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도망가고 싶다. 몸은 이 땅에 있어도 마음이 떠난다면 그건 정상이 아니다. 국민의 몸과 마음이 다 함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추석이 지나면 이민 간다는 친구가 이민을 단념했으면 좋겠다. 이민을 갔다 해도 바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빈다.


이 기 명(팩트TV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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