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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계 '엘리엇 소송' 패소가 말해주는 두 가지 교훈

  •  김장호 기자
  •  
  •  승인 2023.06.27 19:03
  •  
  •  댓글 0



 

재벌 3세가 종자기업을 키우는 과정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과정에서 발생한 3가지 사건

재벌의 천민 자본주의 행태

국제투기자본의 약탈 행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ISDS)에서 한국 정부가 패소해 약 1400억원을 물어주게 됐다. 엘리엇이 분쟁해결절차를 신청한 지 5년 만이다.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한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던 엘리엇은 합병에 반대했다.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였던 국민연금공단이 찬성해 합병이 성사됐는데, 당시 합병비율은 1 대 0.35로 삼성물산 주주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엘리엇은 2018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정에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며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근거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이었다.

이 사건은 국제분쟁소송이라는 신자유주의 제도가 가지는 약탈적 성격과 함께 국정농단까지 자행하며 사익을 편취한 한국 재벌의 천민적 행태를 그대로 보여준다.

(왼쪽부터)박근혜 전대통령, 최순실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뉴시스

재벌 3세의 종자돈, 종자기업을 키우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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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이재용은 1996년 이건희 회장에게 61억 원을 증여받는다. 물론 상속세 16억 원은 냈다. 그리고 삼성 에스원 주식 12만 주(23억 원), 삼성엔지니어링 주식 47만 주(19억 원)를 매입한다.

두 회사는 비상장 삼성 계열사였다. 곧이어 상장을 하게 되고, 이재용은 주식매각대금으로 605억 원을 번다. 상장차익은 562억 원이었다. 에스원에서 291억원, 삼성엔지니어링에서 256억 원 시세차익을 챙긴 셈이다.

당시는 상장회사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법령이 없었기 때문에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삼성 이재용이 개척한 편법, 즉 비상장계열사 주식을 먼저 취득하고 상장 후 시세차익을 남기는 방식은 이후 모든 재벌 3, 4세에게 확산된다.

그 방법은 더 진화하여 필요에 따라 계열사 간 합병 또는 분리 후 상장하는 방식까지 다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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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자돈을 키운 이재용은 종자기업을 만들어 계속 부풀린다.

1996년 이재용은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62만 주를 48억 원에 배정받는다. 전환사채(CB)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회사채를 말한다. 이재용은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해 삼성에버랜드 31.9%의 주식을 획득해서 최대 주주가 된다. 에버랜드가 이재용의 종자기업이 된 것이다.

에버랜드는 1998년 삼성생명 주식 345만 주를 주당 9천 원이라는 싼 가격에 매입한다. 삼성생명 주식은 당시 낮을 때도 5만 원, 높을 때는 15만 원까지 하는 주식이었다.

2014년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고 이재용은 에버랜드의 사명을 제일모직으로 바꾼다. 그리고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계획을 발표하고, 5개월 만에 합병에 성공하는데, 여기서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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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과정에서 발생한 3가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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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은 삼성전자에 대한 이재용의 지분을 늘리려는 조치였다. 이재용은 2015년 제일모직 지분을 23.23% 가지고 있었지만, 삼성물산 주식은 1%도 없었다. 당시 삼성전자 지분구조를 보면 삼성생명이 7.21%로 1대 주주. 삼성물산이 4.96%로 2대 주주였다. 이재용 부회장은 제일모직을 통해서 삼성생명을 19.34%로 지배하고, 다시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를 7.21%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삼성전자를 완벽하게 지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통합하는 방법으로 삼성물산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 7.21%에 대한 지배력까지 확장하려고 했다.

이 과정에 주가조작, 분식회계와 증거인멸, 뇌물수수와 국정농단이라는 3가지 대형 범죄가 발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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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삼성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을 1 대 0.35로 산정한다. 누가 보아도 삼성물산 주식이 비쌀 것 같은데 거꾸로 된 것이다. 제일모직은 에버랜드 정도이다. 그러나 삼성물산은 이병철 회장이 수출종합상사로 창립한 회사이고, 국내에서 레미안 등 건설공사, 해외에서 각종 대형 토목공사를 수행하는 알짜회사이다. 자산을 비교해 보아도 제일모직은 8조1,833억 원으로 삼성물산 26조1,556억 원보다 훨씬 적었다.

2022년 4월 14일 대법원은 합병과정에서 삼성물산 주가가 저평가되었다는 점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2015년 합병 직전에 동종업계인 현대건설 주가가 17%, GS건설 33% 등 다른 대형건설사들 주가는 계속 올랐다. 그런데 삼성물산 주식만 –8.9%로 곤두박질쳤다.

삼성물산은 수주를 하지 않고, 수주물량을 모두 합병 이후로 미뤘다. 그리고 삼성물산 해외 수주가 2조 원이었는데 삼성엔지니어링 등 계열사에 넘겨 버렸다. 국민연금도 한몫했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주식을 팔아야 할 때 사고, 사야 할 때 파는 이상한 행태를 보였다. 결국 삼성물산 주식은 계속 떨어졌다.

