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희영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위원장이 27일 서울 강서구 교육희망전교조회관 전교조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6.27 ⓒ민중의소리
"원인을 모르니 진단이 틀렸고 대책도 없습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전희영 위원장이 최근 정부가 발표한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과 '사교육 경감 대책'에 대해 촌평하며 한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촉발한 수능 논란을 수습하기 위해 교육부가 잇따라 정책 대안을 내놓았지만,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의 불안과 혼란을 잠재우지 못하고 있다.
27일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회관에서 만난 전 위원장은 최근 수능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만 5세 취학 논란의 재탕"이라고 규정했다. 전 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교육 정책을 보면,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내지르는 식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이러한 방식이 국민 불안감만 자극하고 있다"며 "학교 선생님들도 5개월밖에 남지 않은 수능이 어떻게 될지 향방을 잡기 힘들어하고 있다. 불안한 학생들은 오히려 학원으로 발길이 향하고 있다고 얘기를 한다"고 강한 우려를 표했다.
윤 대통령 ‘수능 폭탄’ 후 발표된 '공교육 강화·사교육 경감 대책'에
"사교육 확대가 킬러 문항 때문? 어처구니없다
대학 서열, 학벌사회 해결 등 근본적 대책 내놔야"
윤 대통령의 수능 발언 이후, 정부의 대응은 말 그대로 전광석화처럼 이뤄지고 있다. 문제의 발언이 공개된 지 하루 만에 교육부 대입 담당 국장이 경질됐고, 수능과 모의고사 출제를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대한 감사가 예고됐다. '킬러문항을 없애라'는 윤 대통령의 지시가 6월 모의평가에서 반영되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곧바로 이규민 평가원장도 사임했다. 정부·여당은 초고난도 문제를 일컫는 '킬러문항'이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내모는 '근본 원인'으로 지목했고, 교육부가 전날 내놓은 '사교육 경감 대책'도 사실상 킬러 문항을 핀셋으로 제거하겠다는 게 핵심이었다.
전 위원장은 "킬러문항 얘기를 보면서 다들 어처구니없어 하고 있다"며 "킬러문항 때문에 사교육이 팽배해지는 게 아니라 줄세우기를 위해서, 변별력을 위해서 킬러문항이 등장하는 게 아닌가. 우리나라의 과도한 입시경쟁을 부추기는 교육 체제 자체가 킬러문항을 양산하고 있는 것인데, 원인 진단을 틀리게 하니, 이런 대형 사고를 치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사교육비 경감 대책'에는 중·고등학생들이 공교육 내에서 충분한 보충 지도를 받을 수 있도록 방과 후 교과 보충 지도를 확대하고, 초등 단계의 돌봄·예체능 사교육을 공교육이 흡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또한, 유아의 경우 사교육 수요가 높은 영어·예체능을 방과 후 과정으로 운영하기 위해 재정지원을 높이고, 다양한 테마형 유치원도 지정하겠다는 게 교육부의 계획이다.
전 위원장은 "이것이 사교육 경감 대책이 되겠나"라고 되물었다. 그는 "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얘기하기 위해서는 (학교 교육) 밖에서 진행되는 것을 가져올 게 아니라 학교 교육을 어떻게 하면 내실화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내놔야 한다"며 "(교육부가 발표한 대책에는) 전반적으로 아무 내용이 없다"고 혹평했다.
이보다 앞서 정부가 내놓은 공교육 강화 방안은 사교육 조장 대책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교육부는 지난 21일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하며 문재인 정부에서 폐지하기로 한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존치하고, 초등학교 3학년과 중학교 1학년 전체 학생들이 '맞춤형 학업성취도 평가'에 참여할 수 있도록 시도교육청에 권고했다. 표현은 '권고'지만, 학업성취도 평가 참여 여부는 시도교육청 평가 및 학습지원담당교원 배정에 반영되기 때문에 사실상 '강제'나 다를 바 없는 상황이다.
이를 두고 전 위원장은 "사실상의 협박"이라며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이명박 정부 시절 했던 일제고사의 부활"이라고 말했다. 전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일제고사(의 폐해)에 대한 문제를 얘기할 정도로 전 국민적인 공감을 가진 사안이었다. 전수 평가를 했다가 표집 평가로 바뀌게 된 역사적인 과정이 있었던 것인데, 이걸 다시 되돌리려고 하는 것이 안타깝고 황당하다"며 "특히 초등학교 3학년에게 무슨 전수평가를 하느냐는 선생님들이 많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전 위원장은 학업성취 수준의 공개 범위가 확대된 데 대해서도 우려했다. 기존에는 학생과 학부모에게는 학생 개인의 성취 기준만 공개했지만, 앞으로는 해당 학생의 성취율과 전체 학생의 평균 성취율까지 알려준다. 그동안 학교와 교사에게는 성취수준별 학생 비율만 알려줬지만, 이제는 해당 학교의 학년별, 교과별, 영역별 성취율 분석 자료까지 추가로 공개한다. 각 교육청에도 해당 시도의 성취 수준 세부 분석 결과를 제공할 예정이다.
