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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앞둔 노량진 수산시장... 일본 방사능 불똥 심각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9/19 10:35
  • 수정일
    2013/09/19 10:3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이 생선 먹어도 돼요?"

[르포] 연휴 앞둔 노량진 수산시장... 일본 방사능 불똥 심각

13.09.18 21:25l최종 업데이트 13.09.18 22:13l
김지혜(prist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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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수산시장에 걸려있는 현수막. '우리 수산물 안전합니다'라고 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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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이 생선장사하는 엄마가 만든 동태전도 안 먹겠다고 하더라고."

노량진수산시장 상인의 말이다. 그는 노량진에서 10년 넘게 장사를 하면서 이렇게 수산물 기피 현상이 극심한 것은 처음 본다고 말한다. 그는 "딸조차 내가 아침에 생선요리를 하면 안 먹는다"며 "이젠 일본 방사능의 '방'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라고 고개를 숙였다.

추석연휴(18~22일)를 하루 앞둔 노량진 수산시장. 여느 때 같으면 차례상에 올라가는 굴비, 동태, 명태 등 각종 수산물을 구매하려는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뤄야 하지만 지금 노량진 수산시장에는 상인들의 한숨소리만이 가득하다. 추석이면 백화점 선물 코너에서 인기 있는 품목인 굴비와 옥돔 등 수산물 세트도 이번 추석에는 외면당했다. (관련기사: 광우병에 웃고 방사능에 울고... 추석 선물 '잔혹사')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따른 수산물 방사능 오염 불안이 큰 가운데, 소비자들이 수산물 자체를 구매하기 꺼리기 때문이다. 정부가 방사능 허용기준치를 근거로 올해에만 1만 4000여 톤의 일본산 수산물을 수입해 유통하자 방사능 식품에 대한 국민들의 공포는 더 극심해졌다. 그 여파는 어느 정도일까. 기자가 17일 오후 직접 노량진 수산시장을 찾았다.

'국민생선' 고등어·삼치도 전멸... "하루에 한 마리도 안 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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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맞은 노량진 수산시장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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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시장에서 명태와 굴비, 갈치 등을 판매하는 신아무개(47)씨는 하루에도 수차례 손님들에게 같은 질문을 듣는다고 한다. '먹어도 되는 것'이냐고 묻는다는 것이다. 신씨는 "그마저도 묻고 그냥 지나가기 일쑤"라고 말했다.

그는 "손님 자체가 없다"며 "추석엔 경기가 안 좋을 때도 항상 물량이 부족했지만 지금은 지난해보다 싸게 팔아도 안 팔린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인간적으로 장사가 너무 안 된다"며 "사는 게 재미없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동태포만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옆 가게 상인은 "국산, 수입 가릴 것 없이 안 사간다"며 "우리는 명절 장사가 중요한데 노량진 전체가 다 망해간다"고 덧붙였다.

고등어와 삼치를 판매하는 상인 이아무개(52)씨는 "예전에는 고등어, 삼치는 20~30마리가 나갔지만 오늘 한 마리도 못 팔았다"고 말했다. 그는 "손님들이 고등어, 삼치는 다 일본산인줄 안다"며 "우리는 신선해서 국내산을 들여왔지만 아무도 안 사간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우리 앞집, 옆집도 원래 고등어, 삼치를 들여왔지만 지금은 우리만 판매하고 있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상인은 손님이 말한 우스갯소리를 씁쓸한 표정으로 전했다.

"막말로 우리야 늙어서 먹어도 된다지만 젊은 사람들은 애기 낳고 살아야 하는데 생선 먹으면 안 되잖아요. 방사능이 몸에 쌓이면 몇 십년 뒤에 나타난다는데…"

조개 등 어패류도 기피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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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 수산시장 내부. 추석을 맞았지만 손님들의 발걸음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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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합살이나 바지락 등 조개류를 판매하는 최아무개씨는 자리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최씨는 말했다.

"원래 추석 이맘때면 조갯살을 발라내느라 시간이 부족할 정도였는데. 지금 여기 골목 텅 빈 것 봐. 손님이 이렇게 없는데… 할 게 없으니까 TV나 보고 있는 거지."

최씨는 "올해와 지난해 노량진 분위기는 하늘과 땅 차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홍합살이나 조갯살은 국에도 넣어먹고 전을 부쳐서 먹는 추석 음식이지만 손님들이 찾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도매상들은 물건을 많이 떼어 와야지 더 싸게 팔 수 있지만 장사가 안 되니 무서워서 물건을 못 들여온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어 "물건을 조금 들여오니 가격도 경쟁력이 없어지고 악순환"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노량진 종사자 4000명의 생사가 달린 일이다"며 수산물 기피 현상의 심각성을 알렸다.

노량진 수산시장을 찾은 손님들의 반응은 어떨까. 제수용 식품을 사러나온 주부 이아무개씨는 "일본 원전사태 이후에는 국내산 생선인 것을 알아도 바다에서 나온 것은 다 불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추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민어를 구입했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생선은 안 먹어도 크게 지장이 없으니 평소에 회 등을 피하려고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아이를 데리고 노량진 수산시장을 찾은 부부는 한참을 둘러본 뒤 꽃게와 새우를 구매했다. 이아무개씨는 "서해에서 나온 꽃게는 그나마 믿고 먹는 것"이라며 "하지만 아이는 못 먹게 하고 남편과 나만 먹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락가락하는 정부 때문에... 손님들 입장도 이해는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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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 수산시장 앞. 손님들이 새우를 구매하기 위해 구경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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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들은 손님들이 수산물을 기피하는 것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한 상인은 "정부에서 안전하다고만 주장하다가 뒤늦게 후쿠시마 근처 일본 수산물을 수입 금지한 것 아니냐"며 반문했다.

정부는 지난 6일 일본발 방사능 오염에 대한 우려로 "기존에 후쿠시마 주변 8개 현의 50개 수산물에 대해 수입을 금지해 왔으나, 이 지역의 수산물은 방사능 오염과 상관없이 국내 유통이 전면 금지된다"며 뒤늦게 대책 마련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해 일본에서 수입된 수산물 4만 톤 가운데 이번에 수입 금지되는 8개 지역 수산물은 15%에 불과해 나머지 지역 수산물의 안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일본 후쿠시마 인근 5개현에서 약 8000톤 규모의 수산물이 대거 국내로 수입된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16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임내현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후쿠시마현 등 8개현 수입수산물 검사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지난 8월말까지 후쿠시마 인근 5개현에서 총 403건, 7982톤의 수산물이 국내로 들어왔다. 이 가운데 2800톤은 올해 수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노량진 수산시장의 또 다른 상인은 "물은 돌고 도는 것인데 우리 수산물이 언젠간 오염수에 위협받을 거란 생각에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것을 이해한다"며 "자고 일어나면 뉴스에서 자꾸 방사능에 대한 새로운 내용이 나오니 우리도 조마조마하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 원전운영사 도쿄전력은 지난 8월 20일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고농도 방사능 오염수 300톤이 저장탱크에서 직접 유출됐으며, 현재도 계속해서 유출이 일어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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