반면에 제일모직 주가는 계속 상승했다. 9월 1일 합병 직전에 제일모직 주식은 17만 원대까지 수직상승 했다. 합병비율 산출하기 직전에는 삼성 계열사 사장급 임원 9명이 제일모직 주식을 집중 매입한 정황이 포착되어 금융당국이 조사에 나서기까지 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을 7.12% 가지고 있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 주식이 저평가된 점을 문제 제기하며 합병에 반대하였는데, 국민연금이 찬성해서 손해를 봤다는 주장이다.

제일모직 주가를 올리는 과정에서 분식회계 문제가 발생했다.

제일모직은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지분을 46%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삼바는 장부금액 평가 기준을 바꾸는 방법을 이용해 분식회계를 함으로써 삼바 가치를 엄청나게 부풀렸다. 삼바 자산가치를 2천9백억 원대에서 4조 8천억 원대로 재평가한 것이다. 삼바 가치가 부풀려지니 제일모직 가치 역시 부풀려졌다. 이 분식회계 장부를 은닉했다가 수사 과정에서 들통나는 바람에 삼바 임직원 다수가 분식회계 증거인멸죄로 구속됐다.

분식회계는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 미국 엘론이라는 회사는 분식회계를 했다가 회장단이 180년 종신형을 선고받고 1명은 자살했다. 중국의 경우 사형에 준하는 처벌을 받는 심각한 경제범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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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모직 삼성물산 합병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이어졌다.

2022년 대법원은 삼성물산의 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결의에 찬성한 것과 관련해,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등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의 업무상 배임죄를 유죄로 확정했다. 두 사람은 각각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합병비율이 삼성물산에 불리한데도 문 장관과 홍 본부장이 의결에 개입해 국민연금공단이 찬성하게 함으로써 합병이 성사되었다는 걸 인정한 것이다.

2015년 당시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11.21%, 제일모직 4.84%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총회에서 합병에 반대하면 합병이 무산되는 상황이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리서치팀은 양사 적정 합병비율을 1 대 0.46으로 보았다. 삼성 안대로 하면 국민연금 지분이 0.44% 감소하여 1,388억 원을 손해 본다. 당연히 합병반대 입장이었다. 그러나 곧 입장이 바뀐다. 심지어 국민연금은 전문위원회에서 의결하면 반대할 것 같으니 투자위원회를 통해 찬성을 의결하는 편법까지 동원했다.

참여연대는 적정 합병비율은 1 대 1~1.36으로 보았고, 국민연금이 5천억 원에서 6천억 원 정도를 손해 봤고, 이재용 부회장은 1조 원 정도 사익을 챙겼다고 추산했다.

국민연금 태도 변화과정과 관련해 박근혜는 2015년 7월 25일 이재용과 단독으로 면담했고, 이전 6월에는 고용복지수석에게 “합병 안건에 대한 국민연금공단 의결권 행사 문제를 잘 챙겨보라”고 지시했다. 합병 당시에도 “삼성이 걱정이다”라고 언급한 사실이 국정농단 수사를 통해서 전모가 드러났다.

2021년 1월 대법원 판결에 따라 86억 원의 뇌물죄로 이재용 부회장은 징역 2년 6월, 박근혜는 다른 국정농단까지 포함 징역 25년, 최순실은 징역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를 근거로 엘리엇이 투자자-국가 소송을 제기해서 5년 동안 끌다가 이번에 승소한 것이다. 엘리엇은 1조원 가량의 손해배상액을 청구했지만, 중재재판부는 7%에 해당하는 605억 원과 지연이자 등을 포함해 1400억 원가량의 손해액만을 인정하였다.

 

재벌의 천민 자본주의 행태

엘리엇 소송 패소사건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단순히 국민연금 손해 문제가 아니라 국정농단까지 빚은 사태를 국민 세금으로 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본질은 “이익의 사유화와 손해의 사회화”라는 한국 재벌의 천민자본주의적 행태를 남김없이 보여준다. 절름발이 한국자본주의의 민낯이다. 이 때문에 상식적인 국민은 박근혜, 이재용, 최순실, 문형표, 홍완선에게 정부가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중동과 보수 경제신문은 구상권 청구가 아니라 정부가 국제 취하소송을 내야 한다고 떠들고 있다. 국민연금은 국가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한미FTA에서 규정한 ‘투자자-국가 간 분쟁’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또 엘리엇이 ISD 중재지를 영국 런던으로 정했는데, 영국 중재법 67조에는 ‘실체적 관할 위반’이 발생하면 중재를 취소할 수 있다고 한다. 국민연금이 국가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관할대상이 아니라고 하면서 소송을 제기하자는 것이다. 친재벌세력은 법무부가 외국 기업사냥꾼들에게 본때를 보여야 한다는 식으로 광분하고 있다.