교육 현장에서는 초등학생들마저 서열화 경쟁에 내몰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 일제고사 시행 당시 초등학교에서 0교시나 7교시 시험을 진행하거나 학업성취도 평가 대비 문제집을 제작해 정규수업 시간에 교과서 진도를 중단하고 문제 풀이만 시킨 사례도 적발된 바 있었다. 우열반을 편성하고, 아침과 방과 후에 '부진아 반'을 운영해 나머지 공부를 시키거나 격주 토요휴업제가 시행 중이던 당시 '놀토'에도 학생들을 불러 학업성취도 평가 대비를 시킨 학교도 있었다. 학교에서는 인센티브를 내걸고 교사에게 일제고사 대비를 유도했다. (관련기사 : [일제고사 부활하나 ①] 정부는 ‘자율’이라지만, 우려 끊이지 않는 이유)
전 위원장은 "교육부 계획대로라면 과거 초등학생들이 (전수평가로) 밤새 학원을 가고, 보충수업을 하는 일들이 재현될 수밖에 없다"며 "학교 간 비교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각 학교의 교장들은 시험을 잘 치르게 하기 위해 각종 교과 보습도 추가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전 위원장은 현재의 '대통령 발 수능 혼란'이 벌어진 근본 원인에 대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 혼란만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그간 국민의힘 등 보수 정당은 지속적으로 정시 강화를 얘기해 왔다. 정시를 강화하려면 (변별력을 위한) 킬러문항이 더 강화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는데, 윤 대통령이 기존 방향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얘기를 한 것"이라며 "사교육 문제는 우리나라의 대학 서열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이상 답이 절대 없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전 위원장은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21 한국 사회지표' 결과, 대졸자 임금을 100%로 봤을 때 고교 졸업자의 임금은 63%, 중졸 이하의 임금은 47% 수준에 그친 점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학벌 구조가 공고화된 상황에서, 취업난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사실상 대학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구조에서 어느 학부모와 어느 학생이 입시 경쟁에 뛰어들지 않을 수 있겠나"라며 "대학 서열 문제나 학벌사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어떠한 대책을 가져온다고 해도 사교육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현장 의견 무시한 채 나이스 개편 강행하더니, 하루 만에 먹통
"교육부 장관이 전국 1만 2천개 학교에 민폐 끼쳐"
전국의 초·중·고등학교에서는 또 다른 혼란이 벌어지는 중이다. 교육부가 현장 교사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4세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나이스) 개통을 강행하면서 각종 문제점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나이스 시스템은 각종 교무 업무를 입력,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시험 답안지 입력 및 출력도 이뤄진다. 그간 전교조 등 교원 단체들은 기말고사와 수행평가 처리 기간이 몰린 6월에 개편할 게 아니라 방학 기간이나 학기 초에 개편할 것을 요구했으나 교육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개편 첫날부터 오류가 속출했다.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나이스 오류로 시험 시험문제와 정답 정보가 담긴 문항정보표가 유출되거나, 수행평가 점수 합산이 틀린 사례도 발견됐다. 이로 인해 기말고사를 코앞에 두고 시험 일정을 연기하거나 기말고사 사례를 재출제하는 학교도 생겨났다.
전 위원장은 "나이스 시스템이 먹통이 돼서 접속도 안 되고, 기존에 입력된 수행평가나 생활기록부 자료도 넘어오지 않거나 기록이 되지 않고 있다. 가장 심각한 건 시험에 어떤 문제가 나올지 유추할 수 있는 문항정보표가 유출된 건데, 정부는 답지나 문항 순서만 바꾸면 된다는 안일한 내용의 공문 한 장을 내려보냈다"며 "선생님들은 주말까지 출근해 시험 문제를 다시 내거나, 학교들도 시험 일정을 연기했다. 교육부 장관이 전국에 있는 1만2천여개 학교에 민폐를 끼친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 위원장은 "그동안 전교조를 비롯한 교원단체들은 학교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방학 시기에 나이스 시스템을 개편하자고 요구했지만, 교육부는 끝까지 강행했다. 결국 이번 사태는 교육부가 자초한 일"이라며 "교육부에 왜 6월 개편을 했어야 했냐고 물으니, (당초 예정된) 3월에는 시스템 담당자가 코로나19에 확진돼 제대로 업무를 못 했다고 답변을 했다. 교육부의 심각한 과오로 학교는 난리가 났는데, 정작 교육부는 책임을 안 지고 있다"고 황당해했다.