정부가 취하소송을 제기한다고 해서 승소할 가능성은 없다. 소송비용만 더 들고 지연이자만 늘어날 뿐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왜 취하소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국정농단 주범의 범죄적 행태로 국민 혈세가 들게 생겼다는 반감을 물타기 하려는 수작이다. 여기에 교활하게도 국민의 애국심을 악용한다. 그들은 국가경제보다는 언제나 사익추구를 앞세우는 세력이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나라도 팔아먹고, 국제금융자본, 투기자본을 끌어들이는 세력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외국자본과 싸우는 애국자인양 행세하며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 여기에 속아넘어가는 국민들도 일부 있다. 경계해야 한다.

 

국제투기자본의 약탈 행태

엘리엇에게 손해를 물어준다고 끝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메이슨 캐피탈이라는 외국계 자본이 엘리엇과 똑같은 사안으로 국제 소송을 제기한 상태이다. 메이슨은 삼성물산 지분을 2.18% 소유했는데, 이에 대한 손해를 배상하라고 한다. 결과는 엘리엇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또 한국 정부는 배상금을 국민 혈세로 물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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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자본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투자자-국가소송이 줄줄이 남아 있다. 현재 총 10건이 제기되어 있고, 5건이 재판 진행 중이며, 7000억 원의 배상금이 걸려 있다.

메이슨 캐피탈을 포함하여 쉰들러 홀딩아게라는 투자회사(본사 : 스위스)는 2447억 원짜리 소송을 냈다.

현대엘리베이터가 경영상 목적이 아니라 사주 일가의 경영권 강화를 목적으로 유상증자와 전환사채 발행을 했다고 보고 있다. 이를 정부가 감독을 게을리해서 손해를 봤다는 식의 주장이다.

지난해 8월에는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 지연으로 입은 손해를 배상하라며 4조 5천억 원을 제기한 소송에서 정부가 패소했다. 3000억 원 정도를 물어줘야 할 판이다.

투자자-국가 분쟁소송은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세계화 전략의 산물이며, 주권국가의 경제정책을 침해하는 심각한 약탈정책이다.

정부가 국내경제 사정을 감안해 특정 정책을 취하면 외국계 투자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남발하게끔 제도화한 것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이다.

외국계 곡물자본과 농약, 종자 자본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가 농민에게 보조금을 줄 수 없도록 하는 강제장치가 투자자-국가 소송제도이다.

국가적 전략산업을 육성하는 정책을 시도할 수 없게 강요하고, 국제분업체계의 일부 역할만 하라며 종속경제를 강제하는 장치가 바로 투자자-국가 소송제도이다.

국제 금융투기자본, 초국적 자본에 의한 투자자-국가 소송은 2018년 경우 아르헨티나가 60건, 베네수엘라가 44건으로 최다였고, 한국 역시 피소송액이 6조 6천억 원이 넘은 적이 있었다.

2013년 세계 투자자-국가 소송은 한 해 동안만 62건이었고, 누적하면 518건이 넘었다. 모든 FTA에는 이 조항이 다 들어가 있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도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국제투기자본들이 전 세계를 상대로 강권으로 나라별 경제발전권을 제약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외국자본이 메기 역할(미꾸라지는 자신의 적인 메기가 옆에 있어야 긴장해서 잘 큰다)을 해서 한국 재벌의 천민자본주의 행태를 극복시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미국식 주주자본주의, 행동주의 펀드가 금융시장 경쟁력 강화에 유리한 제도라면서 찬양하는 유투버도 상당수 있다. 이는 IMF 외환위기 당시 외국자본을 끌어들여 재벌을 개혁하자는 소리와 똑같은 주장이다.

외국계 자본 역시 자신들의 행동주의적 투자행태나 투자자-국가 소송이 천민자본주의 행태, 아시아 자본주의의 폐쇄적 행태를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는 식으로 주장한다.

강도가 집안 보안 강화에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주장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업그레이드한 현대 금융침략 버전에 불과하다.

외국계 자본과 싸우기 위해서는 국내 재벌들의 막가파식 사익추구도 참고 살아야 한다는 견해도 문제이며, 외국계 자본을 끌어들여 한국 재벌과 금융시장을 개혁하자는 주장도 망상이다.

국민은 외국계 투기자본과 국내 재벌의 천민적 행태 모두와 싸워야 한다.

이번 엘리엇 소송 패소 사건은 한국경제가 국제금융자본의 먹이감으로 전락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는 재벌의 천민자본주의적 행태가 외국계 자본의 수탈을 끌어들이는 주범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문제를 그대로 두고서는 금융투기자본의 한국경제에 대한 수탈, 경제주권에 대한 제약, 재벌들이 이익을 사유화하고, 손해는 국민이 책임져야 하는 사태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국민은 지금 해외금융투기자본과 국내 재벌로부터 이중적으로 수탈당하고 고통받고 있다. 이것이 엘리엇 사태의 의미이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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