전교조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4세대 나이스 도입 즉각 중단 ▲지속되는 교육 정책 참사에 대한 윤 대통령의 사과 ▲시험문제 유출과 교육과정 파행 주범 이주호 교육부 장관 파면 등을 요구했다.
전 위원장은 "(나이스 시스템 먹통으로) 학교 전체 업무가 중단됐고, 특히나 성적과 관련한 부분은 민감한 부분"이라며 "교사들의 경우 수행평가 점수를 1개라도 잘못 입력하면 감사받고 징계받는다. 최고 수위는 파면이다. 시험문제가 유출되고 수행평가 점수 입력은 엉망이 된 상황에서 교육부 장관의 파면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소통 없이 추진되는 교육 정책들, 논란과 혼돈만 남아
전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의 지난 1년간 교육 정책을 "완전한 퇴행"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일제고사의 부활과 고교 서열화를 해소하기 위해 폐지하기로 한 자사고와 외고, 국제고의 부활, (초·중등 교육에 쓰이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줄여 대학 교육으로 돌리겠다는 계획, 생태전환교육·노동·민주시민 교육 등이 사라지는 문제 등 전반적으로 퇴행하고 있다"며 "1년 만에 재이수가 불가능한 낙제 수준이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교육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관련 당사자나 교육 주체의 의견은 제대로 청취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전 위원장은 "정부가 수립하는 여러 교육 정책을 학교에서 실현하는 건 교사들이다. 결국 교사들이 정책 주체가 되는 것인데, 정부가 의논도 하지 않고 정책을 추진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안타깝고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정부가 교원 노조와 활발하게 협의했을 때가 코로나 시기였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학교도 심각한 상황이었으니, 전교조를 비롯한 6개 교원노조를 다 모아서 정기적으로 간담회를 하고, 정책 협의를 했다. 이런 논의를 통해 학교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최대한 빠르게 해소할 수 있었다"며 "최근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면서 학생들의 정서 위기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에 이를 논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하고 있지만, 제대로 협의가 되질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 위원장은 지난해 말 연임에 성공해 2024년까지 중책을 이어가게 됐다. 전 위원장은 "현장에서는 교사들의 교육권과 정치기본권에 대한 요구가 크다"며 임기 동안 이를 보장하기 위한 활동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전 위원장은 "최근 교육부는 전교조가 교사들에게 일본 오염수 해양 투기를 막기 위한 서명 참여를 독려한 것을 두고도 정치 행동을 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정치 기본권과 관련된 보장은 민주시민 교육을 하기 위해 아주 기본적인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보장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교사들이 교육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과정을 편성하거나 평가할 수 있는 권리는 교장과 교육부 장관에게만 주어지는데,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아동학대 신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수업 등 교육활동을 마음껏 하지 못하는 부분도 해결해야 할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전 위원장은 교육권과 학생 인권 문제가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 상황에 대해서는 "그동안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법, 제도적인 개선이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요구들이 터져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두 권리 모두 강화할 수 있는 개선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전 위원장은 "학생들의 인권은 천부적으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보장돼야 하는 것이다. 교사들의 교권과 관련해서도 예전에 비해 어려워진 건 사실인 것 같다"며 "학생인권법은 19대 국회부터 발의됐지만,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 학생인권법 제정과 더불어 교사들의 교육권이 보장되는 교원지위법, 초중등교육법, 아동학대와 관련된 처벌법 등에 대한 개정이 같이 이뤄져야 (교육권과 학생 인권 문제가) 대립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교권 하락 문제는 최근 급증하는 교사 퇴직 문제와도 연결된다. 지난 5월,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권은희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1년간 퇴직한 근속연수 5년 미만의 저연차 교사는 589명으로 전년도(303명)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최근 1년간 전체 퇴직 교사 수는 1만 2,003명으로 조사됐다.
전 위원장은 "사회경제적으로 교사들의 지위가 떨어지고, 존중받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교권 침해가 폭증하는 문제도 있다. 또한, 수업 시간보다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고, 이런 상황에서 교사로서의 자존감이나 자긍심을 느끼기 어렵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특히 청년 교사들의 경우 경제적인 지위에 대해서 많이 요구하고 있다. (저연차 교사들의) 임금이 거의 최저임금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교사들의 자긍심을 느낄 수 있도록 사회 전반적인 풍토가 바뀌어야 하고, 행정업무 경감, 임금 인상 문제, 각종 복지 혜택 문제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전 위원장은 "윤석열 정권이 전반적인 교육 퇴행 정책, 교육 개악 정책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줄기차게 싸워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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